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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8년 싸운 해고자 아들의 눈으로 본 세상, 다큐 〈안녕 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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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이면서 ‘죽은 자’들의 구렁텅이에 함께 뛰어든 사람들이 있었다. 눈 한 번 질끈 감고 외면했다면 7년 동안 고통 없이 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은 그들에게 틈입되지 않는 이야기다. 2009년 쌍용자동차가 경영 악화를 이유로 2646명의 구조조정을 노동조합에 통보했을 때, 김정운은 구조조정 대상이 아니었다. ‘산 자’로 불렸다. 하지만 김정운은 ‘죽은 자’들과 함께 옥쇄파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해고 노동자가 되어 꼬박 7년 8개월 동안 거리에서 투쟁했다. 옥쇄파업 현장을 지켰던 500여명 가운데 72명이 ‘산 자’임에도 김정운과 같은 선택을 했다.

김정운의 아들 현우는 2009년 쌍용차 옥쇄파업 때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아빠가 공장 문을 걸어 잠그고 싸울 때 현우는 엄마, 동생과 함께 공장 밖에서 촛불을 들고 아빠를 응원했다. 현우는 2009년 5월7일 일기장에 “맨 뒤에서 엄청나게 큰불을 붙혀졌다. 그건 바로 정리해고 깃발을 태운 거라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불에 타는 것들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검정 눈이 되어서 내려왔다”고 연필로 꾹꾹 눌러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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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안녕 히어로>는 김정운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수석부지부장의 아들 현우의 눈을 통해 바라본 아빠 김정운의 싸움 이야기다. 촛불을 들고 아빠를 응원하던 초등학교 2학년이던 현우는, 올해 고등학교 1학년으로 성장했다.

 

현우는 말한다. “사람들이 해고됐을 때 아빠가 가만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아빠는 아들의 생활기록부에 자신의 직업을 뭐로 적어야 하는 건지도 일일이 아들에게 질문하면서 대화하고, 파업 현장의 온갖 이해충돌을 조정하는 피곤한 일을 하면서도 아들의 공부를 걱정하면서 자상하게 상담해주는, 그리고 밤잠을 설치고 싸우면서도 아들과 만나면 웃음을 잃지 않고 함께 장난치는, 그런 따뜻한 사람이다. 그런 아빠가 고통에 빠진 동료들과 함께 싸우는 ‘옳은 일’을 했음에도 “물건 훔치고 사람 죽이는 그런 사람들이 가는” 감옥에 가야 하는 현실을 아홉살 현우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2013년 영화 촬영을 시작했을 때, 초등학교 6학년이던 현우는 한영희 감독에게 “쌍용차가 대량으로 사람들을 잘랐는데 우리 아빠는 반대를 하다가 같이 잘렸어요. 그런데 무슨 반대인지는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현우는 뉴스도 보고, 아빠가 2014년 7월 평택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김득중 후보의 지원 유세를 하는 현장에도 가보면서 아빠의 싸움을 이해하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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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아빠와 같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외면당하는 세상과 현우가 사는 세상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되레 아빠의 싸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세상이 더 가혹하다면 가혹했다. 현우는 초등학교 5학년 겨울캠프에 다녀온 뒤 쓴 일기에서 “역시 집이 제일 편한 것 같다. 그곳에선 놀림당할 것 같아서”라고 썼다. 이것은 비단 현우만의 문제가 아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자녀들을 상담한 청소년소아정신과 서천석 전문의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비해고자 가족의 아이들도 굉장히 어려워져서 다니던 학원을 끊어야 했고 용돈도 기대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삼삼오오 모여서 ‘해고당한 사람들이 회사에 계속 남아서 일을 못 하게 하니까 우리가 학원도 끊어야 하고 게임 아이템도 살 수 없다’는 불평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교실이라는 곳이 굉장히 넓은 곳이 아니죠. 그곳에서 해고자 아이들도 그 소리를 듣습니다. 처음에는 욱해서 화를 내고 싸우기도 합니다. 나중에는 서로 피하고 얼굴을 보지 않게 됩니다. 그 아이들하고 굉장히 오랫동안 같이 뛰어놀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지내던 아이들 사이입니다. 같은 게임에도 서로 만나던 사이인데 만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일부 선생님들도 ‘어차피 어려워졌으니까 다 같이 살 순 없고, 누군가 살려면 누군가 희생이 있어야 하는데 자기 욕심 차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렇게 모두가 어려워졌다’는 말을 아이들 앞에서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죠. 그런 말을 우리 아이들이 들었어요. 자기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하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기가 싫습니다. 아이들이 고립이 되기 시작했어요. 밖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죠. 물론 돈도 없으니까 나가서 할 일도 없어요. 주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아버지를 욕합니다. ‘욕심을 부리느라, 평택시가 저 사람들 때문에 망가지고 있다’는 말을 그냥 내놓고 합니다. 또 같이 맨날 놀던 친구들이 그런 말을 합니다. 아버지란 존재가 뭡니까. 자기 존재의 뿌리입니다. 자기 존재의 뿌리에게 그렇게 많은 사회적인 경멸이 가해지고 있는 겁니다. 이 아이가 느낄 때 자기 존재의 뿌리가 흔들린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게 (쌍용차 해고자) 아이들이 받은 첫 번째 트라우마입니다.”


 현우도 고립되어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아이 가운데 한 명이었다. 아빠가 감옥에 간 뒤 한동안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그때는 아이들과 노는 게 좋지 않았다”고 했다. 서천석 전문의가 파업을 겪은 쌍용차 노동자 자녀들을 대상으로 상담한 결과, 아이들 25% 이상이 의학적 치료를 필요로 하는 수준의 마음의 병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평균에 견줘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하지만 아빠는 그런 세상과 끊임없이 싸웠다. 아빠는 선거 지원 유세에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이렇게 나왔습니다”라고 말한다. 옥쇄파업이 좌절되고,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참패했으며, 해고 무효 소송에서 패배하고, 동료 노동자들이 하나둘 세상을 등졌지만, 아빠는 7년 동안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2016년 12월 우선 복직 대상자 가운데 한 명이 되어 공장으로 돌아갔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이렇게 나왔다“는 아빠의 마음은 현우에게 오롯이 전달됐을까. 현우는 “혼자 가만히 있으면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어요. 아빠를 도와주고 싶다. 좀 영웅 같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우는 이런 말도 한다.

“나는 그런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아요.”

“누군가 나에게 힘내라고 박카스를 준다면 그냥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어요. 굳이 내가 마시지 않으려고요. 다칠 수 있으니까요.”

17살이 된 현우는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 영웅처럼 싸운 아빠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아빠의 싸움으로 세상 언저리 어딘가로 밀려난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양가적 감정 사이 어딘가에서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것 아닐까. 영화 <안녕 히어로>는 그 혼란스러움을 세상에 질문하는 영화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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