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알 자지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월간 <말>에서 기자로 일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과 사회비평을 쓴다. 지은 책으로 <소수의견><우파의 불만><지금, 여기의 극우주의><88만원세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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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ICTR, 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Rwanda) 자료들을 틈날 때마다 살펴보는 중이다. 알려졌다시피 불과 100일 동안 80만명~100만 명이 학살당한 인류 최악의 비극 중 하나다. 친절했던 선생님, 목사님, 신부님, 상점 주인 아저씨가 하루아침에 이웃집 소년소녀를 난도질해 죽이고 윤간한 다음 죽였다. 르완다 전체 인구의 최소 20퍼센트가 사망했다. 투치족이 희생자의 다수였지만 후투족 역시 많이 살해당했다. 르완다는 아프리카 국가 중 문맹률이 낮고 교육수준이 높은 나라였다.
재판과정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의 한계에 대해 중요한 판례들이 많이 나왔다. 학살을 주도한 이들은 "투치족 벌레들"이란 표현을 즐겨썼다. 요새 한국에서 유행하는 표현방식으로 바꾸면 "투치충"일 게다. 타집단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만들어야 죽이기 쉬웠으리라. 르완다에서는 학살 이전부터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하에 투치족 혐오발언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실제 살인행위만이 아니라 저런 표현에도 중형을 부과했다.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는 발언들이 직접적으로 살해 행위에 영향을 끼쳤다는 판단이다. 이를테면 라디오 르완다 설립자는 혐오표현 죄목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가장 중요한 가치의 하나다. 문제는 학자, 예술가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거의 무한정 허용되어야 하지만, 일베에게 그래선 안된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선량한 사람한테는 그 자유 좀 많이 주고, 나쁜 놈들한테는 조금 주자는 식이다. 이들은 실제로 표현의 자유를 차별적으로 적용하면서도 정작 납득할만한 잣대를 제시하지 않고, 잣대의 필요성을 제기하지도 않는다. 지적으로 나태하고 윤리적으로 비겁한 태도다.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옹호되어야 하지만, 무한히 옹호될 수는 없다. 즉, 제한될 수 밖에 없다. 핵심은 어떻게 제한하는가다. 이 까다로운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 한 문제는 계속 공회전한다.
혐오표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거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단지 특정 커뮤니티나 집단에 대한 부정적 여론만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예전에 'KBS 일베 기자' 사건에서 내가 제기한 주장도 큰 틀에선 같은 얘기다. 그 사건을 계기로 논의를 하고 기준을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그러자 '일베 실드친다'는 말이 날아왔다. 나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할 때, "누구의 표현의 자유인가"라는 질문과 더불어 "누구를 '향한' 표현인가"라는 질문이 반드시 제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어찌보면 표현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보다, 가리키는 대상이 누구인지가 더 중요하다. 특히 약자/소수자 개인 및 집단을 향한 표현들은 촉각을 곤두세워 면밀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그 말의 의미는 '소수자와 약자가 서로 얽힌 사태에서 누가 더 약자인가'라는 난감한 물음에도 대답해야 한단 뜻이다.
웹에서 혐오발언을 일삼던 '좌익효수'가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며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겠다고 한다.*1) 그럼 우리도 헌재의 판단을 기다리면 되는 문제인가. 그런 식으로 모든 까다로운 판단들을 사법부라는 최종심급에 혹은 정치적 메시아에게 미뤄온 결과가 바로 작금의 헬조선이 아닌가. 이건 우리들, 시민의 문제다. 우리 스스로 문제를 직시하고 풀어나가야 한다.
*1) '좌익효수'와 변호인측은 '국가기관원의 표현이면 문제가 되지만 개인의 표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노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사건은 애초 정보기관의 불법적 여론개입과 관련되었으므로 개인의 자유 차원에서만 판단할 수는 없다. 본문의 논지는, 설령 개인의 표현일지라도 무제한적으로 용인될 수는 없으며 혐오표현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누구를 향하는가 등)에 의해 제한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