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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관습, 인식의 재구성을 위하여.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했으며 예술과 정치 사이를 오가며 글을 씁니다. 주로 여성과 성소수자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마지막 상영

조회 수 416 추천 수 0 2016.03.24 23: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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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83045


그 이름이라도 한 번 불러줘야 도리일 것 같다. ‘신영극장’. 2007년 폐관 후 2012년 다시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으로 문을 열였지만 나에게는 그냥 ‘신영극장’이다. 강릉에 있는 신영극장이 지난 2월 말에 ‘마지막 상영’을 하고 휴관을 했다고 한다. 너무 안타까운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이렇게 안타까움을 표현이라도 해야겠다. 나의 청소년기 극장 중 하나다. 극장은 신영극장, 서점은 단골서점, 강릉의 상징적인 장소였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이 공간들은 그만큼 많은 이들의 기억을 품고 또 생산하는 장소였다. 지금은 모두 과거형이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동시상영 극장을 이용해 청소년이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나는 청소년기에 꽤 보러 다녔다. 반면 강릉 시내 한복판에 있어 보는 눈이 많은 신영극장에는 비교적 ‘젊잖은’ 영화를 보러 갔다. 지금 생각나는 영화들은 일단 <레옹>, <시티 오브 조이>, <폭풍의 언덕>, <어퓨굿맨> 등등.... (음.... 적어놓고 보니 또 청소년관람불가 영화가 있네.)

어떤 극장이든 나에게는 어떤 학교보다 100배는 좋은 곳이었다. 학교에서는 이미 다 아는 세계가 반복되고 있었다면 극장에는 매번 다른 세계가 있었으니까. 학교가 지겨움이라면 극장은 기다림이었다. <퐁네프의 연인들>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강렬하고 신선한 충격은 분명히 내 몸 어딘가에 새겨져있다고 믿는다.

지금의 신영극장은 90년대 초에 (아마도 눈때문에) 극장이 무너지면서 다시 지은 건물이다. 당시에는 나름 ‘삐까번쩍’해 보이는 건물이었다. 지금과는 모습이 확연히 다른, 누런 벽으로 이어진 옛날 건물이 내 기억 속에 아직 남아있다. 신영극장은 강릉 사람들에게 만남의 장소이며 버스를 갈아타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정확히는 ‘신영극장 앞’. 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 ‘신영극장 앞’에서 수 많은 약속이 이루어졌다.

강릉에서 가장 인간들이 북적거리는 장소이니만큼 극장 주변에는 대학생들이 붙여놓은 행사 포스터가 더덕더덕 붙어 있고 뜯어진 흔적 위해 또 새로운 무언가가 붙어있기도 했다. 어느 날 하교길에 버스를 갈아타려고 극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시선을 끄는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스치고 지나갈 담벼락 구석에 a6크기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사람의 상반신이 보였는데 상당히 분위기가 이상했다. 몸의 색깔이 푸르고 붉어서 한참을 보았고 작은 글씨로 적혀 있는 내용을 읽게 되었다. 시위 중 구타당해 사망한 대학생의 몸 일부가 찍힌 사진이 ‘몰래’ 붙여져있었던 것이다. 너무 충격적인 사진이었기 때문에 며칠 후 또 그 사진을 찾았는데 뜯어지고 없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생각해 보니 그 사진은 강경대 열사였다. 극장 안에서는 돈을 주고 보는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졌다면 극장의 담벼락 위에는 영화의 바깥세상 이야기가 은밀하게 새겨졌다. 극장 담벼락은 일종의 도시의 게시판 역할도 했다.

많은 장소들이 너무 빨리 ‘옛시절’이 되어 버린다. 서울에도 내가 정을 주던 극장들은 많이 사라졌다. 몇 년 전에 대학로의 하이퍼텍 나다에서 ‘마지막 상영’을 보았다. 종로의 코아아트홀은 일치감치 사라졌다. 광화문 씨네큐브는 아직 있지만 현재의 씨네큐브는 내가 가던 ‘그’ 씨네큐브는 아니다. 카페마다 이름이 재미있어서 한때는 카페 계산대에 비치된 성냥을 모은 적이 있다. 카페라는 말보다 ‘커피숍’이 더 자연스러웠던 시절이다. 그처럼 극장도 동네마다 다른 모습으로 있었지만 이제는 거의 ‘CGV’ 혹은 ‘롯데씨네마’가 ‘극장’의 대명사가 되었다.

나의 문화공간들이 사라지면서 나는 어느새 ‘옛날 옛적에 이런 곳이 있었지’라고 말하는 ‘문화적 노인’처럼 느껴진다. 시적인 카페 간판이 줄어들고 프랜차이즈 간판이 늘어났듯이 우리의 문화 공간이나 소비 공간은 모두 거대한 하나의 틀에 갇혀 버렸다. 우리는 이제 각자의 고유함을 유지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예술’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특별히 예술전용관이 아니었던 신영극장이 멀티플렉스에 밀려 ‘예술’전용관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고, 이제는 그마저도 어려워져서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다. 각각의 고유한 이름을 잃고 ‘브랜드 가치’만 높아지고 있다.

98년 겨울 마지막 70mm상영관이던 대한극장에서 멀티플렉스가 되기 전 ‘마지막 상영’을 한다며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상영했다. (뒤이어 <닥터 지바고>도 상영했으니 사실상 ‘마지막’은 아니었지만) 당시에 ‘마지막 70mm’ 상영을 보면서도 아쉽긴 했지만 이젠 바뀔 때가 되었나보다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 무엇이든 변하고 사라지는 일이야 자연스럽고 계속 ‘오래된’ 것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거대한 하나’가 수 많은 작은 것들을 없애버리고 있어 불편하다. 전반적으로 극장이 줄어들진 않았는데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관객들의 선택의 폭은 줄었다. 멀티플렉스는 이제 좌석차등제까지 도입할 정도로 제 멋대로 해도 된다. 다양성은 없고 등급만 강조되고 있다.

현재 인천의 추억극장 미림에서는 4월 30일까지 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35년간 미림극장의 영사기사였던 조점용의 영사실 관련 수집품을 전시하고 있다. 폐관 위기 속에서 2013년부터 인천시의 지원을 통해 ‘노인전용’ 극장으로 간신히 맥을 유지해왔다. 인천시는 지난 달 미림극장과의 협약을 해지했고 이제 사회적기업으로 인가받지 못하면 영사기 전시와 함께 또 다시 ‘마지막 상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나씩 사라진다. 그렇게 추억도 지배당하고 문화적 독재는 ‘동네’를 지우고 있다. 동네빵집, 동네서점, 동네극장... ‘동네’라는 여러 형태의 공동체 대신 거대한 하나의 자본으로 향하고 있다. 수많은 작은 것들이 ‘마지막’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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