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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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백신 접종으로 인한 집단면역 달성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강화로는 더 이상 확산을 막기가 여의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나는 전문가들의 판단과 달리 거리두기 강화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전문가들이 저렇게 판단하는 건, 정부가 지금까지 거리두기 강화에 따른 자영업자들의 손실보상에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럽에서 발생하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희귀 혈전, 뇌정맥동혈전증(CVST)이랑 파종성혈관내응고장애(DIC) 문제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보다 백신 접종의 이익이 더 크니 접종을 계속 해야한다고 말한다. 유럽의약품청도 그렇게 밝혔다. 이성적으로 맞는 말이다. 유럽의약품청 발표에 의하면, 뇌정맥동혈전증은 100만 접종당 5건 수준으로 발생하고, 내장정맥혈전증은 100만 접종당 1.5건 정도 발생한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코로나19는 8일 0시까지 모두 10만7598명이 확진됐고, 사망자가 1758명 발생해 치명률이 1.63%이다. 확진자 100명 당 1.6명이 숨진 것이다. 수치로 봤을 때 백신 접종보다 코로나19가 훨씬 더 위험하다.
게다가 코로나19는 사회적 취약층과 고령층에게 더 깊고 더 위험하게 파고 든다. 반면 현재까지 백신의 위험은 50살 미만 여성층에게 매우 희귀하게 발견되고 있고, 접종 뒤 이상반응을 잘 살펴서 조기에 대응하면 치료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상대적으로 민감하게 자신을 살필 수 있는 젊은층이 주의만 잘 기울이면, 혈전 문제를 잘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수치와 접종 이익, 극복 가능성이라는 과학적 관점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게 딜레마다. 사람들은 코로나19의 경우 내가 적극적으로 조심하면 감염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백신 접종은 선택할 수 있는 데다 희귀 혈전 발생 상황이 100만에 하나라고 해도 언제 어떻게 발생해 자신의 건강을 위험 수준에 이르게 할 지 알 수 없다고 여긴다. 두려움은 비가시적인 것이 가시적인 것을 압도하고, 대비할 수 있는 수단이 보이지 않을 때 극대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거시적으로 '접종의 이익이 위험을 압도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설득력을 갖긴 쉽지 않다. 나는 지금 접종에 대한 불안감을 갖는 게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시점이 됐다고 생각한다.
나도 결론을 어떻게 내야할지 모르겠다. 다만 모든 사안은 무 자르듯 결론을 내기 어렵다는 것, 그래서 '접종 이익이 위험을 압도한다'는데 왜 계속 백신에 대해 트집을 잡느냐는 말은 섣불리 하지 않으면 좋겠다. 일단은 거기서 고민을 시작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