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은 정치와 비정치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상읽기.

경희대에서 문화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해왔다. 아시아적 근대성을 통해 서구이론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인생론><마녀 프레임><이것이 문화비평이다><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무례한 복음> 등이 있다.

그들은 왜 부채춤을 추었는가

조회 수 2513 추천 수 0 2015.04.09 13:18:15

200818639_700.jpg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 '피습 사건'은 이제 망각의 강을 건너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사건의 '배후'를 의심했던 수사기관도 김기종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리고 사건을 종결지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사건 당시에 목격했던 기이한 반응들은 쉽사리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특히 리퍼트 미대사의 쾌유를 빈다는 명목으로 등장했던 일련의 '퍼포먼스'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정상적인 것으로 보였던 것들이 돌연 비정상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 여기에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미 대사에서 칼을 휘두른 김기종의 행위를 정상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 행위의 의미에 대해 논하는 사안과 별도로, 일반적인 상식에 비추어 본다면, 그것은 비정상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상식을 우리는 '근대적인 것'이라고 부르도록 교육 받았다. 말하자면, 근대인이라면, 개인에 대한 개인의 복수를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말아야한다는 규범이 우리의 상식, 또는 상식적 판단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김기종의 '테러'가 있자마자 정치인들과 언론들이 즉각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특히 극우와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보수정치인들과 보수언론들은 앞다투어 배후설을 흘리면서 종북이라는 고전적 전술을 끄집어내기에 바빴다. 

통진당 해산 이후에 한국에서 종북이라는 말은 비정상적인 것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언어가 되었다. 이 상징언어는 '괴뢰'나 '꼭두각시'라는 과거의 은유처럼, "자신의 자유의지를 버리고 북한을 무조건 추종한다"는 뜻에 가깝다. 이런 양태는 과거 서구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무신론의 종교비판이 대표적이라고 하겠다. 계몽주의자들에게 종교는 이성적인 존재인 인간을 '광신'이라는 위험에 빠트리는 대표적인 해악이었다. '광신'은 무엇보다도 자율적 개인으로 분리되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질서를 잡아야할 '다양성'의 세계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키메라 같은 괴물이었다. 

경제를 우선 순위에 둠으로써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고자 했던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광신'은 더더욱 쓸모없는 열정의 소모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런 논리에서, 설령 종교를 완전하게 폐지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광신'이라는 뇌관을 제거한다면, 합리적인 세계의 구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세속주의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는 종북 비판은 이렇게 '광신'을 제거하고자 했던 종교비판의 연장이다. 따라서 종북비판과 '통일대박론'은 서로 대립한다기보다, 후자의 논리에서 전자의 논리가 등장한 것이라고 봐야한다. 광신적인 북한 추종세력을 제거하는 것, 그것이 바로 '통일대박론'이기 때문이다. 이런 발상은 '조국통일'을 혁명 완수로 생각했던 북한의 논리를 정확하게 뒤집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김기종의 행위를 간단하게 비정상적인 것으로 판단한 정부 또한 이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정상적인 것을 옹호하는 수사법을 사용했다. 특히 대통령은 이 사건을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했는데, 이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의 논리에서 김기종이라는 비정상적인 것에 대비되는 정상적인 것은 '굳건한 한미동맹'인 셈이다. 따라서 현 정부와 그 지지자들에게 미 대사가 습격을 받은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미동맹'이라는 정상적인 것의 근간을 뒤흔든 종북주의라는 '광신'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미대사관이 있는 광화문 광장에 이른바 기독교인들이 쏟아져 나와서 집단으로 부채춤을 추었다. 미 대사의 쾌유를 빈다는 지극히 온정적인 마음의 발로였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샤를리 에브도 테러에 빗대어서 "나는 리퍼트다"라는 구호가 등장하고, 미 대사가 했다는 "함께 갑시다"는 말이 잠언처럼 나부꼈다. 

이 모든 일들은 그냥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미대사관 앞에 모여든 이들에게 그만큼 '한미동맹'은 연약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종북주의라는 '광신'의 준동이 오늘날의 한국을 존재할 수 있게 만든 그 '한미동맹'을 위기에 빠트리고 있다는 믿음을 공유했기에 집단적인 행동을 이끌어냈으리라. 이 집단적 행동에 놀랍게도 부채춤이라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부채춤이라는 '전통'을 전시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왜 하필이면 부채춤을 추었는지 생각해보면 비밀이 풀리지 않을까. 부채춤이야말로 '만들어진 전통'을 대표하는 근대적 산물이다. 부채춤은 '조국근대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한국적인 것을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이면서, 전근대적인 농촌을 새마을로 바꾸었듯이, 전근대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던 무속의 제의를 근대적인 무용으로 만들어낸 것이 부채춤이었던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1954년 김백봉에 의해 처음 만들어져서,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군무로 발전한 것이 부채춤이다. 이런 과정은 한국의 부채춤에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근대화 자체가 전통을 재창조하고 익숙한 시공간의 체험을 분리시켜 재배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발명된 전통'이나 '원시적 열정' 같은 개념들은 이런 근대화의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학자들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부채춤은 이런 의미에서 한국 근대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말하자면, 한국에서도 근대화는 자신의 과거를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었는데,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감추는 양면성을 내포한다. 보여줄 것과 감출 것을 결정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를 지켜볼 것이라고 가정하는 '시선'이다. 이것을 보통 '타자의 시선'이라고 부른다. 

부채춤~1.JPG

한국 보수에게 이 '타자의 시선'은 다른 무엇도 아닌 미국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한국의 탄생과 형성은 냉전질서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세계체제 구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 세계체제에 적응하는 것이 이를테면 한국 보수의 생존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미동맹'은 미국이라는 '타자의 시선'에 고정되어 있는 한국 보수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부채춤은 한국 보수가 보여주고 싶은 한국적인 것의 모습이고, 이것을 미국이라는 '타자'를 통해 인정 받을 때 비로소 보수가 바라는 '한미동맹'은 유지될 수 있다. 분명히 미대사관 앞에서 '퍼포먼스'를 펼쳤던 이들에게 이런 논리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었을 테다. 김기종이라는 '광신'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부채춤은 '근대 예술'이라는 합리성의 이름으로 불려나온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던가. 자못 그 '합리성'이 자아낸 정경은 또 다른 '광신'에 가깝지 않았던가. 

이 '광신'의 정체는 무엇일까. 김기종의 행위를 '광신'으로 규정하는 그 입장 역시 '광신'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물론 이것은 한국의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근대 자체에 감춰져 있는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근대는 재현되지 않는 것들을 '광신'으로 규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이, 역설적으로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미대사관 앞에서 선 보인 부채춤은 무속의 제의에서 기원한 것이었다. 무속이라는 전근대적인 요소를 구경거리로 만들어낸 것이 부채춤이다. 무속이라는 종교성을 제거하고 만든 합리적인 구현물이 결과적으로 '한미동맹'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불려나온 것이다. 이보다 더 훌륭하게 근대의 본질을 잘 설명해주는 예증도 없는 것 같다. 김기종을 '괴물'로 규정하고, 자신들은 '괴물'이 아님을 '타자'에게 증명하기 위해 한국의 보수가 펼쳐보인 퍼포먼스도 그 못지않게 괴물스러웠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보수의 입장에서 김기종이 한국 근대화의 나쁜 것을 다 모아놓은 결과물이었다면, 자신들의 부채춤은 반대로 한국 근대화의 좋은 것만을 다 모아놓은 결과물이었으리라.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한가. 결국 둘 다 '괴물'이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왜 그런 것일까.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대한 판단에서 좋고 나쁜 것을 나누어서 전자를 위해 후자를 배제하는 그 사고방식 자체가 이런 괴물성을 만들어내는 원인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할 것이다.


댓글 '1'

니앰;

2022.11.07 10:51:06

tlqkf ㅋㅋㅋ 사진진짜 넘사벽
사진 및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왼쪽의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용량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진격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생각한다 file

  • 2022-03-12
  • 조회 수 659

침공과 제재 전격적인 푸틴의 침공으로 벌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이 서방세계의 예측과 달리 장기전으로 가고 있다. 물론 이런 장기전을 푸틴이 예상 못한 것인지 아닌지 알 길은 없다. 폴 크루그먼은 3월 4일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칼럼에서 푸틴의 오판을 단언하고 있는데, 이런 평가에 따르자면 푸틴이 불러온 이번 전쟁은 전략적 실패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막강한 화력을 앞세운 러시아는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겠지만,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푸틴은 초기 기동전으로 신속하게 우...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 애시드 공산주의까지: 마크 피셔의 문화비평 file [3]

  • 2020-12-18
  • 조회 수 2442

1. 워릭 시절 마크 피셔(Mark Fisher)는 나에게 각별한 비평가이다. 내가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의 워릭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에 도착했을 때, 그는 그곳에서 박사 과정 막바지를 보내고 있었다. 당시 내가 입학한 철학과 대학원은 사디 플랜트(Sadie Plant)와 닉 랜드( Nick Land)가 남겨 놓은 펑키한 분위기를 유물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피셔 역시 이들이 만든 사이버네틱 문화연구부(Cybernetic Culture Research Unit)의 일원이었다. 대학에서 정식으로 인준한 연구단체는 아니었지만, CCRU로 통했던 이 단체는 기본적으...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보다 file

  • 2020-10-16
  • 조회 수 847

2019년 특강을 위해 초청 받은 오사카 대학에 갔을 때였다. 저녁을 먹기 위해 나선 골목 어귀 파출소 게시판에 붙어있던 수배 전단지 하나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별 생각 없이 훑어봤는데 거기에 적혀 있는 문구는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이름도 생소한 무장조직의 가담자 둘을 수배하는 내용이었다. 호기심에 정보를 검색해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974년 8월부터 시작해서 5월까지 도쿄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를 비롯해서 주요 일본 기업과 공장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 이후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

순수한 상호공생의 이론적 근거: 슬라보예 지젝과 한병철의 논쟁에 대해 file

  • 2020-04-25
  • 조회 수 2211

* 이 글은 Fall Semester에 기고한 "On The Rationale Of Pure Mutualism: An Intervention Into The Debate Between Slavoj Žižek And Byung-Chul Han"을 강영민이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이동할 수 없다. 코로나19(COVID-19)도 마찬가지다. 바이러스는 동물 같은 숙주를 필요로 한다. 라틴어로 동물(animal)은 숨이 붙어 있는 존재란 뜻이다. 인간의 의미 상징 체계 내에서 이미 바이러스 감염의 문화적 기원이 각인되어 있는 셈이다. 동물이 바이러스를 다른 동물로 이동시킨다. 오늘날 같이 동물이 다른 동물들과 빈...

조국 말고 검찰에 요구해야할 것 file

  • 2019-09-07
  • 조회 수 1151

정치만큼 묘한 생물이 어디에 있을까. 말 많고 탈 많던 조국 후보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청문회 이전까지는 이 세상이 한국당과 민주당 둘만으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청문회가 끝나고 나자 반전이 일어났다. 한국당과 민주당이 펼치던 쇼 무대에 갑자기 검찰이 난입한 것이다. 기성 정치진영을 대표하던 두 당 사이에 끼어든 이 생뚱 맞은 검찰의 출현은 '국민'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국민의 의혹'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행정부 국정을 담당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무위원 후보의 부인이 청...

“기생충”을 보다 file [2]

  • 2019-07-04
  • 조회 수 4323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영화 <기생충>을 이제야 보았다. 바쁜 일정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덕분에 이 영화에 대한 많은 정보를 미리 알고 볼 수 있었다. ‘스포일러 공포’가 횡행했지만, 이 영화는 줄거리를 다 알고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영화 <명량>을 보고 “이순신 장군 죽는다”는 사실을 알렸다고 스포일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여하튼 칸의 수상 덕분인지 이런 “스포일러 마케팅” 덕분인지 영화의 흥행은 성공했지만, 만일 이 둘이 없었더라도 이 영화가 이토록 관심을 끌 수 있었을지 ...

예술과 증언

  • 2019-03-24
  • 조회 수 6273

런던에 있는 영국 국립 미술관에 가면, <아르놀피니의 초상>이라는 그림이 있다. 지금 이 그림의 제목은 <초상>이지만 내가 맨 처음 이 미술관을 찾았을 때는 <아르놀피니의 결혼>이었다. 1434년 네덜란드 화가 얀 반 에이크가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의 주제에 대한 논란은 많은데, 플랑드르 브루제에 살던 이탈리아 상인 아르놀피니의 결혼을 그렸을 것이라는 주장이 한동안 우세했지만, 1997년 아르놀피니가 실제로 1434년에 결혼하지 않았고, 반 에이크가 죽은 지 6년이나 지나 결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제목이 ...

박항서 매직 file

  • 2019-02-22
  • 조회 수 473

‘박항서 매직’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베트남 국가대표 축구팀을 이끌고 있는 박항서 감독은 10년 만에 사상 두 번째로 스즈키컵 우승을 이끌고, 베트남 A매치 16경기 무패 ‘세계신기록’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베트남 축구를 FIFA 랭킹 역대 최고로 끌어올렸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을 이끈 히딩크 감독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흥미롭게도 박항서 감독의 말에 따르면, 2002년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과 함께 수석 코치를 하면서 지도자로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박항서 매직’의 비결이 무엇인지 묻는 ...

인문학자의 빙하기 file

  • 2018-12-21
  • 조회 수 500

'인문학자'라는 말은 참으로 이상한 한국식 명칭이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인문학을 일컬어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풀이해놓고 있으니 '인문학자'란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자"라고 추측할 수 있겠다. 이 풀이에 따르면, "언어, 문학, 역사, 철학"을 모두 아울러 뭔가를 하고 있는 나도 '인문학자'임에 틀림없다. <지적인 대화를 위한 넓고 얇은 지식>이라는 책 제목이 말해주듯, 인문학이란 말이 일반 교양의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렇듯 인문학과 일반 교양을...

랑시에르를 만나다 file [1]

  • 2018-04-23
  • 조회 수 3175

자택 문이 열리자 자크 랑시에르는 변함없이 보랏빛 스웨터를 입고 나를 맞이했다. 처음부터 인터뷰를 기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파리에 학술행사가 있어서 들른 차에 잠깐 찾아뵙고자 했던 것인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길어져서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도 청탁할 것이 있었고, 또한 다른 부탁도 이메일을 통해 주고 받고 있던 참이었다.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고 앉은 거실도 변함없었다. 아담한 살굿빛 소파가 놓여 있는 정경은 몇 년 전에 찾았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지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특강 때문...

미투 운동과 한국의 진보주의 file

  • 2018-03-17
  • 조회 수 4608

미투(#MeToo)라는 말이 처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폭발적인 운동으로 번져갈 것이라는 예상을 누구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들불처럼 퍼져나간 미투는 이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 누구는 이렇게 한국 사회에 성범죄가 만연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터져야할 문제가 지금에야 터진 것이라는 반응이 일반적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 특히 남성이 저지르는 성 관련 범죄는 거의 먼지처럼 일상에 퍼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비트코인 신드롬 file [1]

  • 2018-01-27
  • 조회 수 3336

가히 비트코인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하다. 빌 모러가 2015년 <어떻게 결제하시겠습니까?>라는 책을 쓸 때만 해도 비트코인은 기술발전이 가져올 화폐의 미래 중 하나로 취급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암호화폐라는 다소 생소한 표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비트코인은 갑자기 ‘투기’의 대상으로 비난 받게 되었다. 유시민 같은 이들이 앞장서서 비트코인 신드롬을 ‘광풍’으로 진단하면서 투기를 조장하는 ‘작전세력들’을 비난했다. 이런 비난은 비트코인에 대한 다소 과도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지만, 유시민 같은 이들의 주장을 문제 삼기 위해 ...

자코메티 file

  • 2017-12-09
  • 조회 수 2192

“나는 예술에도 관심 있지만, 본능적으로 진리에 더 관심이 많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말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작업을 하면 할수록 더 다르게 본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진리’는 그러므로 ’다르게 보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다. 아니나 다를까 자코메티는 ”미술은 보기의 일종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예술은 어떤 신비감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 얼마 전 도쿄에 가서 봤던 자코메티 전은 띄엄띄엄 마주쳤던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을 일별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 전시를 둘러보면서 종종 ‘현대인의 고독’을 표현...

청문회와 '문자폭탄' file

  • 2017-07-20
  • 조회 수 1382

최근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알렌카 주판치치는 자신의 짧은 에세이에서 이탈로 스베보의 소설 <제노의 양심>에 등장하는 애연가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 애연가는 언제든지 담배를 끊을 수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계속 담배를 피운다. 애연가의 ‘양심’에 비추어본다면, “담배를 끊는다”는 그의 진술은 담배를 끊지 못하고 계속 피우는 행동에 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애연가는 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모순적인 진술과 행동을 지속하는 것일까. 달리 묻자면 이 애연가는 왜 서로 충돌하는 것이 빤한 자신의 진술과 행동을...

탄핵, 잔치는 끝났다 file [6]

  • 2017-04-05
  • 조회 수 14337

박근혜 대통령이 끝내 탄핵되었다. 이로써 박근혜라는 이름 석 자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 당한 대통령으로 남게 되었다. 매주 20차에 걸쳐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던 광화문 촛불집회는 승리의 기억으로 각인된 것처럼 보인다. 2008년 촛불집회가 ‘명박산성’을 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이번 경우는 청와대 앞 100미터까지 진입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초창기에 폭력이니 비폭력이니 논쟁이 잠깐 일었지만, 청와대 바로 앞까지 촛불이 ‘합법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자 유야무야되었다. 여기에서 어렵지 않게 2008년 촛불집회와 2017년 촛...

한병철과 헬조선 file [3]

  • 2017-03-21
  • 조회 수 5275

한병철 교수의 특강이 모종의 '퍼포먼스'였던 모양이다. (▶참고 글) 이 문제에 대해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린 평가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철학자의 객기" 정도였는데, 이를 두고 벌어지는 풍경이 자못 심각해서 짧게 몇 마디 보태고자 한다. 참석한 관객들의 '증언'과 이후 알려진 정보들에 따르면, 저자는 출판사를 철저히 무시하고 본인의 강연을 그런 식으로 진행하고자 했던 것 같다. 피아노를 미리 주문해놓은 것을 봐도 무엇인가 특별한 계획이 그에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결과가 성공적이었다기보다는 일종의 해프닝으...

차기 대통령의 딜레마: '큰 정치'의 전망을 기대한다 file [2]

  • 2017-02-05
  • 조회 수 6234

앞으로 우리가 맞닥뜨려야할 시기는 격동이라는 한 단어로 담아내기에 너무도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전후 세계 질서를 구축했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퇴조하고 보호무역주의로 대표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제일주의’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트럼프라는 개인이 원인 제공자처럼 비쳐지고 있지만, 사실상 전후 세계 질서가 표방했던 개방주의는 2008년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점차 폐기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이야말로 개방주의를 기치로 내건 전후 세계 질서에 가장 잘 적응해온 아시...

트럼프와 촛불, 두 개의 공화국 file [6]

  • 2017-01-30
  • 조회 수 1798

“트럼프도 박근혜처럼 임기 중에 탄핵당했으면 좋겠다.” 힐러리 지지자였던 미국의 지인이 내게 보낸 메시지이다. 그만큼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의 당선은 많은 힐러리 지지자들에게 충격을 안긴 사건이었다. 트럼프의 당선이 한반도의 정세에 미칠 영향도 만만치 않을 것이지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역시 트럼프 당선 못지않게 극적인 것이다. 이 상황은 어떻게 극적인가? 2012년을 상기해보자. 박근혜 정부의 출현은 보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상화’를 의미했다. 이 ‘정상화’를 다른 용어로 번역하면 ‘정치의 ...

이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트럼프 현상을 다시 생각하자 [2]

  • 2016-12-25
  • 조회 수 2122

트럼프가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백인’의 타락에서 기인했다기보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가치’를 만들어낸 전후 자유주의가 쇠퇴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적인 배경으로 인해 트럼프 정권의 성공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미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는 미디어의 생리를 정확히 꿰뚫어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기층의 불만을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마침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경악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만큼 미국답지 않은 선택이라는 뜻일 ...

거기 '내가 있었다': 소셜미디어와 체감의 정치 file [1]

  • 2016-11-28
  • 조회 수 1071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에게 문자는 인간을 게으르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문자로 무엇인가를 표기해놓으면 주객이 전도되어서 그 문자를 해석하느라 갑론을박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문자에 담긴 이데아를 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악명 높은 ‘시인추방론’과 일맥상통하는 논리인 셈이다. 그러나 인류 중에서 살아남은 우리 사피엔스는 플라톤의 우려와 달리 “돌에 정보를 새기는 능력” 덕분에 사회를 이루고 이렇게 지구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는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다. 문자가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이 문자야말로 괴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