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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팅 비평은 모종의 ‘미적 질감’ 비평을 끌어내보기 위한 작업이다. 여기서는 미술과 미학 문제로 다룬다.

그간 미술비평과 큐레이터 일을 했다. 인문학박물관을 만들어 학예실장으로 일 한적도 있고 일민 시각총서 편집장 일도 했다. <미학이란 무엇인가>(사계절)를 비롯해 미술서 몇 권 썼고, <문화적 기억_야나기 무네요시전>, <공감_정기용 건축전>을 비롯해 <격물치지>, <공장>, <우리 학문의 길_새 생활과 새 윤리의 학>, <수레바퀴 밑에서> 등의 전시도 기획했다.

자전적 문화론이자 지하생활자의 수기로 문명과 미감 사이 곤경(困境)의 질감(質感)에 대해 써보고 싶어 그야말로 노력 중이다. 인생의 불편함, 불쾌함에 대한 사회적 존재론이자 우주론 독본을 계획만 하고 있는 건데, 스스로도 그 모양새를 알 수 없다.

1.

 

아프리카 해안가 어디에선가 부터 해협을 건너고, 지구 표면을 따라 방랑하기 시작한 인류의 족적, 이 발자취를 인류사의 시작이라고 말해도 좋지만, 전통이라고도 명명할 수 있다. 지구 위를 방랑하다가 삶의 터전을 세우고 발 길 닿는데까지 영토화한 일도 흔히 역사라고 불려지지만 전통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전통을 세운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어딘가로부터 한반도로 흘러 들어와 석기, 철기 시대를 열고, 삼한과 백제, 신라, 고구려를 세운 일도 역사이고, 당시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세운 생활의 전통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족적을 일러 한민족의 역사라고 하지만, 사실 이 역사는 아프리카 해안가를 따라 아시아를 방랑했던 인류의 전통과, 만주와 산동반도의 전통, 일본 원주민들의 전통 등 백제 안에 백제만도 아닌, 고구려에 고구려만도 아닌 숱한 이민자들과 난민들과 원주민들과 그 안의 또한 무수한 가족들과 가족 속의 의붓 아버지의 패악과 형제의 시기와 딸들의 반항이 뒤얽힌 삶의 자취이기도 하다.

숱한 배반과 애증의 기억이 혼재된 생존 전통들이 서로를 억압하며 숨죽이며 칼부림을 하기도 했던, 강과 하천, 평야와 계곡을 따라 인문지리가 형성되고 그 가운데 은폐의 다락방이며 도망자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던, 생활 속 어둠의 공간들이, 곧 서로 화해 할 수 없을 공간과 시간의 전통이 생성되어 온 것이다.

그런데 근,현대 사회로 들어오면서 우리는 전통의 근, 현대화라는 말을 쓰고 있다. 전통을 근, 현대사회에 맞게 계승하자는 말인데, 한반도로 유입된 이같은 인류의 기억중 어떤 전통을 오늘날의 삶에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는가? 흔히 사용하는 전통의 근, 현대화개념은 어찌됐건 전통이 역사적으로 계승하고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과거의 문화로 존재했으며, 이러한 전통문화의 가치를 변용해 이어 받자는 뜻인데, 그렇다면 과연 위에서 언급한 인류의 무참하거나 저열했던 아니면 소소한 기쁨을 주었던 삶의 기억들은 오늘날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우리의 전통문화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오늘날 상투화된, 계승되어야할 전통으로 알려진 문화들은 제작되고 기록된, 나아가 창조된 유,무형의 물적 정신적 자산들이다. 이러한 차원에서의 전통문화 개념은 생산물로써의 전통문화개념이다. 행위든 제작물이든 세인들에게 학자들과 정치가들에게 가치가 평가되고 인정받은, 행동의 업적이든 잘만든 혹은 유효한 물건을 만들어서이든, ‘성과의 전통이 만들어낸 문화이다.

곤경에 찬 고난의 혹은 찬란했던 산보의 기쁨 같은 것도 사실상 삶의 전통이었지만, 흔적 없는 삶의 한가닥 남은 안쓰러운 기억일뿐,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통’(문화)은 결과적으로 볼 때, ‘효과있는 행위와 산물들에 대한 우수한 인력 혹은 지배층이 내린 평가를 통해 그 기억이나 유산이 살아남은, , 무형의 산물들에 대한 인식이다.

하지만 알고보면 가치판단과 평가의 행위에는 행위상의 페이소스와 악의, 과욕, 오류등이 뒤섞인, 그야말로 평가된 내용과 평가행위 자체가 이미 정치적 행위이기에 음모론이 팽배하고 평가 기술개발과의 전쟁이기도 한 미완의 인류사의 프로젝트이다. 오늘날의 전통개념 인식은, 그러니까 근, 현대화 이후 우리 사회에서 다루어지는 전통문화개념은, 사실상의 생의 투쟁 과정과 살아가는 방법으로서의 여러 전통의 속사정을 포함한 전통에 대한 진실이해가 아니라, 전통 속 가치평가 행위나 현재의 가치평가에 대한 주도면밀한 진실가치 탐색없는, 현재의 시장지배가치에서 볼때 보물이나 진귀한 물건 등 상품가치가 있거나 정사(正史)의 기록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만 전통으로 설정한다. 있는 그대로의 원래의 생생한 전통이란 사실 재현될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전통의 전통을 말 그대로 사물화 하고 있는 전통이다. 이런 식으로 재현된 전통은 원래의 있었던 전통에 대한 패스티쉬pastiche이다.

이러한 전통개념은 사실 악취나는 정치와 예술의 어떤 것, 비본질적인 것을 본질적인 것으로 둔갑시키고자 하는 헤게모니 싸움간의 도구가 되버린 전통개념이다. 삶이 강제했던 혹은 선택했던 결정의 과정과 순간들의 진리성을 패스티쉬화 해놓은 문화 개념이다.

 

2

 

세상만사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사물의 가치와 필요에 대해 평가하고, 평가를 위한 기준을 잡는 일은 인간이 행동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나침판과 같다. 평가와 평가기준에 대한 책략은 모든 전통()의 정체이다. 지구위를 방랑하던 인류는 진지한 개척자와 단독자로서 평가와 평가기준에 대한 선택, 판단으로 자기 생명의 전통을 확보해왔고, 그 평가행위의 가치를 전승했다.

인간을 둘러싼 현실관계의 진실 여부에 대해 알고자 함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불가결 행위이다. 철학을 포함한 여러 학문은 사실상 세상만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 연구이다. 그리하여 학문은 사실상 언제나 인생사를 결정하고 제어할 헤게모니 투쟁의 목적으로 이끌려져온, 궁구의 모색과 진리선전의 전당으로 자리잡는다. 인생사에 내걸린 모든 크고 작은 헤게모니 투쟁은 스스로를 전통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계승, 보존해왔다.

이렇듯 목적론적이지 않은 학문은 나치식 표현을 빌리면 오히려 퇴폐적이라 불리워 마땅하다. 자연주의적 실증주의적 학문이나 마르크시즘 학문은 건전한 학문이다. 다시말해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체제의 지배적 학문 전통은 어쨌거나 둘다 체제선전적이고 정치적이고 스스로들에게는 건전한 민족과 국가의 학문이어왔다. 이에 비해 해체주의 학문전통은 퇴폐적이다. 아니면 자기자신에게만 목적론을 허용하고 즉 자신의 목적은 숨긴채 타자들의 반목적론적 태도를 조장하는 우생학의 일종이다. 글로벌 귀족층 전통과 글로벌 하층민 전통이 확연히 분리된 결과가 선병질적 해체주의 세계전략이요, 이 전략은 대 세계적 글로벌리즘이자 우중(愚衆)의 전통을 숙명으로, 우수한 인종과 인성의 전통을 자유의 표징으로 확연히 구분해버린다.

학문문화이념의 개념과 더불어 전통의 실체화를 상정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전통개념은 다시 학문과 문화와 이념, 나아가 상식이나 정치경제적, 사회적 행위의 정당화로 작동한다. ‘전통은 그래서 모든 헤게모니 투쟁의 명분으로 취해진다. ‘전통은 투쟁의 명분 뒤에 서있는 가상의 은밀한 세력에 다름 아니다. 대부분의 일상 행동판단에서의 노선투쟁은 헤게모니 개념으로 위장된 개인이 줄을 대는, 빨대를 꽂고 있는 동아리 전통에 근거한다.

전통 개념과 평가의 개념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리고 이념 보다 은밀한 헤게모니 전투 의지를 지닌 것이 전통 개념이다. 전통의 보존과 발전을 위한 모든 주장과 요구, 논쟁은 사실상 소리없는 핏빛 복마전의 당쟁적 본질의 것이다. 전통의 의미의 외연을 넓혀 생각해보면, 전통은 삶의, ‘의지가 살아 낸 생의 과정, 그 과정을 관통하는 생에 대한 불굴의 모든 정신을 일러 누군가의 무엇인가의 전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웅담에서 보여주는 영웅의 생존방식은 신화가 되고 전설이 되어 전통으로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것이 평가되고, 살아남은 것은 문화요 정체성이요 헤게모니 쟁탈의 지배자로 군림한다. 살아남은 과정도 정체성을 형성하지만, 살아남을 방법도, 미래의 자기모습에 대한 구상도 정체성을 형성한다. 전통은 인정투쟁의 결과로 살아남은 최상위 생존자의 인생관이자 문화관으로 그의 앞으로의 살아남을 방법과 미래비전 구상의 나침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억울한 두뇌와 이들이 마음을 다지면서 굳히는 미래상도 또 하나의 다른 전통이다.

푸코식으로 볼 때 미시 권력들이 존재하듯 이렇듯 개인별 미시 전통이 존재한다. 모든 이들의 생활에 대한 갈망은 각각의 인생관의 전통으로써 거미줄같은 상호 훼방의 전통을 구축한다. 각각의 모든 미시 전통들이 향하는 생의 의욕은, 근대화면 근대화, 한일합방이면 한일합방, 해방정국이나 한국전쟁의 사회변화 한가운데서도 지속적으로 삶의 지속을 위한 변론, 삶의 전향적 가치를 찾아 전전긍긍하게 한다. 부귀영화 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자립이나 번영을 개인의 이생에서 이룩해보려는 노력은 통속의 인생관, 상식의 변호에 나서는 자연적 개인의 그럴듯한 생의 의욕이다. 이렇게 살아남은 인생관과 인생은 그 하나하나가 생의 매 계기마다 어려운 곡절을, 비정상적이든 정상적이든 헤쳐나온 아둥바등의 심려, 자기기만과 이기심, 부귀의 이상, 그래서 어디서부터인가 악의 습관에 물든 도덕심을 지닌 미시 전통들이다.

물론 이 개별 전통들 사이의 간극이 크거나 미세하게 인생관별로 불투명하면서 그 중에는 전향과 친일, 아니면 종북이나 반체제, 마르크시즘이나 모택동, 호지명이나 체 게바라를 정신적 전통의 지주로 삼게되는 당연히 여러 문제적 계보의 숱한 정치적 미시 전통도 나타난다. 서울 다르고 광주 다르고 부산 다르고 마산 다른 것이다.

이들 모두 여러 전통의 스펙트럼을 겹쳐 드러내고도 있는 것인데 이중 어떤 계기를 통해, 어느 고통의 혹은 선택의 순간을 택하느냐에 따라 각자도생의 개별 전통상의 다른 갈래들이 분기돼 나오고, 그 혹은 그 경계의 전환점에서 모든 정체성은 동요한다. 이러한 전통들은 이미 망가진 성채의 이끼 처럼만 우리 습속에 풍경으로 어른 거릴 뿐, 서로간에 분열적이고 상충적인 정체성들이다. 결국 개인의 주체성의 심적 내적 분열 양상은 냉전적 이데올로기나 종교적 봉합이 아니라면 다스리지 못할 정도로 복잡한 양상을 띠고 편파적이 된다. 자기가 속한 전통의, 계보의, 인맥의 합리화에 고착적이다.

개별자들의, 그래서 심성의 전통들이 구슬 꿰뜻 꿰어 질수 없고, 조각난 심성의 악덕과 미덕이 아무 놈이나의 발에 채여 이리저리 현장과 조직, 경험의 틈 속에 굴러다니다가 어느 구석엔가 짱박히면 소통을 막는 경험으로, 버림받을 지식으로 인한 상처로 자아는 석회화한다.

인생 나이 4, 50, 5, 60대가 되면 자기 전통은 석회화 한다. 자신의 정체성의 복면도 얻는다. 그리곤 많이 구려지기도 한다. 자기 역사 해석의, 취사선별된 자기 전통의 강퍅함이 내지르는 비명이거나 획책된 계급의, 개인적 이해관계의 극심한 고충, 이념의 개인적 전쟁터가 된다. 사실 이미 이러한 상태는 민족과 국가에 안하무인으로 자기를 강제하는 개별적 주구(走狗)들로 기능한다.

다른 한편 한 사회의 문화에는 여러 가지의 생활 특정적 전통들도 존재한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자연 도태되는 전통이 있고, 자연 도태되는 문화 가운데 일부가 특정 사회문화 생활을 보존하고 복구하려는 인위적 시도들에 의해 복원된 전통문화도 있을 수 있다. 현대사회로 들어오면 사회생활의 현장들이 복잡해지고 서로 얽히면서 그 얽힘 가운데서 파생한 문화도 생겨난다.

이러한 각 문화적 특정 현장 들 속에서의 전통의 재귀는 일종의 혼성모방적 성격을 띤다. 예를들면 고급 실내 인테리어나 유흥과 오락 중심의 카페나 레스토랑, 미술관과 화랑, 소형 오피스 건물과 대형 오피스 건물, 동네 소상인들의 가게들이 들어선 건물에 보이는 나름의 전통은 서로 다른 전통에서 나온 것이면서도 나름대로 우리 사회가 전통문화로 간주한 일정한 전통의 성향들을 혼성적으로 차용, 개발된 전통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제는 공예나 디자인이나 민속 전반에 걸쳐서도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현장들에서 취하는 전통들은 교육현장의 전통 개념 가이드라인과도 유사성을 보이며, 대학 수준별, 대학 소재별 지역 특정적 일련의 문화전통과도 연계되어 작용하는, 한 국가내에서 보면 나름대로 특정한 몇 가지 갈래의 전통에 대한 인지, 표현방향을 표출한다.

이들 전통간에는 우리 사회가 간주하는 질적 피라미드적 위계가 존재하고, 그 위계의 최상층에는 세계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동시대적 요구와 국내 문화 정치적 헤게모니 의식이 자리한다. 이 단계의 최상위냐 최하위냐는 글로벌한 인정과 국내의 문화권력의 내부 역학에 의해 평가된다.

이 모든 전통들은 사실 각기 자신의 전통성의 경제로 유지, 보존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모든 전통들은 세계사적 정치권력의 동력과 국내 정치경제의 영향, 그리고 이에 밀접하게 기생하는 학술, 문화, 예술권력의 피라미드에 따라 각 전통의 판매와 소비는 물론 담론이 활성화되기도 한다.

전통으로 자리잡은 문화적 속성은 어쨌든 지배적 정치경제 관계, 그 권력의 그림자이다. 어떤 권력이냐하면, 드러나지 않는 사회적 살인과 부패와 비리 뒤에 얻어진 최고생존자의 최고권력이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기본적인 생존권을 부르짖는 생명 하나만으로서의 권력이든 간에, 이들이 각각 붙잡는 자기 생존권의, 각각의 그 오랜 싸움이 만든, 문화의 각각의 내부에 고착된 앙칼진 주장의 투쟁권들이다.

하나는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의 첨단 미학으로 세팅된 문화의 생존권이요, 다른 하나는 빼앗긴 생존권을 돌려받기 위해,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덤벼드는, 숱한 비판의 전거를 들이대는 생존권이다.

이 모든 전통들은 하나 하나 모두 개별의 전통이고 그 가치 위계는 결국은 그림자적이다. 결국 역사의식도 전통에 대한 의식이며 계급의식도 전통의식이며 문화는 전통의 이름에 다름 아니기에 개인들이 속한 혹은 취하는 전통간의 위계는 소속감의 차이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고, 소속의 위상이 바뀌면 전통에 대한 관념이 달라지기에 그림자적이다.

 

3

 

전통은 정당화의 다른 이름이고, 정통의 다른 이름이요, 헤게모니와 이념의 다른 이름이다.

전통이란, 역사와 문화를 구성하는 여러 사회적 힘줄과 핏줄의 계열들의 숱한 갈래들 하나하나의 이름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가족의 전통, 전설과 서사가 있다. 그 어떤 사회조직, 학급이나 학교, 협의회나 위원회, 시장이나 가게에도 , 심지어는 그리고 업종별, 단체별, 가족별로 전통이 존재하고 각 현장마다 문화가 있고 전통이 또 몇 개 쯤 존재한다.

이 마지막 단위에도 내부 전통 간에 실제적 헤게모니 다툼이 있고, 이들 전통간의 헤게모니 다툼에서 생존하면 실재하는 미시권력으로 현장 지배권을 행사한다. 미시권력들은 이후 자기애(自己愛)의 특수성을 보편적 시장메카니즘에 매개하고자 좀 더 큰 단위 상의 전통과의 교접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소멸에 이르는 오체투지에 나선다. 그리고 이로부터 공동체 고유의 악은 생래적인 것인양 싹터 나온다.

전통을 구축 못한 소상인들은 가게 문을 연지 얼마 못가 결국 사라지고, 특정 학교, 특정 교수 밑의 학생 작품은 학습 전통이 너무 눈에 띄어도, 아니면 전통의 컬러를 갖추지 못해도 생존은 위기에 몰린다. 그런데다 사회생활의 어느 틈새 모퉁이에라도, 우연히 짱박혀서라도 어떻케든 자기 생존의 기반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가 그린 세계 조감도거나 자기 조감의 방식은 평가받을 기회 조차 잃는다.

그래서 이 틈들 사이에서의 정신의 전향, 친일은 충분히 자기동조적이다. 이광수와 모윤숙 등 친일문학자들은 제국과 민족, 근대성과 국가, 예술계와 예술가 등의 개념이 지닌 전통, 그 속의 평가와 선택의 가치가 뜻하는 서열의 계열들, 그리고 이 계열들 간의 문화적 위계가 의미하는 권력 상황을 한 눈에 간취하고 조감한 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선택은 결국 자신의 온갖 재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전통의 권력 최상층부였다.

각 계층간에 뿌리깊은 차이가 존재할 때, 그리고 지배계급이 항시 예속자들과 도구들을 경원하고 경멸하며 복종과 명령, 억압과 경원이 일반화될 때, 간격의 파토스가 싹트게 되는데 이것이 없다면 또다른 보다 신비한 파토스 역시 자라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영혼 그 자체 안에서의 간격을 새로이 확장하려는 끊임없는 갈망, 보다 넓고 보다 희귀하고 보다 특이하고 보다 넓고 보다 포괄적인 상태로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으며, 좀 더 간단히 얘기한다면 인간이란 종의 향상, 지속적인 인간의 자기초극’......은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1)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친일 문학예술의 비전은 이러한 류의 자기 초극에 있다. 식민주의적 인문학과 예술미학의 자기 정당화, 전통은 자기초극에 있다. 자기 헤게모니 향상을 향한 초극이 전부인 자기의 욕망이다. 그리고 그 전통 이후의 역사는 자기 내부의 저자거리 논리,패악이거나 작당을 스스로 은페하거나 제거해가는 과정이다. 이렇게 해 모든 미시 전통들은 자연적 실증적 관점에서 보면 생활의 궁여지책일 뿐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인간의 자기초극이 갖는 거대한 이상(理想)이란 애초에 없었다.

전통 개념에 대한 모든 이해방식은 자기 이해관계에 의거하며 그런 만큼의 무언지 뭐를 정통이라는 개념으로 부터의 거리 곧 이단성을 포함한다, 이단성에는 사이비가 있을 수 있고 자기변론의 정당화가, 모든 사람이 인생의 상처가 있기에 모든 악덕이 가능하다는 변신술의 동기를 부여한다. 결국 정통의 주장은, 실체로서의 전통성은 언제나 이념형일 뿐이다.

각 전통은 자신의 위상에서 본 세계 감정의 잔재들도 표현한다. 그러면서 세계에 대한 자기존재의 방패막을 갖기에 위로도 베푼다. 각자의 사회적 위상에서 행하는 자기 이해관계, 인간과 사물에 대한 개개 전통방식들의 모든 개별적 평가들은 평범함 속에 숨은 교활함으로 이성의 간교로 화한다. 각자의 자기 외부 환경에 대한 평가내용은 비전(秘典)으로 간직된다. 그 축적의 깊이는 우주 공간 만큼 오묘한 뒤통수와 정원과 자기만의 논리를 품는다. 각자만의 평가내용이라는, 오래된 전통이라는 숲에 깃들어 사는 고유의 악은, 각자의 평가 전통이라는 숲은, 인생에 대한 원한도 자체 내 평가원리로 재현한다.

모든 전통의 기본원리는 모든 평가의 기저에 놓여있는 원리와 동일한 원리이다. 평가는 개인들간의 절대 평등하지 않은 자질을 간취하고, 그리고 자연의 질에 대해서도 질감(質感)의 스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로부터 전통문화간의 차별화도 생성된다. 평가는 제도가 개인과 사물과 제도 자체에 대해서도 행해지고, 개인이 제도와 사물과 개인 자신에 대해서도 하는데, 우수한 것, 좋은 것을 구별해낸 평가내용은 사회적 자산의 위계로 구축된다. 니체는 "라틴어 bonus(좋은)를 전사(戰士)로 해석할 수 있다2)며 그리고 사실 이러한 평가의 대립에 의해서 마침내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자유정신의 아킬레스 조차도 전율없이는 뛰어 넘을 수 없는 깊은 간극이 벌어졌다”3)고 말한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평가는 사회적 헤게모니 세력의 영구존속을 보장한다. 이들 지배자의 전통(정체성, 문화, 평가체계)과 피지배자의 전통(정체성, 문화, 평가체계)간에는 위계와 알륵이, 거리감이 형성될 수 밖에 없다. 평가는 사회를 반민주주의적으로 구축한다. 모든 평가는 개발독재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원래적 민주주의에서는 평가가 사람과 사물들간의 질의 위계를 구별하기 위한 선별의 평가가 아니라 개인들간의 자유와 평등의 조건을 맞춤형으로 보완해주기 위한 평가로, 비보(裨補) 풍수사상에서처럼 개인에게 부족한 것을 보완하는, 우수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열등성을 평가하고 고민하는 평가이다. 그럼으로써 우생학적 평가시스템의 피비리내는 걷우어진다.

모든 전통들은 그것이 어떤 전통이든간에 반민주적이다. 전통(개인)간의 경쟁심리로 인해 문화는 허위의식이거나 겉만 번지르한 수사학 혹은 상품미학을 동원한다. 전통이란 스타 생산 메커니즘과 싸움의 기술을 전승할 수 있는 전승의 요체이지만, 용인되지 않는 재현, 개인의 순수 자발적인 자율적 자기 재현을 허용하지 않는, 기존 지배권력의 헤게모니를 대변하는 전통의 기득권을 상징한다. 그래서 이미 스타가 된, 전통이 된 개별자들, 사회들, 개념들만이 서로간에 다시 헤게모니 경쟁에 나설 기회도 용인된다.

오늘날 미술은 그러니까 특히 정치적 미술은 작가가 고심하는, 그 어떤 평가체계에 대한 해석이거나 새로운 평가기준으로 그려낸 혹은 바라본 세계상의 차원을 담는다. 혹은 비판, 설계한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미술의 작업미학 혹은 미술사는 사실 평가론으로 빛나는 세계이다. 이런 방향의 작업들에서 비로소 세계는 작가의 문화전통에 따른 평가체계로 전혀 새롭게 해석하고 새롭게 구성된 삶의 비전을 드러낸다. 이 점이야말로 미술작업의 매혹적인 예술적 가치이다.

1)F. 니체, 김훈 역, 선악을 넘어서, 청하, 1982, 205쪽 

2)F. 니체, 김태현 역, 도덕의 계보, 청하, 1982, 38쪽

3)F. 니체, 김태현 역, 도덕의 계보, 청하, 1982, 39쪽

   이미지, 박이소, 그냥 풀, 종이에 먹,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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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가 성완경 선생님과의 인터뷰 file

  • 쾌활림
  • 2018-06-22
  • 조회 수 176

미술평론가 성완경 선생님과의 지극히 사적인 인터뷰 강성원 (인터뷰는 민미협 30주년 기념 <인터뷰 집>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여차 저차한 이유로 못 실렸음. 이 글은 원래의 인터뷰 글에서 <인터뷰 집> 취지 관련 인터뷰 도입부는 삭제됐음. 그밖에 인터뷰 중간 중간에서도 <인터뷰 집> 관련 내용은 삭제됐음. sns에 올리는 일은 성완경 선생님의 허락 하에. 인터뷰 내용 중 성완경 선생님이 쓰신 글 내용에 대해 질문할 때 성완경 선생님이 쓰신 글 문장을 축약하거나 풀어쓴 경우도 있지만, 선생님이 쓰신 문장 그대로 드러내면서 질문...

<근현대 시각이미지와 여성>

  • 쾌활림
  • 201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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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표현된 근현대 여성의 모습은 과연 ’여성‘을 담고 있는가, 여성주의자 혹은 여성주의 미술가들이 그린 여성성은 과연 여성주의를 실현하는가, 여성미술은 어느 정도로 여성해방적 미술을 성취하고 있는가 등등에 대한 간략한 질문형식의 문제제기를 해보자. 역사적 사회적 흐름과 더불어 변하는 여성이미지들에 과연 여성성의 달라진 의미들이 반영되어 있다면 여성미술은 시대마다 얼마나 이런 여성성의 문제자체를 인지, 인식해 담아내는가? 여성작가들의 작가활동상에서의 모습은 얼마나 자신이 옹호하는 여성성과 일치하는가 하...

내 마음의 수선전도(修善全圖)

  • 쾌활림
  • 201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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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에도 ‘수선전도’가 존재한다. 내 마음이 느끼는 서울의 전체상인데 내가 느낀 서울의 심경상(像), 그 바닥이자 하늘이다. 원래 ‘수선전도’라는 말은 중국에서 유래됐다.  한 나라의 ‘수도(首都)’의 의미는 으뜸가는 선(善)을 건설하는 일 곧 수선(修善)의 시작점을 의미한다는 뜻에서 유래된   명칭이라고 한다. 수선전도에는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기관들이 국심(國心)의 세력중심으로 재현돼있다. 오늘날의 광화문 부근 영역이 정부청사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미국대사관등이 들어서 있으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상징하듯...

_‘퍼블릭 아트’는 동어반복적 개념어이다.

  • 쾌활림
  • 2018-06-22
  • 조회 수 50

<광장의 예술과 퍼블릭(Public Art) 아트 개념> 1 광장   광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은 광장에서 함께했던 낯선 사람들과의 뜨거운 연대감이다. 광장에 서면 일상 속 불만과 갈등이 내일을 위한 희망으로 바뀌어져 간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 느낌의 순간에 내 옆 어느 낯선 사람도 내 마음에 동참해주고 있다는 벅찬 뜨거움이 올라온다. 굳이 촛불집회같은 광장에서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어디인가 누구나가 갈 수 있고 자유롭게 주변을 누리고 공중의 특별한 간섭없이 내 자신으로서 있을 수 있는 ...

깊이의 허영 리얼리즘 변종현실 file

  • 쾌활림
  • 2017-09-17
  • 조회 수 136

1 변종현실   제1의 리얼리티가 있다. 제1의 리얼리티는 제1의 리얼리티를 숙주로 한 기생 리얼리티와 그 변종을 무한증식한다. 리얼리티가 무한증식하는 줄기는 의식상에서의 범주에서이다. 그리고 숙주리얼리티 변종들 바이러스는 의식 내부로 파고든다는 항상성을 지녀서 겉으로는 가시화되지 않는다. 의식 내부로 파고든다는 것은 제1의 리얼리티가 개인이 해체, 파괴할 수 없는 구조로서의 ‘현실 겉면’이기에, 철의 장막이기에 무한증식하는 숙주 리얼리티는 의식 바탕 저 아래 깊이로 밖에는 변종을 생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장치.부담.감각의 논리 file

  • 쾌활림
  • 2017-04-01
  • 조회 수 349

월간미술 4월호 연재 글(그간 반년 가량 개인사정으로 중단 했다가 다시 시작)   <장치·부담·감각의 논리>   1. 맥 컴퓨터와 윈도우 컴퓨터를 사용해 작업한 텍스트나 이미지들은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호환을 위해서는 다른 장치를 연결해야 한다. 호환의 필요를 위해 고안된 특별한 수단은 결국 상품으로 구입해야 한다. 구글 시트(Google Sheets)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Microsoft Word)나 한글 워드로 쓴 텍스트도 마찬가지이다. 호환이 안 되면 텍스트를 복사해서 옮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게다가 이 작업들을 메일로 전송하고자 ...

공론, 비평으로서의 예술, 감정의 공론

  • 쾌활림
  • 2016-08-28
  • 조회 수 70

공론, 비평으로서의 예술, 감정의 공론 (월간미술 연재13) 1 이 세상에 실제하는 공론의 양대 축, 공론이 그 안으로부터 생성되는 원천은 제도와 인간이다. 세상의 저간에 떠도는 갖가지 공론들은 인간 개개인에게서, 그들 모두 간의 삶의 느낌에서 나온다. 이런 가지가지 개인감정과 이해(理解)의 시선들이 실제로 모아져 일정하게 객관화된 것이, 결국 인간의 사회생활의 ‘필요’에 따라’ 정착된 것이 ‘제도’이다. 제도는 제도의 정신으로, 관련된 법으로 움직여진다. 제도는 본질상 인간의 행위가 일으키는 모든 사건들에 대한 예측시스...

민중미술의 미학 file

  • 쾌활림
  • 2016-05-30
  • 조회 수 410

민중미술의 미학   1 미술가가 자신이 직접 본 광경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동, 서양 모두 근대사회가 시작되면서였다. 미술가는 이즈음부터 자신이 본 생활상의 장면에 자신의 감정과 세계에 대한 관심을 듬뿍 담아 일정한 틀 속의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보다 더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 밑바닥 인생들이다. 사실상 일반적인 사회경관 대부분의 광경들은 작가 주변의 일상생활 아니면, 사회 밑바닥 층의 헐벗고 남루하고 그럴 수 없이 가난한 삶이다. 이런 광경을 보면 자연스레 인생에 회의가 들고 인생의 고통 전반에 생각이 ...

악덕,공공성, 제도의 영혼 file

  • 쾌활림
  • 2016-05-28
  • 조회 수 154

악덕, 공공성, 제도의 영혼   1 인류에게 언어가 생긴 이래 악행(惡行)이나 악덕(惡德)을 묘사하는 숱한 어휘들도 생겨났다. ‘흉악하다’, ‘수전노 같다’, ‘냉혈한이다’ 같은 표현들과 ‘악덕 군주’, ‘악덕 자본가’, ‘악덕 계모’, ‘모리배’, ‘간신’ 등등 그야말로 각양각색, 천차만별의 ‘악덕’에 얽힌 이야기들이 인간언어의 중심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덕한 행위들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보편적이고도 특별한, 악덕에 관련된 형용어들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이야기를 목숨을 걸고라도 간절히 기...

메타포, 정원, 공공영역 file

  • 쾌활림
  • 2016-01-29
  • 조회 수 169

메타포. 정원(庭園). 공공영역   1   우주의 역사, 자연의 역사는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자연의 역사는 뇌의 생리 속으로 자신의 역사, 그 시간 속 공간 속 축적된 의미들을 전달한다. ‘자연’이라는 개념으로 압축된 생활의 고통의 역사는 예민한 신경의 공감적 능력에 자신의 고통을 풀어낸다. 자연이 삼킨 모든 생명체들의 죽음과 개체가 행한 생의 무리수, 공포와 착종된 비전을 그려낸다. 그래서 자연이 종국에서 드러내는 생활상의 과거, 산화(散華)된 경험의 소리와 냄새, 빛과 감각의 모든 스펙트럼을 얼마...

자연의 우울_사실성의 우울 file

  • 쾌활림
  • 2015-12-25
  • 조회 수 422

1 자연이 합법칙적이라는 관념은 근대화된 관내(管內) 학문, 곧 근대과학의 산물이다. 근대적 학문범주에서‘자연’으로 범주화된 세계는 과학적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우주의 일부분으로서의 세계이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자연’도 분명 존재한다. 곧 인간의 ‘생활세계’로 근대과학의 탐구 대상인 자연세계를 자원으로해‘인류 발전’이라는 합목적성을 추구하는 인류생활로서의 세계이다. 사실상 개인이 몸담고 있는, 개인에 관여되어 있는‘자연세계’는‘자연’으로서의‘생활세계’이다. 과학 연구가 대상으로 하고 있는 자연세계는 추상적인 ...

전통_효과의 사다리, 무의미의 의미 file

  • 쾌활림
  • 2015-09-27
  • 조회 수 1443

1.   아프리카 해안가 어디에선가 부터 해협을 건너고, 지구 표면을 따라 방랑하기 시작한 인류의 족적, 이 발자취를 인류사의 시작이라고 말해도 좋지만, 전통이라고도 명명할 수 있다. 지구 위를 방랑하다가 삶의 터전을 세우고 발 길 닿는데까지 영토화한 일도 흔히 역사라고 불려지지만 ‘전통’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전통을 세운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어딘가로부터 한반도로 흘러 들어와 석기, 철기 시대를 열고, 삼한과 백제, 신라, 고구려를 세운 일도 역사이고, 당시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세운 생활의 전...

자기만의 세계상 file

  • 쾌활림
  • 2015-07-29
  • 조회 수 1221

자기만의 세계상 _  새로운 체험의 초현실 1. 누구나 한번 쯤은 살면서 권태롭기까지 했던, 아귀다툼 같았던 일상이 지상의 행복이구나 하며 느낄 때가 있다. 누구나의 일상이 같은 정도로 만족스럽지는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살아갈 힘이 반복되는 생활리듬에서 나왔던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별별 이유와 고통으로 상처받은 마음이 삶을 지속할 수 있을 만큼은 무너지지 않고 벼터내는 것은 나날의 생계(生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이 목격하고 체험한, 피해 입은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고 싶은, 세상...

제대로 사는 삶의 문제 file [2]

  • 쾌활림
  • 2015-07-03
  • 조회 수 457

1 인류는 ‘무엇이 제대로 사는 것인가’하는 아주 오랜 물음, 문명이라는 이름의 물음에 이끌려 살아왔다. 인간의 문명 특히 서구문명은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고민할 까닭이 없는, 이런 물음을 갖지 않는 인간을 인간다운 생명으로 여기지 않아왔다. 제대로 사는 것이, 궁극에서 보면 사회의 공적 영역, 그 부산함에, 시끌벅적한 부(富)와 부를 창출하는 기술과 노동, 사업과 인간관계, 인정과 평가의 사회생활에 크든 작든 자신의 능력으로 끼어들어 살 수 있는 삶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살 수 있는 기회를 갈구하는 것이...

예술과 생활2 file

  • 쾌활림
  • 2015-05-28
  • 조회 수 376

김성룡천일야화 프로젝트   1. 역사는 거창한 비전과 계획이 이룬 삶이 아니다. 민족이나 국가, 사회의 특정 계층이나 구성원들 일부가 대량살상으로 인해 혹여 절멸 된다고 해도, 나머지 개인들이 비참한 생활로나마 생존할 수 있다면, 역사는 생존자들의 핍진한 이해관계의 긴장으로 무장돼 미래만 바라보며 나가게 된다. 굶주림과 학대가, 살상과 모반이 실제로 행해지지 않았던 것처럼 일상은 새벽위로 떠올라 밤사이로 지나가기를 반복한다. 일상에서 몇몇 극소수 개인들은 다른 공동체와의 전쟁도 기획하고 생의 미화도 만끽하면서 ...

미학이란 무엇인가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340

 1 일반적으로 '미학'이란 단어를 들으면 누구나 조금은 그 뜻을 막연해한다. 그래도 '미에 대한 학문'이니까 예술에 관한 전문지식체계를 다루거나 미용 등 구체적인 생활분야에서 무언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과 관련될 때 미학을 언급한다는 정도는 알 수 가 있다. 사실 이런 차원에서의 미학 이해는 틀리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미학'은 얼핏 대하기 만만치 않은 아우라와 수수께끼로 가득 차 보인다. 통념이 과연 맞는 것인가 반신반의 하게 된다. 한편 미학에 대한 통념이 미학에서 실제 다루는 내용과 크게 다...

사회시스템과 미술2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194

1 개인이 자기자신에 대해 모르는 정도는 타인에 대해 모르는 그만큼 더 커진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가 다른 사회를 모르는 정도가 클수록 한 사회가 지닌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도 불일치가 커진다. 세계화로 전지구가 하나로 연결돼 마치 전지구의 모든 삶의 문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구대륙과 신대륙 사이, 지구의 남반부와 북반부, 한국과 중국, 일본이 이 정도로 나마 서로 인지하고 알고 지낸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을뿐더러, 또 안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서로 간에 모르는 부분은 너무 많고, 모든 사람이 다 똑같...

인문학의 정치,미술의 정치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568

이인철/스포츠 공화국의 상과 하  1 순수예술과 참여예술 논쟁이 있다. 예술이 정치의 수단이 되는 것을 거부하거나 말하자면 예술을 매개로 사회적 발언을 해야한다는 신념을 지닌 예술가들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간 참여예술을 주장하는 작가는 보통 좌파진영에 속한 작가라고 추정, 분류되면서 80년대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서 보듯 전시 작품들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다. 순수냐 참여냐의 예술적 선택에서 예술을 통한 현실참여를 예술적 태도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불온시하면서‘정치적 미술’로 문제시 한 것이다. 실제 정...

사회시스템과 미술1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133

서용선<단종복위모의>   최경태 <겨울 아침 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1. 사람은 자신의 생명의 활로를 얻기 위해 움직인다. ‘생활’(生活)에 나서야 나날의 일상과 자신의 생애가 보장되고 생명의 잠재적 가능성이 열린다. 하지만 태어나자 마자 생활에 나서지는 못한다. 성년이 되기까지는 경험해야한다. 경험을 위해 배워야한다. 초기 인류라면 생활을 위해 무작정 걸으면서 보고 듣고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역사 시대 접어들면서는 생활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배워야했다.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 체계(시스템)으로 작동한다. 그가 경험하고...

경험과 판단의 아카이브_필요하지만 없는 것에 대한 단상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249

  조양규 <31번 창고> * 인간은 살면서 생활의 모든 것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는다. 인간 이외의 생명체도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지만, 인간의 삶에 대한 감정은 어떤 생명체 보다 유별나고 복잡하다. 특히 삶의 감정이 단순히 수동적인 지각현상이 아니라 능동적인 판단과 경험내용의 복합체이며 주관적인 반응이기도 하고, 지식의 결합물이며 의식의 총체물이라는 점에서 우주의 어떤 것 보다 특수한 인간만의 세계를 표상한다. 이러한 표상들로 부터 사고와 관념의 상들이 시작된다. 이 과정은 가장 인간적이고 고유한 의식작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