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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팅 비평은 모종의 ‘미적 질감’ 비평을 끌어내보기 위한 작업이다. 여기서는 미술과 미학 문제로 다룬다.

그간 미술비평과 큐레이터 일을 했다. 인문학박물관을 만들어 학예실장으로 일 한적도 있고 일민 시각총서 편집장 일도 했다. <미학이란 무엇인가>(사계절)를 비롯해 미술서 몇 권 썼고, <문화적 기억_야나기 무네요시전>, <공감_정기용 건축전>을 비롯해 <격물치지>, <공장>, <우리 학문의 길_새 생활과 새 윤리의 학>, <수레바퀴 밑에서> 등의 전시도 기획했다.

자전적 문화론이자 지하생활자의 수기로 문명과 미감 사이 곤경(困境)의 질감(質感)에 대해 써보고 싶어 그야말로 노력 중이다. 인생의 불편함, 불쾌함에 대한 사회적 존재론이자 우주론 독본을 계획만 하고 있는 건데, 스스로도 그 모양새를 알 수 없다.

<광장의 예술과 퍼블릭(Public Art) 아트 개념>


1

광장

 

광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은 광장에서 함께했던 낯선 사람들과의 뜨거운 연대감이다. 광장에 서면 일상 속 불만과 갈등이 내일을 위한 희망으로 바뀌어져 간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 느낌의 순간에 내 옆 어느 낯선 사람도 내 마음에 동참해주고 있다는 벅찬 뜨거움이 올라온다.

굳이 촛불집회같은 광장에서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어디인가 누구나가 갈 수 있고 자유롭게 주변을 누리고 공중의 특별한 간섭없이 내 자신으로서 있을 수 있는 공간에서는 인생의 여러 자질구레한 요구에서 해방된 듯 느껴진다.

광장에서는 여럿이 함께 있어도 즐겁지만, 혼자 있어서 오는 외로움이나 약간의 불안감마저도 배려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손을 내밀기만 하면 옆 사람들이 나를 받아줄 것 같은 불투명하나마 공동체의 느낌을 갖는다. 못 올 곳이라거나 잘못된 장소에 발을 들였다는 거북함과 공포는 슬며시 물러난다. 실제로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 가운데서도 서로 간에 따뜻해지고 서로가 있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짐을 마음으로 알아챈다.

물론 목적 없이 걷는 길 위의 산책이나 헤매임에도, 군중 속 고독의 존재상태에서도 마음 속에 광장이 있을 수 있다. 마음 안과 밖의 광장 위에서 개인이 체험하는 것은 존재의 무한한 확장, 그 확장의 광활함이다. 광장 위에서는 생의 확대와 연장의 광활함으로 내가 깊게 숨쉬고 있음을 깨닫는다.

물론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면서도 얼핏 광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의 생의 욕구가 활달하게 펼쳐지는 광장 위에선 느낌을 맛 볼 수 있다.

윈도우와 미로같은 통로들 사이를, 화려한 미로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 그 속에 자기의 마음을 놓아버릴 수 있어, 시장이라는 광장은 자유와 평등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시장과 광장은 사람과 사람이 사적으로 만나면서 동시에 공적인 만남이 될 수 있는 장소적 특성을 지닌다. 인류의 삶이 지구 위에 전개된 이후 시장의 광장다운 역할, 광장의 자유시장같은 역할은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인류는 시장과 광장을 통해 전체주의적 권력에 의해 조정되는 공권력의 프로파간다와 소수 개인들의 정당성 투쟁이 벌어지는 극장의 기능도 하게 된다.

우리 마음 속에는 누구나 자기만의 광장이 있다. 사람 마음 속 광장은 누구나의 마음 속 생명정치의 가늠자로 기능한다. 가늠자가 비뚤어진 사람도 있겠고 아주 작아서 분명하지 않은 사람도 광활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생명정치의 가늠자를 달리 표현하면 모종의세계상이다. 내가 대면하고 있는, 내가 속한 공동체의 모습이 어떤 생명정치를 존중하는지에 대한 그림이 내 안의 세계상이다. 그 세계상이 내 안에 광장에 대한 욕구로 자리잡는다. 내 안에 세계를 품는다.

 

 

 

2

순수미술 개념

 

생각해보면 '순수미술'만큼 사는데 실질적으로 도움 안되는 활동도 없다. 미술 치유라든가 미술의 환경장식 기능 등을 빼고 단일 미술품의 시장가치라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그렇다. 그러면서 '순수'라는 명목으로 사회적 발언을 담은 미술을 정치적이라고 반예술적이라 비난한다. 순수미술 개념은 미술활동에 가장 정신적인 순수함을 요구한다. 인생의 모든 이익활동에 배타적으로 자기 존재를 규정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회시스템에서 순수미술에 관련된 제도와 행정은 근대화 제도들 가운데서도 가장 심하게 문제적이라고 할 만하다. 다른 사회시스템보다 훨씬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 부패와 부조리 등 적폐의 온상이다.

생활에 크게 실질적 도움은 안되면서도, 아니면 대중의 정신적 치유를 위한 기능이라고 해봤자 간신히 하면서도, 순수미술에 관련된 인문학적 담론은, 담론들 가운데서도 가장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정신상의 개념들로 이루어지면서, 마치 세계 최고의 지성 의 산물인양 세계에 대한 고민을 포괄하는 미술작품에 대해 화려한 언술을 펼친다. 미술을 예술자율성이라는 세계 내 절대성의 우주의 위치에 올려놓고, 세계 내 모든 사색들을 포괄하는 이념인양 상으로 미술을 바라본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읽어주는 비평과 이론들을 최정상급 비평으로 모신다.

순수미술 작업들 대체로는 통속적이고 상업적이고 상투적인데, 이 작업들에 관련된 이론들은 고공행진을 멈출 줄 모른다. 작업을 보호하기 위해 전투의 나팔을 울려댄다. 작업이 아니라 비평이 작업을 대변한다. 미술과 미술제도는 미개한데, 미술담론은 문명의 첨단 더듬이를 장착하고 우주로 심해로 들판으로 자유롭게 마치 고뇌의 몸짓인양 비행하고 잠수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고상하게 철학적으로 담론화로 무장된 작업일수록, 자본주의 세계의 순수한 잉여가치가 들러붙는다. 순수미술을 둘러싼 내적 외적 적폐에 세계의 가장 지성적인 정신의 전선들이 만들어내는 비평들이 들러붙고, 남아돌아 떠도는 세계자본들이 문화투자의 이름으로 금융가치 확대를 위해 어드벤처에 달겨든다.

작가는, 타자의 인생살이는 개천에서 뒹굴어도, 예술을 투자제도로부터 승인받기 위한 전력투구에만 돌진한다. 순수미술의 역사라는 로얄 패밀리에 속하기 위해 밑도 끝도 없는 허영의 시장, 거품에 자신과 작품을 내다 판다.

동시대 순수미술이 놓인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래서 순수미술에 대해 다시 들여다 보는 일 일 수밖에 없다. 근현대의 순수미술이 그 존재론적 가치론적 기능의 모순과 억폐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인생의 중요한 활동으로 인정되고 있다면, 인류에게 이토록 순수미술이 필요한 이유는 그간 무엇이었던가를 다시 돌아보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순수미술에 대한 인류의 기나긴 사랑의 본질을 떠올려봐야 하는 일이 남았을 뿐이다. 미술이 오랫동안 인류문화에 중요했던 것은, 미술이 가진 '순수'라는 개념의 독특성, 그 고유성으로 인해서이다. 순수라는 개념이 지닌 존재론적 인식론적 가치론적 기능은 개념이 지시하는바 그 공공성의 기능에 있다.

인류에게 '순수' 개념은 공공성의 유일한 보루이다. 순수한 활동은 유희적 활동이고 그 자체 공공의 활동이란 뜻을 내포한다. 예술과 공공성 개념은 동의어이다. 그래서 퍼블릭아트 개념은 동어반복적이다. 순수하게 정치적인 비전활동은 이해관계와는 상관없는 순수 실천 행위, 본질적으로 예술적 행위이다.

인간의 삶을 보다 낫게 해보겠다는 개인과 공동체의 의지와 욕구는 인류의 여러 충동들 가운데서도 가장 순수하다. 정신적이다. 그야말로 유희충동이다. 순수예술은 인간의 삶을 제대로 보기 위해 남은, 인간의 자유와 평등의 마지막 보루이다. 정치적 순수 활동성을 목적으로 하는 광장의 정치의 장이다. 이러한 순수예술의 원래의 자기목적적 기능이, 예술의 그 모든 상업화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동시대 미술가들을, 미술계의 그 오랜 부패와 허영심 너머, 다시 정치적으로 행동하게하는 원천이요 힘이다. 자기근거이다.  
이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예술에 제도가 간섭해서는 안된다. 쉽게 말하면 순수 예술을 순수 정치적으로, 공공미술로 남아있게 하기 위해, 예술에 행정/제도 등이 개입되어서는 안되는데도, 이 관점은 지금 전복되어있다. 정치적 예술은 오히려 예술이 아닌 것으로 비난받는다. 무엇보다도 더 생활세계 모순의 극대화가 반영되어 있는 미술제도가, 바로 그 모순의 권력으로, 모순의 권력이기에 순수미술에서 정치적 활동을 배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3

광장과 순수예술과 공공성

 

개인이 갖고 있는 세계상은, 세계로 나아가고자하는 욕망은, 노스탈지아처럼 간직된 이상적 공동체를 향한 동경은, 개인을 광장으로 이끈다. 예술충동으로 이끈다. 그 광장이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라면 개인의 광장충동은 지배계층이 바라보는 세계비전을 공유하는 일이며. 아고라라면 혼돈 속에서도 떠오를 뒤끓는 어떤 희망의 연대이다.

 

고대로부터 광장은 개인과 세계를 이어주는 장소였다. ‘광장을 지향하는 충동은 인류의 종적 특성이다. 개인은 광장에서 타자들과 공동체에 대해 말 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말을 하고 자신을 변화시키기도 하며 공동체에 대한 그림을 얻는다. 광장이 중요한 것은, 광장이 필요한 이유는, 개인들이 그 속에서 살아야만 될 사회에 대해 말할 기회가 필요해서이다. 광장과 민주주의도 이렇게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광장은 공론이 모이는 장이다. 공론으로 보편원리를 공유하고 싶어 모이는 공간이다. 광장에서 비로소 내 말도 말이 되고 타인의 말도 이기적인 것만이 아님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서양의 파인 아트개념도 공론장의 개념과 연관되어 있다. 광장과 연계된 인간의 활동이다. 세계를 인식해서 인간의 필요에 맞는 무엇인가를 모방, 제작하는 기술(Ars), 천문이든 수학이든 음악이든 문법이든, 세계의 보편원리를 인간을 위한 기능으로 특수하게 만들어 쓰는 기술은, 보편과 특수를 정합적으로 매개시키는 전문 기능을 의미했다. 다시말해 보편원리와 개별원리의 매개 가능성에 대한 전문성을 의미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창조품은 독특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파인 아트개념은 이러한 기술상의 자율적 원리에 의해 창조된 가치의 개념으로 정착됐다.

특수와 보편을 매개하면서 인식과 제작을 동시에 담보하는 고유한 활동원리를 담은 세계가 파인 아트의 세계로 인식되고, 이 인식이 정교화 되어 정착된 개념이다. 이 세계가 바로 근대 이후 순수예술의 세계로, 순수예술은 자기 원리에 의존해서만 스스로 존재하는 인간활동 영역을 가리키게 됐다.

순수예술 활동 외부에서 순수예술에 대고 감나와라 배나와라 해서는 그 본연의 원리가 훼손되는 활동이다. 하지만 그 본연의 특성이 보편자와 개별자를 매개하는 활동에 있으므로, 보편자와 개별자가 동시에 매개되어 있지 않으면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되지 않았다. 예술작품에, 그 예술이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형태를 갖든, 그 안에 보편자와 개별자가 매개되어 있다면 예술은 충분히 훌륭하다고 보여졌다.

보편자란 세계전체의 공통된 법칙이자 개별적 존재 전체가 공유하는 법칙이다. 특수자는 개인과 사물 하나하나의 고유한 특성에 관련된 모든 성질이다.

예술가가 소재나 재료, 주제를 다룰 때, 소재나 재료, 주제의 보편원리를 전문적으로 터득하고 있어야 비로소 아르스를 소유한다고 할 수 있다. 재료나 소재, 주제는 보편성의 담지자이자 그에 속한 특별한 개체들의 성질들은 개체 마다 전체의 특정 부분으로서의 개별성을 동시에 지니는데, 이를 가리켜 개체의 특수성이라고 부른다.

예술가 개인으로 보자면, 예술가는 보편적으로는 인류에 속하고 민족적, 사회적, 국가적으로 보면 특수한 문화 속에 살며 그 특수한 문화 속에서도 모든 개인은 다른 개성을 지닌 인격체이다. 예술가는 자신이 다루는 대상과 자기자신이 걸쳐 있는 이러한 특수하고도 보편적인 원리들을 한 쾌에 파악하는 기술(Ars)이 있어야한다. 오로지 그 기술만이 좋은 작품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원래 파인 아트 개념의 기원이었다.

사회가 예술가에게 그가 선택한 소재나 주제, 취향의 것이 아닌 무엇을 예술에 보태기를 요구한다면, 그의 작업은 이러한 의미에서의 보편자와 특수자를 매개하기 힘들다. 그리고 예술가가 오로지 자신의 선택으로 만일 작품에서 정치적 발언을 한다면, 그것이 그의 선택이라면, 그는 예술가 본연의 자세를 취한 것이다. 그의 작품이 보편과 특수의 매개를 어느 정도로 구현하고 있는지는 그 완성도의 문제이지, 그 작품을 파인 아트로 볼 수 없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파인 아트의 개념을 보존, 계승시키고 있는 원리는 파인 아트 개념 자체이다. 파인 아트를 보편과 특수의 조화라는 가치원리로 전제하는 규정은 역사적 규정이다. 서구역사가 만들고 서구역사가 발전시켜온 규정이다. 앞으로의 시대에 이러한 차원에서의 파인 아트개념이 오히려 공동체의 보편과 특수를 인식함에서 장애가 된다면, 인간활동의 제약이 된다면 파인 아트개념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현대미술은 이 문제에 오래전부터 봉착해있고 동시대 미술을 둘러싼 고민은 이 문제지점이다. 파인 아트가 실재를 거부한다면, 실재는 아트 너머 실재의 귀환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실재는 보편과 특수의 구체적 정황들이기 때문이다.

동시대 현대미술은 근대사회 들면서 매우 좁게 작위적으로 한정된 19세기적 파인 아트의 개념을 해체하고자 하면서 예술의 원래의 자기 기능을 회복시키고자 해왔다. 예술 개념을 광장의, 공론장에서의 다양한 실천 개념으로 전위시켜왔다.

광장에서 행해지는 모든 류의 퍼포먼스, 그것이 내면의 광장이든 거리의 광장이든 상관없이, 세계나 이웃과의 소통을 위한, 최종적으로는 공동체 속에서의 조화를 위한, 보편적 말들과 인식들과 개인적인 필요와 욕구들이 공유되는 모든 행위들을 예술적 실천으로 수용해왔다. ‘보편가치를 진작시키는, 삶의 공공성을 추구하는 개별자의 자기표현행위가 예술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예술의 개념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보편가치의 내용이 역사적으로 지역마다 달라왔을 뿐 예술은 원래 광장에서 인간의 삶의 보편성을 묻는, 개인의 삶의 이유와 사회의 존재 이유를 묻는 공론으로써 존재했다.

그리스 시대 거리의 가인들이 그래왔고, 희비극들이 극장이자 광장에서 공연되면서 예술은 이러한 모습으로 존재했다. 로마의 건축물에서도 중세의 교회건물에서도 예술은 보편적 가치를 상징하면서 공론의 형상화로써 존재했다. 예술은 언제나 공중 앞에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던지며 세계의 비밀을 말해왔고 비밀을 상징했다.

G. 레씽의 <라오콘 논쟁>은 문학예술(공연예술이자 시예술)과 조각예술(조형예술 일반)의 차이를 논하면서 사실상, 예술이 보편자와 특수자를 매개하면서 조형성을 완성시킬 것인가 공론으로서의 기능을 확대, 발전 시킬 것인가의 문제를 이미 다뤘다.

이후 점차 근대기 예술생산과 유통이 시민사회의 중상류 계층의 부()에 종속되면서 작품형식과 내용의 정합성과 조화가 절대적으로 강조되어 예술의 물품성으로서의 가치가 예술을 평가하는 지배적 가치가 되긴 했지만, 동시에 문학에서는 공론장으로서의 예술개념은 지속적으로 보존, 유지되어왔다. G.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을 통해 산문시대의 예술형식으로 소설의 예술형식을 특별히 언급할만큼, 공론장으로서의 예술의 지위는 사회의 물신주의가 심해질수록 강화되어왔다.

서양 예술철학에서는 순수 예술의 개념을 논할 때, 보편성과 특수성을 매개하는 능력을 기준으로 했다. 매우 어려운 기술을 요하는 능력이라 천재개념이 매우 중요하게 예술비평에 등장한다. 이러한 능력이 곧 풍부한 상상력의 능력이고, 이 상상력을 소유한 사람을 천재라고 보면서 이들 천재의 매우 특별한 공감각 형성능력에 의해 보편과 특수의 일치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 만큼 보편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의 조화를 이루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힘든 일이라 여겨졌고,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동시에 사회의 보편적 요구에 개인의 천차만별 욕구를 조화시키는 일도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여겼다.

광장이 외치는 유토피아는 천재에게만 잠시 허용된 이상향이고, 천재의 예술 속에서 유예된 실재로 가상적 형태로만 현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천재를 통해서만이 제대로 조화로운, 내용과 형식이 일치되는, 그 자체 보편성과 특수성의 조화를 상징하는 창조물이 된다는 생각에서 거의 벗어난 적이 없다.

동양예술의 가장 전통적이고 대표적인 형식인 문인화에서도 보자면. 예술은 보편성과 특수성의 매개 형상이다. 그리고 이 매개는 절대적인 공론가치를 지닌다. 공론적이어야만이 문인화로 인정받는다.

도화서원들이 그린 의궤등은 보편가치만을 대상으로 하고 표현방식도 보편묘사능력을 기준으로 한다. 그 쓰임새도 공공영역에서만 쓰이는데, 여기서는 특수성의, 작가 개인의 개별성은 전혀 고려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도화서원들의 작품들은 파인 아트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은 광장 주변에서 광장 속에서 생성됐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보편원리에 대한 지각을 개인적 요구에 연결해 파악하는 인간활동의 영역이었다. 학문은 보편원리를 탐지하지만, 예술은 사람들의 의견과 세계의 보이는 모습들을 함께 연결해 보는 개인의 고뇌, 감정을 반영하는 개인적 공론장의 기능을 담보했다. 예술은 언제나 공론장의 성격 속에서 발전해왔다. 그 고유성을, 예술의 순수성을 담보해왔다.

공론 혹은 공공성의 개념은 개별이 전체에게 보편가치를 묻고, 전체가 전체 속에서 개인의 특수가치를 어떻게 제대로 살려내야 하는가의 문제를 의미한다. 사회 속의 개인의 존재론과 개인을 위한 사회의 가치론의 문제를 다루는 광장이 공론장이요 공공성의 문제영역이다.

근데 바로 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개인이 자신의 언어로 세계에 대해 말할 때, 더군다나 아무런 외부의 제약도 이기적 목적도 없이 순수하게 말할 때( 그리고 정치적 목적이든 사회적 목적이든 이런 목적들은 이기적인 목적이 아니다), 이런 인간의 행위의 결과물을 가리켜 인류는 예술작품이라고 해왔다. 다시말해 예술이라는 개념과 공론의 개념은 사실상 동전의 안과 겉처럼 동일한 활동을 가리키는 개념이어왔다.

퍼블릭이란 개념이 인류 문명에 등장한 시기는 레씽의 <라오콘 논쟁>과 루카치가 <소설이론>을 쓴 시기 전후한 근대사회 특수시기이다. 원래 공론을 담당하던 예술이 자본시장에서 상품화되기 시작하던 시기, 공론은 특수 지배층이 주장하는 여론의 개념으로 분리되면서, 예술의 공론장적 본질은 배제되어왔다. ‘순수개념의 정치화가 시작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순수개념이 정치적으로 오용, 악용되면서 예술에서의 정치적 발언은 순수하지 못하다는 식으로 정치적 사용됐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현대미술의 아방가르드 운동 속에서 예술은 다시 공론적 가치라는 원래의 특수한 지위를 되찾자는 인식이 발전, 지금까지 이 인식은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예술적 과제가 되어있다. ‘아트의 개념 자체가 퍼블릭의 개념기능을 했으나 이제와서는 퍼블릭 아트로 그 개념기능을 다시 회복해야만 될 지경에 이르렀다.

광장에서의 예술행위는, 광장을 위한 예술적 실천은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보자면 순수미술이 원래 가야할 자기 길 속의 예술이다. 광장예술이라고 하여 순수미술과 별다른 특수한 새로운 예술이 아니다. 자신 속에 세계를 품고, 그러면서 그 안에서의 작가 개인의 삶을 고민하면서 나온, 작가 마음 속 광장에만 걸던 예술이건 실제 광할한 광장을 향한 예술이건, 광장의 예술이요 광장을 위한 예술이다. 순수 예술이다. 광활한 세계의 평화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외치면, 세계의 공정함과 개인적 삶의 가치를 묻는다면, 인식의 광할함을 갈구한다면 광장에 설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삶에 대해 묻는 개인의, 개인마다의 물음이 곧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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