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 관습, 인식의 재구성을 위하여.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했으며 예술과 정치 사이를 오가며 글을 씁니다. 주로 여성과 성소수자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베어, 더 뮤지컬>은 처음부터 “우리 중에 변태 있어~”라며 시작한다. ‘파격적 소재’라고 하지만 이미 브로드웨이에서 15년 전 초연했던 작품으로 이제 미국에서는 동성결혼 합법화까지 되었기에 그 파격의 농도는 과거와 다르게 읽힌다. 늘 논란이 동반되기는 하지만, ‘안방’ 극장에서도 작가 김수현이 2010년 동성애를 다룬 적이 있으니 뮤지컬의 소재로 딱히 ‘파격적’이라는 수사까지는 필요 없어 보인다. 단지 동성애를 다룬다는 사실만으로 소재의 신선함을 앞장세우기에 이미 대중문화는 훨씬 앞서있다.
이야기의 얼개는 간단하다. 보수적인 지역의 카톨릭 고등학교에서 서로 사랑하는 두 남학생의 슬픈 이야기, 그리고 그들 곁에 한 여자, 이 여자를 좋아하는 또 다른 한 남자,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구성이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별로 궁금하지 않은 뻔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이 뻔한 이야기가 그 자체로 큰 흠이 될 수는 없다. 심지어 줄거리를 다 알아도 매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들은 수도 없이 많다.
<베어…>의 경우는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상황의 평면적 나열일 뿐 갈등이 깊이가 얕아서 특별한 맛이 없는 뷔페 식당에서 의무적으로 160분 동안 먹는 기분이었다. 청소년의 동성애, 임신, 약물, 자살, 외모 열등감 등의 소재를 주르륵 펼쳐놓는다고 저절로 이야기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일단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보수적인 지역’이라는 공간적 배경(테네시 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불리함이 있다. 그렇더라도 이 10대 청소년들을 억압하는 어떤 외부의 힘과 규율을 보여주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두 주인공인 피터와 제이슨의 사랑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지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고등학생들의 약에 취한 모습이나 클럽에서 뜨겁게 춤을 추는 열기와 극단적 대비를 이루는 갈등의 요소는 취약했다. 그들은 지극히 자유로워 보인다. 종교적 규율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신부는 그 비중이 미미하며 부모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극에서 자주 웃음을 유발하는 수녀의 역할은 때로 극을 더욱 산만하게 만들었다. 꽤 자주 개그를 위한 ‘감초’로 등장하는데, 감초는 어디까지나 보조 역할이지 주재료가 아니다. 피터와 제이슨, 제이슨을 좋아하는 아이비, 아이비를 좋아하는 맷, 맷을 좋아하며 아이비를 미워하는 제이슨의 쌍둥이 동생 나디아 간의 관계가 사건을 이끌어가는 기본 축이다. 이 인물관계를 중심으로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가정과 종교라는 제도가 이들을 둘러싸고 갈등이 벌어져야 한다. 헌데 이 기본 축이 흐리멍텅한테 아무리 감초가 제 구실을 한들 무슨 소용이랴. 아이비가 제이슨을 좋아하게 된 과정이 명확하지 않고, 아이비는 어쩌다 ‘걸레’로 불리게 되었는지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인물은 평면적이고 듬성듬성 빈 공간을 관객이 알아서 친절하게 채워야 한다.
<베어…>에서 가장 극적 긴장감이 살아나야 하는 장면은 바로 임신한 아이비가 제이슨에게 매달리고 아이비를 좋아하던 맷이 분노를 참지 못해 제이슨과 피터의 관계를 아웃팅하는 순간이다. 이 아웃팅이 ‘폭로’라는 형식을 갖추려면 주변인의 충격과 당사자들이 가지는 공포심이 충분히 드러나야 하지만 이 극적 순간은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 커밍 아웃을 원치 않았던 제이슨을 결국 극단적 상황으로 몰아갈 만큼 외부의 억압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지 않은 채 관객은 ‘단지 동성애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가졌을 커다란 부담감을 알아서 상상해야 한다. 또한 맷의 아웃팅 후 이 작품 속에서 아이비의 임신이라는 중요한 문제는 흐지부지 사라진다.
작품에서 눈 여겨 볼 인물은 두 주인공보다 오히려 나디아와 아이비의 관계였다. 제이슨과 쌍둥이 남매인 나디아는 스스로 ‘못난 인형’이라고 말할 정도로 외모에 열등감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외모는 ‘남자 같은 여자’로 분류할 수 있다. “너 게이야? 남자면서 왜 남자를 좋아해? 깔깔깔~” 이렇게 놀리는 친구들 틈에서 그는 스스로를 희화화하며 견딘다. 그런데 나디아는 단지 자신의 외모를 혐오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달리 여성스러움을 뽐내며 인기가 많은 아이비에게 ‘걸레’라는 모욕을 준다. 몰래 아이비의 옷을 훔쳐 입고 그의 화장품을 쓰며 여성성을 흠모하지만 그는 틈만 나면 아이비를 괴롭히고 싶어 한다. 이원적 젠더 규범의 희생자는 ‘동성애’의 주체인 피터와 제이슨만이 아니라 통념적 여성성을 체현하지 않는 여성도 해당된다. <여성의 남성성>의 저자 주디스 핼버스탬에 따르면 “여성의 남성성은 이성애 규범적 문화와 동성애 규범적 문화에서 대체로 정체성 오인과 부적응의 병리적 징후로, 곧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존재가 되거나 가질 수 없는 힘을 획득하려는 갈망으로 받아들여진다”. 극중 나디아도 일종의 성소수자다.
이 다양한 형태의 정체성이 빚어가는 관계를 통해 충분히 풍성한 극을 만들 수 있었겠지만 눈 앞에 드러난 <베어…>는 아쉬운 허점투성이였다. 두 주인공의 관계에 집중하지도, 주변의 다양한 ‘소수자’들을 살리지도 못한 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작품이 되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 비판이지 객석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 나 빼고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으니까.
참, 그런데 이 작품의 관객은 절대 다수가 여성이었다. 공연 시작 전에 옆자리 여성이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잖아? 보통 이 정도는 아니잖아. 봐봐~ 다 여자야.”라고 동행과 대화하길래 나도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남성 관객을 아주 드물게 찾을 수 있었다. 중간 휴식 시간에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 공연은 유독 여성 관객이 많이 찾았다고 한다. 젠더 규범에 대한 관심의 차이라고 봐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