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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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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는 병원에서도 가끔 비상 상황이 발생한다. 혈액투석 환자가 쇼크 상태에 처할 때다. 혈압 조절에 실패해 쇼크 상태가 오면, 환자는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구토 직전까지 간다. 온몸에 쥐가 나기도 한다. 내 몸이 나를 쥐어짜듯 옥죄는데,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는 참담하다. 하지만 그 참담함은 내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면, 순간으로 지나보낼 수 있다. 누군가 나를 돕기 위해 달려오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은 고귀하다. 병원은 그래서 존재한다. 한국의 많은 병원들이 사적 재원으로 운영되지만, 건강보험이라는 공공재가 환자와 병원 사이를 매개하는 까닭이다.

투석 기계는 쇼크 상태가 되면 비상벨을 울린다. 찢을 듯한 비상벨을 듣고 가장 먼저 달려오는 사람은 간호사들이다. 여러 명이 달려와 업무를 분장한다. 한 명은 기계 상태를 체크하고, 다른 한 명은 경직된 환자의 몸을 주무르며, 또 다른 한 명은 침상 머리 높이를 낮춰서 온몸에 혈액을 고루 공급한다. 기계를 통해 몸의 수분 상태를 조절하기도 한다. 수분이 한꺼번에 과도하게 빠지면 쇼크가 온다. 이 모든 것이 순간에 이뤄져야 한다. 그러니 협업이 필수다. 잦은 야근과 감정노동, 불규칙한 출퇴근 시간에 지쳐 있는 간호사들이지만, 비상벨이 울리는 순간엔 모든 행위가 기민하다. 그러니까 이런 협업은 간호사라는 직업의 존재 증명이다.

얼마 전 국립대 병원의 한 간호사가 올린 글이 눈길을 끌었다. 이 간호사는 “병원에서 성과급제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라며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인데 성과를 내고 수익을 창출하라니, 기념품이라고 만들어 팔고 병원 로비에서 호떡이라도 구워 팔라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병원에서 한 달이라도 일해본 사람이라면 성과급제와 환자 안전은 절대 공존할 수 없다는 걸 알 것”이라며 “중환자실에선 내 담당 환자가 아니더라도 어떤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어 위급해지면, 즉 심폐소생술같은 상황에서 십여 명의 간호사가 일사불란하게 서로를 돕는다. 하지만 성과급제가 되면 그렇게 자발적으로 나서서 남의 환자를 돕게 될까”라고 물었다. 이 간호사는 아울러 만약 다른 환자의 심폐소생술을 끝내고 돌아왔는데 자신의 환자 상태가 엉망진창이고 중요한 약물이 하나도 투약되지 않은 상태라면, 나쁜 점수를 받고 저성과자로 한심한 취급을 받으면서 월급까지 깎인다면, 이 간호사가 다음에 다른 사람의 담당 환자에게 만사 제쳐놓고 달려갈 수 있을까, 라는 현실적 물음을 던졌다. 그러면서 “성과급을 얼마를 주건 간에 나는 위급한 환자에게 달려갈 때 각종 시말서나 성과급이 아른거리는 간호사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간호사만일까.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는 세상이라면, 개인의 성과와 그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 작동하는 직업 이전의 직업들이 존재한다. 철도나 항공, 가스와 전기 같은 사회기반시설을 움직이고 안전하게 관리하는 일, 병원이나 사회복지시설에서 환자나 약자를 살피는 의료나 돌봄, 기간 시설을 관리하고 청소하는 업무, 사회를 기능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재원을 관리하는 직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일은 성과를 측정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 일을 행하는 개인의 능력이 조금 모자라더라도 반복된 훈련과 동료의 헌신으로 그 빈틈을 메워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빈틈이 생긴다는 것은 곧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빈틈은 개인의 책임이나 성과 여부로 환원될 수 없다. 그 빈틈은 오롯이 사회의 책임이다. 우리는 이런 일을 공공 부문이라고 부르고, 사회의 책임을 묻기 위해 정부를 구성하고, 그 책임을 묻는 통로로 의회를 만들어 놨다.

이 공공부문과 금융부문 노동자들이 최근 연쇄 파업에 나섰다. 성과연봉제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성과연봉제를 통해 공공 부문 노동자들을 평가하려는 정부는 결국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지지 않고 그 일을 하는 개별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 업무를 책임지지 않았다가 청년을 죽게 만들고, 수백명의 생명이 바다에서 허우적대는데 국가는 외주화한 구호 전문 기업만 바라보고 있으며, 누구나 사인이 명백하다고 말하는 이의 죽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유가족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약자를 돌보는 걸 낭비라고 생각해 사후 처리마저 미안하게 만드는 사회 없는 사회는 바로 그런 정부에서 만들어진다. 곳곳에 대자보를 붙이고 파업에 대해 “불편해도 괜찮아”라고 말하며 응원하는 이들은 이미 그런 사회 없는 사회가 만들어낸 역설적 몸부림일 지도 모른다. 

*방송대학보 기고를 보완해 게재함

*사진 출처 : <한겨레>


댓글 '3'

소년의노래

2016.10.10 14:07:40

극우화된 자유주의 이념의 전면화네요. 이미 한국이라는 곳의 보편이념이죠.
'끊임없이 너를 증명하라고 외치는 실체 없는 지배자'

이재훈

2016.10.11 00:36:33

그런 상황인데 파업은 주목받지 못하고, 다른 이야기들만 흐르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ㅁㅌ

2016.10.12 17:55:30

올리신 칼럼과는 상관없는 질문인데요.

1. 본인이 '해동'을 원하느냐와 별개로 한윤형 칼럼니스트의 '동결'을 풀 여지는 없는지요.
- 폭로 이후 초기의 여러 혼란들이 지금은 새로운 사실이나 의견이 제출돼 다른 국면에 들어섰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2. 저 한윤형 사태에 대한 파벨라의 입장글이 변하지 않는 것은 사건에 대해 초기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인가요.
3. 파벨라에는 여성주의적 입장을 공유하는 필자분들도 계시던데 그렇다면, 파벨라야말로 한윤형 사건에 대해 좀 더 균형적인
의견들이 개진될 여지가 있는 곳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 사건에 대한 공론장 역할을 하고픈 생각은 없으신지
4. 파벨라가 그 모든 걸 떠안기에 부담스러우시다면(?) 저 입장글을 지우고 차라리 한윤형씨 칼럼란을 비우시던지....
여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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