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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팅 비평은 모종의 ‘미적 질감’ 비평을 끌어내보기 위한 작업이다. 여기서는 미술과 미학 문제로 다룬다.

그간 미술비평과 큐레이터 일을 했다. 인문학박물관을 만들어 학예실장으로 일 한적도 있고 일민 시각총서 편집장 일도 했다. <미학이란 무엇인가>(사계절)를 비롯해 미술서 몇 권 썼고, <문화적 기억_야나기 무네요시전>, <공감_정기용 건축전>을 비롯해 <격물치지>, <공장>, <우리 학문의 길_새 생활과 새 윤리의 학>, <수레바퀴 밑에서> 등의 전시도 기획했다.

자전적 문화론이자 지하생활자의 수기로 문명과 미감 사이 곤경(困境)의 질감(質感)에 대해 써보고 싶어 그야말로 노력 중이다. 인생의 불편함, 불쾌함에 대한 사회적 존재론이자 우주론 독본을 계획만 하고 있는 건데, 스스로도 그 모양새를 알 수 없다.

1.

 

아프리카 해안가 어디에선가 부터 해협을 건너고, 지구 표면을 따라 방랑하기 시작한 인류의 족적, 이 발자취를 인류사의 시작이라고 말해도 좋지만, 전통이라고도 명명할 수 있다. 지구 위를 방랑하다가 삶의 터전을 세우고 발 길 닿는데까지 영토화한 일도 흔히 역사라고 불려지지만 전통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전통을 세운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어딘가로부터 한반도로 흘러 들어와 석기, 철기 시대를 열고, 삼한과 백제, 신라, 고구려를 세운 일도 역사이고, 당시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세운 생활의 전통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족적을 일러 한민족의 역사라고 하지만, 사실 이 역사는 아프리카 해안가를 따라 아시아를 방랑했던 인류의 전통과, 만주와 산동반도의 전통, 일본 원주민들의 전통 등 백제 안에 백제만도 아닌, 고구려에 고구려만도 아닌 숱한 이민자들과 난민들과 원주민들과 그 안의 또한 무수한 가족들과 가족 속의 의붓 아버지의 패악과 형제의 시기와 딸들의 반항이 뒤얽힌 삶의 자취이기도 하다.

숱한 배반과 애증의 기억이 혼재된 생존 전통들이 서로를 억압하며 숨죽이며 칼부림을 하기도 했던, 강과 하천, 평야와 계곡을 따라 인문지리가 형성되고 그 가운데 은폐의 다락방이며 도망자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던, 생활 속 어둠의 공간들이, 곧 서로 화해 할 수 없을 공간과 시간의 전통이 생성되어 온 것이다.

그런데 근,현대 사회로 들어오면서 우리는 전통의 근, 현대화라는 말을 쓰고 있다. 전통을 근, 현대사회에 맞게 계승하자는 말인데, 한반도로 유입된 이같은 인류의 기억중 어떤 전통을 오늘날의 삶에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는가? 흔히 사용하는 전통의 근, 현대화개념은 어찌됐건 전통이 역사적으로 계승하고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과거의 문화로 존재했으며, 이러한 전통문화의 가치를 변용해 이어 받자는 뜻인데, 그렇다면 과연 위에서 언급한 인류의 무참하거나 저열했던 아니면 소소한 기쁨을 주었던 삶의 기억들은 오늘날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우리의 전통문화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오늘날 상투화된, 계승되어야할 전통으로 알려진 문화들은 제작되고 기록된, 나아가 창조된 유,무형의 물적 정신적 자산들이다. 이러한 차원에서의 전통문화 개념은 생산물로써의 전통문화개념이다. 행위든 제작물이든 세인들에게 학자들과 정치가들에게 가치가 평가되고 인정받은, 행동의 업적이든 잘만든 혹은 유효한 물건을 만들어서이든, ‘성과의 전통이 만들어낸 문화이다.

곤경에 찬 고난의 혹은 찬란했던 산보의 기쁨 같은 것도 사실상 삶의 전통이었지만, 흔적 없는 삶의 한가닥 남은 안쓰러운 기억일뿐,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통’(문화)은 결과적으로 볼 때, ‘효과있는 행위와 산물들에 대한 우수한 인력 혹은 지배층이 내린 평가를 통해 그 기억이나 유산이 살아남은, , 무형의 산물들에 대한 인식이다.

하지만 알고보면 가치판단과 평가의 행위에는 행위상의 페이소스와 악의, 과욕, 오류등이 뒤섞인, 그야말로 평가된 내용과 평가행위 자체가 이미 정치적 행위이기에 음모론이 팽배하고 평가 기술개발과의 전쟁이기도 한 미완의 인류사의 프로젝트이다. 오늘날의 전통개념 인식은, 그러니까 근, 현대화 이후 우리 사회에서 다루어지는 전통문화개념은, 사실상의 생의 투쟁 과정과 살아가는 방법으로서의 여러 전통의 속사정을 포함한 전통에 대한 진실이해가 아니라, 전통 속 가치평가 행위나 현재의 가치평가에 대한 주도면밀한 진실가치 탐색없는, 현재의 시장지배가치에서 볼때 보물이나 진귀한 물건 등 상품가치가 있거나 정사(正史)의 기록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만 전통으로 설정한다. 있는 그대로의 원래의 생생한 전통이란 사실 재현될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전통의 전통을 말 그대로 사물화 하고 있는 전통이다. 이런 식으로 재현된 전통은 원래의 있었던 전통에 대한 패스티쉬pastiche이다.

이러한 전통개념은 사실 악취나는 정치와 예술의 어떤 것, 비본질적인 것을 본질적인 것으로 둔갑시키고자 하는 헤게모니 싸움간의 도구가 되버린 전통개념이다. 삶이 강제했던 혹은 선택했던 결정의 과정과 순간들의 진리성을 패스티쉬화 해놓은 문화 개념이다.

 

2

 

세상만사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사물의 가치와 필요에 대해 평가하고, 평가를 위한 기준을 잡는 일은 인간이 행동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나침판과 같다. 평가와 평가기준에 대한 책략은 모든 전통()의 정체이다. 지구위를 방랑하던 인류는 진지한 개척자와 단독자로서 평가와 평가기준에 대한 선택, 판단으로 자기 생명의 전통을 확보해왔고, 그 평가행위의 가치를 전승했다.

인간을 둘러싼 현실관계의 진실 여부에 대해 알고자 함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불가결 행위이다. 철학을 포함한 여러 학문은 사실상 세상만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 연구이다. 그리하여 학문은 사실상 언제나 인생사를 결정하고 제어할 헤게모니 투쟁의 목적으로 이끌려져온, 궁구의 모색과 진리선전의 전당으로 자리잡는다. 인생사에 내걸린 모든 크고 작은 헤게모니 투쟁은 스스로를 전통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계승, 보존해왔다.

이렇듯 목적론적이지 않은 학문은 나치식 표현을 빌리면 오히려 퇴폐적이라 불리워 마땅하다. 자연주의적 실증주의적 학문이나 마르크시즘 학문은 건전한 학문이다. 다시말해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체제의 지배적 학문 전통은 어쨌거나 둘다 체제선전적이고 정치적이고 스스로들에게는 건전한 민족과 국가의 학문이어왔다. 이에 비해 해체주의 학문전통은 퇴폐적이다. 아니면 자기자신에게만 목적론을 허용하고 즉 자신의 목적은 숨긴채 타자들의 반목적론적 태도를 조장하는 우생학의 일종이다. 글로벌 귀족층 전통과 글로벌 하층민 전통이 확연히 분리된 결과가 선병질적 해체주의 세계전략이요, 이 전략은 대 세계적 글로벌리즘이자 우중(愚衆)의 전통을 숙명으로, 우수한 인종과 인성의 전통을 자유의 표징으로 확연히 구분해버린다.

학문문화이념의 개념과 더불어 전통의 실체화를 상정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전통개념은 다시 학문과 문화와 이념, 나아가 상식이나 정치경제적, 사회적 행위의 정당화로 작동한다. ‘전통은 그래서 모든 헤게모니 투쟁의 명분으로 취해진다. ‘전통은 투쟁의 명분 뒤에 서있는 가상의 은밀한 세력에 다름 아니다. 대부분의 일상 행동판단에서의 노선투쟁은 헤게모니 개념으로 위장된 개인이 줄을 대는, 빨대를 꽂고 있는 동아리 전통에 근거한다.

전통 개념과 평가의 개념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리고 이념 보다 은밀한 헤게모니 전투 의지를 지닌 것이 전통 개념이다. 전통의 보존과 발전을 위한 모든 주장과 요구, 논쟁은 사실상 소리없는 핏빛 복마전의 당쟁적 본질의 것이다. 전통의 의미의 외연을 넓혀 생각해보면, 전통은 삶의, ‘의지가 살아 낸 생의 과정, 그 과정을 관통하는 생에 대한 불굴의 모든 정신을 일러 누군가의 무엇인가의 전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웅담에서 보여주는 영웅의 생존방식은 신화가 되고 전설이 되어 전통으로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것이 평가되고, 살아남은 것은 문화요 정체성이요 헤게모니 쟁탈의 지배자로 군림한다. 살아남은 과정도 정체성을 형성하지만, 살아남을 방법도, 미래의 자기모습에 대한 구상도 정체성을 형성한다. 전통은 인정투쟁의 결과로 살아남은 최상위 생존자의 인생관이자 문화관으로 그의 앞으로의 살아남을 방법과 미래비전 구상의 나침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억울한 두뇌와 이들이 마음을 다지면서 굳히는 미래상도 또 하나의 다른 전통이다.

푸코식으로 볼 때 미시 권력들이 존재하듯 이렇듯 개인별 미시 전통이 존재한다. 모든 이들의 생활에 대한 갈망은 각각의 인생관의 전통으로써 거미줄같은 상호 훼방의 전통을 구축한다. 각각의 모든 미시 전통들이 향하는 생의 의욕은, 근대화면 근대화, 한일합방이면 한일합방, 해방정국이나 한국전쟁의 사회변화 한가운데서도 지속적으로 삶의 지속을 위한 변론, 삶의 전향적 가치를 찾아 전전긍긍하게 한다. 부귀영화 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자립이나 번영을 개인의 이생에서 이룩해보려는 노력은 통속의 인생관, 상식의 변호에 나서는 자연적 개인의 그럴듯한 생의 의욕이다. 이렇게 살아남은 인생관과 인생은 그 하나하나가 생의 매 계기마다 어려운 곡절을, 비정상적이든 정상적이든 헤쳐나온 아둥바등의 심려, 자기기만과 이기심, 부귀의 이상, 그래서 어디서부터인가 악의 습관에 물든 도덕심을 지닌 미시 전통들이다.

물론 이 개별 전통들 사이의 간극이 크거나 미세하게 인생관별로 불투명하면서 그 중에는 전향과 친일, 아니면 종북이나 반체제, 마르크시즘이나 모택동, 호지명이나 체 게바라를 정신적 전통의 지주로 삼게되는 당연히 여러 문제적 계보의 숱한 정치적 미시 전통도 나타난다. 서울 다르고 광주 다르고 부산 다르고 마산 다른 것이다.

이들 모두 여러 전통의 스펙트럼을 겹쳐 드러내고도 있는 것인데 이중 어떤 계기를 통해, 어느 고통의 혹은 선택의 순간을 택하느냐에 따라 각자도생의 개별 전통상의 다른 갈래들이 분기돼 나오고, 그 혹은 그 경계의 전환점에서 모든 정체성은 동요한다. 이러한 전통들은 이미 망가진 성채의 이끼 처럼만 우리 습속에 풍경으로 어른 거릴 뿐, 서로간에 분열적이고 상충적인 정체성들이다. 결국 개인의 주체성의 심적 내적 분열 양상은 냉전적 이데올로기나 종교적 봉합이 아니라면 다스리지 못할 정도로 복잡한 양상을 띠고 편파적이 된다. 자기가 속한 전통의, 계보의, 인맥의 합리화에 고착적이다.

개별자들의, 그래서 심성의 전통들이 구슬 꿰뜻 꿰어 질수 없고, 조각난 심성의 악덕과 미덕이 아무 놈이나의 발에 채여 이리저리 현장과 조직, 경험의 틈 속에 굴러다니다가 어느 구석엔가 짱박히면 소통을 막는 경험으로, 버림받을 지식으로 인한 상처로 자아는 석회화한다.

인생 나이 4, 50, 5, 60대가 되면 자기 전통은 석회화 한다. 자신의 정체성의 복면도 얻는다. 그리곤 많이 구려지기도 한다. 자기 역사 해석의, 취사선별된 자기 전통의 강퍅함이 내지르는 비명이거나 획책된 계급의, 개인적 이해관계의 극심한 고충, 이념의 개인적 전쟁터가 된다. 사실 이미 이러한 상태는 민족과 국가에 안하무인으로 자기를 강제하는 개별적 주구(走狗)들로 기능한다.

다른 한편 한 사회의 문화에는 여러 가지의 생활 특정적 전통들도 존재한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자연 도태되는 전통이 있고, 자연 도태되는 문화 가운데 일부가 특정 사회문화 생활을 보존하고 복구하려는 인위적 시도들에 의해 복원된 전통문화도 있을 수 있다. 현대사회로 들어오면 사회생활의 현장들이 복잡해지고 서로 얽히면서 그 얽힘 가운데서 파생한 문화도 생겨난다.

이러한 각 문화적 특정 현장 들 속에서의 전통의 재귀는 일종의 혼성모방적 성격을 띤다. 예를들면 고급 실내 인테리어나 유흥과 오락 중심의 카페나 레스토랑, 미술관과 화랑, 소형 오피스 건물과 대형 오피스 건물, 동네 소상인들의 가게들이 들어선 건물에 보이는 나름의 전통은 서로 다른 전통에서 나온 것이면서도 나름대로 우리 사회가 전통문화로 간주한 일정한 전통의 성향들을 혼성적으로 차용, 개발된 전통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제는 공예나 디자인이나 민속 전반에 걸쳐서도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현장들에서 취하는 전통들은 교육현장의 전통 개념 가이드라인과도 유사성을 보이며, 대학 수준별, 대학 소재별 지역 특정적 일련의 문화전통과도 연계되어 작용하는, 한 국가내에서 보면 나름대로 특정한 몇 가지 갈래의 전통에 대한 인지, 표현방향을 표출한다.

이들 전통간에는 우리 사회가 간주하는 질적 피라미드적 위계가 존재하고, 그 위계의 최상층에는 세계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동시대적 요구와 국내 문화 정치적 헤게모니 의식이 자리한다. 이 단계의 최상위냐 최하위냐는 글로벌한 인정과 국내의 문화권력의 내부 역학에 의해 평가된다.

이 모든 전통들은 사실 각기 자신의 전통성의 경제로 유지, 보존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모든 전통들은 세계사적 정치권력의 동력과 국내 정치경제의 영향, 그리고 이에 밀접하게 기생하는 학술, 문화, 예술권력의 피라미드에 따라 각 전통의 판매와 소비는 물론 담론이 활성화되기도 한다.

전통으로 자리잡은 문화적 속성은 어쨌든 지배적 정치경제 관계, 그 권력의 그림자이다. 어떤 권력이냐하면, 드러나지 않는 사회적 살인과 부패와 비리 뒤에 얻어진 최고생존자의 최고권력이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기본적인 생존권을 부르짖는 생명 하나만으로서의 권력이든 간에, 이들이 각각 붙잡는 자기 생존권의, 각각의 그 오랜 싸움이 만든, 문화의 각각의 내부에 고착된 앙칼진 주장의 투쟁권들이다.

하나는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의 첨단 미학으로 세팅된 문화의 생존권이요, 다른 하나는 빼앗긴 생존권을 돌려받기 위해,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덤벼드는, 숱한 비판의 전거를 들이대는 생존권이다.

이 모든 전통들은 하나 하나 모두 개별의 전통이고 그 가치 위계는 결국은 그림자적이다. 결국 역사의식도 전통에 대한 의식이며 계급의식도 전통의식이며 문화는 전통의 이름에 다름 아니기에 개인들이 속한 혹은 취하는 전통간의 위계는 소속감의 차이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고, 소속의 위상이 바뀌면 전통에 대한 관념이 달라지기에 그림자적이다.

 

3

 

전통은 정당화의 다른 이름이고, 정통의 다른 이름이요, 헤게모니와 이념의 다른 이름이다.

전통이란, 역사와 문화를 구성하는 여러 사회적 힘줄과 핏줄의 계열들의 숱한 갈래들 하나하나의 이름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가족의 전통, 전설과 서사가 있다. 그 어떤 사회조직, 학급이나 학교, 협의회나 위원회, 시장이나 가게에도 , 심지어는 그리고 업종별, 단체별, 가족별로 전통이 존재하고 각 현장마다 문화가 있고 전통이 또 몇 개 쯤 존재한다.

이 마지막 단위에도 내부 전통 간에 실제적 헤게모니 다툼이 있고, 이들 전통간의 헤게모니 다툼에서 생존하면 실재하는 미시권력으로 현장 지배권을 행사한다. 미시권력들은 이후 자기애(自己愛)의 특수성을 보편적 시장메카니즘에 매개하고자 좀 더 큰 단위 상의 전통과의 교접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소멸에 이르는 오체투지에 나선다. 그리고 이로부터 공동체 고유의 악은 생래적인 것인양 싹터 나온다.

전통을 구축 못한 소상인들은 가게 문을 연지 얼마 못가 결국 사라지고, 특정 학교, 특정 교수 밑의 학생 작품은 학습 전통이 너무 눈에 띄어도, 아니면 전통의 컬러를 갖추지 못해도 생존은 위기에 몰린다. 그런데다 사회생활의 어느 틈새 모퉁이에라도, 우연히 짱박혀서라도 어떻케든 자기 생존의 기반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가 그린 세계 조감도거나 자기 조감의 방식은 평가받을 기회 조차 잃는다.

그래서 이 틈들 사이에서의 정신의 전향, 친일은 충분히 자기동조적이다. 이광수와 모윤숙 등 친일문학자들은 제국과 민족, 근대성과 국가, 예술계와 예술가 등의 개념이 지닌 전통, 그 속의 평가와 선택의 가치가 뜻하는 서열의 계열들, 그리고 이 계열들 간의 문화적 위계가 의미하는 권력 상황을 한 눈에 간취하고 조감한 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선택은 결국 자신의 온갖 재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전통의 권력 최상층부였다.

각 계층간에 뿌리깊은 차이가 존재할 때, 그리고 지배계급이 항시 예속자들과 도구들을 경원하고 경멸하며 복종과 명령, 억압과 경원이 일반화될 때, 간격의 파토스가 싹트게 되는데 이것이 없다면 또다른 보다 신비한 파토스 역시 자라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영혼 그 자체 안에서의 간격을 새로이 확장하려는 끊임없는 갈망, 보다 넓고 보다 희귀하고 보다 특이하고 보다 넓고 보다 포괄적인 상태로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으며, 좀 더 간단히 얘기한다면 인간이란 종의 향상, 지속적인 인간의 자기초극’......은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1)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친일 문학예술의 비전은 이러한 류의 자기 초극에 있다. 식민주의적 인문학과 예술미학의 자기 정당화, 전통은 자기초극에 있다. 자기 헤게모니 향상을 향한 초극이 전부인 자기의 욕망이다. 그리고 그 전통 이후의 역사는 자기 내부의 저자거리 논리,패악이거나 작당을 스스로 은페하거나 제거해가는 과정이다. 이렇게 해 모든 미시 전통들은 자연적 실증적 관점에서 보면 생활의 궁여지책일 뿐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인간의 자기초극이 갖는 거대한 이상(理想)이란 애초에 없었다.

전통 개념에 대한 모든 이해방식은 자기 이해관계에 의거하며 그런 만큼의 무언지 뭐를 정통이라는 개념으로 부터의 거리 곧 이단성을 포함한다, 이단성에는 사이비가 있을 수 있고 자기변론의 정당화가, 모든 사람이 인생의 상처가 있기에 모든 악덕이 가능하다는 변신술의 동기를 부여한다. 결국 정통의 주장은, 실체로서의 전통성은 언제나 이념형일 뿐이다.

각 전통은 자신의 위상에서 본 세계 감정의 잔재들도 표현한다. 그러면서 세계에 대한 자기존재의 방패막을 갖기에 위로도 베푼다. 각자의 사회적 위상에서 행하는 자기 이해관계, 인간과 사물에 대한 개개 전통방식들의 모든 개별적 평가들은 평범함 속에 숨은 교활함으로 이성의 간교로 화한다. 각자의 자기 외부 환경에 대한 평가내용은 비전(秘典)으로 간직된다. 그 축적의 깊이는 우주 공간 만큼 오묘한 뒤통수와 정원과 자기만의 논리를 품는다. 각자만의 평가내용이라는, 오래된 전통이라는 숲에 깃들어 사는 고유의 악은, 각자의 평가 전통이라는 숲은, 인생에 대한 원한도 자체 내 평가원리로 재현한다.

모든 전통의 기본원리는 모든 평가의 기저에 놓여있는 원리와 동일한 원리이다. 평가는 개인들간의 절대 평등하지 않은 자질을 간취하고, 그리고 자연의 질에 대해서도 질감(質感)의 스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로부터 전통문화간의 차별화도 생성된다. 평가는 제도가 개인과 사물과 제도 자체에 대해서도 행해지고, 개인이 제도와 사물과 개인 자신에 대해서도 하는데, 우수한 것, 좋은 것을 구별해낸 평가내용은 사회적 자산의 위계로 구축된다. 니체는 "라틴어 bonus(좋은)를 전사(戰士)로 해석할 수 있다2)며 그리고 사실 이러한 평가의 대립에 의해서 마침내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자유정신의 아킬레스 조차도 전율없이는 뛰어 넘을 수 없는 깊은 간극이 벌어졌다”3)고 말한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평가는 사회적 헤게모니 세력의 영구존속을 보장한다. 이들 지배자의 전통(정체성, 문화, 평가체계)과 피지배자의 전통(정체성, 문화, 평가체계)간에는 위계와 알륵이, 거리감이 형성될 수 밖에 없다. 평가는 사회를 반민주주의적으로 구축한다. 모든 평가는 개발독재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원래적 민주주의에서는 평가가 사람과 사물들간의 질의 위계를 구별하기 위한 선별의 평가가 아니라 개인들간의 자유와 평등의 조건을 맞춤형으로 보완해주기 위한 평가로, 비보(裨補) 풍수사상에서처럼 개인에게 부족한 것을 보완하는, 우수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열등성을 평가하고 고민하는 평가이다. 그럼으로써 우생학적 평가시스템의 피비리내는 걷우어진다.

모든 전통들은 그것이 어떤 전통이든간에 반민주적이다. 전통(개인)간의 경쟁심리로 인해 문화는 허위의식이거나 겉만 번지르한 수사학 혹은 상품미학을 동원한다. 전통이란 스타 생산 메커니즘과 싸움의 기술을 전승할 수 있는 전승의 요체이지만, 용인되지 않는 재현, 개인의 순수 자발적인 자율적 자기 재현을 허용하지 않는, 기존 지배권력의 헤게모니를 대변하는 전통의 기득권을 상징한다. 그래서 이미 스타가 된, 전통이 된 개별자들, 사회들, 개념들만이 서로간에 다시 헤게모니 경쟁에 나설 기회도 용인된다.

오늘날 미술은 그러니까 특히 정치적 미술은 작가가 고심하는, 그 어떤 평가체계에 대한 해석이거나 새로운 평가기준으로 그려낸 혹은 바라본 세계상의 차원을 담는다. 혹은 비판, 설계한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미술의 작업미학 혹은 미술사는 사실 평가론으로 빛나는 세계이다. 이런 방향의 작업들에서 비로소 세계는 작가의 문화전통에 따른 평가체계로 전혀 새롭게 해석하고 새롭게 구성된 삶의 비전을 드러낸다. 이 점이야말로 미술작업의 매혹적인 예술적 가치이다.

1)F. 니체, 김훈 역, 선악을 넘어서, 청하, 1982, 205쪽 

2)F. 니체, 김태현 역, 도덕의 계보, 청하, 1982, 38쪽

3)F. 니체, 김태현 역, 도덕의 계보, 청하, 1982, 39쪽

   이미지, 박이소, 그냥 풀, 종이에 먹,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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