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00500807_20161203.JPG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최대 232만명이 모이고, 심지어 횃불로 타올랐던 촛불은 잠시 소강상태다. 탄핵소추안 의결을 앞두고 주저하던 의회를 가결로 이끈 것은 오롯이 촛불과 촛불을 응원하는 시민의 힘이었다. 의회가 상황논리를 대며 망설일 때마다 시민들은 압도적 숫자로 의회를 압박했다. 촛불은 이제 헌법재판소에 맡겨둔 대통령에 대한 제도적 파면권이 어떻게 행사될지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권한이 오용될 경우, 제도적 파면권은 대통령이 아니라 헌재를 향할지도 모른다.

소강상태인 촛불이 언제든 다시 타오를 수 있다는 까닭은 2016년 촛불이 낳은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단계적 승리가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이다. 촛불은 2002년부터 사회의 분노가 응집될 때마다 가끔 타올랐지만, 한 번도 제도적 승리의 결과를 가져온 적이 없었다. 권력은 잠시 움츠렸다 여전히 구태의연한 모습을 이어갔고, 촛불은 변치 않는 권력에 지쳐 곧 잦아 들었다. 이후에 찾아온 건 냉소였다. 불신이 커졌고 혐오가 창궐했다. 불신은 시스템과 지성을 향했고, 혐오는 여성이나 동성애자, 이주 노동자나 탈북자 같은 성적·사회적 소수자를 대상으로 삼았다. 불신과 혐오가 정치 전반으로 확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의 촛불은 탄생 14년 만에 처음으로 의미 있는 승리를 거뒀다. 분노는 소진되지 않은 채 유증기처럼 공기 중에 떠다니고 있다. 이 단계적 승리를 소멸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유증기는 폭발하고 말 것이다.

2016년 촛불은 두 가지 특징을 보였다. 먼저 분산형 발언망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촛불이 일어난 전국 어디에서든 자유발언대가 열렸다. 특히 백만명 이상이 모인 광화문광장에선 자유발언대가 산발적인 장소에서 열렸다. 자유발언대는 하나의 중앙을 형성하지 않았다. 어떤 공간이든 들어줄 사람들이 있으면, 그곳이 무대가 됐든 거리가 됐든 자유발언대가 열렸다. 그것은 나와 나의 친구들이 중심이 되어 n개의 관계망을 형성하는 SNS라는 공간처럼, 발언자를 중심으로 소리가 닿는 범위 속 청중들을 묶어 n개의 발언망을 형성했다. SNS가 없었던 2008년 촛불과 다른 모습이다

2016년의 촛불은 1인 방송을 광장에서 재현하기도 했다. n개의 발언망에서 모두가 한 명의 주체로 발언대에 섰다. 신분도, 성별도, 계급도, 학력도 발언권에 관여할 수 없었다. 한 철학자는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발언대에 서려 했다가 시민들의 항의를 받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무대에 선 발언자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느낀 정부와 사회의 문제에 대해 발언했고, 자주 박수를 받았으며, 때로는 소수자를 멸시하는 비유를 쓰다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것은 1인 방송을 통해 누구나 마이크를 잡고, 자주 말풍선이나 좋아요를 받으며, 때로는 말의 내용에 따라 가혹한 비판을 받기도 하는 모습과 유사했다. 말은 그렇게 SNS1인 방송의 형식을 빌어 현실 속 광장을 유기체처럼 떠돌았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최근 몇년 동안 말의 정치가 소거된 세상에서 살았다. 사람들은 말을 불신했다. 말은 자주 위선으로 규정됐다. 지식인과 언론의 말은 내용보다 의도를 의심받았다. 이런 사회에서 말로 하나의 온전한 문장조차 구성해서 전달하지 못하는 이가 최고 권력자가 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절차였다. 하지만 그 절차 이후 4년 동안 벌어진 상황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참혹했다. 그 최고 권력자가 낳은 참혹한 상황이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복원하는 계기가 된 건 어찌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2016년의 촛불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이것은 촛불이 어떤 대단한 봉기와 즉자적 혁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촛불시위가 매일 일어날 수도 없다. 혁명은 하나의 사건을 통해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단계적 승리가 권력자를 다른 인물로 교체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고 노동과 사회문화 속 일상의 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 일상의 싸움에서 소소한 승리를 확산할 수 있다면, 언젠가 혁명은 불현듯 우리 곁에 와 있을지 모른다. 삶은 그렇게 진보한다.


*방송대학보 기고를 보완해 게재함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몫없는 자’들에 대한 기만이다 file

  • 2018-05-30
  • 조회 수 4224

국회가 결국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는 28일 본회의를 열고 매달 1회 이상 지급되는 정기 상여금과 식대·교통비·숙박비 등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새로 산입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찬성 160, 반대 24, 기권 14표로 가결했다. 이에 따라 내년 1월부터 최저임금의 25%(올해 기준 월 39만3천원)를 초과하는 정기 상여금과 최저임금의 7%(월 11만원)를 넘는 복리후생비까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된다. 이 비율은 매년 점차 줄어들어 2024년에는 정기 상...

최저임금법 개정에 대해 file

  • 2018-05-29
  • 조회 수 76

긴 글을 쓰다가 모두 지웠다. 이 사진 두 장만 오랫동안 기억하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은 28일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로 저임금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을 깎은 것도 모자라서, 취업 규칙 변경과 관련해 노동자가 대등하게 결정에 참여해야 하는 원칙 자체를 삭제하는 선례를 남겼다.

여성 대상 폭력은 왜 사적인 일로 여겨지는가

  • 2018-05-22
  • 조회 수 58

#1.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야구선수 ㄱ 씨가 사귀던 여자친구 ㄴ 씨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ㄱ 씨는 지난해 12월 31일 대구 동성로에서 ㄴ 씨를 발로 차고 목을 조르는 등의 폭력을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ㄱ 씨의 집착과 욕설을 힘겨워한 ㄴ 씨가 친구에게 ‘사귀기 힘들다’고 호소한 메신저 내용을 ㄱ 씨가 엿보면서, 이날의 물리적 폭력이 시작됐다. 사건을 다룬 <중앙일보> 기사에서 피해자인 ㄴ 씨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당시 남자친구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사람들은 왜 김어준의 음모론에 호응하는가

  • 2018-04-18
  • 조회 수 126

#1.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지난달 22일 방송에서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2011년 12월23일 정봉주 전 의원의 행적이 담긴 사진들을 공개했다. 당일 사진 780여장 가운데 일부였다. 방송은 이날 오후 1~2시쯤 사진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며 그 시간 정봉주 전 의원이 성추행 장소로 특정된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이 아니라 홍대 녹음실과 식당에 머물렀던 것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성추행 사실을 부인한 정봉주 전 의원의 해명에 힘을 실어준 보도였다. 하지만 이후 성추행 피해자가 오후 5시 이후 렉싱턴호텔에 머물렀던 SNS 기록을 ...

팀추월 ‘피해자’ 노선영이 옳았다

  • 2018-03-17
  • 조회 수 80

지난달 막 내린 평창겨울올림픽에서 컬링만큼이나 눈길을 끌었던 경기는 스피드스케이팅 여성 팀추월이었다. 동료 노선영 선수를 따돌린 듯한 모습을 보인 김보름, 박지우 선수가 거센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두 선수에 대한 국가대표 자격 박탈 요구에는 순식간에 61만여 명이 동참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상 최다 추천을 받은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 씨 출소 반대 청원에 버금가는 추천 수다. 김보름을 광고 모델로 내세우고 용품을 후원해온 한 아웃도어 브랜드는 누리꾼들의 거센 비난이 몰리자 올림픽을 끝...

“아빠는 ‘옳은 일’ 했는데 왜 감옥에 갔을까요” file

  • 2017-09-25
  • 조회 수 8423

8년 싸운 해고자 아들의 눈으로 본 세상, 다큐 〈안녕 히어로〉 ‘산 자’이면서 ‘죽은 자’들의 구렁텅이에 함께 뛰어든 사람들이 있었다. 눈 한 번 질끈 감고 외면했다면 7년 동안 고통 없이 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은 그들에게 틈입되지 않는 이야기다. 2009년 쌍용자동차가 경영 악화를 이유로 2646명의 구조조정을 노동조합에 통보했을 때, 김정운은 구조조정 대상이 아니었다. ‘산 자’로 불렸다. 하지만 김정운은 ‘죽은 자’들과 함께 옥쇄파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해고 노동자가 되어 꼬박 7년 8개월 동안 거리에서 투쟁했다. 옥쇄...

탁현민, 언제까지 버틸건가 file

  • 2017-07-02
  • 조회 수 1818

고등학교 1학년 때 중학교 3학년 여학생과 성관계를 가진 사실을 밝히며 “얼굴이 좀 아니어도 신경 안 썼다. 그 애는 단지 섹스 대상”이라고 썼다. 이 여성을 “친구들과 공유했다”고도 했다. 이 여성에 대한 책임감을 묻는 말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보다 나 자신에 대한 걱정을 했다. 그녀를 걱정해서 피임에 신경 썼다기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조심했다”고 답했다. 임신한 교사에게 성적 판타지를 느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내 연애에 대해서는 “닭장 안의 닭은 잡아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등과 가슴의 차이가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

사드 '보고 누락'이 아니라 '허위 보고'다 file

  • 2017-06-07
  • 조회 수 15299

국방부 장관 한민구에겐 네 번의 기회가 있었다. 5월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에 참석했고, 17일엔 문 대통령의 국방부 초도순시에 배석했다. 26일엔 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위원 점심 간담회가 있었고, 28일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점심을 먹었다. 하지만 한민구는 안보를 위해 자신들이 그렇게나 중요하다고 주장하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추가 반입 사실을 한 차례도 군 통수권자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심지어 정의용 안보실장이 “이미 사드 4기가 들어왔다면서요”라고 묻자 “그런 게 있었...

정상 국가의 복원 #그런데 민주시민은? file

  • 2017-05-25
  • 조회 수 939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무총리와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를 직접 발표하고,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을 임명했다. 왜 이 사람들이어야 하는지 설명했다. 앞으로도 자주 나와서 설명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이든 수석비서관이든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다. 오히려 질문에 능숙하지 않은 기자들이 균형추를 무너뜨리는 느낌이다. 대통령이 와이셔츠만 입은 채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수석비서관들과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장면도 공개됐다. 청와대 직원이 대통령의 재킷을 받으려고 하자 대통령은 “제 옷은 제가 벗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당원들은 왜 심상정을 욕하나 file

  • 2017-04-27
  • 조회 수 20659

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다른 후보를 비판했다. 그러자 비판받은 후보의 지지자들이 욕설 섞인 항의전화를 걸어오고, 당 게시판에도 인신공격성 글이 폭주했다. 더 당혹스러운 일은 이 정당 내부에서 벌어졌다. 일부 당원들이 게시판에 탈당 선언을 했다. 정의당과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에게 벌어진 일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정의당은 통합진보당의 후신이다. 통합진보당은 2012년 4월 총선 과정의 경선 파동을 통해 이정희 등 민족해방(NL) 계열 일부가 떨어져나가면서 유시민과 천호선 등으로 대변되는 국민참여계, 일부 남은 NL...

'파산관재인' 문재인, 홍준표의 새빨간 폭로 file

  • 2017-04-05
  • 조회 수 27557

‘파산관재인’이라는 말이 있다. 파산한 기관이나 법인, 기업이나 개인의 채권을 채권자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역할을 주로 하는 사람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회사가 망했을 때 남은 돈을 찾아내서 이 회사에 돈을 빌려준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나눠주는 역할을 한다. 법원이 지정하는데, 주로 변호사가 선임된다. 2017년 3월28일.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문재인 전 더불이민주당 대표가 변호사 시절 세월호 실소유주인 세모의 파산관재인을 맡았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권 당시 공적 자금이 들어간 유병언의 업체에 1153억원 채무 탕감...

세월호 인양과 온전한 애도 file

  • 2017-03-28
  • 조회 수 41188

3월23일 새벽 3시45분. 전남 진도 맹골수도의 검은 물 위로 세월호 선체의 우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객실과 조타실이 있는 흰색 상부는 녹슬고 부식돼 검게 물들어 있었다. 화물칸이 있는 파란색 하부는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져 붉은 속내를 드러냈다. 배 이름은 지워지고 없었다. 선체의 형상이 점점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마음 한 켠에 묻어뒀던 기억도 또렷하게 소환됐다. 2014년 4월16일. 검은 바다 위에서 점점 기울어가던, 그렇게 304명의 비명을 집어삼키던, 저 배를 어찌 바로 세울 수 없나 절규하던, 그 세월호였다. 그 세월호였...

태극기에게 박근혜란 무엇인가 file

  • 2017-03-07
  • 조회 수 13785

박근혜 탄핵에 반대하는, 만만찮은 수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탄핵 각하”를 선언하고 “빨갱이를 죽이자”고 외친다. 진보 언론은 물론 보수 언론마저 국정 농단 파문에서 박근혜가 문제의 핵심임을 지적하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모든 언론이 조작된 뉴스로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광장은 종교적 맹신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지난 삼일절 집회에서 광장을 메운 태극기 물결은 대체로 50대 이상 장년층이었다. 40대가 5명 중 1명, ...

‘가짜뉴스’ 조작된 뉴스의 위협 file [1]

  • 2017-02-16
  • 조회 수 18942

‘가짜뉴스’는 거짓 정보나 유언비어가 담긴 조작된 뉴스를 말한다. 공신력 있는 언론사가 작성한 기사처럼 포장해 사실인 양 유통되기도 한다. 가짜뉴스가 주목받은 건 지난해 미국 대통령선거 때다. 도널드 트럼프에게 유리하고 힐러리 클린턴에게 불리한 가짜뉴스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통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지지를 발표했다’는 가짜뉴스는 페이스북에서 반응이 96만 건에 이르렀다. ‘클린턴 후보가 테러단체 ISIS에 무기를 판매했다’는 가짜뉴스는 79만 건의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가짜뉴스에 대한 반응 건수는 미국...

황교익 출연금지에 담긴 정치 혐오 file

  • 2017-01-24
  • 조회 수 17209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KBS 출연 금지를 당했다. 그는 최근 유력 대선 후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지하는 더불어포럼 공동대표를 맡았다. 출연이 예정됐던 프로그램은 KBS <아침마당> 목요특강이다. 주제는 ‘맛있는 식재료 고르는 요령’. <아침마당> 제작진은 ‘제작 가이드라인’을 언급했다. 여기에는 “선거기간 중 비정치 분야 취재를 하는 경우, 후보자 또는 캠프에서 공식 직책을 맡고 있거나 특정 정당·후보자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사람을 인터뷰하거나 방송에 출연시키지 않도록 주의한다”고 적혀 있다. 가이드라인만 ...

JTBC 정유라 체포 보도 정말 문제였나 file [2]

  • 2017-01-04
  • 조회 수 68480

JTBC 기자가 덴마크에서 정유라를 추적하다 행적을 확인한 뒤 경찰에 신고하고 이 과정을 영상으로 취재해 보도한 사실을 두고 저널리즘 원칙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보도하되 개입하지 않는다'는 저널리즘 고유의 원칙을 두고 JTBC가 경찰에 신고하든 보도를 하든 하나만 선택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건 박상현 메디아티 이사가 쓴 '경찰에 정유라를 신고한 JTBC 기자,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글은 박상현 이사의 글에 대한 반론이 아니다. 그 글을 계기 삼아 나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써...

그러니까 "우리가 남이가" file

  • 2016-12-27
  • 조회 수 38785

나에겐 혈연으로 묶이지 않은 ‘큰아버지’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두 가족이 친척보다 가깝게 지내면서 자연스레 그렇게 부르게 됐다. 큰아버지는 내게 삶의 지혜를 알려주고, 성찰적 삶에 대해 조언해주는 분이었다. 그 자신이 성실한 삶으로 모범이 됐다. 큰아버지가 며칠 전 할 말이 있다며 전화했다. 서울에 있는 유명 여론조사 전문업체 대표의 이름을 대며 “들어본 적 있느냐”고 했다. 같은 고향에 고등학교 동문인데, 이 사람을 소개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서울이라는 큰물에서 크게 노는 사람인데 알아둬서 나쁠 것 없지 않겠냐...

2016년 촛불, 그 미완성의 승리 file

  • 2016-12-25
  • 조회 수 2618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최대 232만명이 모이고, 심지어 횃불로 타올랐던 촛불은 잠시 소강상태다. 탄핵소추안 의결을 앞두고 주저하던 의회를 가결로 이끈 것은 오롯이 촛불과 촛불을 응원하는 시민의 힘이었다. 의회가 상황논리를 대며 망설일 때마다 시민들은 압도적 숫자로 의회를 압박했다. 촛불은 이제 헌법재판소에 맡겨둔 대통령에 대한 제도적 파면권이 어떻게 행사될지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권한이 오용될 경우, 제도적 파면권은 대통령이 아니라 헌재를 향할지도 모른다. 소강상태인 촛불이 언제든 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file

  • 2016-12-09
  • 조회 수 8395

어찌 보면 익숙한 포즈다. 책임져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책임을 말하지 않고 책임을 전가하거나 결정하지 않으면서 가장 먼저 그 자리에서 탈출하는 모습.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직후 재난구호의 최종 책임자임에도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을 해서 책임질 사람은 모두 엄벌토록 할 것”이라고 말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붕괴하는 시스템에서 가장 먼저 탈출했다. 이번에는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의 주범으로 지탄받는 상황에서 “저의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며 홀가분한 표정으로 돌아서 결정을 회피했다. ...

후쿠오카와 한국의 '싱크홀' file [2]

  • 2016-11-28
  • 조회 수 3177

지난 8일 새벽 5시15분께. 일본 후쿠오카시 하카타역 앞 5차선 도로가 푹 꺼지듯 무너졌다. 폭 15m, 길이 20m, 깊이 15m에 달하는 거대한 싱크홀이었다. 새벽 시간이었지만 평일이었고, 이 일대가 후쿠오카에서 손꼽히는 번화가라는 점에서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부상자는 단 한 명 발생했다. 그것도 싱크홀로 전봇대가 쓰러지면서 발생한 정전 때문에 어둠 속에서 계단을 헛디딘 이가 발목을 삐끗해서 생긴 경상이었다. 그런데 이 사고를 두고 가장 화제가 된 건 사고 발생 일주일 만에 싱크홀을 완벽하게 복구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