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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치와 비정치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상읽기.

경희대에서 문화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해왔다. 아시아적 근대성을 통해 서구이론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인생론><마녀 프레임><이것이 문화비평이다><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무례한 복음> 등이 있다.

탄핵, 잔치는 끝났다

조회 수 14086 추천 수 0 2017.04.05 19: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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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끝내 탄핵되었다. 이로써 박근혜라는 이름 석 자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 당한 대통령으로 남게 되었다. 매주 20차에 걸쳐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던 광화문 촛불집회는 승리의 기억으로 각인된 것처럼 보인다. 2008년 촛불집회가 명박산성을 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이번 경우는 청와대 앞 100미터까지 진입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초창기에 폭력이니 비폭력이니 논쟁이 잠깐 일었지만, 청와대 바로 앞까지 촛불이 합법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자 유야무야되었다.

여기에서 어렵지 않게 2008년 촛불집회와 2017년 촛불집회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촛불집회가 청와대 앞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 무엇도 아닌 사법당국의 허가 때문이었다. 이 허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허가는 많은 것을 내포하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의 법리가 876월 항쟁 이후의 합의, 이른바 87체제를 부정하고 그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87체제의 기준으로 보면 최순실 게이트는 87체제 이전의 부정부패를 다시 현재로 불러들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사건은 2008년의 경우와 다르다는 판단이 사법당국에게 있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미 의혹 단계에서 사법당국은 중대한 대통령의 위헌 혐의를 인정했다고 할 수 있다. 탄핵열차는 그때부터 궤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의지와 법의 판정이 일치를 이룬 결과가 탄핵이었던 셈이다. 루소적인 일반 의지는 대통령과 그 지지세력 4%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공유한 가치로 표현되었다.

과연 그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그 가치는 탄핵을 인용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 잘 명시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이유를 들어서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탄핵은 시장질서의 교란이라는 경제적 이유에서 정당화되었다. 시장의 질서를 감시 감독해야할 정부가 그 질서를 위반했고, 그 정부의 수장이라는 대통령이 법의 정신에 근거해서 혼란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탄핵은 옳은 것으로 판결 났던 것이다.

이른바 법의 정의라는 것은 심각한 기울기를 교정하는 균형추이다. 탄핵 과정에서 오히려 법의 저울을 교란하고자 했던 당사자는 과거처럼 좌파 불순세력이 아니라 계엄령을 주장하고 군대의 무력을 요청한 친박 세력이었다. 시인 이영진은 19876월 항쟁이 끝난 뒤에 쓴 시에서 계엄군은 끝내 오지 않았다고 표현했는데, 이 상황은 2017년에 역전된 것처럼 보인다.  ‘계엄군은 국가폭력의 상징이다. ‘친박 극우가 간절히 원했던 국가폭력은 일어나지 않았다. 국가의 출현이라는 예외상태는 도래하지 않았다. 반대로 좌파 폭력 집회를 간절히 원했던 당사자들이 폭력 집회를 주도하게 되었다. 탄핵반대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희생자가 발생하고 주동자는 경찰에 소환되는 역전이 발생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광화문 집회에 모인 시민들이 아니라 그에 반대하면서 태극기를 든 이들이 국가의 출현을 요청했다. 이들이 간절히 원한 것은 계엄령군대로 지칭되는 절대적 폭력이었다. 이 폭력은 법의 정지를 의미한다. 법을 정지시키고 다른 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절대적 폭력을 이들은 갈구했던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박근혜라는 기표를 욕망하는 과잉의 주체들이다. 이들의 슬로건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박근혜를 지키자였다. 이 발언은 곧 증상을 지키자는 뜻이다. 이 증상은 실정법을 초월한 정언명령이다. 그러나 이 정언명령은 시장주의를 근간으로 삼는 자본주의에서 금지된 것이다. 이들에게 박근혜는 이 금지의 주박을 풀어줄 마법사였을 것이다.

박근혜라는 기표가 제공하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들의 정치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들의 조국을 돌려받는 것이다. 조국은 잘 나갔던 박정희 시절의 복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런 열망을 박정희 향수로 간단히 치환해버리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향수는 기본적으로 상실의 애도를 전제한다. 그러나 이들이 원하는 박정희 시절의 복원은 이런 애도를 누락하고 있다. 이들은 박정희의 부활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누렸던 그 즐거움을 다시 누리길 원한다.

마치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이 어게인 2002을 외치는 처럼, 이들 역시 어게인 1961을 외치는 것이다. 이들이 다시 복원하고자 원하는 것은 민주화를 통해 훼손된 박정희 시절의 가치이다. 그 가치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바로 법을 정지시키는 권력, 독재자이다. 이 독재를 칼 슈미트는 법의 안과 밖에 동시에 존재하면서 헌법의 효력을 정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주권자(sovereign)라고 보았다. 법의 밖에 있는 주권자를 부정하고 법이 곧 주권이라고 주장하는 법철학의 입장이 바로 네덜란드의 크라베에서 시작해 오스트리아 켈젠으로 이어져 완성된 법치국가의 원칙이다. 이런 켈젠 법철학의 구현체인 한국의 헌법재판소 역시 헌법을 주권의 재현으로 보았기 때문에 법에 따라 선출되었음에도 법에 구속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대통령을 국정농단을 일삼고 헌법의 원칙을 위배하는 범법자로 규정했던 것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법이 곧 주권이라는 헌법의 원칙은 오늘에 이르러 법의 밖에 존재하는 주권자를 제거하지만, 어제는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던 그 원칙이기도 하다. 상황 역전은 분명 극적으로 보이지만, ‘법의 저울이 지향하는 균형의 중립성을 생각한다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닌 것이다. 법이 말하는 정의(justice)는 바로 공정한 것(just)이다. 이 공정한 것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속성을 암시한다. 법은 합리성으로 재현할 수 없는 과잉을 제거하는 장치이다. 이 법의 중립성을 훼손하고자 했던 당사자가 아이러니하게도 평소에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박근혜라는 정치인을 대통령의 자리까지 이르게 만든 것이 이렇게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태도 때문이었다. 그러나 집권 이후에 이런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급기야 최순실 게이트로 전모를 드러냈다. 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야말로 어떤 과잉의 기표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사례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과잉은 다른 무엇도 아닌 초법적인 주권자의 복원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이런 과잉의 열망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라는 아이돌을 둘러싼 팬덤이 광신적일지라도 합리성을 자임하는 보수의 지지를 획득했다는 것이 문제다. 보수는 왜 이 극우의 과잉을 지지했던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독재는 민주주의보다 높은 효율성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후보들은 다르지만 공약에서 변별성을 느낄 수 없는 조건이라면 유권자들 입장에서 선택의 기준은 공약을 누가 더 추진력 있게 실행할 수 있는가일 것이다. 2012년의 박근혜는 분명 불합리한 규제를 철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결과적으로 최순실 게이트로 이어진 대기업들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허니문은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대기업들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통해 과거 박정희 시절의 특혜 관계를 기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정책들은 이런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전혀 효율적이지 않았고 과단성 있는 주권자로 새로운 법을 세워야할 대통령은 칩거한 채 나타나지 않았다.

박근혜라는 개인의 무능도 이번 탄핵에서 하나의 변수였다고 할 수 있는데, 민주화 세력에게 홀대 받는다고 여기던 산업화 세대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줄 알았던 대통령은 사실상 자신과 최측근의 이해관계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보수의 지지가 소멸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반대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지지했던 이들에게도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민주화 이후에 갑자기 대한민국을 망친 주범으로 전락해버린 산업화 세대, 그 중에서도 합리적 보수로 재현되지 않는 냉전 극우세력의 인정투쟁이었다. 이 민주화의 내용이 결과적으로 소비자 민주주의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들은 박근혜라는 극우의 아이돌을 내세움으로써 자신들의 지분을 인정받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가 대세를 이룬 소비자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조건에서 구체제의 가치관은 촌스럽고 낡은 것으로 간단하게 치부되었다. 이들에게 자유주의는 위험하고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혼돈을 극복할 방법으로 이들이 다시 들고 나온 것이 바로 냉전시대의 대적관이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단순히 과거 냉전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복각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역설적으로 이들이 내세운 논리는 애국이었다.

민주화를 혼란으로 보고, 국가에 대한 충성을 법의 우위에 두는 발상은 오늘날 극우주의의 전형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들은 탄핵 반대를 이유로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들었다. ‘애국을 외치면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흔드는 것은 분명 모순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애국의 내용은 민족보다도 국가에 더 방점을 찍고 있다. 민족은 정치적 단위이다. 소녀상 논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민족은 국가로 포섭되지 않는 정치를 의미한다. 소녀상은 민족과 국가가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국가는 합의해주었는데 그 국가의 구성원이 동의하지 않는 것이면, 국가는 도대체 무엇인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 민족주의는 바로 이 질문을 던지기 위한 선험성이다. 국가보다 민족이 우선했다는 인식인 것이다. 이때 민족이란 실질적으로 민족-국가의 구성원 인민의 다른 이름이고, 민족주의는 루소적 일반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태극기와 성조기의 조합은 이런 민족주의를 거부하는 상징행위이다. 이들은 국가보다 우선하는 민족을 논리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 국가가 법보다 위에 존재해야하는데, 민족이 그 국가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칸트의 말처럼, 근대적 계몽의 기획이 궁극적으로 코스모폴리타니즘으로 귀결하는 것이라면, ‘친박 극우가 긍정하는 근대화 역시 최종 목표는 민족-국가의 완성에 그치는 것이 아닐 터이다. 이들 역시 국제적 관계에서 애국을 위치시키고자 한다. 이런 애국을 국제적 차원에서 연결해주는 것이 바로 반공주의이다. 이들에게 경험적인 국제 공조의 기억은 전후 체제의 반공주의 연대라고 볼 수 있다. 한 인터뷰에서 태극기 집회주동자 중 한 명은 미국이 좌파세력에게 차기 정권을 넘기려고 해서 성조기를 흔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이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들은 미국의 오판, 또는 선택을 교정하고 변화시킬 요량으로 성조기를 태극기와 함께 흔들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성조기는 태극기의 존재 이유이면서 동시에 태극기의 법을 다시 세울 수 있게 해주는 대타자이다. 박근혜라는 상징 기표를 통해 이들이 원했던 것은 민주주의를 조장하는 87체제의 법을 정지시키고 민주화 이전으로 모든 것을 돌려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탄핵은 역사의 역행이 불가능하다는 진보의 비가역성을 보여주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선출은 독재자의 딸조차도 민주적 방식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아서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극단적인 유물론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진적이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너무도 기계처럼 잘 작동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알랭 바디우를 변주해서 말하자면, 이 민주주의의 기계에서 누락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왜 민주주의를 하는가라는 기원적 질문이다. 이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민주화 과정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간 진리의 주체들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번 탄핵의 과정을 시민 혁명이라고 명명하고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은 혁명이었다기보다 87체제를 지켜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이들을 광화문에 불러낸 것은 87체제의 논리였다. 이 논리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기표를 통해 구성된 것이다.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이 논리는 한국 사회의 공리를 구성하게 되었다. 80년대를 주도했던 반자본주의적 급진주의 역시 이 공리에 따르면 제거되어야할 과잉이다.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한 그 법이 갑자기 진보적으로 바뀌어서 이번에 대통령 탄핵을 인용한 것이 아니다. 과잉을 제거하고 주권의 재현으로서 법을 정립해야한다는 원칙에 의거해서 판단한다면, 둘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은 87체제의 합의를 무효화하고 민주화 이전으로 가치체계로 회귀하려다가 체제의 반발력에 밀려 좌초했다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이 체제의 반발력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역량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고, 민주화 이후 한국이라는 국가의 구성원이 이르게 된 정치적 마지노선이라는 사실이 이번 탄핵으로 확인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탄핵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돌이켜보면,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은 법을 전복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법을 지키라고 요구한 것이다. 누구도 법을 넘어서지 않았다는 점에서 예외상태는 없었다. 법의 경계에서 시민들은 촛불을 밝히고 축제를 벌였다. 광화문 집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핵심인 수의 정치를 보여주는 환등상이었다. 이 환등상은 군중이라는 스크린이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군중이 모이는지 그 사실이 중요했다. 온갖 과학적 방법론이 동원되어서 실제로 광화문을 오간 군중의 수가 계산되었다. 정치를 과학의 토대 위에 올려놓는 것이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목적이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면, 군중의 수에 대한 집착은 별스러운 일이 아니다. 여론조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지율 4%를 보도하는 뉴스의 시각효과는 엄청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무엇보다도 소수에 대한 다수의 지배를 전제한다. 플라톤이 비웃었듯이, 실제로 그 지배가 다수의 권리를 위임 받은 과두정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이 대원칙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이상적 합의이다. 이 이상적 합의와 현실 정치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불일치가 결과적으로 광화문 촛불집회 같은 분출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이렇게 분출된 인민의 일반의지를 과잉의 정치로 간주하는 자유주의적 공리로 인해 결과적으로 이 군중의 에너지는 그람시가 이야기하는 변형주의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변형주의는 과두정 내의 자리 바꾸기를 통해 이런 과잉의 정치를 무마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수의 원리에 따라 셈해진 것들을 재현한 총체가 바로 국가라고 한다면, 광화문 촛불집회와 같은 분출은 그 셈에 포함되지 않은 공백의 귀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공백은 수로 고정할 수 없는 정치적 에너지의 방황을 의미한다. 이 정치적 에너지가 광화문 촛불집회를 계속 이어지게 만든 것이다. 다수의 일원으로 포함되기를 원하는 시민들이 너도 나도 광화문으로 모인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런 진술은 어폐가 있다. ‘시민들이 광화문에 모였다기보다, 광화문에 모이는 순간, ‘시민들로 인준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옳다. 평소에 시민들로 불리지 못했던 이들이 스스로 시민권을 획득하는 영토가 바로 광화문이었다. 이 영토에서 시민들은 각자의 이해관계로 만들어진 각자의 고원에서 내려와서 일시적이나마 새로운 평등주의를 경험할 수 있다. 이 경험은 분명 소중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탄핵을 촉구하는 광화문 촛불집회는 분명 평등의 축제였다. 그러나 이 평등의 축제는 과잉의 정치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탈정치적이고 반정치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속성 때문에 이 축제는 친박 극우또한 배제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의견으로 나눠진 부분집합들은 탄핵의 과정에서 군중의 환등상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그 환등상이 사라지고 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환등상은 꺼지고 남는 것은 선거이다. 이 선거는 스포츠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스포츠가 공정한 경쟁에 기초한다는 주장은 이상일 뿐이다. 실제로 스포츠의 목적은 흥행이다. 소비자 민주주의에서 선거라는 스포츠의 절대 과제는 이것이다. 선명한 대결구도를 제대로 만들어낼수록 선거는 성공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존재는 이미 유명무실해진 진보와 보수의 대립을 다시 불러냈다고 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박근혜 정부야말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새삼 확인시켜준 셈이다. 블랙리스트가 대표적이다. 아군과 적군을 확실히 구별하고자 했던 이들의 시도는 적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라는 원칙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있을 장미 대선은 이렇게 복귀한 정치의 궤도 위를 달려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하게도 이 궤도 위를 달리는 것은 혁명열차가 아니다. 이 열차가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탄핵도 끝났고, 잔치도 끝났다

* <르몽드디플로>에 게재된 원고를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댓글 '6'

기적

2017.04.06 11:35:52

당신이 거창하게 늘어놓은 말들은 아무런 진실이 담겨있지 않다 나는 박근혜 지지자 아니다 다만 언론 검찰 정치가 하나가 되어 편파적인 보도와 조작응 일삼고 특검의 정치적 놀음으로 국민들을 개돼지로 생각하고 우롱한 것에 분노하여 태극기를 들었을 뿐이다 당신은 청문회의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는가 당신은 헌법재판소의 상황을 모두 지켜보았는가 나는 판단의 오류에 빠지지 않기위해 밤을 새며 그 과정들을 몇날 몇일을 보았었다 결론은 고영태 일당의 드러운 음모였고 이를 이용하는 여야당의 정치 음모였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다 그런데 어렵지않게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수 있었다 증언들의 증인 특검검사의 발언 변호인단들의 변호 재판관들의 진행 자세 모두 알 수 있다 이 나라 법치와 정의가 무너진 것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닐것이다 먹고사는것에 바빠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던 것에 대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장미빛 대선..? 한 나라의 대통령이 파면당했는데 축제할 마음이 나는가? 미국의 닉슨 대통령도 파면당했지만 1년의 시간이 걸렸고 그 어느누구도 기뻐하지 않고 슬퍼했다 좋다 이제 윤리적 기준이 생겼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들이댔던 그 잣대로 과거와 미래의 정치 법 언론을 심판하자

영국날씨좋냐

2017.04.08 01:36:43

글쓴이께서는 광장의 열정이 법을 넘어가려는 것이 아니라 법의 충실한 작동을 요청하는 것에 '불과' 했다는 뉘앙스를 자주 풍겨요. 법을 넘어가는 혁명이 도래하기를 바라는 것 같은 느낌을 풍깁니다.


그런 걸 원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제가 받은 그런 인상이 헛것이 아니라면...
그 이유가 궁금한데요.

소년의노래

2017.04.08 16:59:47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자는 얘기가 아닐지요?

영국날씨좋냐

2017.04.08 17:59:26

그니까 뭘 향한 가능성이냔 거죠

소년의노래

2017.04.09 00:51:28

법을 넘어서자는 것이 꼭 법을 없애자는 주장도 아닐 테고 현재의 한계를 넘어 보다 더 많은 이들을 포섭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자는 뜻일 수도 있는 것일 테고요. 하나마나한 일반론적 주장이라고 보고 딱 그만큼의 가치를 지닌 글인 셈이죠. 너무 쏘아붙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영국날씨좋냐

2017.04.23 05:40:20

소년의노래님도 이택광이 아니기 때문에 "~것일 수도 있을 테고요" 라고 추정하고 계시는데, 왜 이택광님에게 던져진 질문에 애써 추측까지 해 가면서 대신 대답을 하시는 건가요?

하나마나한 일반론적 주장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애초에 뭘 주장하는지가 안 보여서 질문을 한 거예요. (소년의노래님 역시도 추측만 하실 뿐이면서 이번에는 어떻게 "일반적인 주장이다" 라고 하실 수 있는 건지 좀 미스테리어스하네요;) 뭔가를 추구하는 것 처럼 보이는데,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으니까요.

왜 쏘아붙인다는 인상을 받으셨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저는 읽다가 생긴 의문이 있어 질문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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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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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비트코인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하다. 빌 모러가 2015년 <어떻게 결제하시겠습니까?>라는 책을 쓸 때만 해도 비트코인은 기술발전이 가져올 화폐의 미래 중 하나로 취급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암호화폐라는 다소 생소한 표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비트코인은 갑자기 ‘투기’의 대상으로 비난 받게 되었다. 유시민 같은 이들이 앞장서서 비트코인 신드롬을 ‘광풍’으로 진단하면서 투기를 조장하는 ‘작전세력들’을 비난했다. 이런 비난은 비트코인에 대한 다소 과도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지만, 유시민 같은 이들의 주장을 문제 삼기 위해...

자코메티 file

  • 2017-12-09
  • 조회 수 1592

“나는 예술에도 관심 있지만, 본능적으로 진리에 더 관심이 많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말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작업을 하면 할수록 더 다르게 본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진리’는 그러므로 ’다르게 보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다. 아니나 다를까 자코메티는 ”미술은 보기의 일종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예술은 어떤 신비감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 얼마 전 도쿄에 가서 봤던 자코메티 전은 띄엄띄엄 마주쳤던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을 일별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 전시를 둘러보면서 종종 ‘현대인의 고독’을 표...

청문회와 '문자폭탄' file

  • 2017-07-20
  • 조회 수 1153

최근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알렌카 주판치치는 자신의 짧은 에세이에서 이탈로 스베보의 소설 <제노의 양심>에 등장하는 애연가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 애연가는 언제든지 담배를 끊을 수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계속 담배를 피운다. 애연가의 ‘양심’에 비추어본다면, “담배를 끊는다”는 그의 진술은 담배를 끊지 못하고 계속 피우는 행동에 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애연가는 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모순적인 진술과 행동을 지속하는 것일까. 달리 묻자면 이 애연가는 왜 서로 충돌하는 것이 빤한 자신의 진술과 행동...

탄핵, 잔치는 끝났다 file [6]

  • 2017-04-05
  • 조회 수 14086

박근혜 대통령이 끝내 탄핵되었다. 이로써 박근혜라는 이름 석 자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 당한 대통령으로 남게 되었다. 매주 20차에 걸쳐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던 광화문 촛불집회는 승리의 기억으로 각인된 것처럼 보인다. 2008년 촛불집회가 ‘명박산성’을 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이번 경우는 청와대 앞 100미터까지 진입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초창기에 폭력이니 비폭력이니 논쟁이 잠깐 일었지만, 청와대 바로 앞까지 촛불이 ‘합법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자 유야무야되었다. 여기에서 어렵지 않게 2008년 촛불집회와 2017년 ...

한병철과 헬조선 file [3]

  • 2017-03-21
  • 조회 수 4287

한병철 교수의 특강이 모종의 '퍼포먼스'였던 모양이다. (▶참고 글) 이 문제에 대해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린 평가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철학자의 객기" 정도였는데, 이를 두고 벌어지는 풍경이 자못 심각해서 짧게 몇 마디 보태고자 한다. 참석한 관객들의 '증언'과 이후 알려진 정보들에 따르면, 저자는 출판사를 철저히 무시하고 본인의 강연을 그런 식으로 진행하고자 했던 것 같다. 피아노를 미리 주문해놓은 것을 봐도 무엇인가 특별한 계획이 그에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결과가 성공적이었다기보다는 일종의 해프닝...

차기 대통령의 딜레마: '큰 정치'의 전망을 기대한다 file [2]

  • 2017-02-05
  • 조회 수 6027

앞으로 우리가 맞닥뜨려야할 시기는 격동이라는 한 단어로 담아내기에 너무도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전후 세계 질서를 구축했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퇴조하고 보호무역주의로 대표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태동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제일주의’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트럼프라는 개인이 원인 제공자처럼 비쳐지고 있지만, 사실상 전후 세계 질서가 표방했던 개방주의는 2008년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점차 폐기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이야말로 개방주의를 기치로 내건 전후 세계 질서에 가장 잘 적응해온 아시...

트럼프와 촛불, 두 개의 공화국 file [3]

  • 2017-01-30
  • 조회 수 1439

“트럼프도 박근혜처럼 임기 중에 탄핵당했으면 좋겠다.” 힐러리 지지자였던 미국의 지인이 내게 보낸 메시지이다. 그만큼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의 당선은 많은 힐러리 지지자들에게 충격을 안긴 사건이었다. 트럼프의 당선이 한반도의 정세에 미칠 영향도 만만치 않을 것이지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역시 트럼프 당선 못지않게 극적인 것이다.  이 상황은 어떻게 극적인가? 2012년을 상기해보자. 박근혜 정부의 출현은 보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상화’를 의미했다. 이 ‘정상화’를 다른 용어로 번역하면 ‘정치...

이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트럼프 현상을 다시 생각하자 [2]

  • 2016-12-25
  • 조회 수 1826

트럼프가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백인’의 타락에서 기인했다기보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가치’를 만들어낸 전후 자유주의가 쇠퇴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조적인 배경으로 인해 트럼프 정권의 성공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미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는 미디어의 생리를 정확히 꿰뚫어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기층의 불만을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마침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경악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만큼 미국답지 않은 선택이라는 뜻일...

거기 '내가 있었다': 소셜미디어와 체감의 정치 file [1]

  • 2016-11-28
  • 조회 수 843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에게 문자는 인간을 게으르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문자로 무엇인가를 표기해놓으면 주객이 전도되어서 그 문자를 해석하느라 갑론을박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문자에 담긴 이데아를 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악명 높은 ‘시인추방론’과 일맥상통하는 논리인 셈이다.  그러나 인류 중에서 살아남은 우리 사피엔스는 플라톤의 우려와 달리 “돌에 정보를 새기는 능력” 덕분에 사회를 이루고 이렇게 지구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는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다. 문자가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이 문자야말로 괴테가...

100만 인파의 의미 file

  • 2016-11-16
  • 조회 수 4241

100만의 인파가 서울 광화문에 모여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서울이라는 장소성을 넘어선 ‘시민들’의 집결이었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된 집회는 인터넷은 물론 지상파 방송을 타고 생중계되었다. 누구는 봉기라고 했고, 누구는 거대한 콘서트 같다고도 했고, 누구는 엄청난 인파에도 폭력 없이 평화롭게 끝난 시위에서 대한민국의 힘을 느꼈다고도 했다. 여하튼 언론들은 100만이라는 숫자와 질서정연하게 끝난 비폭력 평화시위를 강조했다. 이렇게 100만 명의 인파가 청와대를 ‘포위’한 듯 연출한 보도사진이 지면을 장식했다. 장관은 SN...

트럼프는 무엇의 이름인가 file [2]

  • 2016-11-10
  • 조회 수 1841

도널드 트럼프가 미 대선에서 승리했다. 클린턴의 승리를 예상했던 이들에게 혼란과 절망을 안긴 결과였다. 클린턴 지지자였던 폴 크루그먼은 트위터에서 생뚱맞게 샌더스 때문에 클린턴이 패배했다고 개탄하다가 나오미 클라인에게 반박을 당했다.  이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지 않은가. 노무현 정부가 가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던 무렵에 벌어졌던 일들과 겹쳐지는 장면들이다.  오바마 정부는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노무현 정부와 비슷한 정부였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과 오바마는 대통령으로서 훌륭했을지 몰라도, 그...

최순실이라는 균열 file

  • 2016-10-27
  • 조회 수 865

박근혜 정부는 인기를 잃어버린 보수가 극우의 포퓰리즘을 포섭하면서 탄생한 정부이다. 이 정점에 박근혜라는 이름이 있다. 박근혜라는 이름은 특정한 개인의 호명이라기보다 보수와 극우의 간극을 지우는 '국민'의 대리물이었다. 그러나 꽉찬 것처럼 보이던 이 이름이 사실은 텅 비어 있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폭로되었다.  이처럼 너무도 견고해보였던 보수-극우 연합전선에 결정적인 균열을 초래한 원인은 최순실이라는 변수(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상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균열을 이끌어낸 최초의 계기가 이대 투쟁이었다는 사실이...

강남역 사건과 여성혐오 file [2]

  • 2016-05-26
  • 조회 수 4982

강남역에서 발생한 여성 살인 사건은 그 동안 한국 사회에 잠재해 있던 뇌관 하나를 터트렸다. 이 뇌관은 엄연히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 되었던 문제를 수면으로 띄워 올렸다. 바로 그것은 여성차별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 문제는 ‘여성혐오’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속내를 파고들어 가보면 더 복잡한 층위들을 감추고 있다는 판단이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은 처음에 ‘여혐’에 근거한 증오범죄인지 아닌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불타올랐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증오범죄보다는 조현병의 망상에 따른 ‘묻지마 살인’으...

"우리는 할리우드로 간다": "곡성", 어떤 '촌스러움'에 대한 혐오 file [14]

  • 2016-05-16
  • 조회 수 3932

* 이 글은 결정적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영화를 보신 분이나 아니면 보실 생각이 없는 분들에 한해 읽으시기 바랍니다.  <곡성>은 한 마디로 감독이 제대로 소재를 장악하지 못해서 우왕좌왕한 영화이다. 반짝이는 장면들도 없진 않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교과서적인 장르 영화 장면들의 오마주들이 지루하게 반복되었다. 감독 자신은 이 영화를 코미디에 장르물이고 상업영화라고 했지만, 코미디라기에는 너무 진지하고, 장르물이라기에는 너무 엉성하고, 상업영화라기에는 너무 예술적이다. 자기 장난감 자랑하는 아이 같은 ...

프로듀스 101, ‘국민’을 호명하는 어떤 방식 file [8]

  • 2016-04-19
  • 조회 수 1303

“당신의 한 표가 소녀들의 운명을 결정 한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듀스 101>이라는 케이블방송 프로그램의 홈페이지에 걸려 있는 문구이다. 소속사의 연습생을 ‘국민 투표’로 101명 선출해서 ‘드림팀’을 만들어낸다는 취지를 가진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국민 프로듀서”라는 언급이다. 101명의 연습생은 “국민 프로듀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게 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의 비밀은 이 “국민 프로듀서”라는 말에 감춰져 있다. 겉으로 보면 이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등장한 오디션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