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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팅 비평은 모종의 ‘미적 질감’ 비평을 끌어내보기 위한 작업이다. 여기서는 미술과 미학 문제로 다룬다.

그간 미술비평과 큐레이터 일을 했다. 인문학박물관을 만들어 학예실장으로 일 한적도 있고 일민 시각총서 편집장 일도 했다. <미학이란 무엇인가>(사계절)를 비롯해 미술서 몇 권 썼고, <문화적 기억_야나기 무네요시전>, <공감_정기용 건축전>을 비롯해 <격물치지>, <공장>, <우리 학문의 길_새 생활과 새 윤리의 학>, <수레바퀴 밑에서> 등의 전시도 기획했다.

자전적 문화론이자 지하생활자의 수기로 문명과 미감 사이 곤경(困境)의 질감(質感)에 대해 써보고 싶어 그야말로 노력 중이다. 인생의 불편함, 불쾌함에 대한 사회적 존재론이자 우주론 독본을 계획만 하고 있는 건데, 스스로도 그 모양새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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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문체부의 <박물관미술관 진흥 중장기계획>이 진짜 문체부가 세운 확정된 계획이 맞는지 궁금하다. 이 계획서는 현재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안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가 그대로 반영된 계획서이다. 그런데 이 계획서와 함께 미술관 박물관을 한 참 더 짓는다는 뉴스도 나온다. 결국 이 계획서에 근거해 짓겠다는다는 것인데, 중장기 계획에 새로운 비전이 안들어가 있다. 좌우지간 문체부 확정 계획안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이 계확안만 있는 그대로 보면,이 계획은 사실상 지난 20여년간 해왔던 교육부의 대학교육 중장기 계획과 내용상 큰 차이가 없다. 비전과 목표, 전략 및 핵심과제가 모두 양적 확대와 기술적 관료적 행정적 전문화등에만 매달려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교육'이란 개념을 한군데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 물론 '교육'이란 단어 자체가 주는 식민지적 전체주의적 역사를 잊을 수야 없겠지만, 일단 이 표현을 그래도 계속 써본다면, 미술관과 박물관, 더군다나 미래의 미술관 박물관의 본질이자 기능은 전적으로 '교육'의 기능에 있다. 유물수집과 연구, 전시라는 미술관 박물관의 기능은 기본기능이지만, 박물관미술관이 아직 사회에 생소할 때의 급선무로서의 기능이다.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이미 미술관 박물관의 기능의 모든 촛점은 교육에 있다. 교육이란 단어를 피하고자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해보면, 비판적 공감대 형성과 공감 능력의 향상에 있다. 오래전부터 일반 초중등교육에서도 체험교육을 중시해왔듯, 이에 발맞춰 미술관박물관이 시민교양교육의 중심으로 서서히 자리잡아오게 된 것이고, 앞으로 미술관 박물관의 문화교육적 기능은 사실상 도서관 기능의 흡수와 함께 미래 시민 교양교육의 센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서구 미술관박물관들이 현재 나아가고 있는 길이 이 길이다. 

이 계획서에도 '문화로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비전이 설정되어 있긴 하다. 이 비전을 굳이 좋게 말 그대로 해석하면, 두 가지 다른 방향으로의 해석은 가능하다. 첫째는 문화로 비판적 공감대 형성과 공감능력의 향상을 더욱 더 강화, 발전시키겠다는 뜻으로도 읽을수는 있다. 둘째는, 이런 저런 문화를 시각적으로 체험하면서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식의 단순하고 애매하게 공무원스러운 뜻으로도 읽힐 수 있다. 그런데 두번째 방향에서 이 문구를 이해한다면, 이 계획안은 그간 문체부가 늘 주장해왔던 미술관박물관의 비전과 크게 다를바 없다. 새로울 것이 전혀 없다.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개념에 교육문제가 포괄적으로 들어간다고 볼 수는 있지만, 명료하게 표현되어 있지는 않다.이 두가지 중 어떤 뜻으로 중장기 계획에 이같은 비전을 넣었는지 판단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계획서의 3대 목표와 목표에 따른 전략 및 핵심과제를 읽어보면 안다. 그래서 보면, 이 계획서의 비전인 '문화로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기왕에 문체부가 내세웠던 비전과 하등 다를바 없고, 박물관과 미술관의 교육 기능을 미래적으로 강화, 확대하면서 그 내용적 질을 높이고자 명확히 하는 비전은 아닌 것이 명백하다. 미래를 위한 중장기 계획이라고 하기엔 코메디. 

지금 이 시점에 중장기 계획을 내놓아야한다면, 첫번째 해석에서의 교육기능의 내용적 질적 강화에 놓여야한다. 내 경험으로는, 공무원들이 이런 계획서를 공개했을 때는 절대 그 각각의 항목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을 넘어선 무엇을 시도할 수가 없게 되어있다. 이것을 바꾸려면 법을 바꾸어야 할 정도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미술관박물관의 진흥정책은 거의 절대적으로 이 계획서에 근거한다는 것인데, 미술관박물관의 교육기능의 질적 방향과 질적 전문성등의 공공성 강화 정책은 없다라는 얘기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전혀 미래적이지 않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보면, 3대 목표인 공공성 강화/전문성 심화/ 지속가능성 담보를 위한 전략 및 핵심과제에서,1)공공성 강화를 위한 기반시설로서의 위상강화와 모두가 누리는 미술관 박물관 추진의 핵심과제를 정책기반 체계화와 운영관리 내실화로 우선 다지겠다는 것인데, 이는 지금껏 해방 이후 국공립 미술관 박물관들이 항상 일정정도 해온 일이자 그 결과로 오늘날의 거대화된 국공립미술관 박물관들이 존재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즉 국가기관으로서의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며 그만큼 더 철저히 행정적으로 세계적인 고도의 선진 행정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으로, 한편으로보면 박정희식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맞먹는 일종의 현대화 프로젝트요, 다른 쪽으로 보면 더욱 더 세련되고 능수능란하게 미술관박물관을 국가에 종속적인, 그리고 더욱 더 거대한 레바이어던 기관으로 만들고 싶다는 문체부의 숨은 욕망의 표현이다. (그럴수록 문체부는 삼성과 기타 인터넷 관련 핸드폰 관련 컴퓨터 관련 업체들과의 공생관계)사실상 문체부 관료들의, 전임이던 현재직이건,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다. 욧점적으로 말하자면 현재의 이 미술관박물관 중장기계획과 앞으로도 수백개의 미술관박물관을 더 짓겠다는 얘기는, 순진하게 보면 문화가 더욱 공공스러워지나 보다 하겠지만, 뒤집어 속내를 보면 공무원들을 위한 중장기 일자리 증대 정책이락 할 만큼 공무원들의 일터 환경 개선 정책이고 중장기 일자리 대책정책이다. 학예실을 더 보충한다지만, 학예실 보충해야 몇몇 등일 뿐이다. 그리고 이 학예직도 공무원들의 손아귀에 있는 학예직이 될게 뻔하다. 말하자면 4대강에 보를 설치하면 보를 관리할 공무원들이 늘어나고 건설업자 좋은 그런 일과 거의 유사한 정책이다.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략 및 핵심 과제 어디에도 내용적으로 미술관박물관에서의, 계획서에 쓰인대로의, '문화로 삶을 풍요롭게'하기 위한 질적 실천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계획서대로라면, 건물 더 짓고 화려한 전시들 더 할테니 더 많이 와서 보고 문화를 향유해라라는 파시즘적 계획서이다. 아마도 문체부와 문체부와 밀접히 연관된 수십년간 밀착된 박물관미술관계의 몇몇 인사들에게는 이 계획이 그들의 미래를 보장할 것이다. 그리고 박물관미술관 평가제도가 추진전략으로 들어가 있지만, 평가에서 중요한게 관람객 수와 내부 운영에 대한 평가인데, 내부운영에 대한 평가는 결국 이들 문체부내의 평가인데 보나마나 장악을 위한 평가가 될게 뻔하다. 미술관박물관이 했던 일에 대한 문화적 ,인문학적 공공성을 위한 가치평가가 전혀 없다. 

2) 전문성 심화를 위해서는, 미술관박물관 특성화지원등이 있다. 대학의 특성화지원과 유사한 정책인데, 필요한 정책이긴 하다. 전문인력 확충과 역량제고 항목도 있다. 연구인력 확충, 소장품 등록시스템과 연구출판아카이브 기능강화도 미술관박물관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다.하지만 연구인력이 확충되어도 역량은 서류상의 형식적 경력으로만 증빙되면서, 이들이 한층 고도화된 아카이빙 시스템으로 유물수집과 유물연구에 집중하고 그리고 여기에 출판을 강화한다는 것은, 위의 공공성 전문성 강화 전략이 지극히 형식주의적인 것으로 관료행정의 거대집단 조직의 기반을 거대화, 체계화하고 자기정당화를 강화홍보한다는 뜻이다.관료스러운 전문성만 강화하겠다는 의지이다. 자기들만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얘기이다. 관료조직이 고도로 전문화되면서 문화를 장악하고 저들끼리 만들어낸 문화를 너희들은 감상만 많이 해달라는 얘기이다. 일제 총독부가 했던 짓이다.이 문제는 일제 식민지체제가 우리를 근대화시켰다고 주장할 때의 논리와 같은 문제를 안고있다. 제도를 전문화해 그야말로 시민생활 속으로 근대적 공중서비스를 만들어 놓지만, 사실상 향유층들을 생산적, 창조적으로 근현대화로 이끌어 개인이 진정 자유와 평등으로 성장하게끔 연결시키는 장을 만드는 서비스가 아니다. 시민들이 근현대화를 미술관건물이나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전문직능이나 근대적 전시연구형식 자체들로만 받아들이게 하는, 그 제도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직능의 근대화, 건물의 근대화에 감탄하고, 이들의 근대화된 삶을 밖에서 전시나 감상하면서 감탄하며 바라봐야하거나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동경하는, 다시말해 제도의 안과 밖의 사람들을 경계짓고 구별하는 근대화요, 제도안의 사람들은 권력이 되고 제도 밖의 단순 감상자층 시민들은 행정학통계중 한 부분인 일반시민들로 만들었던 것과 같은 방식이다.일제시대 근대적 제도들이 들어서면서 근대화가 됐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 제도에서 일하던 사람들 전문 기술관료들이 되고, 이들이 서비스해야할 일반시민들을 그냥 통계수치로만 대하던 상황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일제시대 소위 전문가들은 그들의 전문성으로 해방 이후 다시 제도로 돌아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고, 이들이 해방 이후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막았던 보이지 않는 적폐 세력으로 남았다. 전문관료들만 지속적으로 생존하게 하는 비전이다.기술관료로서의 이들의 정신적문화적 공허함은 고액의 월급과 월급의 소비, 문화주택이나 클래식 연주회나 백화점에서 열리는 미술전시회등에 다니면서 채우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이 다시 해방 이후의 모든 문화행정기구들을 만들었다. 소위 순수예술의 문화계이다. 현재의 문체부 행정은 결국 일제시대 일본이 행한 대조선인 식민정책의 핵심 그대로를 이어받고 있다.이 계획서 차원에서의 공공성 강화, 학예실의 전문성 강화란 관료주의적 목적에서의 수집 아카이빙 시스템의 강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학예직은 본질적으로 아카이빙 기능이 뛰어난 로봇이 된다. 그리고 로봇 일수록 자체 내부 인사관리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전문성의 의미가 전문기술관료화의 강화로 간다는 뜻이다.어디에고 질적 내용적 공공성전문성 강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없다. 이런 의미에서의 전문성 공공성 강화가 박물관과 미술관의 미래적 교육기능강화에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미래적 비전도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만일 박근혜정권에서 문체부가 이런 계획서를 썼다면, 박정희 새마을운동의 2000년대 비전으로 볼 수도 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계획서가 나온 것은 그만큼 문재인 정부의 문화관계자들이 아무 생각도 없이 자기 자리보존에만 연연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도 문화에 대해서는 전혀 감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이 계획서에 따르면, 문체부는 미술관박물관의 진흥정책을 통해 미술관박물관을 더욱더 국가를 위한 문화전문기관으로서의 전문성을 갖게 한다는 뜻이고, 문체부는 이를 통해 문체부 권한을 높인다는 뜻이다. 특히 전문인력역량제고와 인력확충을 통해 결국 연구출판아카이브 기능을 강화한다고 되어 있는데, 뭔가 이를 통해 엄청 전문적 집단의 전문적 학문적 일을 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결과적으로 보면 이를 통해 미술관박물관의 자체 홍보가 더욱 강화될 뿐이다. 그리고 학예실 전문직이라면, 그들이 전시기획을 하건 무엇을 하건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책임실명제로 공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들이 준공무원으로 일을 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요즘 공무원들은 그런데 실명제로 일하는데도 있는 것 같은데, 미술관과 박물관 학예직들은 최고의 전문가이면서도 이들이 싼 똥의 책임에 대해서는 대중들에게 유먀무야하고, 능력이 있을수록 내부의 질시로 살아남기 힘들고, 생각이 독창적으로 튈수록 조직에 안맞는 사람이라며 평가 점수가 낮다.

물론 출판물이나 도록 서문등에 전시기획자들이 글을 쓰면서 보통은 아 이사람이 기획했구나를 알게 된다. 하지만 전시장 자체에도, 대중홍보에서도 기획자 이름이 실명으로 붙어야 한다. 비싼 도록들을 사보거나 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도록에서 일일히 기획자를 찾아보는 사람도 많지 않기에. 전문가가 한 일을 그의 이름도 공공연하게 밝히지 않으면서 하면 웃기는 문제들이 생긴다.이름을 밝히지 않으면 그가 한 일들의 전문성에 비해 효과는 더욱 더 비전문적으로 작용된다. 효과효율이 똥통에 빠진 똥과 된장이 되더라도 저들끼리는 통계만 올리면 된다. 그러면 그들의 일에 대해 외부에서는 똥과 된장을 구별못하는 평가들이 난무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이들은 오히려 이런 비전문적 반응을 필요로 한다.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전문적 반응이 아니라 비전문적 반응을 더욱 권장하는 전문가들. 이렇게 왜곡된 기고만장함으로 전문가연 하면서도 그러면서 동시에 인생의 영화를 위해 내부에서는 숨을 죽이며 산다. 결국 미술관과박물관들이 사회 전체의 전문가들의 전문성을 그들처럼 만들어간다. 문화로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뜻을 역사적으로 들여다보면 이런 뜻이다.전문가 실명제가 중요한 것은, 예를들어 미술관박물관에서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들간의 질적 역량들이 크게 차이나고 그들이 전문가라 하지만, 완벽한 전문가는 아니기에 그들 큐레이터 마다의 장단점이 있다. 각 큐레이터들의 장단점등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어야 한다. 프리렌서들은 노출되어 전문일을 하는데, 공무원들은 은폐되어 있다. 그리고 그 큐레이터 자질에 따라서가 아니라 공무원 사회에서의 적응능력에 따라 미술관박물관 전문성이, 그것도 내부적으로만 평가된다. 외부적으로 볼 때는 그냥 고급전문 큐레이터들이다. 공공직의 큐레이터들이기에 그 경력은 타 기관으로 전직할 때도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는다. 이게 공정한 사회인가?! 프리랜서들에 대해서는 개인으로 칼같이 평가하면서, 국공립의 큐레이터들에 대해서는 개별이 아니라 ‘국공립’으로 뭉뚱그려 평가된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제1원리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국공립 미술관과박물관은 그 원리의 가장 근본적인 파괴자들이다.국공립에서는 대체로 기획은 박물관 전체 직원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각 업무분장을 정확히 밝히고 어느 정도 어떻게 외부와도 협력됐는지 밝혀야 한다. 외부 기획으로 들어와 거의 대관한 것들도 많은데 그런 부분들이 대중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이런 전문적 부분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심하게 말하면, 큐레이터들은 이렇게 강화된 제도적 시스템의 기반에서 강화된 연구아카이빙 시스템이라는 조건에서 일을 하지만, 그들이 연구한 내용이 대중에게 이해, 전달, 전시되고, 전시내용을 통한 체험교육방식은 결국 ‘내가 싼 똥 향기를 맡아봐라' 하는 식으로만 작용하게 된다. 이들이 하는 그나마의 시민을 위한 교육도 이 연장선상에서 진행된다. 개별 교육내용들과 그 개별내용들의 전체적 의미가 어떤 흐름과 의식을 형성할 것인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그림'의 미래비전이 없다. 교육도 수강생의 통계로 평가된다.이들도 공인이므로 전문가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므로 전문적인 그들의 일은 내용적으로 대중에게 검증돼야하고 걸러져야한다. 필요하면 공론에서 퇴출되어야한다. 미술관박물관이 체험교육의 정점이자 상징이라면, 그 안에서의 전문가들의 전문성에 대한 검증은 가장 먼저 필요한 부분인데, 이 부분이 가장 많이 은폐되어 있다.대중들은 그 똥이 누구 똥인지 모르면서 향기를 맡아보려고도 하고 향기가 안나도 향기가 나는데 내가 못맡는가 스스로를 의심해보기도 하면 전시를 본다. 그리고 기획자가 안알려지면, 대중들은 모든 전시가 국공립미술관박물의 전문성이 표현된 전시라 이해하면서 전시 인상이 부정적인 경우에 차라리 국공립미술관과 박물관을 욕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자기자신의 무식을 탓하며 ,전시가 내용없고 후짐에도 불구하고 뭔가 뜻이 있겠지 이해하며 넘어간다. 그 전시를 조직한 큐레이터는 전시에 대한 내용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런데 무슨 공공성이고 전문성인가?!이런 일들은 관람객을 비전문적으로 만든다. 가장 최고의 전문가들이 대중을 위해 일을 하면서 관람객을 비전문인으로 끌어내려 버린다. 이게 이들의 목적인가?! 그러면서 그들과 문체부는 엄청 전문가로 모든 결정권을 갖는다. 전문가들이 일을 해서 시민들을 더욱더 진흙같은 암흑의 환상 속에 밀어 넣는 식이다.마치 그 환상이 전문성의 은밀한 병기라도 되듯, 비밀이라도 있듯 대중들을 단순 관람객, 눈 호강과 문화적 기술적 첨단만 보여주면 만족하는 대상으로 치부한다.국공립 미술관과박물관의 비전이 ‘문화가 있는 삶’이라면. 그 문화가, 내 똥 향기 맡아봐라 하는 식으로 똥과 된장이 구별안되게끔 내어 놓은 것을 즐기는 삶을 의미하는가?모든 전시마다 개인 큐레이터의 이름이 있어야 전시에 대한 관람객들의 반응에 일정한 소격효과가 생길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이 확보된다. 이런 제도적 장치를 전혀 중장기 계획에 마련하지 않으면서 전문성 강화란 표현을 쓰는 것은 국공립미술관 인력들만 전문성을 강화시키고, 이들의 일에 대한 내용평가는 공개적으로 하지 않으면서, 대중들에게 이들이 만든 모든 프로젝트는 전문 문화이니 이 문화를 향수하시러 오라고 하는 꼴이다. 대중은 그냥 이들 문체부에는 행정숫자 일뿐이다. 이런 계획이 어떻게 미술관박물관의 미래비전이요 공공성이요 전문성인가? 눈가리고 아웅이다. 여전히 이들은 고답적 관료적 행정편의주의자이지 전혀 문화인, 예술인이 아니다. 문화적 마인드가 없다.

더군다나 전문성 강화를 위한다는 그 핵심전략에는 '교육'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연구출판아카이브를 강화한다는 것으로 되어있지 그리고 학예실 연구능력과 이들의 역량강화를 위한다고 되어있지, 박물관미술관에서의 대중들에 대한 교육비전과 교육정책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완전히 본말이 전도된 계획이다. 목적이 수단이 되어있고, 수단 즉 전문직이 목적이 되어있다. 박물관미술관을 전문화하는 목적이 전문직 양성에 있지 시민교육의 박물관적 전문화를 위해서가 아니다.미술관박물관에서의 교육은 그냥 도슨트가 하거나 몇몇 교육담당 실과장급 빼놓고는 나머지는 일일강사나 아르바이트로 채우곤 하는데, 정말 얼빠진 정책이다. 사악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문화정책에 타자들을 위한, 공공을 위한 혼이 없다. 자기들만 챙겼다.박물관과 미술관의 교육적 기능이 사실 박물관과미술관 기능의 시작이자 끝인데, 교육은 단기강사나 아르바이트생이 하는 부차적 일로 여긴다. 이 부분이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계획에도 핵심적인, 가장 코메디이자 문제적 이다.박물관과 미술관은 미술교육과 문화교육 전반에 걸쳐 매우 다양하고도 충실한 연구, 조사, 창조,체험공간으로 존재해야하는게 박물관미술관의 존립목적이자 기능인데, 기존의 모든 박물관 미술관들이 만들어낸 의미있는 모범적 미술교육 텍스트나 문화교육 관련, 잘 만들어서 고전적인 문서나 책자, 프로그램 하나가 여태까지 제대로 없다. 미술관박물관에서의 교육이 너무 일회적 단발마적이다. 사실 국공립미술관박물관에서는 기존 미술교과서가 하지 못하는 혹은 미술사가 하지 못하는,역량이 여러가지 의미로 결핍되어서거나 등등의 이유로, 미술독본, 미술사독본의 다양한 형태개발이 가능하다. 어린이 미술교육독본이든 성인미술교육독본이든. 그런데 지난 세월 박물관미술관에서의 교육은 일회용 찌라시...당연히 그래서 이들의 노동에 대한 댓가도 형편없디. 그럼에도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강사한번 해보면 경력이 되기에 이거라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그리고 내가 한때 일했던 미술관에서는 교육담당자들은 자신들이 한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한국에서도 거의 잘 안알려진 작가들에 대해 교육을 미술관에서 하게 되면 인터넷에서 자료들을 찾아 발췌편집해서 자료를 만들거나 정 없으면 외국 작가에게 학예실 관계자가 요청해 자료를 만들었다. 학예실 직원들도 상황은 비슷, 그 유명한 세계적 외국작가들이 오면, 그 작가는 주로 관장과 거의 대화를 나누고 돌아갈 뿐이다. 그때도 나는 실장으로 주장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작가들이 한국에 오면 이들과 가장 많은 인터뷰를 하며 이들과 얘기해야 하는 사람들은 관장이 아니라 담당 큐레이터와 그리고 그 이상으로 교육담당자여야 한다고. 교육담당자들이 가장 추상적으로 자료에 접근해서 교육자료를 만들고 그 자료도 학예실에서 넘겨줘야 간신히 만들고… 단기알바로 교육자료를 만들고 그 교육자료는 정해진 도슨트자료 아니면 업데이트되거나 계승되어 축적이 안된다. 모든게 일회적 우연적.. 그리고 그때마다의 교육텍스트들에 대한 종합적 평가체계도 한번도 있어 본적이 없는 걸로 안다.. )

정리하면, 학예인력에 대한 전문적 평가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물론 내부 평가야 있겠지만 인력관리 차원에서 하는 평가라 이런 평가는 할수록 학예직들을 노예로 만드는 평가다. 외부평가제도가 도입되어 있긴 하지만, 큐레이터들 눈치보며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미술관박물관 뿐만 아니라 문체부에서 하는 모든 일에 대한 내용적 평가제도가 필요하다. 아직 이 평가제도는 전혀 세팅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평가제도를 만드는거야 말로 중장기 계획에서 힘들여서 해야 그 전문성 공공성 강화비전을 믿을 수 있다. 안그러면 전문성 공공성 강화를 위해 한다는 일 모두는 문체부를 위한 거대 조직을 만들고 문체부에 편하도록 구조를 돌리겠다는 문체부의 강력한 의지표명으로 볼 수 밖에 없다.3)박물관미술관의 지속가능한 운영기반과 협력을 통한 시너지 제고 항목은 사실상 문체부 뿐만 아니라 행정부 전체가 이런 계획서를 만들때 거의 반드시 공유하는 정책방향이다. 즉 매우 공무원스럽다. 그리고 이 전략 및 핵심과제는 어제 오늘 있었던게 아니다. 공무원으로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같은 정책을 내세워도 진정 중장기 비전을 찾고자 했다면, 사실상, 위의 공공성 강화와 전문성 강화를, 내용적으로 실질적인 공공성 강화와 전문성 강화로만 틀어도, 충분히 지속가능한 운영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운영기반을 이런 수박 겉핧기식의 이전에 해왔던 것과 거의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추진하기에, 현재의 미술관박물관들의 모든 문제점들이 생겨난 것이다.그리고 대중은 미술관박물관 건물과 시스템의 화려함에 취해 문화권력에 대한, 문화계로 진입해서 출세하고 싶은 욕망만 더 커지고 이런 곳들에서 전시하고 있는 새로운 감각과 개념들의, 디자인보다 더 디자인스럽고, 청담동이나 백화점 보다 더 트렌디하고 화려한 연출기법에 영혼을 뺏기면서 인생의 자율적 결정권을 상실해간다. 관람객 자신의 전문적 고유한 감성 조차도 상투화되기 시작한다.다행히 그간 발굴되는 새로운 내용들도 있었다. 그 만큼 아카이빙의 과학적 전문성과 발굴의 전문성은 그간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발굴된 것들의 이념적 내용에 상관없이, 어차피 촛불혁명 정권이므로, 요즘은 과감히 공개하기도 하고, 기존 학계 권력 눈치들도 덜 보게됐는지, 관장들이 일정하게 기존 학계권력들과 상관없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좀 더 전문적 공공적으로 보이고 있긴 하다. 이전에 비해서.즉 그간 점점 더 새로워 보이고 일정하게 개선된 점들이 눈에 띄고는 있지만, 결국 문체부 손바닥 안에서 놀아야 이 모든 개선이든 나발이든 가능하다. 무엇이 공공성이고 무엇이 전문성인가 묻고 싶다. 전문성은 특히 문화예술에서의 전문성과 공공성은 자유로운 사고와 독창성을 보장해야 된다. 그렇지 않은데 전문성이란 기술관료주의적 전문성이고, 공공성이란 공중으로서의 박물관 관람 예의가 몸에 배게 하는 일 이상의 것이 아니다.이 계획서에는 지난 수십년간 변하지 않은 문체부와 교육부 등 행정부의 대 국민 서비스, 교육, 문화정책 발상태도와 방향이 거의 동일하게 어른거리고 있다. 새로운 비전이라 해봤자 결국 (문화,교육, 행정등)기술관료의 전문화를 위한 선진화된 제도적 세팅을 하겠다는 발상이다.그리고 그 발상이 추구하는 비전은 민주화 정부가 들어섰건 아니건 상관없이 동일하다. 문화향수권이나 교육받을 기회 증대라거나 관리시스템 전문화기술화 등인데 결국 기반시설 위상강화요 위상이 강화된 기반시설들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전문 엘리트 그룹을 계속 끌어들이면서 시민들에게 문화로 풍요롭다는 느낌을 갖게하고 그러면서 지속가능한 평온한 사회를 도모한다는 발상이자 세계 어느 지역에서 보다도 빨리 첨단산업의 트렌드를 문화행정기술에 매개하는 능력을 중요시하는 발상이다. 교육과 문화가 항상 첨단산업발전을 이끄는, 산업에 목을 맨 노예의 마차일 뿐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 즉 모든 문화행정, 교육행정이 반문화적 반교육적으로 드러나는 이유이다. 이들 공무원들이 반문화적반교육적이라는 것은 이런 문제를 전혀 못느끼기 때문이다.이런 사고방식이 그간 보이지 않게 정권마다 약간씩 다른 형용어로, 하지만 동일한 목적과 방식으로 교육부 문체부 등의 모든 결정에 관철되어 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도 지난 어느 시절 몇몇 소수 전문가들에 의해 세팅된 근현대화 패러다임의 핵심들이 아직도 전혀 흔들리지 않은채 그간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도, 지금까지 그 알맹이가 온존해 왔던 것 같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문화부장관 교육부 장관이 바뀌어도, 그들의 재임기간이 짧고 이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기에는 너무 벅차고, 핵심적으로는 거의 문제의 본질을 감을 못잡아서일 것이다. 아마도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시점 이후 대대로 이 패러다임은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으로 가던 그 시기 문체부에, 미술관과 박물관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제대로 모르는 것이다.이 패러다임이 온존하는데 블랙리스트문제가 해결될 리 없고, 그야말로 새로운 교육시스템이 들어설 수 있을 리가 없고, 새로운 통일시대의 비전들이 나올 수 없다. 이 패러다임을 전적으로 근본적으로 바꿔낼 수 있어야 새로운 비전이고 계획안이다. 아니면 여전히 우리는 새마을운동을 하고 있고, 식민지 총독부의 보이지 않는 그늘 하에 숨소리를 죽여가며 관료들의 전횡에 아부하거나 그들에 비판적인 불온한 시민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전문기술관료들의 전문화를 더 강화하면서 시민들의 자기결정권을 우아하게 막아버리는 정책이 이 계획안의 비전이다. 하지만 미술관박물관이 중요한 것은, 미래비전은, 일반시민들이 온갖 사물과 사물의 역사, 사건의 역사에 대해 알되, 일방적으로 미술관등에서 하는 도슨트 교육에 의해 아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박물관을 통해 이런 역사들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 접근할 수 있도록, 스스로 사회적 역사적 현상들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줄 알고 그래서 판단능력 비판능력이 생기면 타자들에 대한 공감능력도 향상될 수 있도록 하는, 관람객 중심의, 시민체험 중심의 미술관박물관 정책이 되는 것이 핵심이어야 한다. 관람객이 이곳에서 배우고 느끼는 방식상의 교육적 전문화의 질을 높이는 공공성전문화 방향이 비전이 되어야 맞다.우리 교육과 문화 행정전반에 깊숙이 그 맹아처럼 보존되고 있는, 구태의연한 100년 묵은 구렁이 조용히 담넘어가듯 하는, 패러다임에 대한 전면적 분석과 해체작업이 절대로 필요하다.

https://blog.naver.com/happyvirus66/221570086452박물관·미술관 진흥 중장기계획(2019~2023) 발표

전국 박물관·미술관 ‘더 알차게, 더 가깝게’ - 박물관·미술관 진흥 중장기계획(2019~2023) 발표 -◆ 박물...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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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박물관 미술관 진흥 중장기 계획'의 구태의연한 패러다임 file

  • 쾌활림
  • 2019-07-02
  • 조회 수 85

지금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문체부의 <박물관미술관 진흥 중장기계획>이 진짜 문체부가 세운 확정된 계획이 맞는지 궁금하다. 이 계획서는 현재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안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가 그대로 반영된 계획서이다. 그런데 이 계획서와 함께 미술관 박물관을 한 참 더 짓는다는 뉴스도 나온다. 결국 이 계획서에 근거해 짓겠다는다는 것인데, 중장기 계획에 새로운 비전이 안들어가 있다. 좌우지간 문체부 확정 계획안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이 계확안만 있는 그대로 보면,이 계획은 사실상 지난 20여년간 해왔던 교육부...

미술평론가 성완경 선생님과의 인터뷰 file

  • 쾌활림
  • 2018-06-22
  • 조회 수 385

미술평론가 성완경 선생님과의 지극히 사적인 인터뷰 강성원 (인터뷰는 민미협 30주년 기념 <인터뷰 집>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여차 저차한 이유로 못 실렸음. 이 글은 원래의 인터뷰 글에서 <인터뷰 집> 취지 관련 인터뷰 도입부는 삭제됐음. 그밖에 인터뷰 중간 중간에서도 <인터뷰 집> 관련 내용은 삭제됐음. sns에 올리는 일은 성완경 선생님의 허락 하에. 인터뷰 내용 중 성완경 선생님이 쓰신 글 내용에 대해 질문할 때 성완경 선생님이 쓰신 글 문장을 축약하거나 풀어쓴 경우도 있지만, 선생님이 쓰신 문장 그대로 드러내면서 질문...

<근현대 시각이미지와 여성>

  • 쾌활림
  • 2018-06-22
  • 조회 수 79

미술로 표현된 근현대 여성의 모습은 과연 ’여성‘을 담고 있는가, 여성주의자 혹은 여성주의 미술가들이 그린 여성성은 과연 여성주의를 실현하는가, 여성미술은 어느 정도로 여성해방적 미술을 성취하고 있는가 등등에 대한 간략한 질문형식의 문제제기를 해보자. 역사적 사회적 흐름과 더불어 변하는 여성이미지들에 과연 여성성의 달라진 의미들이 반영되어 있다면 여성미술은 시대마다 얼마나 이런 여성성의 문제자체를 인지, 인식해 담아내는가? 여성작가들의 작가활동상에서의 모습은 얼마나 자신이 옹호하는 여성성과 일치하는가 하...

내 마음의 수선전도(修善全圖)

  • 쾌활림
  • 2018-06-22
  • 조회 수 75

   내 마음에도 ‘수선전도’가 존재한다. 내 마음이 느끼는 서울의 전체상인데 내가 느낀 서울의 심경상(像), 그 바닥이자 하늘이다. 원래 ‘수선전도’라는 말은 중국에서 유래됐다.  한 나라의 ‘수도(首都)’의 의미는 으뜸가는 선(善)을 건설하는 일 곧 수선(修善)의 시작점을 의미한다는 뜻에서 유래된   명칭이라고 한다. 수선전도에는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기관들이 국심(國心)의 세력중심으로 재현돼있다. 오늘날의 광화문 부근 영역이 정부청사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미국대사관등이 들어서 있으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상징하듯...

_‘퍼블릭 아트’는 동어반복적 개념어이다.

  • 쾌활림
  • 2018-06-22
  • 조회 수 80

<광장의 예술과 퍼블릭(Public Art) 아트 개념> 1 광장   광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은 광장에서 함께했던 낯선 사람들과의 뜨거운 연대감이다. 광장에 서면 일상 속 불만과 갈등이 내일을 위한 희망으로 바뀌어져 간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 느낌의 순간에 내 옆 어느 낯선 사람도 내 마음에 동참해주고 있다는 벅찬 뜨거움이 올라온다. 굳이 촛불집회같은 광장에서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어디인가 누구나가 갈 수 있고 자유롭게 주변을 누리고 공중의 특별한 간섭없이 내 자신으로서 있을 수 있는 ...

깊이의 허영 리얼리즘 변종현실 file

  • 쾌활림
  • 2017-09-17
  • 조회 수 162

1 변종현실   제1의 리얼리티가 있다. 제1의 리얼리티는 제1의 리얼리티를 숙주로 한 기생 리얼리티와 그 변종을 무한증식한다. 리얼리티가 무한증식하는 줄기는 의식상에서의 범주에서이다. 그리고 숙주리얼리티 변종들 바이러스는 의식 내부로 파고든다는 항상성을 지녀서 겉으로는 가시화되지 않는다. 의식 내부로 파고든다는 것은 제1의 리얼리티가 개인이 해체, 파괴할 수 없는 구조로서의 ‘현실 겉면’이기에, 철의 장막이기에 무한증식하는 숙주 리얼리티는 의식 바탕 저 아래 깊이로 밖에는 변종을 생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장치.부담.감각의 논리 file

  • 쾌활림
  • 2017-04-01
  • 조회 수 378

월간미술 4월호 연재 글(그간 반년 가량 개인사정으로 중단 했다가 다시 시작)   <장치·부담·감각의 논리>   1. 맥 컴퓨터와 윈도우 컴퓨터를 사용해 작업한 텍스트나 이미지들은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호환을 위해서는 다른 장치를 연결해야 한다. 호환의 필요를 위해 고안된 특별한 수단은 결국 상품으로 구입해야 한다. 구글 시트(Google Sheets)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Microsoft Word)나 한글 워드로 쓴 텍스트도 마찬가지이다. 호환이 안 되면 텍스트를 복사해서 옮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게다가 이 작업들을 메일로 전송하고자 ...

공론, 비평으로서의 예술, 감정의 공론

  • 쾌활림
  • 2016-08-28
  • 조회 수 92

공론, 비평으로서의 예술, 감정의 공론 (월간미술 연재13) 1 이 세상에 실제하는 공론의 양대 축, 공론이 그 안으로부터 생성되는 원천은 제도와 인간이다. 세상의 저간에 떠도는 갖가지 공론들은 인간 개개인에게서, 그들 모두 간의 삶의 느낌에서 나온다. 이런 가지가지 개인감정과 이해(理解)의 시선들이 실제로 모아져 일정하게 객관화된 것이, 결국 인간의 사회생활의 ‘필요’에 따라’ 정착된 것이 ‘제도’이다. 제도는 제도의 정신으로, 관련된 법으로 움직여진다. 제도는 본질상 인간의 행위가 일으키는 모든 사건들에 대한 예측시스...

민중미술의 미학 file

  • 쾌활림
  • 2016-05-30
  • 조회 수 477

민중미술의 미학   1 미술가가 자신이 직접 본 광경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동, 서양 모두 근대사회가 시작되면서였다. 미술가는 이즈음부터 자신이 본 생활상의 장면에 자신의 감정과 세계에 대한 관심을 듬뿍 담아 일정한 틀 속의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보다 더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 밑바닥 인생들이다. 사실상 일반적인 사회경관 대부분의 광경들은 작가 주변의 일상생활 아니면, 사회 밑바닥 층의 헐벗고 남루하고 그럴 수 없이 가난한 삶이다. 이런 광경을 보면 자연스레 인생에 회의가 들고 인생의 고통 전반에 생각이 ...

악덕,공공성, 제도의 영혼 file

  • 쾌활림
  • 2016-05-28
  • 조회 수 187

악덕, 공공성, 제도의 영혼   1 인류에게 언어가 생긴 이래 악행(惡行)이나 악덕(惡德)을 묘사하는 숱한 어휘들도 생겨났다. ‘흉악하다’, ‘수전노 같다’, ‘냉혈한이다’ 같은 표현들과 ‘악덕 군주’, ‘악덕 자본가’, ‘악덕 계모’, ‘모리배’, ‘간신’ 등등 그야말로 각양각색, 천차만별의 ‘악덕’에 얽힌 이야기들이 인간언어의 중심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덕한 행위들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보편적이고도 특별한, 악덕에 관련된 형용어들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이야기를 목숨을 걸고라도 간절히 기...

메타포, 정원, 공공영역 file

  • 쾌활림
  • 2016-01-29
  • 조회 수 194

메타포. 정원(庭園). 공공영역   1   우주의 역사, 자연의 역사는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자연의 역사는 뇌의 생리 속으로 자신의 역사, 그 시간 속 공간 속 축적된 의미들을 전달한다. ‘자연’이라는 개념으로 압축된 생활의 고통의 역사는 예민한 신경의 공감적 능력에 자신의 고통을 풀어낸다. 자연이 삼킨 모든 생명체들의 죽음과 개체가 행한 생의 무리수, 공포와 착종된 비전을 그려낸다. 그래서 자연이 종국에서 드러내는 생활상의 과거, 산화(散華)된 경험의 소리와 냄새, 빛과 감각의 모든 스펙트럼을 얼마...

자연의 우울_사실성의 우울 file

  • 쾌활림
  • 2015-12-25
  • 조회 수 460

1 자연이 합법칙적이라는 관념은 근대화된 관내(管內) 학문, 곧 근대과학의 산물이다. 근대적 학문범주에서‘자연’으로 범주화된 세계는 과학적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우주의 일부분으로서의 세계이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자연’도 분명 존재한다. 곧 인간의 ‘생활세계’로 근대과학의 탐구 대상인 자연세계를 자원으로해‘인류 발전’이라는 합목적성을 추구하는 인류생활로서의 세계이다. 사실상 개인이 몸담고 있는, 개인에 관여되어 있는‘자연세계’는‘자연’으로서의‘생활세계’이다. 과학 연구가 대상으로 하고 있는 자연세계는 추상적인 ...

전통_효과의 사다리, 무의미의 의미 file

  • 쾌활림
  • 2015-09-27
  • 조회 수 1464

1.   아프리카 해안가 어디에선가 부터 해협을 건너고, 지구 표면을 따라 방랑하기 시작한 인류의 족적, 이 발자취를 인류사의 시작이라고 말해도 좋지만, 전통이라고도 명명할 수 있다. 지구 위를 방랑하다가 삶의 터전을 세우고 발 길 닿는데까지 영토화한 일도 흔히 역사라고 불려지지만 ‘전통’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전통을 세운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어딘가로부터 한반도로 흘러 들어와 석기, 철기 시대를 열고, 삼한과 백제, 신라, 고구려를 세운 일도 역사이고, 당시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세운 생활의 전...

자기만의 세계상 file

  • 쾌활림
  • 2015-07-29
  • 조회 수 1267

자기만의 세계상 _  새로운 체험의 초현실 1. 누구나 한번 쯤은 살면서 권태롭기까지 했던, 아귀다툼 같았던 일상이 지상의 행복이구나 하며 느낄 때가 있다. 누구나의 일상이 같은 정도로 만족스럽지는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살아갈 힘이 반복되는 생활리듬에서 나왔던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별별 이유와 고통으로 상처받은 마음이 삶을 지속할 수 있을 만큼은 무너지지 않고 벼터내는 것은 나날의 생계(生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이 목격하고 체험한, 피해 입은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고 싶은, 세상...

제대로 사는 삶의 문제 file [2]

  • 쾌활림
  • 2015-07-03
  • 조회 수 501

1 인류는 ‘무엇이 제대로 사는 것인가’하는 아주 오랜 물음, 문명이라는 이름의 물음에 이끌려 살아왔다. 인간의 문명 특히 서구문명은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고민할 까닭이 없는, 이런 물음을 갖지 않는 인간을 인간다운 생명으로 여기지 않아왔다. 제대로 사는 것이, 궁극에서 보면 사회의 공적 영역, 그 부산함에, 시끌벅적한 부(富)와 부를 창출하는 기술과 노동, 사업과 인간관계, 인정과 평가의 사회생활에 크든 작든 자신의 능력으로 끼어들어 살 수 있는 삶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살 수 있는 기회를 갈구하는 것이...

예술과 생활2 file

  • 쾌활림
  • 2015-05-28
  • 조회 수 415

김성룡천일야화 프로젝트   1. 역사는 거창한 비전과 계획이 이룬 삶이 아니다. 민족이나 국가, 사회의 특정 계층이나 구성원들 일부가 대량살상으로 인해 혹여 절멸 된다고 해도, 나머지 개인들이 비참한 생활로나마 생존할 수 있다면, 역사는 생존자들의 핍진한 이해관계의 긴장으로 무장돼 미래만 바라보며 나가게 된다. 굶주림과 학대가, 살상과 모반이 실제로 행해지지 않았던 것처럼 일상은 새벽위로 떠올라 밤사이로 지나가기를 반복한다. 일상에서 몇몇 극소수 개인들은 다른 공동체와의 전쟁도 기획하고 생의 미화도 만끽하면서 ...

미학이란 무엇인가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640

 1 일반적으로 '미학'이란 단어를 들으면 누구나 조금은 그 뜻을 막연해한다. 그래도 '미에 대한 학문'이니까 예술에 관한 전문지식체계를 다루거나 미용 등 구체적인 생활분야에서 무언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과 관련될 때 미학을 언급한다는 정도는 알 수 가 있다. 사실 이런 차원에서의 미학 이해는 틀리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미학'은 얼핏 대하기 만만치 않은 아우라와 수수께끼로 가득 차 보인다. 통념이 과연 맞는 것인가 반신반의 하게 된다. 한편 미학에 대한 통념이 미학에서 실제 다루는 내용과 크게 다...

사회시스템과 미술2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249

1 개인이 자기자신에 대해 모르는 정도는 타인에 대해 모르는 그만큼 더 커진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가 다른 사회를 모르는 정도가 클수록 한 사회가 지닌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도 불일치가 커진다. 세계화로 전지구가 하나로 연결돼 마치 전지구의 모든 삶의 문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구대륙과 신대륙 사이, 지구의 남반부와 북반부, 한국과 중국, 일본이 이 정도로 나마 서로 인지하고 알고 지낸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을뿐더러, 또 안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서로 간에 모르는 부분은 너무 많고, 모든 사람이 다 똑같...

인문학의 정치,미술의 정치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2416

이인철/스포츠 공화국의 상과 하  1 순수예술과 참여예술 논쟁이 있다. 예술이 정치의 수단이 되는 것을 거부하거나 말하자면 예술을 매개로 사회적 발언을 해야한다는 신념을 지닌 예술가들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간 참여예술을 주장하는 작가는 보통 좌파진영에 속한 작가라고 추정, 분류되면서 80년대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서 보듯 전시 작품들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다. 순수냐 참여냐의 예술적 선택에서 예술을 통한 현실참여를 예술적 태도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불온시하면서‘정치적 미술’로 문제시 한 것이다. 실제 정...

사회시스템과 미술1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167

서용선<단종복위모의>   최경태 <겨울 아침 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1. 사람은 자신의 생명의 활로를 얻기 위해 움직인다. ‘생활’(生活)에 나서야 나날의 일상과 자신의 생애가 보장되고 생명의 잠재적 가능성이 열린다. 하지만 태어나자 마자 생활에 나서지는 못한다. 성년이 되기까지는 경험해야한다. 경험을 위해 배워야한다. 초기 인류라면 생활을 위해 무작정 걸으면서 보고 듣고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역사 시대 접어들면서는 생활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배워야했다.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 체계(시스템)으로 작동한다. 그가 경험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