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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치와 비정치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상읽기.

경희대에서 문화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해왔다. 아시아적 근대성을 통해 서구이론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인생론><마녀 프레임><이것이 문화비평이다><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무례한 복음> 등이 있다.

비트코인 신드롬

조회 수 2729 추천 수 0 2018.01.27 10: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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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비트코인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하다. 빌 모러가 2015<어떻게 결제하시겠습니까?>라는 책을 쓸 때만 해도 비트코인은 기술발전이 가져올 화폐의 미래 중 하나로 취급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암호화폐라는 다소 생소한 표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비트코인은 갑자기 투기의 대상으로 비난 받게 되었다. 유시민 같은 이들이 앞장서서 비트코인 신드롬을 광풍으로 진단하면서 투기를 조장하는 작전세력들을 비난했다. 이런 비난은 비트코인에 대한 다소 과도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지만, 유시민 같은 이들의 주장을 문제 삼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걱정도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찬반으로 나뉘어서 비트코인이 무엇인지 열띤 토론이 있긴 했지만, 정작 이 열기에서 빠져 있는 중요한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아서 몇 마디 보태볼까 한다.

비트코인이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이른바 2-30세대로 불리는 요즘 세대가 현실에 대한 일종의 구원책으로 신드롬에 동참했다는 사실이다. 도덕적 질타를 서슴지 않는 꼰대들은 많아도 이 신드롬의 정체에 주목하는 진지한 비평가들이 없다는 점은 기이한 일이다. 비트코인 신드롬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실례는 “5천만 원 있어도 흙수저고 없어도 흙수저라는 한 시사프로그램 인터뷰이의 발언이다. 이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비트코인 자체의 정체라기보다 한국 사회의 진실에 가깝다. 말하자면, 이 신드롬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흙수저론이라는 사실을 이 발언이 은연 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흙수저론은 과거의 계급론을 발랄하게 이르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의 용법은 오히려 마르크스보다 맬서스에 가깝다. 맬서스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인구로 보고 통계지표로 환원할 수 있는 사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사물은 욕망이라는 원자로를 내재한 통제하기 어려운 괴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맬서스는 일찍이 건전한 결혼을 장려해서 방탕한 성욕의 발산을 막아야한다고 봤다. 그렇지 않으면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폭발해서 인류는 파멸하고 말 것이라는 상상이 맬서스의 <인구론>에 담겨 있다.

물론 오늘날 이런 맬서스의 가설은 어처구니없게 들리겠지만, 그의 이데올로기 자체가 폐기된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정부에서 만든 가임여성지도가 생생하게 증언하듯, 여전히 죽은 맬서스는 먼 동방의 국가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가임여성지도는 말 그대로 임신과 출산을 자연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만남의 기회를 더 많이 조장하면 인구가 늘어날 수 있다고 전제한다. 맬서스가 건전한 결혼으로 성욕이라는 자연의 본능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가임여성지도를 작성한 이들도, 비록 맬서스와 반대로 인구를 늘리고자 하는 의도이긴 했지만, 같은 전제를 깔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흙수저론역시 계급 자체를 자연적인 것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맬서스적인 것이다. 노동계급이 사회적인 개념이라면 흙수저는 태어난 신분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신분을 자연적인 것'으로  파악한 것은 근대 이전의 사회였고, 맬서스는 이런 가치관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던 당시 지주계급의 이익에 입각해서 <인구론>을 집필했다.

이런 맬서스의 생각은 허버트 스펜스의 사회진화론과 맥락을 같이 하게 되어서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라는 유명한 스펜서주의의 구절과 공명한다. 이 말은 이상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사회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개조하기 위한 과학을 도입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사회를 형이상학의 대상이 아니라 과학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스펜서 역시 인간을 사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5천만 원 있어도 흙수저고 없어도 흙수저다는 말이 이른바 요즘 세대에서 회자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발언이 일정부분 사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사실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흙수저론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불평등은 사실의 문제라기보다 정치의 문제이다. 정치의 문제는 과학적인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펜서는 사회진화론이라는 과학으로 당시 귀족과 부르주아의 나태를 비판하고자 했지만, 이런 사회진화론의 이데올로기가 식민지 침탈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흙수저론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가난하게 태어나는 아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이들을 흙수저라고 자조적으로 부를 수는 있겠지만, 그 아이들로부터 일찌감치 평등권을 박탈해버리는 사회구조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이런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정치이다.

이런 관점에서 비트코인 신드롬을 일러 정치적 좌절을 겪는 2-30세대의 탈출구라는 식으로 진단하는 것도 완전히 틀린 입장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이 지점에서 자문해야 한다. 왜 비트코인인가.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을 종합해서 판단하자면, 한 마디로 회전률이 빠르기 때문이다. 우스개소리로 도박의 끝판왕은 섰다판이라는 말이 있듯이, 비트코인은 등락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상승폭과 하락폭의 낙차가 어마어마하다. 훈련된 투자가들이 보기에 투자하지 말아야하는 불리한 요소를 비트코인은 가장 극명하게 내포하고 있다. 말하자면 투자를 하기에 비트코인의 등락은 너무도 예측불가하다. 위험부담이 큰 투자는 그만큼 수익률이 높지만 결과를 보장하기 어렵기에 함부로 하지 말아야한다. 이런 이유로 워렌 버핏 같은 투자 귀재도 비트코인에 투자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 것이리라.

그런데 이렇게 위험한 롤러코스터를 이른바 젊은 세대는 올라탔다. 과연 이들은 철부지인가. 유시민 같은 이들의 말에 따르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이런 위험성이 이들을 기꺼이 비트코인에 뛰어들게 만들었다고 본다. 비트코인 거래를 정부가 규제한다고 했을 때, 그 보도기사 아래 달린 댓글 중에서 이제 남은 것은 로또뿐인가라는 말이 있었다. 로또가 일주일을 기다려서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이라면, 비트코인은 바로바로 결과를 알 수 있다. ‘요즘 세대가 생각하기에 시중에 파는 즉석복권과 비교할 수 없이 수익률이 높고 확실하다. 비트코인에 뛰어드는 이들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들에게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이미 이들에게 인생은 도박판이기 때문이다. 이런 요즘 세대의 생각이 과연 도덕성을 상실한 철없는 젊은이들의 만용일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자본주의야말로 인생을 도박판으로 여기게 만드는 경제시스템이지 않은가.

러시아 작가 체호프가 쓴 중편소설 <골짜기에서>는 어떻게 자본주의가 기존의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인생을 도박판으로 만들어버리는지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런 증언들을 한국의 근대소설에서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김동인의 <감자>는 어떤가. 도박판은 한국의 근대소설에 등장하는 단골 소재이다. 인생이 도박판이라는 인식은 일종의 팔자론을 바탕으로 하는데, 지금 유행하고 있는 흙수저론이 바로 현대판 팔자론이라고 할 수 있다. 도박으로 팔자를 고치고 싶었던 근대 한국인들처럼 오늘날 우리도 비트코인으로 흙수저라는 처지를 탈출하고 싶은 것이다. ‘팔자를 고칠 수 있다또는 흙수저를 금수저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노력하면 인생이 바뀐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이유는 그 땅을 살 수 있는 자금이 일확천금이든 한푼 두푼 모은 저축이든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자라면 평소의 낭비벽을 반성하겠지만, 전자라고 한다면 나의 운빨없음을 한탄할 수밖에 없다. 만일 그 돈이 일확천금이라고 생각한다면 배는 더 아플 것이다. 왜냐하면 행운의 여신이 자신에게 손짓하지 않고 사촌에게 손짓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 한푼 두푼 모은 저축으로 땅을 살 수 없는 곳이다. 그러니 꿈꿀 수 있는 것은 오직 행운의 여신밖에 없지 않을까. ‘흙수저론의 핵심은 노력으로 자신의 처지를 바꿀 수 없다는 냉소주의이다. 냉소주의는 단순히 염세주의가 아니다. 냉소주의는 지금 이 현실과 다른 절대적 실재, 다시 말해서 자연적인 것이 있다는 사실을 진실로 믿는 태도이다. 예를 들어, 지금 한국의 자본주의는 기형적이라는 비판은 이 지구상 어딘가에 온전한 자본주의가 있다는 사실을 믿기에 가능하다. 무신론도 마찬가지이다. 무신론은 신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당신들이 믿고 있는 신은 가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당신들이 믿는 신과 다른 무엇이 있다는 믿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무신론자야말로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믿고 있는 셈이다. ‘흙수저론의 냉소주의가 바로 그렇다. ‘요즘 세대가 철이 없어서 세상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정의를 너무도 믿기 때문에 정의롭지 못한 현실을 개탄하는 것이다. 따라서 흙수저론은 현실을 혁파하기 위한 이론이라기보다 그 현실 자체를 드러내는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비트코인 신드롬도 이런 의미에서 증상이다. 과거 세대가 현실의 어려움을 감내하면 찬란한 미래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면 요즘 세대는 현실을 참고 노력하더라도 장밋빛 미래는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비트코인에 매달리는 것이다. ‘투기는 나쁘다어른들의 훈계에 아파트도 투기의 대상이지 않았나고 맞받아치는 것이 이들의 반응이다. 기성세대는 온갖 투기로 먹고 살만해졌으면서, 2-30세대가 비트코인에 열을 올리면 투기는 나쁘다고 정색을 하는 것은 확실히 앞뒤 맞지 않은 일이다. 기성세대는 수십 번 이사를 하면서 얻은 노력의 결과를 강조하지만, 비트코인 등락지수를 밤낮 가리지 않고 지켜보는 것을 노력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런 행동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기보다 그 원인을 찾아서 몰입의 대상을 바꿔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비트코인 신드롬을 만들어낸 그 욕망의 구조를 먼저 파악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무엇이 이런 판타지를 가능하게 한 것인지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앞서 말했듯이, 비트코인 신드롬은 냉소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냉소주의는 지금 경험하는 현실을 모두 무로 환원시키는 심리적 기제에 기초하고 있다. “5천만 원이 있어도 흙수저고 없어도 흙수저다는 말이 단적으로 이를 보여준다. 기성세대 입장에서 보면 5천만 원으로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훈계를 할 수 있는 것일 테다. 그러나 요즘 세대입장에서 5천만 원은 있으나마나한 돈이다. 5천만 원으로 흙수저를 탈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생명을 유지할 수는 있지만 타고 태어난 신분을 5천만 원으로 극복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문제가 드러난다. 바로 비트코인 신드롬은 신분차별을 벗어나기 위한 열망의 표현이라는 진실이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계층 상승을 위한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인식했다고 할 수 있다. 비트코인과 신분상승이라는 불가능한 기호들이 서로 교환되면서 비트코인 신드롬이 출현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비트코인 신드롬은 도덕적 타락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 그것도 전근대적인 것으로 비쳐지는 신분차별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세대를 비난하기에 앞서 이 문제를 해결할 묘책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생산적일 것이다. 신분차별이라고 하면 어떤 이들은 아마도 금방 한국 사회의 봉건성이라는 레퍼토리를 읊어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전근대적인 신분차별이 다른 무엇도 아닌 자본주의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의 자본주의가 기형적으로 보이는 까닭은 한국이 덜 자본주의적이라서 그런 것이라기보다 너무도 순수하게 자본주의 본연의 모습이라서 그렇다고 봐야한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야지만 유지할 수 있다. 치킨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를 생각해보자. 임대료와 재료비, 그리고 설비비는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사장님이라고 불리더라도 자영업자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임금밖에 없다. 아르바이트 직원을 쓰든지 아니면 자신이 직접 노동시간을 늘려 벌충해야한다. 이것은 한국 자본주의가 이상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도 지적했듯이, 잉여노동에 대한 착취야말로 자본주의 본연의 모습이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개인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자영업자는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투쟁하기보다 아르바이트 직원의 월급을 깎으려고 분투한다.

비트코인 신드롬도 마찬가지이다. 신분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연대를 하기보다 어떻게든 수익을 내서 흙수저를 탈출해야한다. 자본주의 같은 것은 나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절대적이고 어차피 우리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오직 매달릴 것은 일확천금일 수밖에 없다. 비트코인이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가상화폐든 뭐든 상관없다. 순식간에 수익을 내서 이 처지를 벗어날 수 있다면 모든 현금을 쓸어 넣고 하루 24시간을 매분 매초 투자해서라도 도박을 해야 하는 것이다. 신분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비트코인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트코인이 아닌 다른 희망을 주면 될 것이다. 과연 그 다른 희망은 무엇일까.

이미 기성세대는 모든 카드를 써버린 것 같다. 열심히 노려하면 값진 대가가 주어질 것이라는 약속은 더 이상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부의 유무가 신분으로 고착화한 한국의 오늘은 자본주의 자체의 자기 해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비트코인 신드롬은 이런 위기를 드러내는 증상이다. 거래소 폐쇄나 세금 부과 정도 대책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극단적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은 필수이고 그 대안에 대한 고민들을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비트코인을 화폐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화폐로서 비트코인은 국가의 관리 대상이 되든지 사용을 금지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 또한 자본주의 경제학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화폐 자체가 반드시 국가와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다. 모러가 소개하는 섬에 사는 어떤 원시부족의 화폐 이야기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것이다.

이들 부족은 거대한 돌덩이를 맷돌처럼 깎아서 화폐로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함부로 훔쳐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아무나 돌덩이를 깎아서 맷돌을 만들 수는 없다. 일단 화폐를 만들 석재가 그 섬에 없기 때문에 다른 섬에서 가져와야하고, 돌을 깎는 기술도 아무나 배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돌덩이를 실고 오다가 풍랑이라도 만나서 바다에 가라앉더라도 화폐로서 가치를 상실하지 않는다. 실제의 화폐는 상징적 교환을 위한 매개일 뿐이다. 현대의 화폐 역시 비슷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지폐를 생각해보자. 영어로 지폐가 노트인 까닭은 국가은행의 증명서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만원 지폐는 한국은행이 지불을 보장하는 증명서인 셈이다. 요즘은 직접 지폐를 사용해서 결제하는 경우도 드물다. 금융이 발달할수록 화폐는 점점 상징적인 기능으로 바뀐다. 지폐라는 사물성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화폐의 상징성이 강화될수록 분실의 위험은 줄어들겠지만, 소멸의 위험은 커진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은행의 서버가 파괴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거래 기록을 복구할 수 없으면 지금 은행에 넣어놓은 화폐의 가치를 확인할 길이 사라질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개발된 것이 바로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을 뒀다는 비트코인이다.

거래를 상호 기록함으로써 데이터 소멸의 위험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이런 발상은 분명 한걸음 진보한 생각이다. 그러나 창조적인 생각은 자본주의 현실이라는 장애에 부딪혀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기술개발자들의 주장대로 이 같은 결과는 비트코인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비트코인 신드롬은 기술발전이 사회 모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 유시민의 말대로 이토록 급격하게 비트코인 신드롬이 폭발하도록 부추긴 작전세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 '작전세력'의 존재유무가 아니라, ‘요즘 세대가 비트코인을 희망으로 봤다는 그 사실 자체에 숨어 있다. 이 절망적인 희망과 다른 희망이 실현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는 한, 2, 3의 비트코인 신드롬은 계속 출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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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소년의노래

2018.01.28 16:26:17

http://begray.tistory.com/445

이 글과 논조가 상당히 비슷하네요.(4번) 본문글 좋게 읽으신 분들 같이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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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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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백인’의 타락에서 기인했다기보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가치’를 만들어낸 전후 자유주의가 쇠퇴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적인 배경으로 인해 트럼프 정권의 성공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미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는 미디어의 생리를 정확히 꿰뚫어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기층의 불만을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마침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경악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만큼 미국답지 않은 선택이라는 뜻일...

거기 '내가 있었다': 소셜미디어와 체감의 정치 file [1]

  • 2016-11-28
  • 조회 수 792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에게 문자는 인간을 게으르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문자로 무엇인가를 표기해놓으면 주객이 전도되어서 그 문자를 해석하느라 갑론을박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문자에 담긴 이데아를 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악명 높은 ‘시인추방론’과 일맥상통하는 논리인 셈이다.  그러나 인류 중에서 살아남은 우리 사피엔스는 플라톤의 우려와 달리 “돌에 정보를 새기는 능력” 덕분에 사회를 이루고 이렇게 지구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는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다. 문자가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이 문자야말로 괴테가...

100만 인파의 의미 file

  • 2016-11-16
  • 조회 수 4191

100만의 인파가 서울 광화문에 모여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서울이라는 장소성을 넘어선 ‘시민들’의 집결이었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된 집회는 인터넷은 물론 지상파 방송을 타고 생중계되었다. 누구는 봉기라고 했고, 누구는 거대한 콘서트 같다고도 했고, 누구는 엄청난 인파에도 폭력 없이 평화롭게 끝난 시위에서 대한민국의 힘을 느꼈다고도 했다. 여하튼 언론들은 100만이라는 숫자와 질서정연하게 끝난 비폭력 평화시위를 강조했다. 이렇게 100만 명의 인파가 청와대를 ‘포위’한 듯 연출한 보도사진이 지면을 장식했다. 장관은 SN...

트럼프는 무엇의 이름인가 file [2]

  • 2016-11-10
  • 조회 수 1782

도널드 트럼프가 미 대선에서 승리했다. 클린턴의 승리를 예상했던 이들에게 혼란과 절망을 안긴 결과였다. 클린턴 지지자였던 폴 크루그먼은 트위터에서 생뚱맞게 샌더스 때문에 클린턴이 패배했다고 개탄하다가 나오미 클라인에게 반박을 당했다.  이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지 않은가. 노무현 정부가 가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던 무렵에 벌어졌던 일들과 겹쳐지는 장면들이다.  오바마 정부는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노무현 정부와 비슷한 정부였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과 오바마는 대통령으로서 훌륭했을지 몰라도, 그...

최순실이라는 균열 file

  • 2016-10-27
  • 조회 수 811

박근혜 정부는 인기를 잃어버린 보수가 극우의 포퓰리즘을 포섭하면서 탄생한 정부이다. 이 정점에 박근혜라는 이름이 있다. 박근혜라는 이름은 특정한 개인의 호명이라기보다 보수와 극우의 간극을 지우는 '국민'의 대리물이었다. 그러나 꽉찬 것처럼 보이던 이 이름이 사실은 텅 비어 있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폭로되었다.  이처럼 너무도 견고해보였던 보수-극우 연합전선에 결정적인 균열을 초래한 원인은 최순실이라는 변수(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상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균열을 이끌어낸 최초의 계기가 이대 투쟁이었다는 사실이...

강남역 사건과 여성혐오 file [2]

  • 2016-05-26
  • 조회 수 4891

강남역에서 발생한 여성 살인 사건은 그 동안 한국 사회에 잠재해 있던 뇌관 하나를 터트렸다. 이 뇌관은 엄연히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 되었던 문제를 수면으로 띄워 올렸다. 바로 그것은 여성차별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 문제는 ‘여성혐오’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속내를 파고들어 가보면 더 복잡한 층위들을 감추고 있다는 판단이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은 처음에 ‘여혐’에 근거한 증오범죄인지 아닌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불타올랐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증오범죄보다는 조현병의 망상에 따른 ‘묻지마 살인’으...

"우리는 할리우드로 간다": "곡성", 어떤 '촌스러움'에 대한 혐오 file [13]

  • 2016-05-16
  • 조회 수 3818

* 이 글은 결정적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영화를 보신 분이나 아니면 보실 생각이 없는 분들에 한해 읽으시기 바랍니다.  <곡성>은 한 마디로 감독이 제대로 소재를 장악하지 못해서 우왕좌왕한 영화이다. 반짝이는 장면들도 없진 않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교과서적인 장르 영화 장면들의 오마주들이 지루하게 반복되었다. 감독 자신은 이 영화를 코미디에 장르물이고 상업영화라고 했지만, 코미디라기에는 너무 진지하고, 장르물이라기에는 너무 엉성하고, 상업영화라기에는 너무 예술적이다. 자기 장난감 자랑하는 아이 같은 ...

프로듀스 101, ‘국민’을 호명하는 어떤 방식 file [8]

  • 2016-04-19
  • 조회 수 1211

“당신의 한 표가 소녀들의 운명을 결정 한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듀스 101>이라는 케이블방송 프로그램의 홈페이지에 걸려 있는 문구이다. 소속사의 연습생을 ‘국민 투표’로 101명 선출해서 ‘드림팀’을 만들어낸다는 취지를 가진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국민 프로듀서”라는 언급이다. 101명의 연습생은 “국민 프로듀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게 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의 비밀은 이 “국민 프로듀서”라는 말에 감춰져 있다. 겉으로 보면 이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등장한 오디션 프로그램...

소녀상 file

  • 2016-02-11
  • 조회 수 1382

인간은 상징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20세기 구조주의 인류학자들은 이런 ‘상징 행위’의 의미에서 역사를 재구성하는 문화의 작동방식을 실증해서 보편이론을 만들고자 했다. 그만큼 상징은 보편적이고, 보편적인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물론 문화에 따라서 상징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길조를 뜻하는 까치는 서양의 상징체계에서 보면 흉조이다. 상징의 문제는 상징물이라는 구체적인 물질성을 획득하는 순간, 다른 차원을 얻기도 한다. 상징물은 분명 추상적인 상징성을 실현한 것이...

2015년 신경숙 표절 논쟁은 무엇이었나 file [6]

  • 2015-12-13
  • 조회 수 1524

표면상 '표절 논쟁'이었지만, 2015년에 일어난 '신경숙 표절 문제'는 두 가지 층위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신경숙의 표절 여부이고, 두 번째 문제는 신경숙 자체이다. 둘은 서로 다른 사안이지만, 이른바 '표절 논쟁'을 경과하면서 서로 겹쳐 보이게 되었다. 이런 착종이 곧 증상이라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이 증상은 여러 가지 진실을 말해준다. 메시지를 읽을 것이 아니라, 이 증상의 논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문제, 그러니까 신경숙의 표절 여부는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석연찮은 논리이긴 했지만, 본인도 ...

규범화의 덫: 국정화에서 아이유까지 file

  • 2015-11-13
  • 조회 수 714

요즘 한국 사회는 거의 아노미 상태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아노미의 원인은 다름 아닌 시장 민주주의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시장의 진리를 침해하지 않는 조건에서 모든 것은 평등하다는 이념이 시장 민주주의의 핵심일 것이다. 시장의 교환에서 모든 사물이 평등하다는 이런 전제는 교환 불가능한 것들, 가령 '무엇을 위해'라는 정치적 대의는 쓸모없거나 위험한 것으로 간주해서 폐기하거나 배제해버린다. 이 상태가 모든 가치를 상대주의에 빠트리게 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한 ‘세계 없음’의 상태가 이처럼 적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