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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치와 비정치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상읽기.

경희대에서 문화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해왔다. 아시아적 근대성을 통해 서구이론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인생론><마녀 프레임><이것이 문화비평이다><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무례한 복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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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결정적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영화를 보신 분이나 아니면 보실 생각이 없는 분들에 한해 읽으시기 바랍니다. 


<곡성>은 한 마디로 감독이 제대로 소재를 장악하지 못해서 우왕좌왕한 영화이다. 반짝이는 장면들도 없진 않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교과서적인 장르 영화 장면들의 오마주들이 지루하게 반복되었다. 감독 자신은 이 영화를 코미디에 장르물이고 상업영화라고 했지만, 코미디라기에는 너무 진지하고, 장르물이라기에는 너무 엉성하고, 상업영화라기에는 너무 예술적이다. 자기 장난감 자랑하는 아이 같은 면이 있지만, 천진하다기보다 나이브하다는 느낌이다. 이런 영화가 ‘<시빌워>의 스크린 독과점’에 대항하는 ‘한국 영화’로 포장되면서 “제69회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고 극찬을 받는 것은 지금 한국 영화계가 처해 있는 현실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시빌워>에 대항하는 ‘애국적 한국 영화’라고 하지만, 사실상 이 영화는 20세기폭스코리아의 투자를 받은 작품이다. 이 역시 이른바 ‘한국 영화’에 내재한 역설적 욕망을 보여준다. 보도에 따르면 이 영화의 흥행여부가 할리우드 거대자본의 투자를 이끌어낼 가능성을 타진하는 계기가 될 모양이다. 떡고물도 어마어마한 떡고물인 셈이다. 이런 상황은 흡사 과거에 벌어졌던 <디워> 해프닝의 재판 같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 각을 세웠던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극찬하고 있다는 정도. 이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애국적 발상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영화의 흥행 여부에 따라 미국 거대 자본이 몰려와서 한국 영화를 사주고, 할리우드의 하위 장르로 한국 영화가 편입될 수도 있다고 누군가 믿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곡성>은 이런 복음에 부응하고자 애쓴 흔적을 역력하게 드러낸다. 한국 호러 영화랍시고 만들어놓았는데 이상하게 미국 호러 장르에서나 볼법한 상징들이 맥락도 없이 불쑥불쑥 등장한다. 무당과 신부, 귀신과 사탄, 그리고 좀비까지 뒤섞인 ‘전라도 산골’에서 ‘촌놈들’은 영문도 모르고 아우성을 치다가 하나둘씩 죽어 나자빠진다. 미개하고 쓸모없고 무능력한 것들은 그렇게 사라져야한다고 영화는 말하는 것 같다. 기껏 구해주려고 했더니 닭이 세 번 울기도 전에 의심이나 하고 마땅히 당해도 싸다는 논리가 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흥미롭게도 이런 마무리를 감독은 ‘위로’라고 불렀다. 

이 무식한 ‘촌놈들’은 그냥 이유도 없이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인’을 의심하고, 또 그렇게 그냥 ‘일본인’은 이 모든 사건의 원인으로 드러난다. 설마 외지인을 나쁜 놈으로 설정했을 리 없을 것이라는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에 충실한 ‘리버럴한 예측’은 보란 듯이 조롱당한다. 이 감독의 전작들에서도 그랬듯이, 마지막에 길게 이어지는 사탄의 모호한 대사는 이런 ‘리버럴한 온정주의’에 대한 조소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위악은 좀비 출현 장면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좀비를 폭행하는 ‘촌놈들’을 말리던 가톨릭 부제가 좀비에게 물리는 장면은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이 오가리잡탕을 만들어냈는지 그 이유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장면이 흥미로운 것은, 장르 영화 한편쯤 본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좀비를 ‘촌놈들’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린다는 것이다. 이 '촌놈들'은 좀비만 못 알아보는 것이 아니다. 귀신도 못 알아보고 사탄도 못 알아본다. 이런 정경은 현실로 눈을 돌려봐도 너무도 익숙하다.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옛날 옛적’도시로 나갔던 삼촌이나 형님이 귀성 명절 때 바나나를 사들고 왔지만, 그 바나나가 무엇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해했던 ‘촌놈들’을 상상해보라. 이 장면을 보면서 다 같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관객들’은 누구인가. 더 정확히 질문하자면, 이 장면에서 ‘관객들’을 대신해서 웃고 있는 ‘그들’은 누구인가. 

최소한 ‘촌놈들’은 아니다. 이 웃음은 ‘촌놈들’을 배제하고 상대화하는 행위이다. 개그콘서트에서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들’이 항상 그렇듯이, 이 ‘촌놈들’은 ‘도시인’의 증상으로서 발명되어야한다. 이 증상에서 ‘관객들’이 얻는 쾌락은 그 ‘촌놈들’이나 그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들’에 자신들은 속하지 않는다는 안도감이다. 안전한 관객석에서 이들은 현실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통해 금지된 안전한 ‘왕따’에 가담하는 행위를 마음껏 즐긴다. 이 모든 것은 정말 아무런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한 마디씩 영화에 대해 거들면서 '도시인'의 품격을 뽐낼 때, 실제 곡성 주민들이 항의하는 해프닝이 빚어졌다. 이 항의는 말 그대로 외마디 해프닝처럼 지나갔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들이야말로 정확하게 이 영화를 이해했던 ‘관객들’이다. 이 곡성 주민들이야말로 객석에 머물러서 이 ‘왕따’에 가담할 수 없었던 당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해프닝은 영화에서 좀비도 모르는 ‘미개한 촌놈들’로 그려진 인물들이 현실의 목소리로 돌아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억압된 것은 이렇게도 귀환한다. 여기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역시 영화에서 그려진 그 ‘미개한 촌놈들’을 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곡성의 이미지를 왜곡한다고 불만을 토로한 곡성 주민들은 ‘영화라는 예술도 이해하지 못하는 촌놈들’로 이미지화되었다. 해프닝은 영화의 제목에 한자를 병기해서 실제의 곡성이 아니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선에서 해결되었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런 조처가 그냥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을 수 있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이 그렇듯, 아무 것도 모르는 ‘촌놈들’은 ‘한국 영화의 발전’을 위해 못난 자존심 따위는 접어두고 '문화인'답게 행동을 해야 마땅한 것이다. 

분명히 밝히지만, 나는 지금 곡성 주민들의 항의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왜 이런 항의가 발생하는지 진지하게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이런 문제는 ‘촌놈들의 무지’로 간단히 치부해버리기에 더 복잡한 원인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오히려 그런 ‘무지’가 실제로 영화를 가장 정직하게 받아들인 반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반지성주의가 진실을 말하는 이 상황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봐야할까. 트럼프 현상이 미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드러내듯, <곡성>은 이런 의미에서 지리적 장소로서 곡성이 처해 있는 실상을 호명한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했던 그 ‘노동력’이 중간계급으로 거듭 나서 자신의 기원을 ‘원시화’한 미학이 이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경우 비평은 영화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스크린이 감추고 있는 현실과 대결해야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의미에서 <곡성>이 보여주는 지리멸렬함은 우리가 몸 담고 있는 현실의 거울상인 셈이다. 

* 덧글: 약간 호사취미를 부리자면,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장면은 종구가 딸과 섹스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때 딸은 정신분석학적인 '대타자'로 등장한다. 자신의 쾌락을 검증 받고 허락 받아야하는 주체의 대타자.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종구의 증상에 대한 묘사로 일관했다면 훨씬 말끔한 형식성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댓글 '14'

ㅋㅋㅋ

2016.05.16 13:22:43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2016.05.16 15:50:0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어

2016.05.17 00:43:44

삐딱하네요

발뒤꿈치

2016.05.17 00:48:02

영화를 볼까 택광님 글을 빨리 읽을까 고민하다가 글을 먼저 읽었습니다 ~ 읽고보니 정신분석학이 궁금해지네요! 대타자는 라캉이 사용한 개념인가요?

김태형

2016.05.18 14:51:10

이 영화를 보고 좀비 모르는 촌놈에 대한 멸시를 읽어냈다는 게 참 대단하시네요. 전라도, 외국인 혐오에 대한 혐의는 제기할 수 있어도 그것만으로 영화를 재단하며 감정적인 표현으로 비판한 건 좀 과하다는 생각 안드세요?

강세경

2016.05.18 17:52:32

이렇게 보일 수도 있구나....ㅋㅋㅋㅋ....CJ 투자를 받았으면...영화에 설탕도 나오면 안되겠네요...
그리고, 참고로...곡성군수님이 영화에 대해 쓰신 글이 있으니,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지나가다

2016.05.19 15:41:23

언론의 호들갑이 그 옛날 디워가 생각났는데 저와 생각이 같군요 좋은 비평 잘보고 갑니다

지나가다가

2016.05.20 11:32:13

동의하기 어려운 비평이네요. 특히 지금 글에서 '촌놈'이라고 철저하게 비하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계신 건 글쓴이 본인이신 것 같은데요... 전 서울에서만 살아왔음에도 주인공 캐릭터에 깊이 감화돼서 영화를 봤는데, 제 내면은 글쓴이 분이 생각하시는 원시적인 촌놈인가 보네요. 영화에서 인물들이 영적인 존재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을 시골을 원시적으로 표현한 걸로 보시다니, 정말 편협하시네요.

역시 지나가다가

2016.05.31 12:53:52

작은따옴표를 왜 쓰는지 모르세요?

악플러

2016.05.23 10:44:18

"보도에 따르면 이 영화의 흥행여부가 할리우드 거대자본의 투자를 이끌어낼 가능성을 타진하는 계기가 될 모양이다." 이미 황해로 20세기폭스코리아의 투자를 받았었죠. 무려 6년 전에 말입니다

2016.05.23 11:02:22

위에 악플러님아 황해가 흥행했다고 보냐 ? 난 망했다고 생각해 그러니 이번 작품이 매우 중요하겠지

악플러

2016.05.23 11:33:12

맞아요, 님 말씀대로 황해는 흥행에 참패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성도 투자를 받았죠.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투자자본에 대한 글쓴이의 의견이 작품 리뷰에 큰 맥락을 차지하는 거 같아서요. 그 의견이 이견 없는 사실인데 제가 미처 몰랐던 거라면 더 할 말은 없지만.

2016.05.23 11:04:12

그리고 지금 20세기 폭스코리아만 투자하는게 아니라 워너브러더스도 투자하면서 간보는중이잖아

이루베상

2018.10.30 17:32:28

우연히 이 글을 보게 됐는데 이런 식으로 분석하신 분을 또 보게 되네요. 정치적인 시선으로 보셔서 그런지 '무지몽매한 촌놈' 에 초점을 맞추셨는데... 참고로 극우사이트 '일베'나 유튜브채널에서도 이렇게 봤습니다. 죽어나가는 곡성 주민들을 '무지몽매한 대중'으로 봤거든요. 역시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걸 느낍니다. ^^

극우쪽 해석에서 특이한 건 처음에 군복 재킷을 입고 등장하는 수호신 천우희를 군인 박정희의 딸 '박근혜'로, 외지인으로 등장하는 아쿠마를 '문재인'으로 해석해서 아쿠마 문재인에 현혹되는 무지몽매한 대중들은 박근혜를 의심하여 죽음이란 벌을 받았다는 거였죠. 수호신 첫 등장에서 돌을 던지던 장면도 성경의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를 인용해서 박근혜는 죄없이 깨끗한 존재를 나타낸 거라고 하면서 나홍진을 좌파들이 만연한 영화계에서 소신을 밝히는 인물이라나 뭐라나 .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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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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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한 표가 소녀들의 운명을 결정 한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듀스 101>이라는 케이블방송 프로그램의 홈페이지에 걸려 있는 문구이다. 소속사의 연습생을 ‘국민 투표’로 101명 선출해서 ‘드림팀’을 만들어낸다는 취지를 가진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국민 프로듀서”라는 언급이다. 101명의 연습생은 “국민 프로듀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게 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의 비밀은 이 “국민 프로듀서”라는 말에 감춰져 있다. 겉으로 보면 이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등장한 오디션 프로그램...

소녀상 file

  • 2016-02-11
  • 조회 수 1479

인간은 상징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20세기 구조주의 인류학자들은 이런 ‘상징 행위’의 의미에서 역사를 재구성하는 문화의 작동방식을 실증해서 보편이론을 만들고자 했다. 그만큼 상징은 보편적이고, 보편적인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물론 문화에 따라서 상징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길조를 뜻하는 까치는 서양의 상징체계에서 보면 흉조이다. 상징의 문제는 상징물이라는 구체적인 물질성을 획득하는 순간, 다른 차원을 얻기도 한다. 상징물은 분명 추상적인 상징성을 실현한 것이...

2015년 신경숙 표절 논쟁은 무엇이었나 file [6]

  • 2015-12-13
  • 조회 수 1617

표면상 '표절 논쟁'이었지만, 2015년에 일어난 '신경숙 표절 문제'는 두 가지 층위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신경숙의 표절 여부이고, 두 번째 문제는 신경숙 자체이다. 둘은 서로 다른 사안이지만, 이른바 '표절 논쟁'을 경과하면서 서로 겹쳐 보이게 되었다. 이런 착종이 곧 증상이라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이 증상은 여러 가지 진실을 말해준다. 메시지를 읽을 것이 아니라, 이 증상의 논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문제, 그러니까 신경숙의 표절 여부는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석연찮은 논리이긴 했지만, 본인도 ...

규범화의 덫: 국정화에서 아이유까지 file

  • 2015-11-13
  • 조회 수 764

요즘 한국 사회는 거의 아노미 상태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아노미의 원인은 다름 아닌 시장 민주주의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시장의 진리를 침해하지 않는 조건에서 모든 것은 평등하다는 이념이 시장 민주주의의 핵심일 것이다. 시장의 교환에서 모든 사물이 평등하다는 이런 전제는 교환 불가능한 것들, 가령 '무엇을 위해'라는 정치적 대의는 쓸모없거나 위험한 것으로 간주해서 폐기하거나 배제해버린다. 이 상태가 모든 가치를 상대주의에 빠트리게 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한 ‘세계 없음’의 상태가 이처럼 적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