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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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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경에 처해 있는 사람을 두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내가 오랫동안 마땅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물음 중 하나다. 나는 오랫동안 기부와 같은 개인의 시혜적 도움에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보다는 공적 부조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시혜적 도움은 도움이 필요한 모두에게 가닿을 수 없다. 무엇보다 곤경에 처한 사람이 곤경에 처하게 되는 이유는 오롯이 사회적이다. 그러니 도움 역시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져야 할 의무의 영역이다.
오랫동안 사회부 기자를 하면서 이 신념이 흔들리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나는 당장 눈앞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데, 공적 시스템은 인간의 얼굴이 아니라 관료의 얼굴을 내밀며 이 사람을 대상화했다. 공적 시스템은 더 나아가 ‘자격의 미비’를 거론하며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시스템은 스스로 일하지 않는다. 스스로 어려움을 입증하는 혹은 입증할 수 있는 이들에게만 도움을 주는 신청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에 기대 공적 부조만 얘기하는 건 또 다른 무책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여기 21살 파견직 이지안이 있다. 이지안은 청각 장애를 지녔고 거동마저 할 수 없는 할머니를 돌보며 파견직과 아르바이트 일을 병행한다. 부모는 어린 시절 빚만 잔뜩 남기고 도망갔다. 사채업자는 그 빚을 상속한 어린 이지안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폭력을 휘두른다. 그러다 중학생 시절, 할머니를 죽일 듯이 때리는 사채업자에게 저항하다 흉기로 이 사채업자를 찔러 사망케 했다. 이후부터 이지안은 그 사채업자의 일을 상속받은 그의 아들에게 똑같은 폭력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빚에 이어 폭력마저 상속받은 것이다. 빚이라는 형태로 남은 부모의 상속도 포기할 수 있다는 사실, 장애를 지닌 할머니는 장기요양등급을 받아 요양원에 돌봄을 위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이지안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런 사회에서 이지안이 선택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생존을 위해선 법과 도덕의 구속 따위 개의치 않고 경계 없이 살아가는 일, 또 다른 하나는 사람과의 관계 따위에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고 미리 그 관계를 차단하는 일이다. 법과 도덕은 단 한 번도 이지안을 보호해준 적이 없고, 사람은 언제나 “네 번 이상의 호의”를 보여준 적이 없다. 이지안이 정당 방위를 인정받아 법적으로 무죄를 받았음에도, ‘살인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이 관계를 자연스럽게 끊어내야 할지” 고민하는 눈빛을 보였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 상처받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을 ‘선량해 보이고 싶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남의 불행을 이용하려는 인간들’로 규정하고 미리 방어막을 쳐두는 것이다. 내가 먼저 관계를 끊어냈다고 생각하면 최소한 상대가 먼저 관계를 끊었을 때 오는 상처는 미리 피할 수 있다.
이런 이지안 앞에 대기업 만년 부장 박동훈이 선다. 박동훈은 우연히 같은 지역에 사는 이지안이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처음으로, “네 번 이상의 호의”를 보여준다. 정규직 동료들에게 투명인간 취급당하는 이지안을 처음 회식 자리에 부르고, 할머니가 장기요양등급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며, 무엇보다 신뢰를 저버릴 법한 일이 반복되어도 끝내 믿음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듣게 됐을 때도 “나라도 그랬을 것”이라는 말로 같은 자리에 선다. 박동훈뿐만 아니다. 박동훈의 “지긋지긋한 삼형제”도, 박동훈의 오랜 친구 정희도, 삼형제와 어린 시절부터 모든 일을 공유해온 후계조기축구회 친구들도, 모두 이지안의 친구가 되어 갈 곳 없는 이지안의 은신처를 마련해주고, 요양원에서 숨진 할머니의 장례를 함께 치른다. 이 모든 것이 원래는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지안에게는 이지안이 기댈 수 있는 사회는 없었고, 이지안을 착취하는 사회만 존재했다. 이지안을 신뢰하는 관계는 없었고, 이지안을 이용하는 “치사한” 관계만 존재했다.
사실 박동훈 같은 인간은 다분히 비현실적이다. 남의 아픔이나 상처를 마치 자기 일처럼 아파하고 함께 분노하며 함께 행동하는 후계동 마을 커뮤니티 역시 지금은 하나의 과거가 됐을 만큼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판타지적 인간과 판타지적 사회가 판타지에만 머무르지 않는 미래가 현실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이 원칙과 이론만 앞세우면 사회의 모든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말하는 어떤 절대적이고 교조적인 정치가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도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공허한 빈 자리에 서 있는 지금,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도 어쩌면 저 판타지적 인간과 판타지적 관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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