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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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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24일. 잠수사 김상우는 44m 수면 아래 있었다. 맹골수도 물살은 거셌다. 최대 4노트. 폭우가 내린 날 쏟아지는 계곡물만큼 빠르다. 몸의 균형은 자꾸 무너졌다. 머구리 헬멧에 연결된 숨줄이 끊기면 회복할 수 없다. 심해는 24시간 어둡다. 시야는 10㎝ 앞. 외워 둔 세월호 도면을 복기하며 배를 더듬어 내려갔다. 수압과 배 하중에 눌리고 어긋난 격실 문은 굳게 움츠리고 있었다. 온 힘을 모아 문을 열었다. 그러자 쌓여 있던 짐이 무너졌다. 뚝 소리가 났다. 김상우는 움찔했다. 일단 수습한 학생을 수면 위로 올려야 했다. 배 밖에서 기다리던 해경에게 시신을 넘겼다. 시신을 넘기고 긴장이 풀리자 김상우는 통증을 느꼈다. 6~7번 경추가 무너져 내렸다. 4~5번 경추도 돌아갔다.

뭍으로 나와 구급차를 탔다. 참사 소식을 듣고 맹골수도를 찾은 지 64일째. 3시간 단위로 하루에 네 번 잠수했다. 김상우는 병원에 실려가면서 비로소 잠을 잘 수 있었다.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어긋난 경추를 철심으로 고정했다.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때부터 대형 해양사고마다 투입됐던 44살 김상우는 수술 뒤로 더 이상 몸에 힘이 모이지 않는다. 2년 넘게 잠수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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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부대 출신인 잠수사들은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 “간만에 애국하러 가자”고 모였다. 하지만 맹골수도에는 선체 진입 능력이 있는 해경이 없었다. 스쿠버 잠수부들은 엄두도 못 내는 물살이었다. 머구리 잠수사 25명은 24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길이만 146m에 달하는 6825t급 여객선을 한 땀씩 더듬었다. 한 번 잠수를 하고 나면 12시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원칙은 누구도 입밖에 꺼내지 못했다. 조금 쉬려면 절망하며 무너지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바지선 위에 찾아와 잠수사들에게 "의형제를 맺자", "뒤는 모두 책임지겠다"며 잠수를 종용했다. 그 결과, 잠수사 황병주는 주 3회 신장 투석환자가 됐다. 잠수사 한재명, 하규성, 이상진, 김수열, 조준, 김순종, 황병주는 오랜 잠수로 뼈가 썩는 골괴사를 앓고 있다.

엉켜 있는 시신을 냄새로 인지하고, 한구 한구 떼어내 인도한 경험은 잠수사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겼다. 5~6명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국가는 2개월 동안 일한 비용만 정산하고 이들을 버렸다. 기간을 한정해 치료 지원을 했다가 곧 끊었다. 의사상자 지정도 외면했다. 몸을 다친 잠수사들은 더 이상 잠수 현장에서 부르지 않는다. 다친 몸으로 물살을 이기기도 어렵지만, 그 현장에서 이들의 치료를 떠맡게 될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하지미만 "의형제를 맺자"던 이주영 장관은 수염을 깎고 화려하게 국회로 복귀했다. 김석균 청장은 명예롭게 청장직에서 물러났고, 최근 고향에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는 평화로운 기사가 보도됐다. 김석균 청장 아래 핵심 간부들은 줄줄이 승진했다. 반면 25명 잠수사의 리더 격인 잠수사 공우영은 수색 중 사망한 잠수사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로부터 징역 1년을 구형받았다.

지난 17일 숨진 채 발견된 잠수사 김관홍은 그래서, 대리운전으로 연명했다. 김관홍은 숨지기 얼마 전 김상우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국가에 배신당한 것도 화가 나지만, 내가 이 모양으로 사는 것도 자존심 상해요. 자괴감까지 파괴되는 심정이에요.” 김관홍은 2015년 9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정부가 알아서 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김상우는 말한다. “나중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과연 누가 달려갈까요. 저도 이젠 자신있게 달려간다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 곳곳에 상처를 남겼다. 사회가 생중계로 꽂다운 생명들이 숨져 가는 장면을 본 트라우마는 시작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위기에 내몰렸을 때 시스템의 작동을 믿지 않게 됐다. 시키는 대로 따르면 손해 본다는 생각은 강화했다. 각자도생과 자력구제가 시대정신이 된 까닭이다. 시스템은 더 이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은 비용을 최소화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상의 시스템으로 칭송받는다. 관료들은 문서에 적힌 자신의 의무 사항 뒤에 숨어 규정에 대한 최소한의 해석을 내밀며 보신에 집중한다.

그리고, 잠수사 김관홍의 죽음과 김상우의 후회, 공우영에 대한 처벌은 외곽에서 공적 시스템을 작동하게 만드는 개별 주체들의 사적 개입이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반복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한국 사회는 위기가 발생해도 누구 하나 개입하지 않은 채 벌어진 사태를 관망하면서 소비의 대상으로 사회를 타자화하는 이들의 군집으로 변해갈 것이다. 그런 사회야말로 무간지옥 아닐까.


*<방송대학보> 기고를 보완해서 게재함

*첫 번째 사진은 숨진 김관홍 잠수사. 두 번째 사진은 김상우 잠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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