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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치와 비정치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라는 하나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세상읽기.

경희대에서 문화학을 가르치고 다양한 매체에서 문화비평을 수행해왔다. 아시아적 근대성을 통해 서구이론의 문제의식을 재구성하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박근혜는 무엇의 이름인가><인생론><마녀 프레임><이것이 문화비평이다><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무례한 복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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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에게 문자는 인간을 게으르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문자로 무엇인가를 표기해놓으면 주객이 전도되어서 그 문자를 해석하느라 갑론을박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문자에 담긴 이데아를 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악명 높은 ‘시인추방론’과 일맥상통하는 논리인 셈이다.

 그러나 인류 중에서 살아남은 우리 사피엔스는 플라톤의 우려와 달리 “돌에 정보를 새기는 능력” 덕분에 사회를 이루고 이렇게 지구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는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다. 문자가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이 문자야말로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묘사한 “사물에 들러붙은 빛”이다. 사물은 사물로 그냥 존재할 때,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지만, 이렇게 “빛”을 만나면 의미를 획득한다. 이 “빛”은 지식이자 정보이다.

 문자는 무엇인가 전달하고자하는 의사소통이 완벽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플라톤이 문자를 힐난한 까닭도 그 때문이다. 우리가 나누는 의사소통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문자는 증명한다. 데리다 식으로 말하자면, 문자는 결국 발화와 기록 사이에 놓여 있는 메워지지 않는 간극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문자는 존재론적으로 우리를 규정한다. 불완전한 흔적을 덮는 딱지로서 문자는 우리의 존재에 기입되어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는 이른바 ‘소셜미디어’로 불린다. 미디어가 사회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런 규정은 다소 동어반복이다. 이런 말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된다는점에서 ‘소셜’이라는 의미가 과거와 다르게 쓰이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수도 있겠다.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것’이라고 여겨졌던 ‘소셜’이라는 단어가 ‘미디어’와 결합을 하면,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소셜’은 나눔(socius)에 어원을 두고 있는 ‘사회적인 것’이라기보다 관계에 더 방점을 찍는 ‘사귀는 것’이라는 의미에 가까워진다.

 이런 차이는 작은 것이지만, 큰 격차를 만든다. 사회가 나눈 것, 또는 공통적인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 ‘소셜미디어’는 나눈 것보다도 나누어지지 않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개인은 나누어지지 않는 것(individual)이다. ‘소셜미디어’의 관계는 이런 의미에서 개인의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소셜’은 더 이상 공통적인 것을 나누어 가진 존재의 결합이라기보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나누어지지 않은 것들의 관계망이다.

 아쉬움은 여기에서 등장한다. 무엇인가 자신의 몫을 주장할 때, ‘소셜미디어’는 신속하지만, 뭉쳐지지 않는다. 왜 그런가. ‘소셜미디어’는 끝없이 나누어지지 않는 것을 통해 모든 것을 나누기 때문이다. 친구를 신청하고, 팔로워를 추가하고, 블록하고 차단하고, 자신의 의사에 맞는 의견만을 공유하는 것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 ‘소셜미디어’이다. 이런 의미에서 억견(doxa)을 생산하는 기계이기도 하다.

 억견은 감각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지식으로 교환되지 않는 입장이다. 감각은 개별적이고 파편적인 것이다. 이런 억견을 나눈다는 점에서 ‘소셜미디어’는 이미 같은 입장을 전제한다. 나눌 수 없는 억견을 나누는 방법이다. 같은 입장이 아닐 경우 배제하면 그만이다. 따라서 정치적 입장을 강화하기에 ‘소셜미디어’만한 것은 없다. 같은 입장을 확인하고 강화하기에 편리한 기술이 바로 사회관계망서비스이다.

 그러나 정치는 여기에 만족할 수 없다. 정치의 목적은 확장성에 있다. 자신의 의견을 확장하는 것이 정치이기도 하다. 최첨단 사회관계망서비스의 시대에 대자보 손 글씨가 출몰하는 것은 이런 까닭일 테다. 물론 요즘 목격하는 대자보라는 것이 과거의 대자보와 같은 성격은 아니다. 과거 대자보라는 것은 ‘언로’가 독재정권에 장악되어 있던 시절에 택하던 궁여지책이었다. 대학생이 쓴 대자보가 기성언론보다 더 신뢰를 받던 시절에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대자보의 귀환이 과거의 회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역설적으로 구매체가 신매체를 만나서 다른 매체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접근성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대자보는 과거의 대자보에 비길 수 없다. 대자보를 벽에 붙이고 그것을 본 이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의 대자보는 매체 자체라기보다 매체의 대상에 가깝다.

 여기에서 대자보는 문자의 본래성을 상징한다. ‘소셜미디어’에 누락되어 있는 문자성이 대자보를 통해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문자가 끊임없이 텍스트에 보충되어야하는 것이듯이, 대자보도 사회관계망 서비스의 결여를 메워야한다. 필요한 것은 손으로 쓰인 글씨이다. 여기에서 대자보는 잃어버린 공예적 열망을 의미한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록한 문자에 등장하는 특정 시기, 더 정확히 말하면 87체제의 원형성이 바로 대자보이다. 이 대자보는 실체적이라기보다 민주주의적 문화에 대한 기억으로서 각인되어 있다.

 매주 100만이 넘는 인파가 광화문에 모여서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참여한 이들은 저마다 자기 사진들을 찍어서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렸다. 이들은 대체로 “역사의 현장에 함께 함으로써 자녀들에게 민주주의 교육을 시키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마치 1000만 관객 영화를 만들어내 듯, 우리는 그렇게 100만 인파 시위를 만들고자 했고, 그것을 ‘역사적 현장’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 경험을 전수하는 것이 이를테면 후대에 가르칠 ‘민주주의 교육’인 셈이다.

 대자보에 대한 애착도 이와 비슷하다. 구체적인 장소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대자보는 장소의 이동을 전제하는 ‘소셜미디어’의 미학과 다르다. 이 ‘색다른’ 미학적 실천은 본래적인 체감의 장소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기 위한 제스처이기도 한 것이다. 앞으로 아무리 매체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이런 장소성 자체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따라서 매체의 유동성이 빨라질수록 더 강렬하게 구체적 장소성을 추구하는 ‘노스탤지어 미학’은 출현하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대자보 문화는 민주주의라는 이름과 함께 지속적으로 되풀이될 것이라고 본다.


댓글 '1'

김지나

2017.01.04 13:32:00

어려운 글 잘 읽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이 글응일반인들이 읽기에 너무 추상적이고 난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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