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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관습, 인식의 재구성을 위하여.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했으며 예술과 정치 사이를 오가며 글을 씁니다. 주로 여성과 성소수자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남성 페미니스트

조회 수 2838 추천 수 0 2016.01.13 02:30:36


 정희진, ‘남성 페미니스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18409.html

 

뒷북. 진작에 읽었으나 도무지 쓸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공감과 비판적 의견이 교차하는 글이라 내 의견을 적어보고 싶었다. 일단 이 글이  “나와 지인들의 경험을 종합해” 두 가지 유형의 남성 페미니스트를 정리했기에 나도 그 기준에 맞춰 ‘나와 지인들의 경험을 종합해’도 상관없을 것이다.(각자 자신과 제 주변의 경험을 종합해 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이 글에서는 두 가지 유형으로 “일상에서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이들과 “자신을 “남성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경우를 든다. 이 글의 주요 비판대상은 후자인 ‘남성 페미니스트’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천과 선언 중에서 ‘선언’에 방점이 찍힌 남성들이다. 원론적으로 따지자면 실천하는 남성 페미니스트와 선언하는 남성 페미니스트의 구별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는 면이 있으나, 현실적으로 그 구별 방식에는 회의적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 열거한 남성들의 특징이 딱히 페미니스트 남성의 유형인지는 의문이다.

“결혼 제도가 국가의 복지 정책을 대신하고 있다며 비혼을 고수하는 남성”을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예로 들기에는 걸리는 게 너무 많다. 비혼을 고수하는 남성이 똑같이 비혼을 고수하는 여성’만’ 만나지는 않는다.  비혼을 고수하는 남성과 연애하다가 여성이 결혼을 원하는 경우, 이 여성에게 남성의 ‘비혼주의’는 어떤 작용을 할까. 감정 착취, 희망 고문… 등등. 여성주의 실천과 무관하게, 예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많은 여성들과 내 인생 즐기며’ 지내고 싶어 비혼을 고수하는 이들도 있다. 이 글에서 비판하는 “상대방의 자원(돈, 지식, 섹스, 보살핌…)을 착취”하고 “분업(‘양다리’)을 하는 남성”이면서 비혼을 ‘실천’하는 남성의 경우는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 (양다리만 하나? 문어다리, 오징어 다리로 상대의 동의 없는 멀티연애(속이기)를 ‘자유’라고 주장하기도 하지)

“ ‘작은’ 실천이지만 집에서 앉아서 소변을 보는 남성”들도 가까이에서 알고 있지만 그들은 스스로 ‘여성주의적 실천’과 무관한 ‘나의 위생’을 위한 선택이라고 한다. 나랑 같이 사는 남자도 앉아서 소변 보는 남성이다. 그는 페미니스트를 지향하지만 정작 이 ‘앉아서 소변 보는’ 습관을 두고 여성주의적 실천이라 여기지는 않는다. 변기와 욕실을 깨끗이 쓰고 싶을 뿐이다. 내가 아는 또 다른 남성도 직접 청소를 하고 살다 보면 앉아서 소변을 볼 ‘필요’를 느낀다고 했다. 다만 ‘서서’ 소변을 보지 않으면 마치 남자의 자존심이라도 구겨지는 듯 생각하는 사람을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비판할 수는 있겠다.

이제 이 글에서 비판하는 “‘불성실한 루저’인 자신을 남성 페미니스트로 포장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 공감한다. “‘빈대’를 연대라고 주장하면서, 가부장제 연애 시장의 ‘틈새’를 파고든다.” 내 안에서 말이 뱅뱅 돌면서 잘 정리하지 못한 언어가 이렇게 정리되어 있다. (15년 전에 내 돈 100만원 ‘빌려간(갚지 않은)’ 인간에게 정확히 해당되는 말) 

하지만 이런 인간들이 딱히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의하는 남자들에게서 벌어지는 일일까.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남자를 현실에서 뼈와 살이 있는 생명체로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페미니스트’까지 갈 필요도 없다. 이들은 소위 ‘자유로운 영혼’이다. ‘자유로운 영혼’들이 여성에게 벌이는 착취는 ‘성실하고 전통적인’ 남성들을 능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 자유로운 영혼들은 관계에 대한 무책임과 불성실함을 ‘자유’로 포장하는데 선수들이다. 여성의 지성을 ‘칭찬’할 줄도 알며 교양 있게 예술을 즐기고 정치적으로 약간의 진보적 위치를 가지면서 정치와 문화에서 꽤 ‘트인’ 사람 노릇을 한다. ‘너무’ 자유로워서 여성의 계급 투쟁에는 관심 없지만 ‘성해방’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데 이들의 성해방의 개념은 ‘나와 자유롭게 섹스하기’에서 머물곤 한다. 성매매와 성관계도 구별하지 ‘않고’,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자유롭게’ 하려 하며, 성적 대상화를 종종 ‘여성의 성해방’으로 둔갑시킨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하지는 않지만 페미니스트라는 여성과 연애 한 번 해보고 싶어한다. 대외적으로는 자신의 진보적 의식을 과시하기에 좋고 자기 내부에서는 페미니스트를 휘어잡았다는 정복감을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도 ‘앉아서 소변 보는’ 남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작은’ 실천을 하는 남자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며 빈대 붙는 남자와의 구별은 애초에 별 의미가 없다. 군대도 다녀 오고 서서 소변을 보는 기혼 남성이지만 열심히 가사와 육아에 참여하는 남성도 있고, 비혼을 주장하며 가부장제에 편입되지 않으려 하지만 여자를 팰 수도 있다.

지난 해 11월 미국의 유명한 포르노 배우 제임스 딘(James ‘Deen’)의 전 여자친구가 트위터를 통해 딘이 자신을 성폭행했다는 ‘폭로’를 했다. 평소에 제임스 딘이 ‘페미니스트’라는 이미지를 얻은 적이 있기 때문에 미국 사회에서 ‘남성 페미니스트’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남자는 절대 믿지 말라”는 말이 sns에서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딘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정확히 말하지는 않았고 페미니스트처럼 들리는 발언을 2015년 8월 ‘엘르’와의 인터뷰에서 한 적이 있다. 여성의 성욕에 대한 존중과 모든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존중받길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제임스 딘과 같은 사례를 ‘남성 페미니스트’의 문제로 굳이 간주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이들이 이러한 사례를 악용한다. 강간범 중에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남자와 아닌 남자의 비율을 따져볼 필요까지 있을까. 성폭력은 보수나 진보, 계층과 연령을 떠나 전방위적으로 벌어진다.

하여튼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되기 참 ‘쉽다’. 여성은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저 멀리 파키스탄에서 목숨까지 걸었던 여성을 끌어와 훈계하려 드는 남성들에게 시달리지만 남성은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기본 도리만 지켜도 여성들이 페미니스트로 여겨준다.

단, 남성 페미니스트의 모순을 비판하되 주의할 점이 있다. ‘남성 페미니스트’의 모순이 보수적인 남성성을 유지하며 마초가 ‘아닌 척’도 안 하는 이들을 합리화시키지는 않는다. 자신의 성차별적 의식을 감추려고 하는 ‘위선조차’ 없는 사람이 남성 페미니스트의 모순을 비웃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아주 드물지만, 훌륭하게 실천하는 남성 페미니스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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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Deen



댓글 '7'

소년의노래

2016.01.13 22:12:44

최근 이와 관련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마침 반갑네요. 

사실 페미니즘도 수많은 학문 중에 하나일 뿐인데 굳이 이 학문의 가치를 지향한다는 데에 거부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는 생각도 들고 되레 그런 주저함이 '페미니즘마저 타자화'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또한 그 학문의 가치를 지향하지만 모순적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건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거든요. 대표적인 게 '나는 사회주의자를 지지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하면서 정작 현실은 자본주의의 삶의 법칙에 조금도 위배되지 않는다던가 하는...그런데도 겉으로는 사회주의자이기를 주저하거나 하지는 않거든요. 오히려 그런 모순을 당당하게 고백하기도 하고요.

하기사 다른 학문의 경우 내가 그 가치를 지지한다고 표했을 때 거의 대부분 내가 처해 있는 곳이 '피해자'인데 반해, 남성으로서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했을 때 처하게 되는 곳은 '가해자'거든요. 그런 부분이 아마 쉽게 '나는 남성페미니스트다.'를 선언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는 점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요. 그래서 전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선언하는 않지만(근데 이건 여성들도 마찬가지)일상에서 반페미니즘의 언어들을 마주칠 때마다 제가 배운 페미니즘의 언어로 꼬박꼬박 말대꾸는 하는 정도로 실천(?)하고 있기는 합니다.

근데 한편으로는 이런 것도 있어요. '여성들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깨어 있는 인간인지를 어필하는 남성들'의 모순과 더불어 '겸손하게 여성주의의 가치를 지지하는 남성'으로 스스로를 위치시키며 살아가는 남성이 자신의 그러한 모습에 여성들이 어떤 식으로든 반응해주지 않는 것에 끝내 실망감을 느끼는 유아기적인 욕망을 가지는 모순. 저도 그렇거든요. 만약 어떤 여성 페미니스트가 저와 대화하던 도중 '당신도 다른 남자들과 크게 다를 건 없군요.'라고 말한다면 되게 서운할 것 같거든요. '아니! 내가 이렇게까지 묵묵히 페미니즘의 가치를 지지하고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 칭찬하지는 못할망정 뭐가 어쩌고 어째?' 이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릴지도요. 뭐 그렇다고 '반페미니즘'이니 '하는 꼬라지'니 이런 드립은 절대 안 하겠지만...

왜 그런가?를 고민해봤어요. '왜 나는 여성 페미니스트들에게 어떤 기대를 요구하고 실망을 거듭하는 유아기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는가?'

얼마 전에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어떤 여학생들이 제 등 뒤에서 '야 저 사람 키 진짜 크다. 앞에 가서 얼굴 좀 봐봐'라며 제 앞으로 와서 제 얼굴을 확인하고는 '아이 씨'라며 실망했다는 투로 이야기를 하더군요. 처음으로 '여성'에게 '성적으로 대상화'를 당한 경험을 했는데 아마 여성들에게는 그것이 일상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 순간에는 살짝 수치스러웠지만 그게 다더군요. 아주 솔직히, 눈꼽만큼의 마음의 상처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 여학생들이 제 얼굴을 확인하고 '아이 씨'라고 하는 순간 제가 살짝 눈을 흘겼거든요. 그러자 여학생 3명이 살짝 겁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뻘쭘해하더군요. 그렇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갈 길을 가는데 왠지 모르게 뿌듯한 거에요. '난 역시 착한 남성이야. 이렇게 여성들의 무례에도 아무렇지 않게 반응할 줄 알다니.' 아마 저에게는 '나에게는 저 여학생들을 위협하고 복수할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그 힘을 행사하지 않고 참아내고 인내했다는 데서 오는 윤리적 우월감'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권력의 우위를 점한 자가 약자를 향해 발현되는 그 권력성을 남용하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상대적 우월감이 자신이 당한 수치심을 끊임없이 상쇄해주는 것이죠.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거에요. 여성들이 내 삶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인식되는 하나의 존재'가 아닌 '내가 배려하고 지지해줘야 하는 연약한 존재'로만 보이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그들의 비판과 저항을 아무렇지도 않게 관음증 환자처럼 관전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거요. 실은 페미니즘과는 별다른 연관도 없으면서, 지지한다고 딱히 득이 될 게 없는데도 '나는 페미니즘의 가치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남성들이 있는 건 이와 같은 이유도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전 '메르스 갤러리'를 포함한(최근에는 흑화했지만)수많은, 다소 과격하고 때로는 지나치다 싶은 여성주의 운동을 긍정적으로 봐요. 중요한 건 '두려움'이라고 보거든요. 여성이라는 존재가, 단지 내 앞에서 마음껏 저항하고 그러면서 남성적 세계의 드넓은 품 안에 안기기를 쉴 새 없이 반복하기만 하는 존재인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내 삶을 위협할 수 있고 나의 세계를 일그러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두려움'이 있다면, 앞에서는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하면서 뒤에서는 그들의 저항을 포르노처럼 관전하는 '위선적 마초주의'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해요.

평소 하고 싶었던 말을 묵혀뒀다 풀어 놓아서 횡설수설했더라도 이해해주세요.^^

이라영

2016.01.14 00:09:18

전혀 횡설수설하지 않았고요, 오히려 오래 생각한 흔적이 보이는 글을 솔직하게 풀어놓아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두려움'에 대해서는 저도 공감하고 많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꼭 다루고 싶은 주제고요.
그래서 더 반갑게 읽었어요.
제 식대로 말하자면, '지랄'하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소년의노래

2016.01.14 02:49:02

http://blog.daum.net/jayuin666/876

'젊은 여자만을 탐닉하는 남성의 욕망'을 예리하게 짚어주신 이 글 덕분에 저는 제 욕망을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더 오버해보자면, 이 글을 읽고 난 뒤로 여성을 바라보는 저의 인식이 어느 정도 변했다고 해야할까요? '예쁜 여자 좀 좋아하면 어때? 인간의 당연한 본능인데?' 이런 나이브한 관념을 당연한 것이라 믿어왔던 저에게 '너의 그 욕망은 왜 항상 젊은 여자만을 향하느냐?'며 라영님께서 명징하게 언급해주시는 걸 보고 '아'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이런 거요. 이런 게 필요한 게 아닐까 해요. 언어와의 긴장관계. 최근 '폐경'이라는 말을 '완경'이라는 말로 바꿔야한다는 글을 읽었는데 정말로 인상적이었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것들이 보다 더 많아졌으면 해요.

이라영

2016.01.14 08:02:50

헉... 까먹고 있던 글이네요.

뮤타

2016.01.23 22:42:34

일단 기본적으로 링크한 칼럼의 필자인 정희진 선생이 말하는 '일상에서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이들'과 '(선언적)남성 페미니스트'라는 구분이 매우 모호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지금의 젠더 불평등에 개입하고, 위협하지 않는 페미니즘은 그것이 일상적 실천을 담보하더라도 껍데기에 지나지 않고, 그냥 선언에 불과하더라도 그것이 젠더 불평등에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면 그것이 더 페미니즘에 가깝다고 봅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교양으로 작동하는 페미니즘과 저항으로 작동하는 페미니즘은 전혀 별개의 것이죠. 특히 교양의 일부로 거래되는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을 그저 교양의 한 부분으로 포섭할 뿐, 젠더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죠. 이런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정희진 선생의 저 구분이 놀라울만큼 '교양으로써 페미니즘'을 타격하지 못하는, 혹은 심지어 그것을 어떻게든 우회하고 싶은 물타기 프레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데요.
그건 정선생이 '실은 안티페미니스트였다', 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사실 '교양'주의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기 때문이라는.... 사실 뭐 한쿡에서는 이마저도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교양으로 그것을 벌충한다는 건 망상이므로.... 페미니즘이 '이 구역의 미친X' 타이틀을 차지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하는 1인....아니 2인인가요?

이라영

2016.01.26 07:36:56

구분이 모호하고, 저는 글에서 언급했듯이 그러한 구별이 별로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선언하고 실천 안 하는 사람, 실천하고 선언 안 하는 사람, 실천 안 하지만 선언으로 공공의 영역에 담론을 만드는 영향을 끼치는 사람, 이걸 다 구별하기란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어서요.

껌종이

2016.08.24 18:00:12

진보주의자 혹은 페미니스트를 자처하거나 페미니즘에 대해 당사자인 여성보다 더 많이 알고있다고 자부하는 남성들이 가진 성해방의 개념을 '나와 자유롭게 섹스하기'라고 표현하신 게 참 와닿습니다. 스스로를 지식인이라 떠드는 어떤 남자가 메갈리아를 비난하면서 '진정한', '올바른' 여성주의의 실천은 여성이 지갑에 콘돔을 가지고 다니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기함한 기억이 나네요. 더군다나 그 남자가 '잘못된' 여성주의자들을 계도하시려 인용한 '콘돔소지론'은 여성의 성적 욕망을 여전히 죄악시하는 세태에 대해 비판한 권인숙 교수의 칼럼이었다는 것이 더욱 소름끼치는 일이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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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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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아내가 남편을 돕기 위해 하는 일은 어디까지 공적인 지원이고 어디까지 아내의 개인적 내조에 해당할까. 정치인을 ‘남성’으로 두고 배우자는 대부분 아내라는 이름의 여성이기 때문에 이 여성들이 남성 배우자를 지원하는 일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기는 정서가 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한 정치인의 아내가 다른 정치인 아내를 만나는 공식적인 자리를 위해 선물을 사느라 시간을 쓴다면 이는 공적으로 지원요청을 할 수 있는 문제인가 아닌가. 안철수 후보의 아내 김미경씨의 ‘갑질’ 논란을 보면서 좀 복잡...

본다는 것 : ‘더러운 잠’을 둘러싼 시선의 정치 file

  • 2017-02-23
  • 조회 수 9754

뭘 봐, 어디 눈을 똑바로 뜨고. 모두 ‘어디 감히 보느냐’를 뜻한다. 낯선 사람에게 나도 두어번 당해봤다. 어떤 사람에게 본다는 것은 위험하다. 반대로 나는 수도 없이 보여졌다. 보기만 할까. 품평도 한다. ‘시선강간’이라는 말이 있다. 성별때문에 시선을 통한 폭력을 경험하는 여성들의 상황을 표현하는 언어다. 이 표현이 정확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런 언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여성들은 시선의 침략에 수시로 맞닥뜨린다는 점을 생각하자. 표현의 정확성은 다시 고민하면 된다.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를 묘사한 이들은 ...

여성의 가장 중요한 직업 file [1]

  • 2017-01-23
  • 조회 수 85328

조지 엘가 힉스 George Elgar Hicks, <여성의 임무 : Woman’s Mission: Guide of Childhood >, 1862–3 <여성의 임무> 는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에게 일종의 지침서로 사용하기 위해 3부작으로 구성되었다. 아이를 기르는 엄마, 남자의 동반자인 아내, 노인을 돌보는 딸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캠페인의 육아 정책 홍보 비디오에는 “엄마이며, 아내이며, 사업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방카 트럼프가 목소리를 낸다. 그는 “엄마는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직업”이라고 한다. 그도 물론 아내이며 무려 아이를 셋이나 낳은 엄마이...

쳐들어오는 말들 file

  • 2017-01-02
  • 조회 수 1950

지금은 사라진 '대한민국 출산지도' 김혜수의 매력은 꺼질 줄 모르는가 싶을 정도로 여전히 신선한 모습을 과시하는 영화 <굿바이 싱글>. 김혜수가 연기한 극중 배우 고주연에게서 아주 당연하지만 사회에서는 전혀 당연하게 취급받지 못하는 말 한디가 쏟아져 나온다. 임신한 고등학생의 미술대회 입장을 가로막는 학부모들에게 고주연은 “임신시킨 남자애는 국가대표로 나갔는데 왜 임신한 여학생은 미술대회 못 나가냐!”고 소리친다. 성’관계’라고는 하지만 이 ‘관계’에 대한 책임은 주로 한쪽이 담당한다. 임신은 온전히 여자의 몫이다...

"‘동네 아줌마’보다 못한" file

  • 2016-11-02
  • 조회 수 23159

“저는 ‘제3의 성’이라고 불리는 ‘아줌마’입니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자기소개를 하던 자리였다. 또래보다 조금 나이가 있어 보이던 한 여성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스스로를 ‘아줌마’라고 했다. ‘제3의 성’이라는 그의 표현은 재치있는 유머였지만 나름 뼈가 있는 말이었다. 아줌마로 분류되는 기혼 여성의 세계에 살고 있는 그에게 ‘뒤늦게 공부하는 아줌마’라는 주변의 눈치가 꽤 있었다. (여담이지만 남의 인생에 ‘늦은 나이’라는 말 좀 함부로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여성학자 정희진의 글에서 이와 비슷...

나는 몰랐다 file

  • 2016-10-28
  • 조회 수 5965

<짜증나게 하는 신사>, The Irritating Gentleman, Berthold Woltze, 1874 벌써 십 수년 전이다. 나와 업무상 메일만 1년 가량 주고받다가 어떤 행사 자리에서 서로 얼굴을 보게 된 한 시인이 있다. 나를 만난 그날, 그 시인은 나의 선배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오랜만에 젊은 여자를 봤더니 가슴이 너무 뛰어서 집에 가는 길에 약 사먹다”고. 내가 이걸 어떻게 알까. 그 선배가 내게 직접 면전에서 전해줬기 때문이다. 히히 웃으면서, “집에 가는 길에 약 사먹었대”라고 내게 친절히 전해줬다. 많은 여성들이 일상에서 이러한 ‘징후...

혼자 못 사는 남자들 file [1]

  • 2016-07-11
  • 조회 수 6734

허균은 <성옹지소록>에서 아버지 초당 허엽의 스승인 화담 서경석의 일화를 소개한다. “아버님께서는 화담 선생에게 가장 오래 배우셨다. 일찌기 칠월에 선생의 집으로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그가 화담 농막으로 간 지 벌써 엿새째라고 했다. 곧 뒤따라 갔었는데 가을 장마로 물이 한창 넘쳐나서 건널 수가 없었다. 저녁 때 여울물이 조금 줄었으므로 겨우 건너가셨더니, 선생은 한창 거문고를 타면서 높게 읆조리고 있었다. 아버님께서 저녁밥 짓기를 청하자, 선생은 “나도 먹지 않았으니 함께 짓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머슴이 부엌...

여성 혐오, 그 개념을 붙들어야 하는 이유 file [1]

  • 2016-06-06
  • 조회 수 1377

대안교육 전문지 격월간 <민들레> 105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그게 왜 이슈가 되는가 <인천 콘크리트 바닥 속 백골 시신, '20대 여성 알몸' 추정>, 얼마 전 이 기사를 읽으며 그동안 수없이 죽어간 익명의 여성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라고 생각했다. 26년 전에 지어진 건물, 옷도 소지품도 없이 백골로 나타난 20대 여성의 시신(기사는 ‘알몸’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이 시신에 대해 밝혀진 정보가 없다. 이름도 모르는 한 여성이 건물 바닥에 백골로 묻혀있는 사건은 하나의 상징처럼 다가왔다. 여성의 죽음은 인간이 쌓...

마지막 상영 file

  • 2016-03-24
  • 조회 수 416

사진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83045 그 이름이라도 한 번 불러줘야 도리일 것 같다. ‘신영극장’. 2007년 폐관 후 2012년 다시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으로 문을 열였지만 나에게는 그냥 ‘신영극장’이다. 강릉에 있는 신영극장이 지난 2월 말에 ‘마지막 상영’을 하고 휴관을 했다고 한다. 너무 안타까운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이렇게 안타까움을 표현이라도 해야겠다. 나의 청소년기 극장 중 하나다. 극장은 신영극장, 서점은 단골서점, 강릉의 상징적인 장소였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

대통령 마음대로 file

  • 2016-03-05
  • 조회 수 30375

몇 달전 한 학생에게서 인상적인 메일을 받은 적 있다. 그는 “고통을 상상할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할 윤리적 의무”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졸업논문과 관련한 문의였으나 내가 그렇게 거대한 주제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깜냥은 못 되기에 그냥 그의 생각을 듣고 공감하는 차원으로 마무리했다. 나는 그저 그의 고민 자체가 굉장히 반가웠다. 내 고통에 대한 생각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생각은 내게 (아직) 오지 않은 고통에 대한 치열한 상상이다. 타인과 세계에 대한 상상을 확장하는 방식이다. 나와 무관한 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