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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관습, 인식의 재구성을 위하여.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했으며 예술과 정치 사이를 오가며 글을 씁니다. 주로 여성과 성소수자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혼자 못 사는 남자들

조회 수 6271 추천 수 0 2016.07.11 1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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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성옹지소록>에서 아버지 초당 허엽의 스승인 화담 서경석의 일화를 소개한다.

아버님께서는 화담 선생에게 가장 오래 배우셨다. 일찌기 칠월에 선생의 집으로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그가 화담 농막으로 간 지 벌써 엿새째라고 했다. 곧 뒤따라 갔었는데 가을 장마로 물이 한창 넘쳐나서 건널 수가 없었다. 저녁 때 여울물이 조금 줄었으므로 겨우 건너가셨더니, 선생은 한창 거문고를 타면서 높게 읆조리고 있었다. 아버님께서 저녁밥 짓기를 청하자, 선생은 나도 먹지 않았으니 함께 짓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머슴이 부엌에 들어가보니 솥 안에 이끼가 가득하였다. 아버님께서 이상하게 여기시고 까닭을 물으셨다. 선생이 이르기를, “물이 넘쳐서 엿새 동안 집사람이 오지 못했다. 그래서 나도 오랫동안 식사를 하지 못했으니 솥에 이끼가 났을 것이다하였다. 아버님께서 선생의 얼굴을 쳐다보셨는데 굶주린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이 일화는 허난설헌 평전과 허균 평전에서 모두 인용되는 일화다. 나는 처음 <허난설헌> (허미자) 에서 이 일화를 읽고 혹시 다른 맥락이 있는지 몇 번을 다시 읽고 다시 읽었지만 여전히 저 기록의 핵심은 엿새를 굶고도 굶주린 기색이 없는화담의 굳건한 모습에 초점이 있었다. <허균 평전>(허경진)에서도 다른 의미는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왜 솥에 이끼가 낄 정도로 엿새를 굶고 있어? 머슴이나 아내가 밥을 해주지 않으면 굶는 게 위풍당당이야? 조선시대 여성이 아닌 나로서는 아내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 남자가 경악스러울 뿐이다.

엥겔스는 반려자인 메리 번즈의 사망 후, 메리의 여동생 리디아와 살았고 리디아마저 죽은 후에는 마르크스를 돌보던 헬레네 데무트(마르크스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던 하녀)가 엥겔스를 돌보았다. 헬레네 데무트가 죽은 후에는 독일사회민주당의 지도자들이 엥겔스를 돌보는 사람으로 루이제 카우츠키(카를 카우츠키의 아내지만 당시 별거중)를 지정했다. 엘리노어 마르크스는 당시 이에 분개했다. (<엥겔스의 아내>,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현재성> 참조)

혼자 밥먹는 남자들이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기사를 읽었다우울증은 여성의 비율이 더 높은 편이다. 특히 남편이 은퇴하면 아내의 우울증 위험은 70% 높아진다고 한다. 그런데 혼자 밥을 먹으면 왜 여성보다 남성이 더 우울할까혹시 가족들과 함께 식사할 때 나홀로 화목하지는 않았을까. 함께 밥을 먹으면 좋을 때가 많다. 하지만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이 모두 만족하려면 그 관계가 누가 누구에게 수발을 드는관계여서는 안된다.

나는 가끔 세상이 전보다는 나아졌다는 착각에 종종 빠진다. 적어도 오늘날의 남성들은 아내가 없으면 엿새 동안 밥을 못해먹을 정도로 어리석거나 서로 하녀를 공유하며 살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밥타령을 한다. 집밥의 가치에 대해 지겹도록 말하다가 이제는 홀로 밥 먹는 남성에 대한 연민으로 어쩔 줄 몰라한다. 혼자 밥 잘해먹는 남자들도 많은데 이런 남자들을 마치 보편적이지 않은 사례로 밀어내려고 한다. ‘남성연대는 주방에 자주 들낙거리는 같은 남자들을 싫어한다. 감정 노동을 하는 남성을 두고 기생올애비라고 하며 남성성이 없는 남자로 밀어내려고 애쓰듯이, 가부장제는 여성들이 하던 성역할에 참여하는 남성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런 남자들이 많아질수록 성역할이 깨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들자면, ‘원룸시대가 오기 전 청소년기를 하숙집 딸로 살았다. 당시 내게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우리집을 비롯하여 옆집도, 앞집도, 그 옆집도.... 거의 대부분의 하숙집이 사실상 남학생 전용이었다. 나는 처음에 하숙집 주인들이 여학생보다 남학생을 선호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타지역에 와서 학교를 다니는 여학생이 지금보다 더 적었으니 방을 찾는 여학생 수가 남학생보다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느날 하숙집 주인들의 대화 속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처음 낯선 지역에 자식을 보내는 부모들이, 대부분 딸은 혼자 밥해 먹을 수 있으니 자취를 시키고 아들은 밥을 해줘야 하니까 하숙을 시킨다고 했다.

딸은 밥을 해먹을 수 있고, 아들은 밥을 해줘야 한다는 이 생각을 내가 이해하기까지는 세월이 필요했다. 당시에 이해를 못했기때문에 오래도록 이 현상을 기억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도대체 밥이 뭐길래 그 험난한 입시를 치르고 대학에 입학한 스무살의 딸은 할 줄 알아도 아들은 못 한단 말인가. 우리집에 아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은 하나같이 우리 아들은 아무 것도 못해요라고 했다. 여자의 몸에서는 언제나 젖과 꿀이 흐르고 손을 뻗으면 양식이 쏟아지는 것일까. 세월을 거치며 알게 되었다. 그것은 할줄 알고 할줄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해야만 하는 사람과 할 필요 없는 사람으로 역할 분담이 되고 있음을.

과부 3년이면 쌀이 서말이고, 홀아비 3년이면 이가 서말이라는 옛말은 그저 옛말에 불과해야 한다. 그런데 옛말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길 바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여성은 돌보는존재이며 남성은 돌봄 받는존재임을 당연시 여긴다. 여성의 돌봄에 의지하고 살면서 남성이 여성을 보호한다고 착각한다. ‘곰국 끓이는 아내에 대한 유머, 은퇴 후 삼식이가 되는 남편, 결국은 다 밥을 둘러싼 문제다.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아내가 집을 나가자 밥해 달라고 딸과 여자 후배들을 귀찮게 하던 석균(신구)은 드라마 속에만 있으면 좋겠다.


댓글 '1'

rt

2016.07.15 14:26:28

좋은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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