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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치와 비정치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상읽기.

경희대에서 문화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해왔다. 아시아적 근대성을 통해 서구이론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인생론><마녀 프레임><이것이 문화비평이다><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무례한 복음> 등이 있다.

  1. 침공과 제재 

전격적인 푸틴의 침공으로 벌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이 서방세계의 예측과 달리 장기전으로 가고 있다. 물론 이런 장기전을 푸틴이 예상 못한 것인지 아닌지 알 길은 없다. 폴 크루그먼은 3월 4일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칼럼에서 푸틴의 오판을 단언하고 있는데, 이런 평가에 따르자면 푸틴이 불러온 이번 전쟁은 전략적 실패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막강한 화력을 앞세운 러시아는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겠지만,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푸틴은 초기 기동전으로 신속하게 우크라이나를 장악하려는 계획이 실패하자 대규모 전면전을 감행했다. 크루그먼은 이 또한 푸틴의 오판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러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유럽이 경제제재에 동참하지 못하리라 푸틴이 예측했다는 것인데, 이 경제제재는 연료 수입을 직접 규제하지 않고 러시아 은행을 세계금융체제에서 퇴출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루블화는 급락했고, 송금을 할 수 없는 까닭에 무역 자체가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무역이 차단되었기에 “자급자족”의 길만이 러시아 앞에 놓여 있는 셈이다. 지구상에 북한 정도를 제외하고 이런 경제체제를 유지하는 국가는 없다. 


크루그먼의 말이 옳다면, 푸틴은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실패한 전쟁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고, 경제적으로 러시아를 디프레션의 늪에 빠트리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심지어 중국도 이런 러시아의 경제 위기를 도울 수 없을 것이라고 이 ‘경제학자’는 진단한다. 그러면서 바이든이 신속하게 우크라이나에 첨단 무기를 공급하고 푸틴의 자금줄을 조이는 제재에 돌입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3월 8일 칼럼에서 이 ‘경제학자’ 크루그먼은 “공짜는 없다”고 말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가 세계경제에 초래할 충격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다소 처음 칼럼과 다른 온도를 감지할 수 있다. 경제학자답게 이번 침공의 대가를 세계가 치러야한다면, 얼마나 치러야할까 자문하면서 제시한 대답은 상당히 그 여파가 심각하겠지만 파국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시작한 경제적 파장은 1970년대의 오일 쇼크에 준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다. 이런 예측이 암시하는 것은 이 전쟁이 단순하게 두 국가 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크루그먼은 다소 낙관적인 어조로 세계 경제는 그때 그 시절보다도 석유 의존도가 낮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국제 유가는 각국 경제에서 중대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푸틴의 러시아 침공이 불러올 변화는 이런 의미에서 전후 세계체제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예비하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지금 상황을 1930년대에 비견하기도 하고, 나 역시 상당히 일리 있는 진단이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그때는 지금과 달리 사회주의 세력이 성장해서 제국의 팽창주의와 대립하고 있었다. 견제 세력이 없다는 점에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확실히 더 심각한 위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2. 평화주의의 종언?


크루그먼은 발 빠른 바이든의 대응을 높이 평가했지만, 그렇다고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서방세계의 의지대로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푸틴의 의도대로 되지도 않을 것이고, 과거의 냉전처럼 ‘뜨거운 평화체제’로 귀결하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오히려 인류는 3차 세계대전에 더 가까워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국면을 1930년대에 비유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 


이 대결 구도가 근본적이라는 관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발언으로 관심을 받은 노엄 촘스키와 에티엔 발리바르의 주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촘스키는 크루그먼과 달리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하되 푸틴에게 출구전략을 쓸 기회를 주는 압박을 가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자 발리바르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런 촘스키의 견해를 반박했다. 발리바르의 발언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유럽 국제주의자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촘스키 발언의 취지는 강력한 경제제재가 평범한 러시아인들에게 고통을 가하게 될 것이고, 이런 불안요소 때문에 푸틴이 더 광폭한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도망갈 구멍을 확보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촘스키의 생각을 잘못되었다고 단언하면서 발리바르는 푸틴을 견제하려면 강력한 제재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생각의 기저에 깔려 있는 전제는 러시아 내부의 정치적 저항이 거세져서 푸틴이 정치적 기반을 상실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혼란상태가 지금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보다 낫다는 발상일 수도 있겠으나, 발리바르도 인정하고, 앞서 크루그먼도 분석했듯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가 러시아의 변화보다 더 빨리 세계금융체제에 근본적인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발리바르는 위기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 텐데, 결국 푸틴을 저지할 결정적 한방은 러시아 내부의 정치에 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발리바르는 특유의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초래할 문제를 다측면적으로 고찰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독일의 재무장을 비롯한 유럽의 무력증강이다. 흥미롭게도 발리바르는 푸틴에 대항하는 무력증강을 필요악으로 보면서 예전처럼 유럽이 평화주의에 입각해서 불개입 방침을 유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과거 소련과 미국 사이에서 중립지대의 입장을 견지하고자 했던 유럽의 노선과 사뭇 다른 발언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유럽이 이미 글로벌 체제의 일원으로 참가해 있다는 점에서 발리바르의 입장은 오늘의 유럽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 푸틴이 했던 연설에 대한 발리바르의 평가가 주목을 끄는데, 푸틴은 레닌을 비난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제국의 영토에서 떼어내서 분리 독립을 시킨 장본인이 러시아혁명을 주도한 볼셰비키였다고 비판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닌의 민족주의 논쟁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레닌은 당시에 우크라이나의 민족자결주의를 인정함으로써, 후일에 발생할 민족분쟁을 방기한 측면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푸틴의 연설은 내적 논리에서 모순을 범하고 있는데, 민족문제에 대한 레닌의 고찰이 보여주듯이, 계급과 민족을 둘러싼 이견의 대립은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이후에 등장한 것이다. 발리바르도 지적하고 있듯이, 이 문제는 러시아 제국의 역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민족문제는 1920년대의 상황에서 기원하는 것이고, 그때 러시아는 지금 푸틴의 러시아와 다르다. 


3. 민족이라는 문제


이런 착각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한국의 시선에서도 드러난다. 3월 2일자 <한겨레신문>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피비린내 속에서 세계는 하나의 국민국가가 탄생하는 장엄한 과정을 목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우크라이나는 이미 1920년대에 전쟁과 혁명을 거치면서 국가로 탄생했다. 푸틴은 그렇게 탄생한 우크라이나를 가짜라고 부정하면서 침공을 감행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문제는 정치인과 소수엘리트가 결탁한 부정부패였지 국가로서 정체성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전쟁을 통해 진정한 국민국가가 태어난다는 발상은 역설적이게도 푸틴이 지지하는 러시아 민족주의사상과 일맥상통한다. 푸틴이 자신의 정치 전략을 달성하기 위해 전쟁을 이용하는 이유도 전쟁의 포화 속에서 강인한 러시아 민족이 탄생한다는 "사상" 때문이다. 


사실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데올로기적인 이유가 크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2019년에 흥미로운 논쟁이 중계되었는데, 그 참가자는 러시아의 철학자 알렉산드르 두긴과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나르-앙리 레비였다. 형식상 논쟁은 두긴의 신간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사실상 두긴이 평소에 주장하는 “진정한 러시아의 진리”와 “자유민주주의의 궁핍”에 대한 것이었다. 푸틴의 철학자로 불리는 두긴은 그 행사에서 “문명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는 서방세계의 자유민주주의와 다른 문명”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푸틴의 연설과 같은 논리가 이미 두긴의 발언에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배경을 감안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결코 푸틴의 “광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발리바르가 “공포스럽다”고 한 까닭은 바로 이번 러시아의 진격이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쟁이 “진정한 러시아의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소비에트 블록의 붕괴 이후 30여 년간 평화 시기를 누렸던 글로벌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지금 우리는 어떤 미래로 나아가고 있을까. 지금 분명한 것은 역사의 종언 이후에 다시 돌아온 역사는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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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25
  • 조회 수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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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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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에게 문자는 인간을 게으르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문자로 무엇인가를 표기해놓으면 주객이 전도되어서 그 문자를 해석하느라 갑론을박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문자에 담긴 이데아를 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악명 높은 ‘시인추방론’과 일맥상통하는 논리인 셈이다. 그러나 인류 중에서 살아남은 우리 사피엔스는 플라톤의 우려와 달리 “돌에 정보를 새기는 능력” 덕분에 사회를 이루고 이렇게 지구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는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다. 문자가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이 문자야말로 괴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