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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관습, 인식의 재구성을 위하여.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했으며 예술과 정치 사이를 오가며 글을 씁니다. 주로 여성과 성소수자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마지막 상영

조회 수 193 추천 수 0 2016.03.24 23: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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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83045


그 이름이라도 한 번 불러줘야 도리일 것 같다. ‘신영극장’. 2007년 폐관 후 2012년 다시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으로 문을 열였지만 나에게는 그냥 신영극장이다. 강릉에 있는 신영극장이 지난 2월 말에 마지막 상영을 하고 휴관을 했다고 한다. 너무 안타까운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이렇게 안타까움을 표현이라도 해야겠다. 나의 청소년기 극장 중 하나다. 극장은 신영극장, 서점은 단골서점, 강릉의 상징적인 장소였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이 공간들은 그만큼 많은 이들의 기억을 품고 또 생산하는 장소였다. 지금은 모두 과거형이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동시상영 극장을 이용해 청소년이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나는 청소년기에 꽤 보러 다녔다. 반면 강릉 시내 한복판에 있어 보는 눈이 많은 신영극장에는 비교적 젊잖은영화를 보러 갔다. 지금 생각나는 영화들은 일단 <레옹>, <시티 오브 조이>, <폭풍의 언덕>, <어퓨굿맨> 등등.... (.... 적어놓고 보니 또 청소년관람불가 영화가 있네.)

어떤 극장이든 나에게는 어떤 학교보다 100배는 좋은 곳이었다. 학교에서는 이미 다 아는 세계가 반복되고 있었다면 극장에는 매번 다른 세계가 있었으니까. 학교가 지겨움이라면 극장은 기다림이었다. <퐁네프의 연인들>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강렬하고 신선한 충격은 분명히 내 몸 어딘가에 새겨져있다고 믿는다.

지금의 신영극장은 90년대 초에 (아마도 눈때문에) 극장이 무너지면서 다시 지은 건물이다. 당시에는 나름 삐까번쩍해 보이는 건물이었다. 지금과는 모습이 확연히 다른, 누런 벽으로 이어진 옛날 건물이 내 기억 속에 아직 남아있다. 신영극장은 강릉 사람들에게 만남의 장소이며 버스를 갈아타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정확히는 신영극장 앞’. 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 신영극장 앞에서 수 많은 약속이 이루어졌다.

강릉에서 가장 인간들이 북적거리는 장소이니만큼 극장 주변에는 대학생들이 붙여놓은 행사 포스터가 더덕더덕 붙어 있고 뜯어진 흔적 위해 또 새로운 무언가가 붙어있기도 했다. 어느 날 하교길에 버스를 갈아타려고 극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시선을 끄는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스치고 지나갈 담벼락 구석에 a6크기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사람의 상반신이 보였는데 상당히 분위기가 이상했다. 몸의 색깔이 푸르고 붉어서 한참을 보았고 작은 글씨로 적혀 있는 내용을 읽게 되었다. 시위 중 구타당해 사망한 대학생의 몸 일부가 찍힌 사진이 몰래붙여져있었던 것이다. 너무 충격적인 사진이었기 때문에 며칠 후 또 그 사진을 찾았는데 뜯어지고 없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생각해 보니 그 사진은 강경대 열사였다. 극장 안에서는 돈을 주고 보는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졌다면 극장의 담벼락 위에는 영화의 바깥세상 이야기가 은밀하게 새겨졌다. 극장 담벼락은 일종의 도시의 게시판 역할도 했다.

많은 장소들이 너무 빨리 옛시절이 되어 버린다. 서울에도 내가 정을 주던 극장들은 많이 사라졌다. 몇 년 전에 대학로의 하이퍼텍 나다에서 마지막 상영을 보았다. 종로의 코아아트홀은 일치감치 사라졌다. 광화문 씨네큐브는 아직 있지만 현재의 씨네큐브는 내가 가던 씨네큐브는 아니다. 카페마다 이름이 재미있어서 한때는 카페 계산대에 비치된 성냥을 모은 적이 있다. 카페라는 말보다 커피숍이 더 자연스러웠던 시절이다. 그처럼 극장도 동네마다 다른 모습으로 있었지만 이제는 거의 ‘CGV’ 혹은 롯데씨네마극장의 대명사가 되었다.

나의 문화공간들이 사라지면서 나는 어느새 옛날 옛적에 이런 곳이 있었지라고 말하는 문화적 노인처럼 느껴진다. 시적인 카페 간판이 줄어들고 프랜차이즈 간판이 늘어났듯이 우리의 문화 공간이나 소비 공간은 모두 거대한 하나의 틀에 갇혀 버렸다. 우리는 이제 각자의 고유함을 유지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예술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특별히 예술전용관이 아니었던 신영극장이 멀티플렉스에 밀려 예술전용관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고, 이제는 그마저도 어려워져서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다. 각각의 고유한 이름을 잃고 브랜드 가치만 높아지고 있다.

98년 겨울 마지막 70mm상영관이던 대한극장에서 멀티플렉스가 되기 전 마지막 상영을 한다며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상영했다. (뒤이어 <닥터 지바고>도 상영했으니 사실상 마지막은 아니었지만) 당시에 마지막 70mm’ 상영을 보면서도 아쉽긴 했지만 이젠 바뀔 때가 되었나보다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 무엇이든 변하고 사라지는 일이야 자연스럽고 계속 오래된것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거대한 하나가 수 많은 작은 것들을 없애버리고 있어 불편하다. 전반적으로 극장이 줄어들진 않았는데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관객들의 선택의 폭은 줄었다. 멀티플렉스는 이제 좌석차등제까지 도입할 정도로 제 멋대로 해도 된다. 다양성은 없고 등급만 강조되고 있다.

현재 인천의 추억극장 미림에서는 4 30일까지 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35년간 미림극장의 영사기사였던 조점용의 영사실 관련 수집품을 전시하고 있다. 폐관 위기 속에서 2013년부터 인천시의 지원을 통해 노인전용극장으로 간신히 맥을 유지해왔다. 인천시는 지난 달 미림극장과의 협약을 해지했고 이제 사회적기업으로 인가받지 못하면 영사기 전시와 함께 또 다시 마지막 상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나씩 사라진다. 그렇게 추억도 지배당하고 문화적 독재는 동네를 지우고 있다. 동네빵집, 동네서점, 동네극장... ‘동네라는 여러 형태의 공동체 대신 거대한 하나의 자본으로 향하고 있다. 수많은 작은 것들이 마지막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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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발생한 테러, 사람들의 일상을 꾸준히 위협하는 실업문제가 ‘더 중요한’ 사안이기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프랑스는 올랑드 집권 동안 ‘작은’ 성과도 있었다. 환경정책을 비롯하여 내각의 성별과 인종 구성, 동성혼 합법화, 성매매에 대한 새로운 법 도입 등. 대부분 ‘성’정치에 해당한다. 성과 밥벌이가 분리된 사람들에게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문제다.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을 상징하는 빵과 장미가 어떤 사람에게는 밥과 여자에 해당한다. 여자가 행복추구권의 매개 역할을 한다. 배가 고파 밥을 먹고 ‘2차로’ 후식처럼 여자를 ‘...

남성 정치인의 아내 file [1]

  • 2017-04-19
  • 조회 수 10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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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 : ‘더러운 잠’을 둘러싼 시선의 정치 file

  • 2017-02-23
  • 조회 수 9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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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가장 중요한 직업 file [1]

  • 2017-01-23
  • 조회 수 83871

조지 엘가 힉스 George Elgar Hicks, <여성의 임무 :  Woman’s Mission: Guide of Childhood >, 1862–3 <여성의 임무> 는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에게 일종의 지침서로 사용하기 위해 3부작으로 구성되었다. 아이를 기르는 엄마, 남자의 동반자인 아내, 노인을 돌보는 딸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캠페인의 육아 정책 홍보 비디오에는 “엄마이며, 아내이며, 사업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방카 트럼프가 목소리를 낸다. 그는 “엄마는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직업”이라고 한다. 그도 물론 아내이며 무려 아이를 셋이나 낳은 엄마...

쳐들어오는 말들 file

  • 2017-01-02
  • 조회 수 1731

지금은 사라진 '대한민국 출산지도' 김혜수의 매력은 꺼질 줄 모르는가 싶을 정도로 여전히 신선한 모습을 과시하는 영화 <굿바이 싱글>. 김혜수가 연기한 극중 배우 고주연에게서 아주 당연하지만 사회에서는 전혀 당연하게 취급받지 못하는 말 한디가 쏟아져 나온다. 임신한 고등학생의 미술대회 입장을 가로막는 학부모들에게 고주연은 “임신시킨 남자애는 국가대표로 나갔는데 왜 임신한 여학생은 미술대회 못 나가냐!”고 소리친다. 성’관계’라고는 하지만 이 ‘관계’에 대한 책임은 주로 한쪽이 담당한다. 임신은 온전히 여자의 몫이...

"‘동네 아줌마’보다 못한" file

  • 201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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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몰랐다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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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게 하는 신사>, The Irritating Gentleman,  Berthold Woltze, 1874 벌써 십 수년 전이다. 나와 업무상 메일만 1년 가량 주고받다가 어떤 행사 자리에서 서로 얼굴을 보게 된 한 시인이 있다. 나를 만난 그날, 그 시인은 나의 선배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오랜만에 젊은 여자를 봤더니 가슴이 너무 뛰어서 집에 가는 길에 약 사먹다”고. 내가 이걸 어떻게 알까. 그 선배가 내게 직접 면전에서 전해줬기 때문이다. 히히 웃으면서, “집에 가는 길에 약 사먹었대”라고 내게 친절히 전해줬다. 많은 여성들이 일상에서 이러한 ‘징...

혼자 못 사는 남자들 fil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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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성옹지소록>에서 아버지 초당 허엽의 스승인 화담 서경석의 일화를 소개한다. “아버님께서는 화담 선생에게 가장 오래 배우셨다. 일찌기 칠월에 선생의 집으로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그가 화담 농막으로 간 지 벌써 엿새째라고 했다. 곧 뒤따라 갔었는데 가을 장마로 물이 한창 넘쳐나서 건널 수가 없었다. 저녁 때 여울물이 조금 줄었으므로 겨우 건너가셨더니, 선생은 한창 거문고를 타면서 높게 읆조리고 있었다. 아버님께서 저녁밥 짓기를 청하자, 선생은 “나도 먹지 않았으니 함께 짓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머슴이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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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교육 전문지 격월간 <민들레> 105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그게 왜 이슈가 되는가 <인천 콘크리트 바닥 속 백골 시신, '20대 여성 알몸' 추정>, 얼마 전 이 기사를 읽으며 그동안 수없이 죽어간 익명의 여성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라고 생각했다. 26년 전에 지어진 건물, 옷도 소지품도 없이 백골로 나타난 20대 여성의 시신(기사는 ‘알몸’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이 시신에 대해 밝혀진 정보가 없다. 이름도 모르는 한 여성이 건물 바닥에 백골로 묻혀있는 사건은 하나의 상징처럼 다가왔다. 여성의 죽음은 인간이 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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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24
  • 조회 수 193

사진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83045 그 이름이라도 한 번 불러줘야 도리일 것 같다. ‘신영극장’. 2007년 폐관 후 2012년 다시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으로 문을 열였지만 나에게는 그냥 ‘신영극장’이다. 강릉에 있는 신영극장이 지난 2월 말에 ‘마지막 상영’을 하고 휴관을 했다고 한다. 너무 안타까운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이렇게 안타까움을 표현이라도 해야겠다. 나의 청소년기 극장 중 하나다. 극장은 신영극장, 서점은 단골서점, 강릉의 상징적인 장소였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

대통령 마음대로 file

  • 201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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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전 한 학생에게서 인상적인 메일을 받은 적 있다. 그는 “고통을 상상할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할 윤리적 의무”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졸업논문과 관련한 문의였으나 내가 그렇게 거대한 주제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깜냥은 못 되기에 그냥 그의 생각을 듣고 공감하는 차원으로 마무리했다. 나는 그저 그의 고민 자체가 굉장히 반가웠다. 내 고통에 대한 생각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생각은 내게 (아직) 오지 않은 고통에 대한 치열한 상상이다. 타인과 세계에 대한 상상을 확장하는 방식이다. 나와 무관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