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 관습, 인식의 재구성을 위하여.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했으며 예술과 정치 사이를 오가며 글을 씁니다. 주로 여성과 성소수자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1. 오래 전 프랑스에 연수를 온 공무원들을 친구 소개로 며칠간 도와준 적 있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한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난다는 생각으로 반갑게 대했으나 반나절만에 별 꼴을 다 봤다. 여러 가지 면에서 내게는 아주 이질적인 경험이었다. 이들 중 한 사람은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석굴암이 더 멋있지! 우리 석굴암이 진짜 대단한 거라고!”를 외치며 분에 찬 표정으로 씩씩거렸다. 이 '석굴암 남자'는 카페에서 내가 사과 파이를 주문하며 맛있으니 먹어보라고 권하자 “우리나라 사과보다 더 맛있어? 응, 더 맛있냐고?”라는 소리를 해댔다.
연수를 왜 왔을까 싶을 정도로 유럽 문화에 이상한 적개심을 보이던 그들이 유난히 눈이 반짝이던 순간이 있었다. 몽마르뜨로 가기 위해 피갈 역에 내려 붉은 빛이 번쩍이는 화려한 거리로 들어서자 “여기 성매매는 어때요? 합법이에요, 불법이에요?”라고 묻는다. 당시 프랑스는 개인 간의 성매매는 합법이었다. 부분적으로 합법이라고 하자 “이야~ 역시, 선진국이야~캬~”라며 탄성을 질렀다. 사과파이 앞에서도 조국과 민족에 대한 무궁한 영광을 꿋꿋이 지키던 그들은 성매수 가능성 앞에서 ‘선진국’을 부르짖었다. 몇 년 후에 성매수자를 처벌하는 법이 프랑스에 생겼다는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할까. (게다가 한국도 공식적으로 선진국이다.)
이들은 스위스와 이탈리아 등을 거쳐 프랑스에 왔다면서 가는 곳마다 현지에서 만난 여성 가이드와 ‘밀착한’ 상태로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마치 수집가처럼 모아둔 여성 가이드 사진을 보여주며 일종의 ‘현지처’라는 말까지 했다. 그러면서 나도 그들과 이런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넌지시 말했다. 튈르리 공원에서 손을 잡고 연인 분위기를 연출하자는 변태적인 장난을 걸었다. 본격적으로 그들을 경계하게 되었고, 면박을 줘서 선을 그었다. 이렇게 면박을 주는 행동이 가능했던 이유는 내가 그들에게 돈을 받고 고용된 가이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의 도움 없이는 커피 한 잔도 제대로 주문하지 못하던 그들 입장에서는 내 기분을 살필 필요가 있었다.
이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전혀 특별하지 않다. 아주 평범한 공무원이고 가정이 있으며 올망졸망 자식들도 있다. 게다가 몽마르뜨의 홍등가에서 부러운 눈빛을 보내긴 했지만 성매수를 하진 않았고, ‘현지처’ 놀이를 했을 뿐 실제로 ‘현지처’가 있는 건 아니었다. 더 인격적인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여행 와서 여자를 ‘구매’할 정도로 돈이 많지 않았을 뿐이다. 이들은 돈을 아끼느라 컵라면과 김치, 고추장을 싸들고 왔다. 그래서 박탈감을 가진다. 돈이 많은 남자들은 ‘스폰서’를 하고 ‘현지처’를 둘 수 있는데, 소시민이라 겨우 성구매를 한다거나, 성구매조차 못하는 가난한 계층이라고 여긴다. 아, 이건희는 마음 놓고 성구매를 하는데 이 소시민들은 소박한 성희롱도 못하는 세상을 한탄한다. 이렇게 가난한 남자를 억압하다니!
성매수는 돈을 뿌리고 지배자가 될 수 있는 기회이다. 남성이 계층과 상관없이 자신의 성을 통해 권력을 뿜어낼 수 있는 하나의 창구다.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성구매를 하거나, 적어도 이를 모방함으로써 남성 권력을 확인한다. 성매매를 합법화 하면 성폭력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와 별개로 이런 생각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성매수를 ‘합법적 성폭력’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자백하는 꼴이다. 성매매를 마치 남성을 위한 ‘성 복지’처럼 생각한다. 여기서 여성의 몸은 분배되는 복지 수당이다.
흔히 성판매 여성을 비난할 때 ‘쉽게 돈을 번다’라고 한다. ‘몸’만 있으면 여자는 누구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누구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곧 그만큼 성매수자의 수요가 끝도 없다는 뜻이다. 여자들이 일상다반사로 겪는 성폭력을 남자들은 상상하기 어렵고, 여자들이 아는 남자들의 성구매는 빙산의 일각이다. 성매매를 분석한 <은밀한 호황>에 따르면 한국의 성 산업의 규모는 한 해에 6조6258억 원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