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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알 자지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월간 <말>에서 기자로 일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과 사회비평을 쓴다. 지은 책으로 <소수의견><우파의 불만><지금, 여기의 극우주의><88만원세대> 등이 있다.

[야! 한국사회] 후각사회 / 박권일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4606.html


여름이 가을로 바뀔 무렵 불어오는 바람 냄새, 어릴 적 어머니가 끓여준 시래기 된장국 냄새, 아버지의 품에서 나던 희미한 파이프 담배의 향, 연인의 살결이 풍기는 달콤한 내음…. 나의 내밀한 냄새 목록에 영원히 각인된 것들의 일부다. 물론 저건 ‘좋은 냄새들’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끔찍하게 싫어하는 냄새들의 목록도 존재한다. 아무튼 목록에 오른 것과 같은 냄새를 맡는 순간, 나는 특정한 감정상황 속으로 빠져든다. 논리와 분석 따위는 무용하다. 느끼는 것과 거의 동시에 판단이 끝나버린다. 다만 행복해지거나 불쾌해질 따름이다.

시각과 청각은 역사 이후의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으로 인정받아 왔다. 보고 듣는 건 텍스트와 이미지를 창조하는 바탕이다. 그야말로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능력이라 할 만했다. 반면 후각은 종종 ‘더 동물적인’ 감각이라 여겨졌다. 이성적 추론을 통하지 않았지만 ‘감’이 뭔가 이상할 때 우리는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별나게 그런 ‘촉’이 발달한 사람에게 ‘개코’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한다. 확실히, 냄새는 감정을 환기하는 기능에선 다른 감각을 압도한다. 후각은 호불호를 선명하게 나눌 뿐 아니라 때로 역전시켜버리기도 한다. 음식의 예를 들자면, 극단적 홍어 혐오자였다가 ‘홍어의 포로’가 된 사람을 나는 제법 많이 안다. 요컨대 후각은 매혹과 혐오의 양극을 오가는 감각이다.

혐오표현이나 인종차별 발언에 유독 냄새와 관련된 것이 많다. 한국인을 향한 차별발언 중 가장 흔한 것은 “김치 냄새” “마늘 냄새”다. 어느 재일조선인은 어린 시절 일본인들이 자기한테서 마늘냄새 난다고 할까 봐 매일 피가 날 때까지 이를 닦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냄새라는 표징은 그토록 집요하고 끈덕지다. 한국인들은 자기들끼리도 냄새를 가지고 적나라한 혐오를 드러낸다. 전라도 사람에게 “홍어 냄새”가 난다고 조롱하고, 개룡남(‘개천에서 용 난’ 경우에 속하는 남성)에게서 “개천 냄새”가 난다고 이죽댄다. 자신을 뺀 모든 한국인의 ‘미개함’을 싸잡아 비난하고 싶을 때는 “김치 냄새 난다”고 비난한다. 냄새는 이처럼 공동체의 내부와 외부, 소속된 자와 배제된 자를 가르는 즉각적인 낙인이다. 동시에 그 낙인을 사용하는 이가 반민주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임을 드러내는 정확한 신호다.

오늘날 후각적 표현으로 분출되는 사회적 혐오발언들은 계몽 이전의 야생성이 아니다. 계몽의 폭력성을 거부하는 탈근대주의적 저항도 아니다. 그저 동물화한 반지성주의다. 선비들처럼 위선 떨지 말자는 것. 그래서 사회적으로 지탄받는단 걸 알면서도 그들은 ‘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혐오발언을 지속한다. 일베가 이 분야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정치적으로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비슷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간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을 향해 쏟아진 인종주의적 비난과 인신공격 중 상당수는 진보와 민주주의를 추구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 의한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한국 사회에서 폭력을 추동하는 감정이 분노와 슬픔에서 증오, 혐오, 경멸 같은 감정으로 많이 옮겨간 것 같다. 군대폭력의 수치 자체는 과거에 비해 여실히 줄어들었음에도 한 사람만을 따돌리고 배제하는 형태의 가혹행위는 오히려 심해지는 추세다. 후각사회는 실제로 후각이 지배하는 사회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일종의 상징이자 은유다. 후각사회란, 혐오와 열광이 설득과 토론을 대신한 사회다. 또한 맹렬하게 끓어오르다가도, 냄새에 코가 마비되듯 쉽게 잊어버리는 사회다. 무엇보다 그 사회는 실제 나지도 않는 냄새를 상상적으로 재현하며 확대재생산하는 사회다. 이런 감각의 변화들, 두렵고 불안해진다.



(여기서부터는 '후각사회'의 보론)

칼럼에선 주로 '혐오'와 관련된 후각표현에 대해 말했지만, 서두에 슬쩍 언급하듯 후각은 '매혹'과도 떼어놓을 수 없다. 한국은 '혐오' 뿐 아니라 '매혹'이라는 면에서도, 후각사회다. '소위 '푸드 포르노'라 불리는 음식 콘텐츠들이 과거에 비해 굉장히 각광받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매체에 나오는 음식관련 콘텐츠들이 전부 '푸드 포르노'는 아니다(그래서도 곤란하다!).

음식을 소재삼은 TV 프로그램과 미디어 기사가 넘쳐나는 직접적인(공급자의 입장에서) 이유는 명백하다. 제작비에 비해 시청률과 열독률이 높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투입대비산출이 좋다. 음식 콘텐츠가 '불황형 콘텐츠'라 불리는 이유 중 하나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그럼 왜 시청자나 독자들이 음식 콘텐츠를 좋아하는가'다. 이미 여러 미디어들이 '푸드 포르노' 관련 기획기사를 쓴 적이 있고, 그 이유를 언급하기도 했다. 

"포르노그래피를 보며 성적 대리만족을 느끼듯, 요리를 묘사한 각종 서사를 들여다보며 식욕의 대리만족을 느낀다. ‘푸드포르노’ 중독자들의 등장이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는 요리문화와 마니아층이 넓어지는 현상에 대해 “음식은 쾌락 중추를 강하게 자극한다. 그러나 먹는 행위 외에 음식을 만들거나 그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창조적 욕망을 자극할 수 있다. 과학에서도 날마다 작은 실험을 한다는 의미에서 요리는 매우 창의적인 작업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32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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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의 기사는 무척 흥미롭지만, '왜 사람들이 다른 것이 아니라 '푸드 포르노' 같은 음식 콘텐츠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려 하는지'에 대해서 명쾌하게 해명하지 않는다. 사실 거기서 더 심층으로 내려가면 일종의 정신분석이나 사회심리학적 접근이 요구 되는데, 딱 잘라 결론내리기 힘든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왜 오늘의 우리는 음식 콘텐츠에 열광하는가?  '불황기의 상실감과 공허감, 불안이 가장 본능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테다. 또 '복잡하고 논쟁적인 주제를 회피하다보니 결국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욕구로만 쏠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둘 다 일리가 없지 않으나 딱 하나의 정답은 없다. 해석이 있을 뿐이다. 

나는 영상기술의 발전도 음식 콘텐츠의 인기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HD, UHD, 초고화질 디지털픽셀로 구현되는 음식의 이미지는 실물보다 더 실물같은, 과잉의 핍진성을 선사한다. 우리는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지만, 그릴에서 슬로우 모션으로 튀어오르는 최고급 안심의 육즙과 아산화질소 거품기에서 뿜어져나오는 에스푸마의 '분자요리적 순간'을 레스토랑의 좌석에서 TV보다 생생하게 감상하기란 불가능하다.

'맛이라는 것은 단순히 미각이라는 하나의 감각에서만 논해질 수 없다. '맛'은 시각(음식의 모양, 빛깔, 형태), 청각(조리되는 소리와 씹는 소리), 촉각(씹히는 질감, 바디감), 후각(미각을 결정짓는 냄새), 미각(짠맛, 단맛, 쓴맛...)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감각의 앙상블이다. 그런데 '푸드 포르노'는 (아직까지) 시청각 외에 다른 감각을 수용자에게 제공할 수 없고, 결국 시청각에서 '초자극'을 추구하게 된다. 그동안 수용해온 음식에 대한 시청각 이미지를 뛰어넘을 정도로 지나치게 강한 자극이, 그것도 특정 감각기관에 한정된 자극으로 집약되어 버리는 것이다.

혐오발언들이 후각사회의 '부정형'이라면, '푸드 포르노'의 범람은 후각사회의 '긍정형'이다. 여기서 '긍정형'이라는 게 '옳다'는 의미가 아님은 물론이다. 실제로 발현되지 않는 감각을 상상적으로 재현하면서 대리만족한다는 점에서, 설득이나 논쟁 따위가 일절 필요없는, 오직 매혹과 열광만이 존재하는 세계라는 점에서, '푸드 포르노'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강력한 긍정주의를 시사한다.

댓글 '2'

소년의 노래

2015.04.01 10:16:49

쾌락의 평등주의가 떠오르네요. 같은 의미는 아니겠지만...

박권일

2015.04.01 10:44:40

'모두가 평등하게 위가 꼴린다'는 점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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