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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팅 비평은 모종의 ‘미적 질감’ 비평을 끌어내보기 위한 작업이다. 여기서는 미술과 미학 문제로 다룬다.

그간 미술비평과 큐레이터 일을 했다. 인문학박물관을 만들어 학예실장으로 일 한적도 있고 일민 시각총서 편집장 일도 했다. <미학이란 무엇인가>(사계절)를 비롯해 미술서 몇 권 썼고, <문화적 기억_야나기 무네요시전>, <공감_정기용 건축전>을 비롯해 <격물치지>, <공장>, <우리 학문의 길_새 생활과 새 윤리의 학>, <수레바퀴 밑에서> 등의 전시도 기획했다.

자전적 문화론이자 지하생활자의 수기로 문명과 미감 사이 곤경(困境)의 질감(質感)에 대해 써보고 싶어 그야말로 노력 중이다. 인생의 불편함, 불쾌함에 대한 사회적 존재론이자 우주론 독본을 계획만 하고 있는 건데, 스스로도 그 모양새를 알 수 없다.

예술가의 스승은 현실이다.

조회 수 107 추천 수 0 2020.03.06 10:34:31
예술가의 스승은 현실이다
-이태호 작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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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어떤 느낌에 실체가 있을까? 명료하게 잡히지 않는 무엇에 의미를 두며 자신의 느낌 속 진실의 끄트머리를 끄집어내기 위해 작가는 자신의 경험의 하수구를 헤집는다. 하수구 속 썩은 실체에서 역사와 네트워크 등 문화의 지층들을 읽어내려고 하지만, 하수구에 흘러든 여러 지천들의 물줄기에서 고고학을 읽는 능력은 작가마다 다르고, 실체의 피냄새를 작업으로 구성하게 될 특정 실마리를 잡는 방식도 다 다르다.
작가의 감각이 더듬는 각角과 질質, 강도와 속도 등이 다르고 우연히 환기된 순간의 감각에 대해 스스로 감식하는 경험의 계보들도 전부 다르다. 그 실마리의 의미를 깨닫고 작품 준비에 들어가더라도 작업할 세계를 계획하고 작업과정을 이해하는 수준, 작업의 의미화에 대해 스스로 최종 가늠할 수 있을 능력의 차원도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작가들의 모든 작업들은 평등하다. 작품들을 좋은 작품과 별 볼 일 없는 작품들로 구분하는 미술사와 미술시장이야 굳건하다지만, 절대평가의 영원한 제국인듯 보이지만, 작가들의 작업들은 비록 미완성 같거나 막 말로 후져 보여도, 각각이 간직한 인생의 어떤 지점들에 대한 특별한 순간의 기억과 의욕만으로도 ‘성좌적 인식론’을 희미하게 나마 간취해낸 결과물이기에 작품들은 서로 간에 평등하다.
작가는 ‘작업의 시간’을 통해 자유를 경험한다. 주제를 소화하는 창의력과 제재와 소재들을 다루는 내공이 부족하거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볼 수 있는 경제적 여유, 정치적 자유가 없어 오는 부자유 말고는, ‘작품’은 작업에 덤벼드는 의욕만으로, 생활인의 욕망과는 다른 차원의, 자유에의 욕망이다. 거액의 창작비를 지원받아 제작된, 거대한 미술관 규모에 어울리는 그로테스크하거나 웅장한, 공간이나 벽면의 장대함을 기획할 수 있는, 메꿀 수 있는, 그야말로 자본과 부모 찬스나 형님 찬스는 없더라도, 소품이라도 또는 레디-메이드로써 별 기술 없이 그래서 조야하게 보이는 기술을 동원했을 망정, 무엇인가 ‘작업’으로 실천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선 자유의 누림이요 평등한 예술적 주체로의 전위이다.
예술 의욕의 일정한 실현은 세계에 대한 스펙트럼의 특별한 파편이다. 일종의 환영으로 그림자이되, 그럼에도 실체로 존재한다. 실존의 더러운 혹은 꼼꼼한 성질, 있는 만큼의 깊이와 높이의, 인생의 층위와 차원의 질質이다.
평등하지만, 돌멩이를 단지 극사실적으로 그려내기만 하거나, 돌멩이들을 무슨 관계항이니 하면서 배치하는 작업들과, 세상 속으로 돌멩이를 던진 사람을 기념하는 작업이 다른 것 또한 사실이다. 아름다워 보이는, 의미있어 보이는 돌멩이와 사물의 관계항을 따져 배치한 돌멩이는, 작가에게 몸을 바친 돌멩이들이다. 액자나 한정된 공간 안에서 천년 묵은 여우처럼 둔갑의 기호로 자율적 모르스 신호를 보내는 돌멩이들은 어떻게 해도 세계 내에 존재자이다. 시계바늘처럼 타율적 시스템에 종속적이다. 기호체계로 미술계 내의 비평 앞에 도마 위에 놓인 생선처럼 썩어가거나 난도질 당하거나 곱게 모셔져 수장될 ‘자산’의 운명이다. ‘자산’은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는 ‘교환가치’의 효과로만 실제성을 지닌다.
이와 달리, 돌멩이를 던진, 돌멩이와 인연이 있었던 누군가를 환유로 불러내는 일을 ‘작품’으로 명명 해버린 작업은, 형식주의 미학의 논리에 따라 존재했다 말았다 하는 교환가치로 존재하지 않는다. ‘돌을 던진 혹은 돌에 처박혀 죽은 누군가의 인생은 이미 미적이다’라는 작업에 미술시장이 개입할, 그 작업에 대해 품평할 교환가치상의 건덕지는 없다.
이태호의 <근대 짱돌의 역사>는 역사에 대한 인덱스로 존재하는 작업이다. 여기서 비평은 작가를 만날 수는 있어도 교환가치로 평가 할 수는 없다. 짱돌의 역사는 이미 일어난 일이고, 영원으로 돌아간 짱돌의 역사를 한 순간 지금 여기로 계몽처럼 변증법으로 낚아챘을 뿐인 사건을, 시장제도의 비평언어로 재단하기는 어렵다. 역사 속의 실천을 부활시키겠다는 ‘지시’로만 작가의 작업이 존재하기에 그렇다. 남이 내린 부활 명령을 시장에서 평가할 수는 없다. 미학의 윤리로 평가 할 수 있을 뿐이다.
미술시장은 비평으로 시작되고 끝나기에 다시말해 비평의 존재 없이는 미술시장의 토대 자체가 형성되지 않기에 <근대 짱돌의 역사>는 미술시장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미술시장의 일품성 가치로 평가되는 미술작품은, 숭고하고 우아해도, 고혹적이고 환상적이어도, 자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자이다. 평가로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작품이다. 이 점이 미술시장 미술작품의 미술적 위상이다. 미술사와 미술비평 담론 안에서만 존재의 가치가 규정을 얻어 존재자의 위상을 지닌다.
이에 비해 미학윤리의 수행적 작업은 현실을, 과거를, 미래를 움직인다. 미술사와 미술비평 차원 너머, 인간 전체의 문제를, 인간을, 역사를 뒤흔드는 독립적 존재자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유의지로 인류 전체를 위한 대동예술의 기치를 내건 퍼포먼스이다.
어떤 작업이든 미술작품으로 발표되면, 작품은 평가를 받는다. 평가를 못받는 작업들도 물론 있다. 평가를 받지 못한 작품들은 전혀 존재했던 적이 없는 작품이 된다. 혹은 만일 작품 스스로의 생명력이 질긴 작품일 경우, 인구에 회자되며 스스로 평가를 끌어낸다. 또는 후일의 어떤 미적 주체에 의해 역사 속으로 불려 올려지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이런 경우 이미 그 작품은 미술시장의 상투적 시간 곧 미술시장의 미술사를 영원히 넘어서는 존재자의 위상을 점한다.
'미술작품'이라는 개념에는 작품 평가가 마치 미술이라는 예술장르의 본질처럼 개입되어있다. 미술가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미술가로서 미술적 가치평가를 수행해 작품을 만들지만, 그가 만든 작품이 미술작품으로 생존할 수 있기 위해서는 미술계의 작품평가가 숙명의 굴레처럼 끼어들어 줘야 된다.
미술은 창작하면서도 그렇고 수용할 때도 그렇고, 시장에서도 평가시스템의 산물이다. 창작자나 수용자나 중개자 모두에게 미술은 ‘미적 가치평가’로 시작되고 마감된다. 평가 끝에 거래되어야 예술로서, 사회에 유통되는 ‘존재론적, 인식론적 사실’로써 존재할 수 있다. 미술작품은 시장의 가치평가에 의해 그 존재 유무에 대한 선고를 받는다. 평가되지 않으면, 평가가 매개되어 있지 않은 미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 사라진다. 역사에서든 시장에서든 없었던 일이 된다. 미술작품은 미술시장에서의 평가로 존재의 생탈여부가 결정된다.
이렇게 생존한 미술작품은 비로소 ‘즉자-대자’로서의 ‘대상’적 본질을 획득한다. 평가내용은 해당 미술작품의 본질로 전환된다. 미술사는 평가내용을 그 작품의 정체성으로 인식하여 작품의 역사를 구성한다. 미술시장은 평가체계의 시장이다. 시장이란 범주 자체가 이미 평가를 본질로 한다.
이태호의 주된 작업들은 이렇게 ‘평가-되기’를 마다한다. 그냥 미적으로만 세간에 떠돌면서 수행성으로서만 기능하려고 한다. 미술작품임을 결코 미리 포기하지는 않지만, ‘작업-하기’라는 의미 자체로 견지해 낸 인식의 시간들, 그 선상에 떠도는 존재의 연쇄, 그 중 하나의 매개지점들을 대상화 했을 뿐이다.
그에게 ‘작업-하기’는, 전시 초대를 받은 듯한, 감격의 《Life》 화보의 그런 화려한 인생의 기회는 아니었다. <세월호-서로 바라보다>(2015)나 <삼성 중공업은 서해를 살려내라>(2007)에서처럼, 현실이 경악스럽고 공포스러울 때, 또는 찌질한 일상이지만 아이러니한 감정이 거대한 쓰나미 덮치듯 그를 웃길 때, 본능적으로 손에 잡는 미적 행위가 그의 '미술'이다. 그러면서도, 작가 말대로, 잡다하게 자신의 작업들에 대한 세간의 말들이 시작되면, 미술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그런 작업들이다.
딱히 평생 미술가로 처신하진 않았지만 결국 멈춘 곳은, 되돌이표처럼 돌아가게 됐던 곳은, 작가 되기의 공간 곧 미술계였던 그에게, ‘작업-하기’는 그냥의 인생살이 보다는 흥미로운 사건 일 뿐이었다. 그의 작업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자신의 흥미에 따라 꿰어차게 된 어떤 ‘내용’들이다. 대부분 아이러니 감정이 계기였다.

2
60년대 후반 고등학생 이태호의 여름방학 미술 숙제는 불조심, 교통안전, 반공 포스터 그리기였고, 미대 조소과에 입학해서는 흙으로 계속 여자의 몸을 빚는 작업을 해야 했다. “당시 한국화단은 ‘자취’니 ‘흔적’이니 ‘모노크롬’이니 ‘만남의 현상학’이니 하는 말들이 유행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작품들을 ‘관념의 장난’일 뿐이라며 반감을 느꼈다“고 술회한다.
미술로 해야 했던 것들은 반공 포스터였거나 진부한 여체 조각이었거나 백색 회화의 모노톤으로 흔적 반복하기였다. 이즈음 <꼬기>(1974), <비틀기>(1974), <지층>(1979) 같은 형식주의 실험도 몇 번 해보지만, 최초로 작업다운 작업으로 해 본 작품은 <풍속도>(1974)였다. <풍속도>는 10원짜리 동전으로 돈 돈 돈 하는, 돈에 죽고 사는 세태를 지적한 작품이다.
“그 즈음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주, 여기저기서 돈 돈 돈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 기억하기에 당시 시청 정면에는 ‘증산 수출 건설’ 이라는 구호가 오랫동안 결연하게 자리 지키고 있었다. 그러저러한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느날 나는 매일 보고 만들고 있는 여체(女體) 대신, 나와 내 주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보이는 ‘돈’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후 <마포시장 김씨>(1976)와 <주민등록증 연작>(1978-81), <맹인부부>(1980), 그리고 <재미 교포 외삼촌>과 <넘어지는 사람>등 떠도는 부표 같은, 잡초 같은 인생들과 위기에 처한 삶 혹은 통제된 사회에서의 개인의 자유의 문제 등이 점차 작업주제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당시 미술계의 경향에 비추어 보면 전혀 예술과는 상관 없을 것 같은 주민등록증을 소재로 작업하면서 “모든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익숙한 사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작품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느꼈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아름다워 낯선 사물이 아니라, 삶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날 것의 진부하고 뻔뻔한 그 무엇에서 진실이라는 미적 차원이 낚아채질 수 있음을 확신했다.
<아가씨와 경찰>(1982)은 1980년 5월 광주 항쟁이 터졌을 때 그가 본 어떤 장면에 대한 작업이다. 이 작품에서 이태호의 현실감은 혼란스러움으로 아이러니를 느낀다. ‘현실’이란 것이 단칼에 규정할 수 없을 만큼 착종, 교차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그때 심리적 풍경이 아닌 시내 풍경은 이러했다. 광화문, 시청, 종로, 신촌 등 서울 시내의 번잡한 거리의 한쪽에는 경찰들이 2인 1조, 혹은 그 이상의 숫자로 서있었다. …… 그들은 서울시 중심가에서 서로 교대까지 해가며, 말없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 그런 그때 내 눈에 신기하게 보인 것은 젊은 아가씨들의 행동이었다. …… 그들은 경찰들이 기이한 포즈로 길모퉁이에서 주먹을 쥐고 서 있든 말든, 거리가 공포와 추위로 썰렁하든 말든, 여전히 최신 유행의 옷을 입고 아무 걱정과 근심이 없는 표정으로 활기차게 걸어 다녔다. 아가씨들의 눈에는 경찰이나 군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녀들은 거리낌 없이 웃고 떠들며 미니스커트에 화사한 화장과 복장을 하고 활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모습들은 어느 날 난데없이 나타난 어둡고 무거운 표정의 경찰들과 극적으로 대조됐다. 자유롭고 밝은 아가씨들의 뒤에 깔리는 어두운 경찰의 그 분위기와 색채, 그 대비(contrast)와 충돌이 참 기이하게 느껴졌다.”
이태호는 페미니즘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고가 확장되었다고 말하지만, 작업에서는 “그녀들이 꿈꾸는 서구식 지성의 자유와 페미니즘의 맞은편에는 완강한 가부장제 사회와 전통적인 부모, 그리고 막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박정희정권의 유신정치가 있었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보인다.
이태호의 대부분의 작업들은 행동주의에서 출발한다. 현실 속 상반적인 현상들의 병존, 그 혼재를 뚫고 나갈 상황 이해를 위해, 결국 생활인에 머물 수 없고 행동을 통해 나름의 정리가 필요해져서. 어떤 ‘작업’을 시작한다. ‘작업’의 의미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자, 세상을 위한 행동에 나선다는 데에 있다. 그 행동이 미술이다. 자신과 세상 사람들, 현실을 위해 말들을 해야만 했다. 작업은 그가 세상에 대해 겪고 본 것에 대한 반응이자 탐구다. 세상에 대한 그의 이론이다. 이태호에게 자아는 늘 세상에 대해 열려있고 세상의 온갖 문제들은 곧 자기의 문제이다. 그의 작업의 본질은, 이론으로써 예술이다.
다시 말하지만, 미술작품은 미술사적 평가를 거치면서 하나의 학문적 사실 즉 미술사라는 학문의 연구대상으로 등장하여서야 작품으로 현실계에 등장한다. 미술사라는 학문의 대상이 되어서야, 학문연구의 인과관계상의 존재의 연쇄에 매개되어서야 비로소 사회적 생명을 얻는다. 생명의 본질은 사회성을 획득해서야 다시말해 인정투쟁을 거쳐서야 ‘개체’로서 활력을 얻는다.
이렇게 미술작품은 미술사라는 학문을 벗어나 있는 일상적인 생활세계에는 직접적인 영향관계가 없이 존재한다. 미술사학의 학문적 분석 전제인 작품의 진품성은 오로지 학문의 영역, 그리고 미술관의 수장고 안에서만 문화적 효과를 지닌다. 미술이 일상생활에 매개될 수 있을 때는 이미 복제된 이미지로서이다. 그러니까 전시라는 형식은 일종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혹은 ‘미술사적, 미술비평적 가치가 있다’라는 전제의 허영의 시장에 대한 관종의 공간이다.
이에 반해 이태호의 작업은 '관점'으로 존재한다. 비평의 대상이 되는 바 어떤 작업의 결과물로서가 아니라, '비평'인 어떤 썸씽 스페셜'한 작업이다. 그 썸씽 스페셜 감수성은 비평적 실천이자 비평의 행동으로, 여러 미술적 작태들의 주위를 더듬는다. 그의 이론은 주관적이되, 사실이라고 여겨지는 대상 속의 진실을 추구한다. 주관적이되 이론이자 비평으로 ‘미술’이라는 실제 속 진실을 파고 흔드는 퍼포먼스이다. 다시말해 미적 이론이다. 이태호의 ‘작업 하기’는 그의 이 같은 미적 이론들을 펼치는 시간의 장이다.
이태호에게 생활이란, 인생이란, 알고 보면 콜라주된 이미지이다. 그렇게 콜라주된 현실이라는 그림 속에서 그는 ‘실제의 진실’을 드러내야 했다.
“불현듯 나는 이 세상이 온통 콜라지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서로 상관없는 광고들이 줄이어 있는 지하철역을 지나며 그것을 깨달았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몸을 맞대고 어디론가 실려가는 만원 전철 속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했다. …… 점심식사를 하며 친구와 나눈 이야기, 즉 부처님과 세익스피어와 전두환과 요셉 보이스, 베트남 공습과 한국전쟁, 어느 교회의 주말 현금 액수, 마누라의 습관적 말투, 성경귀절, 입시를 앞둔 딸 걱정, 중년들의 영계에 대한 집착, 다윈의 진화론 들을 되새겨 보니 그 자체가 현기증 나는 콜라지였다. 온갖 것이 모여 있는 신문, 잡지, 텔레비전, 영화도 그렇고, 따지자면 우리가 꾸는 꿈도 콜라지이다. …… 콜라지의 각 요소들은 상대를 거부하는 동시에 협조를 한다. 반사하는가 하면 상호침투한다. 죽이면서 한편 살린다. 그러면서 그것들은 모여 흘러간다.”
어느 날 한국전쟁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작품으로 하고자 했을 때, 이태호는 전쟁의 콜라주를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맞닥뜨린다. 이미 콜라주인 현실의 리얼리티를 어떻게 ‘재현’해야 미술에서의 리얼한 재현일까 하는 인식론적 고민이 시퍼런 심연에서 떠오른,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상황판단의 일종의 화두였다. 전쟁이라는 엄청난 현실, 그 콜라주된 상황을 그림 혹은 조각의 형태로 드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와 우리의 선배 세대라면 누구나 가슴에 지닌 6.25전쟁 이야기들, 그 사연들, 굽이굽이 사무친 엄청난 그 서사들이었다. 한국전쟁이라는 대서사는 한 두점의 타블로나 조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우리나라에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미술작품이 거의 없는 이유도 전 인구의 1/3이 죽거나 다치거나 이산가족이 된 그 엄청난 사건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차라리 회피한 작가들도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이런 류의 재현의 문제에 부딪쳤을 때 그가 선택한 방법은 <행복어 사전>(1982)이나 <책읽기>에서 처럼 ‘책’을 매체로 하거나 <근대 짱돌의 역사>, <상패 연작>들에서 처럼 오브제와 텍스트의 결합을 통한 해결이었다. 책이라는 형식을 통해 재현되어야 할 내용을 연속적인 이미지로 구현하거나(결국 종이 매체로 된 비디오 효과), 아니면 <하나 고르시죠> 혹은 <대구시 외국인 노동자 체류 현황>((2008), <막걸리 보안법>(2002)에서 보이듯, 기왕에 알려진 통계, 정보들을 시각화해 비가시적이고 복합적인 내용들에 담긴 관계와 실제의 중층성을 도표화해 진실재현의 수단으로 쓴다. 한편 <일기> 또는 <김광석에게>(2002)에서는 아예 그가 직접 쓴 시가 적힌 종이매체를 캔버스로 제시하는 방식을 쓴다.
이렇게 텍스트는 그의 미술의 가장 중요한 장치가 된다. 텍스트 없는 미술이 환기하는 효과는, 개인을 철저히 고독한 개인인 듯 전체주의화, 관료주의화 한다고 본다. 텍스트는 ‘상징’의 이와 같은 환각성을 깨는 칼이 되어 ‘상징’의 모호하면서 절대주의적인 기능을 차단시켜 버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렇게 하고도 현실의 스펙타클이 도를 넘으면, <세월호-거리미술 연작>과 <이게 나라냐>, <김수영 연작>에서처럼 거리벽보 작업이나 삐라 붙이기, 마지막에는 퍼포먼스로 넘어가는 등, 다양한 그야말로 직접적인 ‘말’을 위한 실천적 수단들, 역사적 수단들을 모두 동원한다.
이태호의 ‘작업-하기’는 그 자체로 충격요법이다. 때로는 현실에 즉자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 전단문 같은 글쓰기를 시도하거나 시각적으로는 가장 센 일상의 조야함을 빌려온다.
이런 방식 전체가 이태호가 세상에, 미술계에 던지는 짱돌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짱돌을 던지게 되는 자는 언제나 마이너리티에 속해 있었다. 그의 모든 미술작업들은 짱돌이자 충격요법이다. 세상을 보는 이론, 세상을 대하는 이론이요, 사실상 현실의 환유인 오브제를 곁들인 글쓰기인데, 글쓰기를 짱돌 던지듯 내던진다.
<행복어 사전>은 광고 카피와 광고 이미지들로만 채운 사전이다. 그가 보기에 모든 광고는 광고 카피와 이미지가 다 따로 노는 잡식성 괴물이었기에 그도 그렇게 행복어 사전을 편집한다. 광고라는 풍경은 “그것은 경제라는 관념 아래 윤리, 관습, 학문, 계급 등 모든 것이 뒤섞이기 시작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또 다른 풍경이었다.” 그래서 고통의 그늘이 없는, 자유와 편리함과 향기만이 있는 갖가지 광고들에 대한 감정들을 작업으로 드러내는 게 그의 인생의 즐거운 과제였다.
이 과제야말로 그에게는 예술이다. ‘광고가 풍경이다’라는 이토록 낯선 이태호가 지닌 지각知覺의 힘은, 그의 '영혼 구석구석에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던', 그가 젊었을 때 읽던 <전후세계문학전집>과 <세계문학전집>에서 받은 영향에 반사해 보이는 풍경이다. 그 영향에는 세계성찰의 기억들이 있는가 하면, 세상에 뒤섞여 있는 각종 형식들의 페기된 사용가치와 부와 가난의 착종으로 끝난, 진실문제들이 있었다. 이렇게 보여진 대한민국과 세계의 풍속이 광고였다. 그럼에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술가 되기 뿐이었다. 그렇게 그는 물화된 풍경들에 돌맹이를 던지는 일을 시작했고 누군가에게는 그만의 이유로 상패를 수여하거나 일기를 쓰고, 시도 써서 ‘아이러니’ 감정을 쏟아 부었다.
“당시 한국사회는 급격하게 산업화되고 있었다. 그래서 대량 생산과 소비가 시작됐고, 거기에 발맞춘 ‘광고’가 하루가 다르게 폭발하듯 번창하고 있었다. 광고는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고 결국 그것은 우리의 사고와 생활 자체를 바꾸고 있었다. 기성복 회사에서 만든 사이즈에 따라 내 몸의 크기가 정해졌고, 생리대와 생리통에 대한 언급의 금지 관행이 깨지면서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생겼으며, 수 십 년 동안 ‘럭키치약’(LG의 전신)만 있던 시장에 새 브랜드 치약이 나왔고, 경아란 여인이 “추워요, 안아주세요”하는 영화(별들의 고향)가 공전의 히트를 치는가 하면, 갑자기 ‘애마부인’이 한국의 들판에서 말타고 달리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 모든 광고의 주제는 ‘행복’이었다. 갑자기 시청각적으로 제조된 ‘행복’이 나의 감각을 파고들었고 나는 곳곳에서 갈등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새해 인사를 ‘복많이 받으세요’라고 추상적으로 할지, 아니면 구체적으로 ‘부자되세요’라고 할지 같은, 즉 체면치레의 전통이냐 물질적인 현실이냐 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 그즈음부터일 것이다. 그만큼 ‘현실’이 강해진 것이었다.”
거대자본과 이윤만을 목표로 하는 소위 기득권층, 마이너리티를 말썽이라고만 여기는 이들 의식의 풍경에 가려져 있는 주변부의 현실이 있다. 불평등과 불공정, 궁핍과 소외의 고통에서 더욱 강력한 현실태이지만, 외관상으로는 빈약함, 싸구려로만 보이는 현실이 있다. 하지만 이태호에게 대중과 민중의 싸구려 언어는 날카로운 비판력을 간직한 풍자와 아이러니의 언어이자 해방의 언어로, 통속적이지만, 저급하지만, 정신의 유려함으로 번득이는 유머의 언어이다.
80년대 한국의 민중미술이 추구했던 언어도 강력한 생명의 언어, 충격의 언어였다. 80년대 이후 이태호는 이런 언어에 익숙해져 있다. 더군다나 그가 80년대 후반 미국으로 유학 가 있을 때는 대중문화연구와 문화다원주의, 여성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등 ‘마이너리티’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접근방식들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때였다. 하위문화와 일상문화, 대중문화의 어법들이 ‘스타일’로 전화되던 때였다. 이 모두가 이태호의 자기확신을 강화시켰다.
그가 <근대 짱돌의 역사>에서 짱돌을 던지는 사람으로 선별한 사람들도 당연히 어떤 의미에서든 마이너리티에 속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짱돌’로 밖에는 달리 자신의 분노와 갈망을 표명할 수 밖에 없었더라도 그래서 너무도 민중적, 통속적이었지만, 이 방식은 광고언어와는 달리 표리부동하지 않은, 기호의 정치경제학에 따라 변하거나 동요하거나 해체되지 않는 의사표현의 방식이다. 마이너리티의 언어는 거리의 데모 같은 충격요법으로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겨우 얻어 낼 수 있을 뿐이었다.
이태호의 <에드워드 사이드의 돌>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2000년 7월 3일 레바논 남부에서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비교문학 교수이자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인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는 자신이 어릴 적 가족과 함께 쫒겨났던 고향 팔레스타인 지역을 방문한다. 그는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국경 근처에서 동행했던 아들 및 몇 사람들과 함께 이스라엘 쪽을 향해 돌을 던졌다. 그 사진이 미국 등 언론에 실렸다. 그 사진은 유대인의 영향력이 큰 미국사회에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본인은 상징적 몸짓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으나, 유대민족주의단체 등은 ‘테러’로 간주하고,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폭력을 선동하고 그러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를 대학에서 파면할 것을 요구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5쪽에 달하는 글을 통해 자신은 골리앗에 돌로 맞섰던 다비드를 의식해 행동한 일이 아니며, 무엇보다도 자기가 던진 돌이 사람(이스라엘 군인)을 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력’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행위일 뿐, 미국의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된다고 말한다. 그 말이 가까스로 설득력을 얻어 결국 그는 파면을 면하고 콜럼비아 대학의 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태호에게는 전봉준의 돌도, 마산시민 양태식의 돌도, 이현상의 돌도 가슴에 저미는 돌맹이 자체로 이론이자 그 자체로 예술이다. 즉 이태호의 작업이 아니라 전봉준과 양태식의, 이현상의 작업으로, 역사의 예술이다.
“<전봉준의 돌>은 1894년 12월 4일 순창군 피로리에서 전봉준이 던진 돌이다. 자신을 밀고한 배신자 한신형을 향해 던진 돌로 한신형은 이후 전봉준을 체포한 공로로 금 1천냥과 금천 군수직을 하사 받는다.” 그는 이 돌들을(가상의 돌들)을 그의 작품으로 콜렉션했다. "<이현상의 돌>은 1953년 지리산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이 빗점골에서 십여 발의 총상을 입고 엎드려 숨진 채 발견 됐을 때 그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돌이다. 이후 정부는 군경합동조사단의 보고서에 따라 경찰 차일혁 총경에게 태극무공훈장을, 국군 오동식 상사에게는 을지무공 훈장을 수여한다”,
“<양태식의 돌>은 마산상고 학생이던 김주열이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석하였다가 실종된 후, 4월 10일 마산 앞바다에서 시체로 떠올랐다. …… 마산시민 양태식은 물위로 떠오른 김주열의 시체 사진을 본 직후 홧김에 파출소를 향해 돌을 던졌다. 파출소의 유리창이 깨졌고 그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아티스트가 아니면 누가 이 근대 짱돌의 역사를 기억하겠는가. 아티스트가 해야 할 일은, 망각의 심연에 걸린 외나무 다리를 걸으면서 역사 이 편으로까지 살아 남아야 될 진실을 낚는 일이다.
이태호는 돌만 던지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공로패를 수여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스스로는 비록 <대통령상>은 못 받았지만, 저 먼 곳의 <앙드레 킴>에게도 공로패를 수여한다.
“한국문화예술가 협회 회원 이태호는 우리 대중문화와 훼션문화의 수준을 한단계 ‘업’한 공로로 대통령으로부터 문화훈장까지 리시브한 당쉰”이라며 그러나 “그토록 화려한 무대 뒤에선 주로 된장찌개와 비빔밥을 앤조이 한다는 당쉰이야말로 해방 후 우리 한국문화의 살아있는 증거이며 씸볼”이라며 공로패를 수여한다.
아시아인 이태호는 호치민에게도 “당신은 내 가슴에 저항을 계속할 이유를, 희망을 가질 의무를, 절망하지 않을 권리를 새겨줬다”고 감사패를 수여한다.
대한민국 서울시민으로 이태호는 전 국군보안사령관 전두환에게는 기억패를 수여한다. “군복을 입은 채 매스컴에 출현하기 시작한 귀하가 35 리볼바 권총으로 이 버러지 같은 놈, 탕,탕,탕하며 사살 현장을 설명할 때”를 기억하고자 기념패를 주고, 애 엄마 최순데렐라 최순실에게는 공로패를 수여한다. 최순실은 “1956년 태어날 때 이름은 ‘최필녀’ …… 계집 녀(女)가 있어 촌스럽게 느껴졌나요? 1979년 개명하네요. 하지만 새 이름 ‘최순실’에서도 아줌마 느낌은 여전했어요. 그런데 또 바뀌었어요 …… 새 이름 ‘최서원’은 뭔가 있어 보이셨나요 …… 당신이 한 일은 본의는 아니었으나, 한국이 민주국가로 가는 길에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며 그래서 이태호도 본의 아니게 이 패를 수여하게 됐노라며 감사패를 수여한다. 전두환과 최순실도 우리 삶의 한 방위표로 우리 삶 속 어떤 세계관의 지층을 반영하는 인물들이어서이다.
순수미술이라는 제도적 장에서만 보자면, 영상 작품 <대통령상>(2005)은 “미협에서 주관하는 ‘미술대전’에서 ‘대상’의 이름을 ‘대통령상’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발표하자 한 미술기획자가 과거 ‘국전’의 악몽이 되살아난다며 ‘국전’ 부활과 ‘대통령상’ 부활을 반대하는 미술전을 개최하자”고 해서 하게 된 작업이다.
“……‘국전’에서도 가장 웃기는 것은 그 시상제도가 행정부의 상하 계급 순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이었다. 즉 해마다 최고상은 그 이름도 찬란한 '대통령상'이었다. 이어서 '국무총리상', '문교부장관상' 등 관료순으로 내려가는, 아마 세계 어디에서도 그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괴기스런 ‘상 이름’들이었고, 그런 순서였다. 자유스런 창조적 상상력으로 가장 비관료적이어야 할 예술이 한국에서는 그렇게 상하계급적/관료적/관료노예적이었다는 사실을 아프게 기억해야 했다. …… 그런데 놀라운 일이 그후 ‘미협’에서 일어났다. …… 미협에서 주관하는 ‘미술대상’이 ‘국전’의 옛 영화를 살려 그 대상의 이름을 <대통령상>으로 부활하고자 하는 시도를 했고 그것이 성공한 것이다 …… 이로써 미협은 순진한 국민들에게 먹힌다는 이유로 ‘대통령상’이라는 관료적 명칭을 여전히 짝사랑하고 흠모해왔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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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돌이든 공로패든 이태호는 하찮은 것 같지만 감추어진 진실의 실오라기를 잡아당겨 줄줄이 딸려 오는 콜라주 된 그 속의 앙꼬 같은 진리치를 건드리며 작업하는 일의 재미를 느낀다.
콜라주로 얽히고 뭉쳐 표현된 세계상의 지층에는 풍속도가 숨은 그림처럼 감추어져 있다. 풍속도이되 ‘아트 & 랭귀지’로, 탈위계적이고 ‘아트 포베라’의 작업을 닮는다. 그의 시선이 끈질기게 추적하는 생활 속 번잡함에 맞춰 작품도 통속의 구색을 갖춘다. 통속이 콜라주되어 자연스럽게 그의 오브제가 된다. 실상 민중적 삶의 오브제들이다. 초현실주의적인 오브제들로 문화연구의 수행자요 시대의 지배적 이미지들과 싸우는 전사의 언어이다.
이런 작업언어는 무엇보다 그가 시인 김수영처럼 ‘꾸미지 않은 시의 상태를 동경’하기에 의도된다. 폐기해도 될 법한 언어와 형상, 기능 나부랑이들로 작업을 해야 하는 자의 비애도 있겠지만, 비애는 비애고 그는 이에 상관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어차피 제도권 예술들이 싸구려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한국의 시, 노래, 미술 등이 자꾸 서정화 되는 경향이 싫었다. 또한 나는 예술이 상투적으로 아름다운 것,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는 모양으로 다듬어지는 것들이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정으로 수렴할 수 없는 엄혹한 서사들마저 운을 맞추며 자꾸 서정의 옷을 입혀 내보내는 시들에 나는 반감을 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통속에 대한 이런 듬직한 순정과 인류에 대한 깊은 연민을 드러낸 작품이 <맹인 가수 부부>이다.
“그들의 모습은 나에게 항상 어떤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그 질문을 나는 해결할 수도 없었고, 또 해결을 시도한 적도 없지만, 그럼에도 그분들의 모습은 하나의 무거운 숙제처럼 내 가슴에 남아 있었다. 특히 눈바람이 치는 겨울 길거리에서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데 ‘기다리다 지쳐서 울다아 지쳐서' 라고 하는 노래를 들은 날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가슴이 무거웠다. 이후에는 그게 정부의 복지제도에 대한 고민으로 수렴”됐다고 하는 그가 가수 김광석에게 바친 <너는 얼마나 아름다운가>는 통속예찬으로 까지 상승된 작업이다.
“서태지나 나훈아에 비해 너는 얼마나 단촐한가 얼마나 당당한가. 크리스 크로스, 투팍, 스누피 도기 독을 흉내 내지 않고, 인조 안개가 피어오르는 무대에 흰말을 타고 등장하지 않으며 …… 노래를 너는 일인칭으로 불렀다”는, 이태호가 김광석에게 바치는 이 시에는 상업자본주의에 대한 혐오와 민중의 언어에 대한 예찬이 대비된다. 그가 전두환과 최순실을 비아냥거릴 때는 전두환과 최순실의 통속을 겨냥한 것이지만, 김수영과 김광석의 ‘앉는 법을 모르는 태도’는 그에게 통속의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일종의 기념비적 서사로 '장르' 예술이 된다.
통속이 지닌 이런 상반되는 가치와 기능에 대한 인식은 70년대와 80년대 한국 진보적 미술전통의 기본적 성향이다. 사실 이태호의 이런 개인적 성향이 그의 작업으로 확고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현실과 발언』 동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이태호가 본 현발 동인들은 “…… 회원들은 만나서 먹고 마시며 특히 말하는 것을 즐겼고 나는 그게 좋았다. 회원들은 내가 그제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다양한 사회적, 교육적, 성장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왕성한 이야기꾼이었다. 회원들 속에 있을 때 나는 우리 사회에 쩌들어 있는 학력주의, 동문중심주의, 엘리트주의, 권위주의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느꼈다. 내 느낌에 미술계는 한 두명의 목소리 큰 사람이 들어 올린 깃발에 사람들이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것에 환멸을 느끼던 차에 우리가 서있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얘기하는 방법을 찾아보려는 회원들의 태도에 나는 깊은 공감을 느꼈다.” 평등은 지배층의 통속에 대한 경멸로 시작되어 통속에서 민중과 대중의 현실생활 미감을 인식할 때 헤게모니가 된다.
이태호의 이러한 관점 자체가 '미적’ 차원의 것이다. 그의 이런 실천적인 미적 태도는 그 자체가 가장 진실된 의미에서의 아름다운 문화이다. 문화의 가장 숭고한 지점은 순수하게 계몽을 향한 의지요 성실함일 때 나타난다. 그의 메시지들에는 비속함과 잡다함 속에서 간취된 생의 논리에 대한 번득이는 인식들이 매개되어 있다.
이태호는 머리에 공감이 머무는 개념적인 작업으로 자신의 작업이 보여지면 좋겠다며 도시 게릴라 처럼 작업을 해왔다. 작품이 만들어진 당시의 사람들과의 공감이 중요했고 절실했기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는 게 우선이었다. 나아가 인류가 남긴 진보적 행동의 자취들과 계보들을 오늘의 이야기들에 다시 매개하는 일도 중요했다.
“인류가 이렇게 기록하고 만들어낸 실천의 기록들은 산처럼 많지만, 인류가 남긴 이 자료들을 사람들이 너무 모른다는 게 안타까웠다.” 그가 보기에는 특히 68혁명에서 하나의 미술운동으로 나타난 『민중공방』(Atelier Populaire)의 선언문이 서구에서 미술과 관련돼 나온 최고의 선언문인데, 전적으로 잊혀져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 선언문을 잊지 않은 일이 그의 '작업'이다. 오늘날의 그의 작업들은 사실상 이태호가 잇고 있는 민중공방 선언문이다. 그는 68혁명을 지금, 여기서 꿈꾼다.
그러면서 “나는 요즘도 가끔 웃음과 함께 ‘나는 예술과 결혼한 것이 아니다. 그것에 강간당했다’는 드가의 말을 떠올린다”고 도 한다. 최근에 그는 김수영의 얼굴이 있는 판화 포스터들을 길거리에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시여 침을 뱉어라’,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는 김수영의 시어에서처럼 거리의 언어들을 되살려 내고자 김수영의 언어들을 거리에 붙이고 다닌다. 거리의 언어가 진실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작업이다. 그는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라는 민중 선언문을 몸으로 실현 중이다.

2019년 늦은 가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수

예술가의 스승은 현실이다. file

  • 쾌활림
  • 2020-03-06
  • 조회 수 107

예술가의 스승은 현실이다 -이태호 작가론 1 작품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어떤 느낌에 실체가 있을까? 명료하게 잡히지 않는 무엇에 의미를 두며 자신의 느낌 속 진실의 끄트머리를 끄집어내기 위해 작가는 자신의 경험의 하수구를 헤집는다. 하수구 속 썩은 실체에서 역사와 네트워크 등 문화의 지층들을 읽어내려고 하지만, 하수구에 흘러든 여러 지천들의 물줄기에서 고고학을 읽는 능력은 작가마다 다르고, 실체의 피냄새를 작업으로 구성하게 될 특정 실마리를 잡는 방식도 다 다르다. 작가의 감각이 더듬는 각角과 질質, 강도와 속도 ...

'박물관 미술관 진흥 중장기 계획'의 구태의연한 패러다임 file

  • 쾌활림
  • 2019-07-02
  • 조회 수 230

지금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문체부의 <박물관미술관 진흥 중장기계획>이 진짜 문체부가 세운 확정된 계획이 맞는지 궁금하다. 이 계획서는 현재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안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가 그대로 반영된 계획서이다. 그런데 이 계획서와 함께 미술관 박물관을 한 참 더 짓는다는 뉴스도 나온다. 결국 이 계획서에 근거해 짓겠다는다는 것인데, 중장기 계획에 새로운 비전이 안들어가 있다. 좌우지간 문체부 확정 계획안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이 계확안만 있는 그대로 보면,이 계획은 사실상 지난 20여년간 해왔던 교육부...

<근현대 시각이미지와 여성>

  • 쾌활림
  • 2018-06-22
  • 조회 수 117

미술로 표현된 근현대 여성의 모습은 과연 ’여성‘을 담고 있는가, 여성주의자 혹은 여성주의 미술가들이 그린 여성성은 과연 여성주의를 실현하는가, 여성미술은 어느 정도로 여성해방적 미술을 성취하고 있는가 등등에 대한 간략한 질문형식의 문제제기를 해보자. 역사적 사회적 흐름과 더불어 변하는 여성이미지들에 과연 여성성의 달라진 의미들이 반영되어 있다면 여성미술은 시대마다 얼마나 이런 여성성의 문제자체를 인지, 인식해 담아내는가? 여성작가들의 작가활동상에서의 모습은 얼마나 자신이 옹호하는 여성성과 일치하는가 하...

내 마음의 수선전도(修善全圖)

  • 쾌활림
  • 2018-06-22
  • 조회 수 102

   내 마음에도 ‘수선전도’가 존재한다. 내 마음이 느끼는 서울의 전체상인데 내가 느낀 서울의 심경상(像), 그 바닥이자 하늘이다. 원래 ‘수선전도’라는 말은 중국에서 유래됐다.  한 나라의 ‘수도(首都)’의 의미는 으뜸가는 선(善)을 건설하는 일 곧 수선(修善)의 시작점을 의미한다는 뜻에서 유래된   명칭이라고 한다. 수선전도에는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기관들이 국심(國心)의 세력중심으로 재현돼있다. 오늘날의 광화문 부근 영역이 정부청사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미국대사관등이 들어서 있으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상징하듯...

_‘퍼블릭 아트’는 동어반복적 개념어이다.

  • 쾌활림
  • 2018-06-22
  • 조회 수 166

<광장의 예술과 퍼블릭(Public Art) 아트 개념> 1 광장   광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은 광장에서 함께했던 낯선 사람들과의 뜨거운 연대감이다. 광장에 서면 일상 속 불만과 갈등이 내일을 위한 희망으로 바뀌어져 간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 느낌의 순간에 내 옆 어느 낯선 사람도 내 마음에 동참해주고 있다는 벅찬 뜨거움이 올라온다. 굳이 촛불집회같은 광장에서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어디인가 누구나가 갈 수 있고 자유롭게 주변을 누리고 공중의 특별한 간섭없이 내 자신으로서 있을 수 있는 ...

깊이의 허영 리얼리즘 변종현실 file

  • 쾌활림
  • 2017-09-17
  • 조회 수 188

1 변종현실   제1의 리얼리티가 있다. 제1의 리얼리티는 제1의 리얼리티를 숙주로 한 기생 리얼리티와 그 변종을 무한증식한다. 리얼리티가 무한증식하는 줄기는 의식상에서의 범주에서이다. 그리고 숙주리얼리티 변종들 바이러스는 의식 내부로 파고든다는 항상성을 지녀서 겉으로는 가시화되지 않는다. 의식 내부로 파고든다는 것은 제1의 리얼리티가 개인이 해체, 파괴할 수 없는 구조로서의 ‘현실 겉면’이기에, 철의 장막이기에 무한증식하는 숙주 리얼리티는 의식 바탕 저 아래 깊이로 밖에는 변종을 생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장치.부담.감각의 논리 file

  • 쾌활림
  • 2017-04-01
  • 조회 수 424

월간미술 4월호 연재 글(그간 반년 가량 개인사정으로 중단 했다가 다시 시작)   <장치·부담·감각의 논리>   1. 맥 컴퓨터와 윈도우 컴퓨터를 사용해 작업한 텍스트나 이미지들은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호환을 위해서는 다른 장치를 연결해야 한다. 호환의 필요를 위해 고안된 특별한 수단은 결국 상품으로 구입해야 한다. 구글 시트(Google Sheets)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Microsoft Word)나 한글 워드로 쓴 텍스트도 마찬가지이다. 호환이 안 되면 텍스트를 복사해서 옮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게다가 이 작업들을 메일로 전송하고자 ...

공론, 비평으로서의 예술, 감정의 공론

  • 쾌활림
  • 2016-08-28
  • 조회 수 155

공론, 비평으로서의 예술, 감정의 공론 (월간미술 연재13) 1 이 세상에 실제하는 공론의 양대 축, 공론이 그 안으로부터 생성되는 원천은 제도와 인간이다. 세상의 저간에 떠도는 갖가지 공론들은 인간 개개인에게서, 그들 모두 간의 삶의 느낌에서 나온다. 이런 가지가지 개인감정과 이해(理解)의 시선들이 실제로 모아져 일정하게 객관화된 것이, 결국 인간의 사회생활의 ‘필요’에 따라’ 정착된 것이 ‘제도’이다. 제도는 제도의 정신으로, 관련된 법으로 움직여진다. 제도는 본질상 인간의 행위가 일으키는 모든 사건들에 대한 예측시스...

민중미술의 미학 file

  • 쾌활림
  • 2016-05-30
  • 조회 수 558

민중미술의 미학   1 미술가가 자신이 직접 본 광경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동, 서양 모두 근대사회가 시작되면서였다. 미술가는 이즈음부터 자신이 본 생활상의 장면에 자신의 감정과 세계에 대한 관심을 듬뿍 담아 일정한 틀 속의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보다 더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 밑바닥 인생들이다. 사실상 일반적인 사회경관 대부분의 광경들은 작가 주변의 일상생활 아니면, 사회 밑바닥 층의 헐벗고 남루하고 그럴 수 없이 가난한 삶이다. 이런 광경을 보면 자연스레 인생에 회의가 들고 인생의 고통 전반에 생각이 ...

악덕,공공성, 제도의 영혼 file

  • 쾌활림
  • 2016-05-28
  • 조회 수 263

악덕, 공공성, 제도의 영혼   1 인류에게 언어가 생긴 이래 악행(惡行)이나 악덕(惡德)을 묘사하는 숱한 어휘들도 생겨났다. ‘흉악하다’, ‘수전노 같다’, ‘냉혈한이다’ 같은 표현들과 ‘악덕 군주’, ‘악덕 자본가’, ‘악덕 계모’, ‘모리배’, ‘간신’ 등등 그야말로 각양각색, 천차만별의 ‘악덕’에 얽힌 이야기들이 인간언어의 중심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덕한 행위들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보편적이고도 특별한, 악덕에 관련된 형용어들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이야기를 목숨을 걸고라도 간절히 기...

메타포, 정원, 공공영역 file

  • 쾌활림
  • 2016-01-29
  • 조회 수 232

메타포. 정원(庭園). 공공영역   1   우주의 역사, 자연의 역사는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자연의 역사는 뇌의 생리 속으로 자신의 역사, 그 시간 속 공간 속 축적된 의미들을 전달한다. ‘자연’이라는 개념으로 압축된 생활의 고통의 역사는 예민한 신경의 공감적 능력에 자신의 고통을 풀어낸다. 자연이 삼킨 모든 생명체들의 죽음과 개체가 행한 생의 무리수, 공포와 착종된 비전을 그려낸다. 그래서 자연이 종국에서 드러내는 생활상의 과거, 산화(散華)된 경험의 소리와 냄새, 빛과 감각의 모든 스펙트럼을 얼마...

자연의 우울_사실성의 우울 file

  • 쾌활림
  • 2015-12-25
  • 조회 수 517

1 자연이 합법칙적이라는 관념은 근대화된 관내(管內) 학문, 곧 근대과학의 산물이다. 근대적 학문범주에서‘자연’으로 범주화된 세계는 과학적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우주의 일부분으로서의 세계이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자연’도 분명 존재한다. 곧 인간의 ‘생활세계’로 근대과학의 탐구 대상인 자연세계를 자원으로해‘인류 발전’이라는 합목적성을 추구하는 인류생활로서의 세계이다. 사실상 개인이 몸담고 있는, 개인에 관여되어 있는‘자연세계’는‘자연’으로서의‘생활세계’이다. 과학 연구가 대상으로 하고 있는 자연세계는 추상적인 ...

전통_효과의 사다리, 무의미의 의미 file

  • 쾌활림
  • 2015-09-27
  • 조회 수 1500

1.   아프리카 해안가 어디에선가 부터 해협을 건너고, 지구 표면을 따라 방랑하기 시작한 인류의 족적, 이 발자취를 인류사의 시작이라고 말해도 좋지만, 전통이라고도 명명할 수 있다. 지구 위를 방랑하다가 삶의 터전을 세우고 발 길 닿는데까지 영토화한 일도 흔히 역사라고 불려지지만 ‘전통’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전통을 세운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어딘가로부터 한반도로 흘러 들어와 석기, 철기 시대를 열고, 삼한과 백제, 신라, 고구려를 세운 일도 역사이고, 당시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세운 생활의 전...

자기만의 세계상 file

  • 쾌활림
  • 2015-07-29
  • 조회 수 1354

자기만의 세계상 _  새로운 체험의 초현실 1. 누구나 한번 쯤은 살면서 권태롭기까지 했던, 아귀다툼 같았던 일상이 지상의 행복이구나 하며 느낄 때가 있다. 누구나의 일상이 같은 정도로 만족스럽지는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살아갈 힘이 반복되는 생활리듬에서 나왔던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별별 이유와 고통으로 상처받은 마음이 삶을 지속할 수 있을 만큼은 무너지지 않고 벼터내는 것은 나날의 생계(生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이 목격하고 체험한, 피해 입은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고 싶은, 세상...

제대로 사는 삶의 문제 file [2]

  • 쾌활림
  • 2015-07-03
  • 조회 수 584

1 인류는 ‘무엇이 제대로 사는 것인가’하는 아주 오랜 물음, 문명이라는 이름의 물음에 이끌려 살아왔다. 인간의 문명 특히 서구문명은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고민할 까닭이 없는, 이런 물음을 갖지 않는 인간을 인간다운 생명으로 여기지 않아왔다. 제대로 사는 것이, 궁극에서 보면 사회의 공적 영역, 그 부산함에, 시끌벅적한 부(富)와 부를 창출하는 기술과 노동, 사업과 인간관계, 인정과 평가의 사회생활에 크든 작든 자신의 능력으로 끼어들어 살 수 있는 삶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살 수 있는 기회를 갈구하는 것이...

예술과 생활2 file

  • 쾌활림
  • 2015-05-28
  • 조회 수 477

김성룡천일야화 프로젝트   1. 역사는 거창한 비전과 계획이 이룬 삶이 아니다. 민족이나 국가, 사회의 특정 계층이나 구성원들 일부가 대량살상으로 인해 혹여 절멸 된다고 해도, 나머지 개인들이 비참한 생활로나마 생존할 수 있다면, 역사는 생존자들의 핍진한 이해관계의 긴장으로 무장돼 미래만 바라보며 나가게 된다. 굶주림과 학대가, 살상과 모반이 실제로 행해지지 않았던 것처럼 일상은 새벽위로 떠올라 밤사이로 지나가기를 반복한다. 일상에서 몇몇 극소수 개인들은 다른 공동체와의 전쟁도 기획하고 생의 미화도 만끽하면서 ...

미학이란 무엇인가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1218

 1 일반적으로 '미학'이란 단어를 들으면 누구나 조금은 그 뜻을 막연해한다. 그래도 '미에 대한 학문'이니까 예술에 관한 전문지식체계를 다루거나 미용 등 구체적인 생활분야에서 무언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과 관련될 때 미학을 언급한다는 정도는 알 수 가 있다. 사실 이런 차원에서의 미학 이해는 틀리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미학'은 얼핏 대하기 만만치 않은 아우라와 수수께끼로 가득 차 보인다. 통념이 과연 맞는 것인가 반신반의 하게 된다. 한편 미학에 대한 통념이 미학에서 실제 다루는 내용과 크게 다...

사회시스템과 미술2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517

1 개인이 자기자신에 대해 모르는 정도는 타인에 대해 모르는 그만큼 더 커진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가 다른 사회를 모르는 정도가 클수록 한 사회가 지닌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도 불일치가 커진다. 세계화로 전지구가 하나로 연결돼 마치 전지구의 모든 삶의 문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구대륙과 신대륙 사이, 지구의 남반부와 북반부, 한국과 중국, 일본이 이 정도로 나마 서로 인지하고 알고 지낸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을뿐더러, 또 안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서로 간에 모르는 부분은 너무 많고, 모든 사람이 다 똑같...

인문학의 정치,미술의 정치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2673

이인철/스포츠 공화국의 상과 하  1 순수예술과 참여예술 논쟁이 있다. 예술이 정치의 수단이 되는 것을 거부하거나 말하자면 예술을 매개로 사회적 발언을 해야한다는 신념을 지닌 예술가들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간 참여예술을 주장하는 작가는 보통 좌파진영에 속한 작가라고 추정, 분류되면서 80년대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서 보듯 전시 작품들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다. 순수냐 참여냐의 예술적 선택에서 예술을 통한 현실참여를 예술적 태도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불온시하면서‘정치적 미술’로 문제시 한 것이다. 실제 정...

사회시스템과 미술1 file

  • 쾌활림
  • 2015-05-07
  • 조회 수 223

서용선<단종복위모의>   최경태 <겨울 아침 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1. 사람은 자신의 생명의 활로를 얻기 위해 움직인다. ‘생활’(生活)에 나서야 나날의 일상과 자신의 생애가 보장되고 생명의 잠재적 가능성이 열린다. 하지만 태어나자 마자 생활에 나서지는 못한다. 성년이 되기까지는 경험해야한다. 경험을 위해 배워야한다. 초기 인류라면 생활을 위해 무작정 걸으면서 보고 듣고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역사 시대 접어들면서는 생활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배워야했다.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 체계(시스템)으로 작동한다. 그가 경험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