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 관습, 인식의 재구성을 위하여.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했으며 예술과 정치 사이를 오가며 글을 씁니다. 주로 여성과 성소수자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루이즈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1911~2010), <여성-집 Femme Maison> 연작, 1946~47년
며칠 전 간단한 다과를 준비할 일이 있어서 스타벅스에서 케이터링 서비스로 커피를 구매했다. 나는 그런 서비스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커피를 내려서 보온병에 담아 갈까(보온병이 없네), 인스턴스 커피를 사서 뜨거운 물에 각자 타먹게 할까(인스턴스 커피 싫어하면 어떡하지), 그냥 주스만 마실까(커피를 찾으면 어떡하지), 고민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스타벅스에 가면 보온이 되는 큰 통에 담아준단다. 오, 그런 좋은 서비스가! 양도 많아서 남은 커피를 다음날 데워서 또 마셨다.
하루가 지나서 아주 약간 신 맛이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뉴스를 보았다. 전날 스타벅스에 들른 탓인지 ’starbucks’라는 글자가 눈에 더 잘 들어왔다. 2월 첫 주부터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여성출입을 금한다고 한다. 대신 ‘운전기사’를 보내라고 하는데, 남자라고 하지 않고 ‘운전기사’를 보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운전기사가 없는 여성은? 고용된 ‘운전기사’가 아니라면 남자가 사우디에서 여성의 커피 심부름을 과연 얼마나 해줄지 모르겠다. ‘섬세한’ 차별이다. 여성에게 커피는 팔아야겠고, 관습(?)을 존중하여 여성이 보이는 모습은 막아야하고, ‘감히’ 남자에게 여자의 커피심부름 따위를 요구할 수도 없고, 그래서 ‘운전기사’라고 에둘러 표현했을까. 17~18세기 영국에서 여성들의 커피하우스 출입을 금했기 때문에 여성들이 남장을 하고 커피하우스에 가기도 했었다. 커피 한 잔을 공공장소에서 마시기 위한 위험한 모험이다. 커피가 뭐라고.
여성에게 금지하는 것은 ‘커피’가 아니라 커피를 ‘보이는 장소에서 마시는 행위’다. 사우디처럼 금하지는 않아도 한국에서 여성들이 커피를 사마시는 행위를 두고 비뚤어진 시선을 보내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의 소비’에 대한 혐오만이 아니라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보이는 것 자체를 혐오한다. 또한 그 공공장소에 ‘여성들끼리’ 모여있으면 더욱 불편하게 바라본다. 소비가 진짜 문제라면 소비하는 금액에 따라 '혐오 지수'가 올라가겠지만 꼭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종종 확인한다. 여성이 돈을 쓰는것에 대한 혐오에 더해져, 여성이 '집밖'을 나가 사람들과 교류하고, 보고 듣고 경험하는 내용을 다양하게 늘리며, 깨끗한 장소를 찾아가는 적극적인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문화적으로는 '전통적' 영역에서 멀어질수록, 남자를 동반하지 않을수록, 여성의 고정된 성역할인 '돌보고 서비스하는' 입장이 뒤바뀌어 여성이 서비스를 받는 자리에 있을수록 혐오한다. 즉, 지배 규범을 벗어나는 여성들의 행동에 대한 두려움이 포함된 혐오다. 카페에서 아기 엄마들이 낮에 모여있는 모습을 흉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처음에는 어린 아이들때문에 발생하는 소음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관찰해보면 꼭 소음때문만이 아니다. 여자들이 모여있는 그 자체가 혐오대상이다. ‘집구석’에 박혀있지 않고 유모차를 끌고 나와 돌아다니며 그 ‘유모차 부대’들이 함께 모여있는 모습을 아주 낯설게 바라본다. '아기 엄마'는 아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인데 아이와 함께 밖에 나와 커피와 밥을 받아 먹다니!
여성의 장소는 ‘집’이다. 오죽하면 ‘집사람’이라고 할까. 여성은 존재 자체가 공간이다. 여성을 ‘공간’으로 읽는 버릇때문에 영화에서 둥근 공간만 봐도 ‘자궁’ 어쩌고 하는 (맞는 경우도 물론 있다만) 하품 나오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여성은 보이지 말아야 하며 돌아다니지 말아야 한다. 과거에 있었던 쓰개치마, 전족, 남자를 동반하지 않은 해외여행 금지 등이 모두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일부 나라에서 뷔르카와 운전금지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집은 과연 여성에게 안전한가. 밖에서 여성이 보이지 않길 바라는 사회일수록 여성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많은 차별과 폭력을 함께 은폐하는 장소다.
사회의 약자들에게 장소를 규제하는 행위는 약자들의 연대를 파괴하는 오래된 전략이다. 함께 있으면 정보를 공유하고 힘이 생긴다. 그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장소의 규제다. 사회적 약자들을 공적 영역에서 지우고 그 개개인들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나’의 경험을 어디까지나 사적 경험으로 만들어 역사 속에서 소거시킨다.
시간과 공간은 계층의 차이뿐 아니라 성별에 따라 차별적으로 분배되어 있다. 여성에게 ‘밤/길’을 조심하라는 ‘단속’은 여성의 밤과 여성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모두 통제하는 행위다. 한밤의 게이바에는 대낮의 길거리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인종’들이 모여있다. 여학생 휴게실이나 여직원 휴게실이 있는 이유는 여성을 위한 ‘특혜’가 아니다. 여성이나 성소수자가 ‘보편적’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보편적’ 공간을 이용하는데 겪는 불편함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화장을 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담배를 피워야 흡족해 하는 ‘보편적’ 인간들이 있다. 여성전용 주차장은 여성폭력을 방지하는 대안일 뿐 특혜와는 전혀 무관하다. 여성의 공간은 자꾸만 제약받고 침범당한다. 여자화장실 몰카는 바로 일상에서 일어나는 침략행위 중 하나다. 여성의 몸과 여성의 장소에 대한 침략이다.
안전한 사회는 여성과 장애인이 공공장소에 많이 보이는 사회다. 여성이 무리지어 카페를 가든, 홀로 술집을 가든, 경멸의 시선을 받거나 폭력에 노출되지 않는 사회.
여자가 집밖에 나오는 걸 두고 "아녀자가 집에서 살림이나 열심히 해야지 밖에 싸돌아다니다니"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아닙니다. 똥기저귀를 카페 탁자에 올려놓거나, 컵에 오줌을 뉘이거나, 수다에만 너무 집중해 데려온 아이를 방치하거나 (여자는 아이 돌보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식의 구식 편견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아이를 돌보던 중에 그런 식으로 방치를 했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됩니다. 자기가 아이를 맡고 있는 와중에 방치를 했다는 게 문제삼아지는 겁니다), 그런 것을 꼬투리잡아 욕하는 겁니다. 그 욕함의 배경에는 여성에 대한 반감이 자리잡고 있고, 그래서 뭔가 꼬투리 잡을 것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배회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과거처럼 "여자가 집에서 살림이나 해야지" 라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지는 않다는 겁니다.
또 여자화장실 몰카 같은 관음증 범죄를 일반적인 여성에 대한 제약과 동일선에 놓는 것도 여성에 대한 차별에 맞서는 데 있어 적절한 전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디 아녀자가 밖엘 싸돌아다녀" 라고 생각하는 팔순 노인이 있다고 해도, 이 노인이 화장실 몰카를 잘 하는 짓이라고 생각할 리가 없잖습니까.
일군의 남자들이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하는, 또는 담배 피우는 여자를 보고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그런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보고 넘어가야지, 이것을 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어떤 여자들도 공공장소에서 담배 피우는 남자나 머리를 매만지는 남자를 보고 싫어할 수 있습니다. 이건 그냥 개인이 특정 개인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문제일 뿐입니다. 이것을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로 받아들여 대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는 나 싫어? 그럼 싫어해라. 나는 니가 날 싫어하든지 말든지 상관없다, 이렇게 대응하는 게 맞습니다.
강경하게,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건 그런 부분이 아니라, 예를들어서 "결혼한 여자는 남편을 대동하지 않으면 집밖에 나갈 수 없다" 는 법이 만들어지는 경우나, "여자는 남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는 규범이 만들어지는 경우나, "남자는 담배 피워도 되지만 여자는 안된다" 는 법이 만들어지는 경우나, 그런 것들입니다.
설령 한 무리의 남자 노인들이 낮에 까페에서 수다떨고 있는 여자들을 보고 혀를 찬다고 한들, 그것을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라고 이해하면 안 됩니다. 여자들은 그 노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까페에서 커피 마시고 수다 떨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실제로 제도적, 또는 사적 권력을 통해 금지될 때, 그 때 그게 억압과 차별인 것이지, 개인이 여자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싫어한다' 는게 차별과 억압인 것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화장을 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담배를 피워야 흡족해 하는 ‘보편적’ 인간들이 있다."
보이는 곳에서 얼마든지 화장 하고, 보이는 곳에서 얼마든지 흡연 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이 그것을 흡족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 사람들을 그냥 무시하십시오. 그 사람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만약 화장을 못 하게 하고, 흡연을 못 하게 한 다면 경찰에 신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