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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팅 비평은 모종의 ‘미적 질감’ 비평을 끌어내보기 위한 작업이다. 여기서는 미술과 미학 문제로 다룬다.

그간 미술비평과 큐레이터 일을 했다. 인문학박물관을 만들어 학예실장으로 일 한적도 있고 일민 시각총서 편집장 일도 했다. <미학이란 무엇인가>(사계절)를 비롯해 미술서 몇 권 썼고, <문화적 기억_야나기 무네요시전>, <공감_정기용 건축전>을 비롯해 <격물치지>, <공장>, <우리 학문의 길_새 생활과 새 윤리의 학>, <수레바퀴 밑에서> 등의 전시도 기획했다.

자전적 문화론이자 지하생활자의 수기로 문명과 미감 사이 곤경(困境)의 질감(質感)에 대해 써보고 싶어 그야말로 노력 중이다. 인생의 불편함, 불쾌함에 대한 사회적 존재론이자 우주론 독본을 계획만 하고 있는 건데, 스스로도 그 모양새를 알 수 없다.

미술로 표현된 근현대 여성의 모습은 과연 여성을 담고 있는가, 여성주의자 혹은 여성주의 미술가들이 그린 여성성은 과연 여성주의를 실현하는가, 여성미술은 어느 정도로 여성해방적 미술을 성취하고 있는가 등등에 대한 간략한 질문형식의 문제제기를 해보자.

역사적 사회적 흐름과 더불어 변하는 여성이미지들에 과연 여성성의 달라진 의미들이 반영되어 있다면 여성미술은 시대마다 얼마나 이런 여성성의 문제자체를 인지, 인식해 담아내는가? 여성작가들의 작가활동상에서의 모습은 얼마나 자신이 옹호하는 여성성과 일치하는가 하는 문제들을 한국 근현대 사회 여성의 이미지들을 매개로 살펴보자.

1)근현대사회와 여성

나혜석이 <학지광>에서 쓴 글(19174월호)에서 보면 나혜석의 여성으로서의 자기자각은 시대를 앞선 선구자적 의식을 보여준다

"우리 조선 여자도 인제는 그만 사람같이 좀 되어 봐야만 할 것이 아니오? 여자다운 여자가 되어야만 할 것이 아니오? 미국 여자는 이성(理性)과 철학으로 여자다운 여자요, 불국(佛國) 여자는 과학과 예술로 여자다운 여자요, 독일 여자는 용기와 노동으로 여자다운 여자요. 그런데 우리는 인제서야 겨우 여자다운 여자의 제일보를 밟는다 하면 이 너무 늦지 않소? 우리의 비운(悲運)은 너무 참혹 하오 그래.“

사람같이 좀 되어봐야만 한다고 말하는 나혜석의 말에서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그때까지의 여자들 대부분의 삶은 사람같이 되어보지 못한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근데 나혜석은 사람같이 되어보는 여자란, 여자다운 여자라고 규정한다. 여성성의 규정이 당시나 지금으로서나 매우 특출나다. ’사람이 되면, 여성다운 여자가 되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이성과 철학, 과학과 예술, 용기와 노동으로 여자다운 여자가 된다고 주장한다.

나혜석에게 여성다운 여성은 사람같이 되어본 여성이요, 서구의 여러 학문을 통해 그리고 용기와 노동을 통해 사람답게 된다. 근대교육을 받고, 직업전선에 나서 일을 하면서, 철학을 배우며 자기각성을 하면서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문물을 배울 용기와 사회생활에 뛰어들어서 여성이 사람이 된다는 주장이다.

나혜석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그녀의 주장대로 신식문물을 배우고 사회활동도 많이 했다. 그녀는 남성과 같은 사회적 조건으로 사회생활의 중요 구성원으로 살기를 원했고 실천했다.

그녀의 이런 주장은 분명 양성평등의 사회적 요구를 담는다는 측면에서 근대 한국 여성의 자기자각의 일보를 내딛는 실천이고 주장이었다고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은 어떠한가? 최초의 여성미술가로 적극적으로 미술계에 뛰어들어 활동한 사실 외에 그녀의 그림은 여성의 나부를 소재로 남자도 아닌 여성작가가 그렸다는 사실 외에는 그녀의 작업 전체는 사실 남성작가들처럼 풍경등을 소재로 전혀 남녀평등사고는 적극적으로 매개되지 않은 평범한 수준의 그림들을 그려냈다. 나혜석은 그녀의 작품이 아니라 그녀의 행동과 의식으로 우리 미술계 최초의 여성작가였을 뿐이다. 작품과 의식이 일치하지 않는다.

2) 근대 남성화가들이 그린 남성상과 여성상

이마동의 <남자>에서 보듯 서구 근대성수용의식은 의식적으로 표현된 적은 없지만, 본질적으로 남성중심주의적 의식이다. 나혜석이 인간같아 지기위해 호명했던 과학과 철학과 예술과 노동의 개념 등은 보편적 가치라는 식으로 체계화되고 발전된 어떤 기술이고 전망, 선망의 범주들이었다. 당시 사회의 남성 엘리트들이 축구하던 새로운 세계의 가치관을 담는 개념들이다.

개념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여성주의적 의식도 없고, 남녀 성평등이나 성차 같은 인식을 담고 있지 않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근대성의 세계는 남성의 세계요, 남성의 사회적 발전과 미래를 암묵리에 담고 전제된다.

서구 근대성 형성의 기나긴 역사 속에 여성해방을 위한 여러 활동들이 은폐되어 있다거나 남성 중심으로 구성된 공적 사회에서도 남성들 간에도 숱한 억압과 착취가 있고, 게다가 19세기말 20세기 초 서구시민사회의 조락과 불안을 담는 정신적 예술적 징후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감지되지도 못한채, 과학과 발전, 합리성등 근대성의 마초적 패권논리들이 받아들여진다. ’근대성은 남성주의적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이마동이 그려낸 이 청년은 자신이 곧 장차 다가올 세계의 중심이요, 과거와 미래도 지배하고 싶다는 강한 자의식을 드러낸다. 우리는 이런 청년상을 남녀 누구나의 가슴 속에 자신의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간직한다. 여자들에게도 이런 욕망이 마찬가지로 있지만, 여자들의 이런 동경을 표현한 이미지는 없었다. 우리에게 청춘의 상이란 남성의 모습이다.

근대 남성화가들이 그린 여성상은 대개의 이은호 그림들에 그려진 여성상들처럼 전형적으로 동양적인 가부장적 사회의 여성상이다. 아니면 간혹 대동아공영권에 속한 조선의 지방적 특색을 강조, 반영하면서 조선적 향토미가 강조된 촌부같은 모습들이 정물화처럼 그려지기도 하지만, 이유태의 <탐구>에서처럼 본질적으로 가부장적 여성상이긴 하되 나혜석이 주장했다시피 근대학문을 배우기 시작한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식민통치의 긍정적 효과를 보이기 위한 그림들도 제작된다.

한국 근대 시각이미지 속 여성상은 근현대 사회상의 변화, 발전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사실상 한국 미술사에 그려진 여성의 모습들 혹은 여성 이미지들은 시대의 부() 달리 말하면 시대장악의 은밀하면서도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기호품처럼 등장한다.

몇몇 화가들, 주로 월북하게되는 사회주의 미술이론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과 해방 정국 그리고 전쟁을 겪으면서 눈에 보이는 정경 속에 놓여있는 대로의 여성모습들이 애호된다. 박수근이 그 대표적 예이고 김환기 그림 속의 여성이나 당시 대부분의 남성 작가들이 그린 여성이미지는 그렇게 일상의 애환에 찌들린 연약함과 가련함으로 비춰진다. 연약함과 가련함은 단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만 강인한 여성성으로 독해된다.

 

3)현대성과 여성성, 여성주의 미술

우리 미술에서 현대성/동시대성의 구분은 70년대와 80년대 이후로 갈라진다. 80년대 미술에서 우리 미술의 오늘날의 동시대성은 비롯되는데, 70년대 우리 미술의 현대성은 서구 현대미술의 흐름을 거의 동시적으로 수용하면서 형성되는데 반해, 80년대 우리 미술은 무비판적 현대화에 대한 반발과 더불어 지역성이 강조되거나 여성작가들에게서는 여성미술가로서의 작가의식도 확연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최욱경의 경우를 보면, 나혜석이 여자가 사람되는 방법으로 서구학문과 예술, 노동과 용기를 본받아서 다시말해 근대적 남성성이 간직한 열망을 여자도 보유, 인정받으면서 기존의 노예같은 여성상태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그 인식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남자만큼 하는 여자로서만이 기존의 여성적 처지를 격상시킬수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그림은 소위 말하는 여자적 감성이 충만한 자의식으로 그려진 그림일 수는 있으나 자신을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로부터 전혀 해방 시키지 못한다.

70년에 이어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양성평등을 향한 여성주의 관점에서의 이미지들과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 속에서 여성주의 작가들이 등장한다. 여성주의 미술은 우리 미술의 동시대성을 구성하는 중요 부분이 되어있다.

80년대 여성 작가들 사이에서 일종의 여성주의미술이라는 자각된 인식이 형성, 강화되고, 사회전반에서 소위 여성문화 혹은 여성성으로서의 남성성과의 차이, 여성이 처한 현실사회 속의 여러 문제들 등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이러한 문제들을 미술에서도 담아내고자 하는 움직임도 본격 태동한다.

이후 현재까지 여성성이란 무엇인가 여성미술 혹은 여성주의 미술이란 어떠해야하는가 등에 대한 미술적 실천들이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그간의 여성주의미술운동 혹은 여성미술운동이 낳은, ’여성이미지의 미술사적 사회적 산물은 무엇인가 이 시점에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산물이라고 표현하니 좀 어색하긴 한데,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면 그렇다. 과연 여성주의미술이 낳은 혹은 더 길게 보면 여성작가들이 여성작가로서의 자각이 시작된 이래 우리 미술사에 남긴 족적의 구체적 미술적 성과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보면, 여성미술운동 혹은 여성주의 미술의 성과로 양성평등적 여성이미지/남성이미지는 창조되었는가, 여성성의 여성주의적인 표상의 가장 일반적인 범례들로는 어떤 이미지들이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여기서 제기하고 싶은 이슈들과 의문들 몇가지를 다시 간추려보자면 다음과 같다.

 

-나혜석이 표방했던 인간되기위한 조건들은 사실상 성공한 남성되기의 조건들이었다는 점이다.

-나혜석은 이러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 언 땅에 헤딩하는 자세로 인생을 임했고 그런 의미에서 매우 여성주의적인 강고한 입장을 가지고 실천한 여성작가였지만, 그녀가 여성미술가로 남긴 미술세계는 전근대적 어떤 남성적 감성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이후 현대 여성작가들에게서도 여성미술가로서의 자각은 남성못지 않은 강한 예술적 자유와 해방을 구가할지라도,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을 담았을지라도, 그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이라는 것에 여성해방적인 세계가 은유되어 있지도 않았고, 이때의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이 어떻게 여성 특유의 것인지조차 매우 불투명하고 모호했다는 것

-그래서 성차적, 성평등적 시각에서의 어떤 형상의 실체는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성주의 미술가들과 여성미술 운동가들이 재현하고 비판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여성의 삶의 모습의 부정성은 대부분 옳았지만, 그 비판적 시각의 입각점이 여성주의적이라든가 성평등적, 혹은 성차를 구별하는 원리의 것인지를 알 수는 없다는 것, 다시 말해 여성의 삶이 억압되고 유린되고 있다는 지적은 여성주의로서 하는 지적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성차나 성평등 의식을 전제하지 않고도 진실이라는 점이다.

-결국 그간의 여성주의미술이나 여성미술운동이나 혹은 여성작가들이 해 온 바는 결국은 나혜석이 주장했던 바인 (근대주의적, 남성 중심 사회에서) 지성적 인간되기의 방법으로 사회생활에서 남성만큼 혹은 남성 이상으로 성취하기라는 목표 이상의 것도 이하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주의는 남성주의적인 여성의 인간되기를 위한 수단으로, 목적이 아닌 수단인 그만큼 동시에 여성과 사회를 남성주의적으로 연결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다시 결론적으로 간추리자면, 여성성 혹은 성평등성을 보존한 여성성 또는 자유와 평등의 해방된 성차를 담보, 전제한 여성이미지는 일종의 이념상으로 한번도 누구도 그 실체를 본 적이 없다. 다시 말해 여성성 혹은 여성적 감수성, 성평등을 구현한 인간의 이미지는 사실로 존재해 본적이 없고, 작가들이 그려내 본적이 없는 이미지이다.

여성주의자들이 그려낸 이미지들은 여성주의의 프로파간다이며 여성의 문제적 현실들에 대한 개념 해부도 이긴 지만, 개념해부도로 사회의 여성권리와 여성해방에 교육적 효과를 산출하는 도구가 되어왔고 그만큼 실천적이기도 하지만, 여성주의적이어야만이 이런 효과가 산출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학으로 역사학으로 다시 해 정확히는 과학으로 학문으로 이론으로 산출되는 효과이다.

-그 나머지 여성미술운동이나 여성주의 미술이 산출한 미적 효과는 미적으로는 여성주의적이지 못했고 여성주의적인 미적 차원이 어떤 차원인지 경험해본적 없고 비전을 제시해본적도 없다.

-그러므로 여성주의적 이미지는 일종의 남근주의적 자기 권력욕 재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보건데, 우리 사회는 성평등적 입장에서의 시각이미지 혹은 좁게는 여성이미지에 대한 개념과 범주가 매우 복합적인 혼돈의 양상을 보인다. 그래서 보다 정밀히 성평등적 이미지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가 절실하고 그간의 여성작가들의 여성적 이미지창출에 대한 아카이브적 연구도 필요하다.

성평등적 이미지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표현된, 어떤 이미지인지에 대한 경험적 연구가 필요하다

 

기존의 여성주의적 이미지는 양성평등적 이미지라기 보다는 양성평등을 향한 구호 혹은 전략으로서의 이미지이다. 사회비판, 노동비판의 형태를 지닌 차원 곧 여성주의이념의 도구적 이미지로 볼 수 있다. 일면적 성격의 실천적 목적으로 구현된 여성 이미지로 기능한다.


문제는 이러한 여성주의적 여성이미지 말고 그렇다면 ()성평등적 여성이미지는 구체적으로 어떤 이미지이냐이다. 거의 경험적으로는 판단불가인,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이미지인 것이다. 여성주의 미술이 산출한 이미지들이 이런 방향에서의 여성주의적 운동가치를 담는다면, 이 글(강의)는 그래서 그냥 원래 성평등적 이미지인 그런 이미지가 존재하는가의 질문으로 나아가면서 우리 주변에서 순수 제도미술이 아닌 범위에서의 시각이미지 특히 일상대중문화에서 자생적으로 창출된 혹여 이런 이미지들에 대한 아카이브적 관심과 연구도 높아져야 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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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성완경 선생님과의 인터뷰 file

  • 쾌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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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성완경 선생님과의 지극히 사적인 인터뷰 강성원 (인터뷰는 민미협 30주년 기념 <인터뷰 집>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여차 저차한 이유로 못 실렸음. 이 글은 원래의 인터뷰 글에서 <인터뷰 집> 취지 관련 인터뷰 도입부는 삭제됐음. 그밖에 인터뷰 중간 중간에서도 <인터뷰 집> 관련 내용은 삭제됐음. sns에 올리는 일은 성완경 선생님의 허락 하에. 인터뷰 내용 중 성완경 선생님이 쓰신 글 내용에 대해 질문할 때 성완경 선생님이 쓰신 글 문장을 축약하거나 풀어쓴 경우도 있지만, 선생님이 쓰신 문장 그대로 드러내면서 질문...

<근현대 시각이미지와 여성>

  • 쾌활림
  • 201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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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표현된 근현대 여성의 모습은 과연 ’여성‘을 담고 있는가, 여성주의자 혹은 여성주의 미술가들이 그린 여성성은 과연 여성주의를 실현하는가, 여성미술은 어느 정도로 여성해방적 미술을 성취하고 있는가 등등에 대한 간략한 질문형식의 문제제기를 해보자. 역사적 사회적 흐름과 더불어 변하는 여성이미지들에 과연 여성성의 달라진 의미들이 반영되어 있다면 여성미술은 시대마다 얼마나 이런 여성성의 문제자체를 인지, 인식해 담아내는가? 여성작가들의 작가활동상에서의 모습은 얼마나 자신이 옹호하는 여성성과 일치하는가 하...

내 마음의 수선전도(修善全圖)

  • 쾌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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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에도 ‘수선전도’가 존재한다. 내 마음이 느끼는 서울의 전체상인데 내가 느낀 서울의 심경상(像), 그 바닥이자 하늘이다. 원래 ‘수선전도’라는 말은 중국에서 유래됐다.  한 나라의 ‘수도(首都)’의 의미는 으뜸가는 선(善)을 건설하는 일 곧 수선(修善)의 시작점을 의미한다는 뜻에서 유래된   명칭이라고 한다. 수선전도에는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기관들이 국심(國心)의 세력중심으로 재현돼있다. 오늘날의 광화문 부근 영역이 정부청사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미국대사관등이 들어서 있으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상징하듯...

_‘퍼블릭 아트’는 동어반복적 개념어이다.

  • 쾌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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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예술과 퍼블릭(Public Art) 아트 개념> 1 광장   광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은 광장에서 함께했던 낯선 사람들과의 뜨거운 연대감이다. 광장에 서면 일상 속 불만과 갈등이 내일을 위한 희망으로 바뀌어져 간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 느낌의 순간에 내 옆 어느 낯선 사람도 내 마음에 동참해주고 있다는 벅찬 뜨거움이 올라온다. 굳이 촛불집회같은 광장에서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어디인가 누구나가 갈 수 있고 자유롭게 주변을 누리고 공중의 특별한 간섭없이 내 자신으로서 있을 수 있는 ...

깊이의 허영 리얼리즘 변종현실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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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종현실   제1의 리얼리티가 있다. 제1의 리얼리티는 제1의 리얼리티를 숙주로 한 기생 리얼리티와 그 변종을 무한증식한다. 리얼리티가 무한증식하는 줄기는 의식상에서의 범주에서이다. 그리고 숙주리얼리티 변종들 바이러스는 의식 내부로 파고든다는 항상성을 지녀서 겉으로는 가시화되지 않는다. 의식 내부로 파고든다는 것은 제1의 리얼리티가 개인이 해체, 파괴할 수 없는 구조로서의 ‘현실 겉면’이기에, 철의 장막이기에 무한증식하는 숙주 리얼리티는 의식 바탕 저 아래 깊이로 밖에는 변종을 생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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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미술 4월호 연재 글(그간 반년 가량 개인사정으로 중단 했다가 다시 시작)   <장치·부담·감각의 논리>   1. 맥 컴퓨터와 윈도우 컴퓨터를 사용해 작업한 텍스트나 이미지들은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호환을 위해서는 다른 장치를 연결해야 한다. 호환의 필요를 위해 고안된 특별한 수단은 결국 상품으로 구입해야 한다. 구글 시트(Google Sheets)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Microsoft Word)나 한글 워드로 쓴 텍스트도 마찬가지이다. 호환이 안 되면 텍스트를 복사해서 옮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게다가 이 작업들을 메일로 전송하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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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의 미학   1 미술가가 자신이 직접 본 광경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동, 서양 모두 근대사회가 시작되면서였다. 미술가는 이즈음부터 자신이 본 생활상의 장면에 자신의 감정과 세계에 대한 관심을 듬뿍 담아 일정한 틀 속의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보다 더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 밑바닥 인생들이다. 사실상 일반적인 사회경관 대부분의 광경들은 작가 주변의 일상생활 아니면, 사회 밑바닥 층의 헐벗고 남루하고 그럴 수 없이 가난한 삶이다. 이런 광경을 보면 자연스레 인생에 회의가 들고 인생의 고통 전반에 생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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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 공공성, 제도의 영혼   1 인류에게 언어가 생긴 이래 악행(惡行)이나 악덕(惡德)을 묘사하는 숱한 어휘들도 생겨났다. ‘흉악하다’, ‘수전노 같다’, ‘냉혈한이다’ 같은 표현들과 ‘악덕 군주’, ‘악덕 자본가’, ‘악덕 계모’, ‘모리배’, ‘간신’ 등등 그야말로 각양각색, 천차만별의 ‘악덕’에 얽힌 이야기들이 인간언어의 중심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덕한 행위들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보편적이고도 특별한, 악덕에 관련된 형용어들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이야기를 목숨을 걸고라도 간절히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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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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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세계상 _  새로운 체험의 초현실 1. 누구나 한번 쯤은 살면서 권태롭기까지 했던, 아귀다툼 같았던 일상이 지상의 행복이구나 하며 느낄 때가 있다. 누구나의 일상이 같은 정도로 만족스럽지는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살아갈 힘이 반복되는 생활리듬에서 나왔던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별별 이유와 고통으로 상처받은 마음이 삶을 지속할 수 있을 만큼은 무너지지 않고 벼터내는 것은 나날의 생계(生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이 목격하고 체험한, 피해 입은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고 싶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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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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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류는 ‘무엇이 제대로 사는 것인가’하는 아주 오랜 물음, 문명이라는 이름의 물음에 이끌려 살아왔다. 인간의 문명 특히 서구문명은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고민할 까닭이 없는, 이런 물음을 갖지 않는 인간을 인간다운 생명으로 여기지 않아왔다. 제대로 사는 것이, 궁극에서 보면 사회의 공적 영역, 그 부산함에, 시끌벅적한 부(富)와 부를 창출하는 기술과 노동, 사업과 인간관계, 인정과 평가의 사회생활에 크든 작든 자신의 능력으로 끼어들어 살 수 있는 삶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살 수 있는 기회를 갈구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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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쾌활림
  • 2015-05-28
  • 조회 수 370

김성룡천일야화 프로젝트   1. 역사는 거창한 비전과 계획이 이룬 삶이 아니다. 민족이나 국가, 사회의 특정 계층이나 구성원들 일부가 대량살상으로 인해 혹여 절멸 된다고 해도, 나머지 개인들이 비참한 생활로나마 생존할 수 있다면, 역사는 생존자들의 핍진한 이해관계의 긴장으로 무장돼 미래만 바라보며 나가게 된다. 굶주림과 학대가, 살상과 모반이 실제로 행해지지 않았던 것처럼 일상은 새벽위로 떠올라 밤사이로 지나가기를 반복한다. 일상에서 몇몇 극소수 개인들은 다른 공동체와의 전쟁도 기획하고 생의 미화도 만끽하면서 ...

미학이란 무엇인가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306

 1 일반적으로 '미학'이란 단어를 들으면 누구나 조금은 그 뜻을 막연해한다. 그래도 '미에 대한 학문'이니까 예술에 관한 전문지식체계를 다루거나 미용 등 구체적인 생활분야에서 무언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과 관련될 때 미학을 언급한다는 정도는 알 수 가 있다. 사실 이런 차원에서의 미학 이해는 틀리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미학'은 얼핏 대하기 만만치 않은 아우라와 수수께끼로 가득 차 보인다. 통념이 과연 맞는 것인가 반신반의 하게 된다. 한편 미학에 대한 통념이 미학에서 실제 다루는 내용과 크게 다...

사회시스템과 미술2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184

1 개인이 자기자신에 대해 모르는 정도는 타인에 대해 모르는 그만큼 더 커진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가 다른 사회를 모르는 정도가 클수록 한 사회가 지닌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도 불일치가 커진다. 세계화로 전지구가 하나로 연결돼 마치 전지구의 모든 삶의 문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구대륙과 신대륙 사이, 지구의 남반부와 북반부, 한국과 중국, 일본이 이 정도로 나마 서로 인지하고 알고 지낸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을뿐더러, 또 안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서로 간에 모르는 부분은 너무 많고, 모든 사람이 다 똑같...

인문학의 정치,미술의 정치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542

이인철/스포츠 공화국의 상과 하  1 순수예술과 참여예술 논쟁이 있다. 예술이 정치의 수단이 되는 것을 거부하거나 말하자면 예술을 매개로 사회적 발언을 해야한다는 신념을 지닌 예술가들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간 참여예술을 주장하는 작가는 보통 좌파진영에 속한 작가라고 추정, 분류되면서 80년대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서 보듯 전시 작품들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다. 순수냐 참여냐의 예술적 선택에서 예술을 통한 현실참여를 예술적 태도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불온시하면서‘정치적 미술’로 문제시 한 것이다. 실제 정...

사회시스템과 미술1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119

서용선<단종복위모의>   최경태 <겨울 아침 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1. 사람은 자신의 생명의 활로를 얻기 위해 움직인다. ‘생활’(生活)에 나서야 나날의 일상과 자신의 생애가 보장되고 생명의 잠재적 가능성이 열린다. 하지만 태어나자 마자 생활에 나서지는 못한다. 성년이 되기까지는 경험해야한다. 경험을 위해 배워야한다. 초기 인류라면 생활을 위해 무작정 걸으면서 보고 듣고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역사 시대 접어들면서는 생활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배워야했다.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 체계(시스템)으로 작동한다. 그가 경험하고...

경험과 판단의 아카이브_필요하지만 없는 것에 대한 단상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241

  조양규 <31번 창고> * 인간은 살면서 생활의 모든 것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는다. 인간 이외의 생명체도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지만, 인간의 삶에 대한 감정은 어떤 생명체 보다 유별나고 복잡하다. 특히 삶의 감정이 단순히 수동적인 지각현상이 아니라 능동적인 판단과 경험내용의 복합체이며 주관적인 반응이기도 하고, 지식의 결합물이며 의식의 총체물이라는 점에서 우주의 어떤 것 보다 특수한 인간만의 세계를 표상한다. 이러한 표상들로 부터 사고와 관념의 상들이 시작된다. 이 과정은 가장 인간적이고 고유한 의식작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