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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익숙한 것들을 뒤로 하고, 다시금 사유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이 게시판에서 나는 ‘독일’ 이야기를 하게 될 테지만, ‘독일’을 소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이야기를 하지도 않을 것이다. 즉 사회민주주의의 낙원도, 경제강국이라는 유토피아도, 그리고 ‘선진국의 문물을 배우고 전하는 유학생’도 이 공간엔 없다. 대신 (독일)사회의 ‘반대편’에 놓인 잡다한 것들을 다루는 사전, 기사, 보고서 등의 인용문들이 이 공간을 채우게 될 것이다. 사회의 풍경은 이 반사회적인 - 각각 asozial, unsozial, kontrasozial에 해당하는 - 것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드러나게 될 것이다.

베를린 유학생.

독일 급진좌파운동 약사(略史)

조회 수 1805 추천 수 0 2015.05.20 22: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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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운동의 학생 지도자 루디 두취케

6, 70년대의 독일 급진좌파의 역사는 우리에게도 비교적 익숙하다. 50년대의 보수적인 “총리 민주주의”의 시기를 거쳐 대연정 및 사회민주주의의 황금기에 접어든 독일(서독)에서도 반전운동과 반권위주의로 특징지워지는 68혁명의 기운이 불어왔다. 이 시기의 서독의 의회정치는 사민당과 기민기사연합, 그리고 소수파 자유당 단 3당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사회적으로는 교회(가톨릭과 독일개신교)나 노동조합, 자본가들의 이해관계가 이들 정당을 통해 대의되는 조합주의적 사회형태를 띄고 있었다. 그러나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성인이 되는 60년대 후반부터는 새로운 사회와 정치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고 있었고, 외부적으로도 서구 각국의 제국주의적 확장정책이 낳는 전쟁과 착취에 대한 제3세계의 저항운동이 거세지고 있었다. 이 시기에 이들 세로운 세대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의회주의를 넘어선 신좌파 정치운동(Außerparlamentarische Opposition)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급진좌파 정치 운동을 주도한 이들은  이후 소위 K그룹이라고 통칭되는 혁명적 전위그룹들 — 맑스 레닌주의, 마오주의, 트로츠키 주의 그룹 등을 포괄한다. — 이었지만, 이들이 동원할 수 있는 인원들을 훨씬 크게 넘어서는 젊은 세대의 활동가들이 사회 곳곳에서 여러 그룹들을 만들고 있었다. 학교마다 다양한 학생 그룹들이 만들어졌고, Sponti라고 불리는 도시의 빈 건물을 점거하고, 반문화적 활동을 벌이는 이들, 그리고 다양한 생활협동조합이나 대안적인 회사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약간 늦은 시기에 노동계급운동으로부터 시작되어 사회 전체로 퍼져나갔던 이탈리아의 자율주의(autonomia) 운동과는 달리 독일의 급진좌파운동은 노동계급에 대한 노동조합과 사민당의 지배를 흔들지는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K그룹들 중 과격파들은 우리에게 유명한 적군파(RAF)를 형성하며 테러주의로 나아갔고, 온건 그룹들은 반핵운동 등을 통해 점차 신사회운동이나 녹색당을 비롯한 대안정치운동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RAF의 테러가 격화되고 히스테리적 반응이 사회를 뒤덮으면서 6, 70년대 급진좌파운동은 쇠퇴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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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e Eins

80년대의 급진좌파운동은 새로운 형태를 띄었다. 이 시기에 다시금 급진좌파들에게 영감을 준 것은 앞서 언급한 이탈리아의 아우토노미아 운동이었다. 조합주의나 민주집중제, 혹은 관료주의적인 조직화 대신 소규모 행동그룹(Bezugsgruppe)의 자기조직화 및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아우토노멘(자율주의자) 운동이 대규모로 형성되었다. 이들의 독일적 뿌리는 각종 학생그룹들과 도심의 점거생활자들 및 펑크 등의 서브컬쳐였다. 수많은 그룹들이 각 지역마다 결성되었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어 설명할 수 있는 이념이나 전략은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보다는 문화적 요소들이 이들 운동을 특징지었다. 이들은 이전시대의 운동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반문화적이고 반사회적인 성격을 띄었다. 검은 옷 혹은 펑크 스타일의 옷차림이 이들을 주류 사회로부터 구분하여 주었고, 때로 운동에 있어 정치적 올바름이나 도덕적 정당성을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군대, 교회, 조합, 정당 등 기존의 조합주의적 사회를 움직이는 요소들을 급진적으로 거부하며 자율주의자들이 만든 자유공간(Freiraum)에서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적 운동이기도 했다. 블랙블록이라고 불리는 대규모의 폭력시위 형태의 운동 역시 80년대 자율주의 운동에서 태동한 것이었다.
 
90년대에 이르러서 이들 자유공간을 중심으로 한 자율주의 운동은 점점 더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상실한 채 사회변혁이라는 과제로부터 멀어지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자율과 자기조직을 강조하지만 조직화를 위한 규칙을 지나치게 경시한 나머지, 결국 카리스마적이고 나이많은 남성활동가들이 주도하는 권위주의적 조직문화가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두 가지 지점에서 운동이 재활성화 된다. 내부적 요소로는 이렇게 교조적으로 변한 자율주의 운동을 극복하고자 하는 상대적으로 젊은 활동가들이 주도하는 포스트자율주의 그룹들이 탄생하고 있었고, 외부적으로는 통독 이후 네오나치가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면서 좌파들이 더 이상 자율공간 속에서만 지낼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 후자의 요소가 90년대의 급진좌파 운동의 변화에 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민족민주당(NPD)을 중심으로 하여 하부에는 준군사적인 조직들까지 형성되고 있었던 네오나치에 맞서서 각 지역의 자율주의적 급진좌파들 역시 준군사적으로 조직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주류 사회는 상당히 우경화를 겪고 있었고, 의회정당들은 사회의 우경화를 막는데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안티파 아우토노멘들의 운동은 복잡한 실을 풀려하기보단 곧장 칼로 잘라내는 운동이었다. 수 많은 곳에서 나치에 대항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으며, 특히 대학에서 출발한 그룹들로부터는 안티파시즘을 정교하게 이론화하고, 반자본주의 이론과 결합하는 이론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전국적인 안티파 네트워크를 추진하기도 했다. 70년대 이후 다시금 수만 명이 급진좌파의 이름으로 조직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반나치를 넘어서 반국가주의 운동으로 나아갔고, 나치의 폭력에 맞선 대항폭력을 옹호하며 국가의 폭력독점을 문제시했기 때문에 국가(특히 경찰과 헌법수호청)와 상당한 긴장관계를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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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파 블랙블록

그러나 이 안티파-아우토노멘 운동은 여전히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에 부딛혀야 했다. 아우토노멘 만이 아니라 좌파 운동 전체가 커지면서 각종 정파그룹들이 난무했고, 이들은 내부적으로 많은 이념적 논쟁을 벌였다. 스탈린주의가 여전히 조직론에서 힘을 발휘하는 그룹들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갈등의 요인이 되었던 것은 중동문제를 둘러싼 "반독일주의자Antideutsch"들과 "반제국주의자Antiimps"들간의 갈등이었다. 90년대 안티파 운동의 전국 네트워크였던 AA/BO의 각 지역 조직들은 이러한 논쟁 속에서 갈라졌다. 또 하나의 문제는 오랫동안 지적되어 왔던 운동의 마초성이었다. 성차별과 성폭력 의제들이 수많은 자율공간들에서 많은 논쟁을 낳았으며, 여성 활동가들의 대규모의 이탈을 불러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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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하일리겐담에서 열린 G8 정상회담 반대행동

하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 새로운 조직들이 다시 만들어지기도 하였으며, 여전히 많은 전통적인(8-90년대 스타일의) 안티파 아우토노멘 조직들도 각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새롭게 만들어진 포스트-아우토노멘 조직들은 의회 내부의 주류좌파(민주사회당과 그 후신 좌파당 등)나 70년대의 좌파들이 성장(혹은 노화)해가며 만든 시민운동들과의 연결지점을 찾고자 했으며, 특히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세계를 한 바퀴 돌며 진행되었던 대항세계화 운동(정상회담 봉쇄시위, 세계사회포럼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다양한 사회 의제들 — 녹색당과 사민당의 사회복지 개혁안(Hartz IV)에 대한 반대운동, 등록금 도입 반대운동, 반전운동, 유럽사회포럼, 핵폐기물 수송열차 저지운동, 슈트트가르트 신역사 개발 반대 운동 등 — 주류 좌파 그룹들과 함께 개입하였다. 또 한편 반파시즘 의제에 시민사회 전체를 끌어들이는 것에도 성공하였다. 2006년에 좌파당이 만들어지면서는 전국 단위에서 의회 안에 이들 급진좌파운동과 의회 좌파정치를 잇는 연결점이 생겨나게 되었다. 경제 위기 이후 이들 급진좌파운동은 그리스의 풀뿌리 사회운동과 집권을 눈 앞에 둔 좌파정당 시리자의 사례나 스페인의 급진적인 풀뿌리 운동의 사례로부터 영감을 받으며 다시금 재활성의 시기를 맞고 있다.

댓글 '1'

ㅎㅎ

2015.06.03 02:09:04

"이들을 하나로 묶어 설명할 수 있는 이념이나 전략은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보다는 문화적 요소들이 이들 운동을 특징지었다. 이들은 이전시대의 운동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반문화적이고 반사회적인 성격을 띄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저 자기들이 멋지고 훌륭한 뜻을 품고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 혹은 아무 뜻도 따르지 않기(자유 자유 자유!)라는 훌륭한 뜻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에 취해 날뛰고 있지만 사실은 이렇다 할 방향 없이 그저 사방팔방 소동만 피울 뿐인 멍청한 청년들. 옛날엔 크게 유행을 타는 바람에 더 많은 청년들이 더 쉽게 멍청물결에 휩쓸렸겠지만 지금은 그나마 한물 간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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