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덕과 관습, 인식의 재구성을 위하여.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했으며 예술과 정치 사이를 오가며 글을 씁니다. 주로 여성과 성소수자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여성의 장소

조회 수 3387 추천 수 0 2016.02.08 04:50:55

Femme_Maison.jpg

루이즈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1911~2010), <여성-집 Femme Maison> 연작, 1946~47년

 

며칠 전 간단한 다과를 준비할 일이 있어서 스타벅스에서 케이터링 서비스로 커피를 구매했다. 나는 그런 서비스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커피를 내려서 보온병에 담아 갈까(보온병이 없네), 인스턴스 커피를 사서 뜨거운 물에 각자 타먹게 할까(인스턴스 커피 싫어하면 어떡하지), 그냥 주스만 마실까(커피를 찾으면 어떡하지), 고민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스타벅스에 가면 보온이 되는 큰 통에 담아준단다. , 그런 좋은 서비스가! 양도 많아서 남은 커피를 다음날 데워서 또 마셨다.

하루가 지나서 아주 약간 신 맛이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뉴스를 보았다. 전날 스타벅스에 들른 탓인지 ’starbucks’라는 글자가 눈에 더 잘 들어왔다. 2월 첫 주부터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여성출입을 금한다고 한다. 대신 운전기사를 보내라고 하는데, 남자라고 하지 않고 운전기사를 보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운전기사가 없는 여성은? 고용된 운전기사가 아니라면 남자가 사우디에서 여성의 커피 심부름을 과연 얼마나 해줄지 모르겠다. ‘섬세한차별이다. 여성에게 커피는 팔아야겠고, 관습(?)을 존중하여 여성이 보이는 모습은 막아야하고, ‘감히남자에게 여자의 커피심부름 따위를 요구할 수도 없고, 그래서 운전기사라고 에둘러 표현했을까. 17~18세기 영국에서 여성들의 커피하우스 출입을 금했기 때문에 여성들이 남장을 하고 커피하우스에 가기도 했었다. 커피 한 잔을 공공장소에서 마시기 위한 위험한 모험이다. 커피가 뭐라고.

여성에게 금지하는 것은 커피가 아니라 커피를 보이는 장소에서 마시는 행위. 사우디처럼 금하지는 않아도 한국에서 여성들이 커피를 사마시는 행위를 두고 비뚤어진 시선을 보내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의 소비’에 대한 혐오만이 아니라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보이는 것 자체를 혐오한다. 또한 그 공공장소에 여성들끼리모여있으면 더욱 불편하게 바라본다. 소비가 진짜 문제라면 소비하는 금액에 따라 '혐오 지수'가 올라가겠지만 꼭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종종 확인한다. 여성이 돈을 쓰는것에 대한 혐오에 더해져, 여성이 '집밖'을 나가 사람들과 교류하고, 보고 듣고 경험하는 내용을 다양하게 늘리며, 깨끗한 장소를 찾아가는 적극적인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문화적으로는 '전통적' 영역에서 멀어질수록, 남자를 동반하지 않을수록, 여성의 고정된 성역할인 '돌보고 서비스하는' 입장이 뒤바뀌어 여성이 서비스를 받는 자리에 있을수록 혐오한다. 즉, 지배 규범을 벗어나는 여성들의 행동에 대한 두려움이 포함된 혐오다. 카페에서 아기 엄마들이 낮에 모여있는 모습을 흉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처음에는 어린 아이들때문에 발생하는 소음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관찰해보면 꼭 소음때문만이 아니다. 여자들이 모여있는 그 자체가 혐오대상이다. ‘집구석에 박혀있지 않고 유모차를 끌고 나와 돌아다니며 그 유모차 부대들이 함께 모여있는 모습을 아주 낯설게 바라본다. '아기 엄마'는 아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인데 아이와 함께 밖에 나와 커피와 밥을 받아 먹다니!

여성의 장소는 이다. 오죽하면 집사람이라고 할까. 여성은 존재 자체가 공간이다. 여성을 공간으로 읽는 버릇때문에 영화에서 둥근 공간만 봐도 자궁어쩌고 하는 (맞는 경우도 물론 있다만) 하품 나오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여성은 보이지 말아야 하며 돌아다니지 말아야 한다. 과거에 있었던 쓰개치마, 전족, 남자를 동반하지 않은 해외여행 금지 등이 모두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일부 나라에서 뷔르카와 운전금지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집은 과연 여성에게 안전한가. 밖에서 여성이 보이지 않길 바라는 사회일수록 여성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많은 차별과 폭력을 함께 은폐하는 장소다.

사회의 약자들에게 장소를 규제하는 행위는 약자들의 연대를 파괴하는 오래된 전략이다. 함께 있으면 정보를 공유하고 힘이 생긴다. 그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장소의 규제다. 사회적 약자들을 공적 영역에서 지우고 그 개개인들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의 경험을 어디까지나 사적 경험으로 만들어 역사 속에서 소거시킨다.

시간과 공간은 계층의 차이뿐 아니라 성별에 따라 차별적으로 분배되어 있다여성에게 /을 조심하라는 단속은 여성의 밤과 여성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모두 통제하는 행위다한밤의 게이바에는 대낮의 길거리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인종들이 모여있다. 여학생 휴게실이나 여직원 휴게실이 있는 이유는 여성을 위한 특혜가 아니다. 여성이나 성소수자가 보편적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보편적공간을 이용하는데 겪는 불편함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화장을 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담배를 피워야 흡족해 하는 보편적인간들이 있다. 여성전용 주차장은 여성폭력을 방지하는 대안일 뿐 특혜와는 전혀 무관하다. 여성의 공간은 자꾸만 제약받고 침범당한다. 여자화장실 몰카는 바로 일상에서 일어나는 침략행위 중 하나다. 여성의 몸과 여성의 장소에 대한 침략이다.

안전한 사회는 여성과 장애인이 공공장소에 많이 보이는 사회다. 여성이 무리지어 카페를 가든, 홀로 술집을 가든, 경멸의 시선을 받거나 폭력에 노출되지 않는 사회


댓글 '2'

빈대떡

2016.03.15 22:13:03

이상한 망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 여혐의 본진인 일베에 뻔질나게 들락거리면서 여혐글을 많이 접했지만 지금 번지고 있는 여혐의 양상은 이 글에서 이야기한 것 같은 무슨 70년대 스러운 그런 게 아닙니다.

여자가 집밖에 나오는 걸 두고 "아녀자가 집에서 살림이나 열심히 해야지 밖에 싸돌아다니다니"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아닙니다. 똥기저귀를 카페 탁자에 올려놓거나, 컵에 오줌을 뉘이거나, 수다에만 너무 집중해 데려온 아이를 방치하거나 (여자는 아이 돌보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식의 구식 편견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아이를 돌보던 중에 그런 식으로 방치를 했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됩니다. 자기가 아이를 맡고 있는 와중에 방치를 했다는 게 문제삼아지는 겁니다), 그런 것을 꼬투리잡아 욕하는 겁니다. 그 욕함의 배경에는 여성에 대한 반감이 자리잡고 있고, 그래서 뭔가 꼬투리 잡을 것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배회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과거처럼 "여자가 집에서 살림이나 해야지" 라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지는 않다는 겁니다.

또 여자화장실 몰카 같은 관음증 범죄를 일반적인 여성에 대한 제약과 동일선에 놓는 것도 여성에 대한 차별에 맞서는 데 있어 적절한 전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디 아녀자가 밖엘 싸돌아다녀" 라고 생각하는 팔순 노인이 있다고 해도, 이 노인이 화장실 몰카를 잘 하는 짓이라고 생각할 리가 없잖습니까.

일군의 남자들이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하는, 또는 담배 피우는 여자를 보고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그런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보고 넘어가야지, 이것을 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어떤 여자들도 공공장소에서 담배 피우는 남자나 머리를 매만지는 남자를 보고 싫어할 수 있습니다. 이건 그냥 개인이 특정 개인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문제일 뿐입니다. 이것을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로 받아들여 대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는 나 싫어? 그럼 싫어해라. 나는 니가 날 싫어하든지 말든지 상관없다, 이렇게 대응하는 게 맞습니다.

강경하게,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건 그런 부분이 아니라, 예를들어서 "결혼한 여자는 남편을 대동하지 않으면 집밖에 나갈 수 없다" 는 법이 만들어지는 경우나, "여자는 남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는 규범이 만들어지는 경우나, "남자는 담배 피워도 되지만 여자는 안된다" 는 법이 만들어지는 경우나, 그런 것들입니다.

설령 한 무리의 남자 노인들이 낮에 까페에서 수다떨고 있는 여자들을 보고 혀를 찬다고 한들, 그것을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라고 이해하면 안 됩니다. 여자들은 그 노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까페에서 커피 마시고 수다 떨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실제로 제도적, 또는 사적 권력을 통해 금지될 때, 그 때 그게 억압과 차별인 것이지, 개인이 여자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싫어한다' 는게 차별과 억압인 것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화장을 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담배를 피워야 흡족해 하는 ‘보편적’ 인간들이 있다."
보이는 곳에서 얼마든지 화장 하고, 보이는 곳에서 얼마든지 흡연 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이 그것을 흡족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 사람들을 그냥 무시하십시오. 그 사람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만약 화장을 못 하게 하고, 흡연을 못 하게 한 다면 경찰에 신고하십시오.

발뒤꿈치

2016.03.27 18:48:39

아직 제도가 되지 않은 편견과 혐오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다수의 승인을 얻게 되고 지속되어 언제든지 성문화되고 제도화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편견도 제도화되기 전에는 단지 '싫어한다'는 사실에 불과했지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는 알겠습니다. 집단적 혐오가 아니라 한 두 사람의 일시적인 호오라면 일일이 반응할 필요는 없겠지요. 하지만 글에서 제시된 경우는 문제시되는 집단이 불만을 공공연하게 이야깃거리로 삼는 등 집단적 문제가 있는 상태라 '망상'은 절대 아닌 것 같네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여성의 장소 file [2]

  • 2016-02-08
  • 조회 수 3387

루이즈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1911~2010), <여성-집 Femme Maison> 연작, 1946~47년   며칠 전 간단한 다과를 준비할 일이 있어서 스타벅스에서 케이터링 서비스로 커피를 구매했다. 나는 그런 서비스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커피를 내려서 보온병에 담아 갈까(보온병이 없네), 인스턴스 커피를 사서 뜨거운 물에 각자 타먹게 할까(인스턴스 커피 싫어하면 어떡하지), 그냥 주스만 마실까(커피를 찾으면 어떡하지), 고민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스타벅스에 가면 보온이 되는 큰 통에 담아준단다. 오, 그런 좋은 서비스가! 양도...

남성 페미니스트 file [7]

  • 2016-01-13
  • 조회 수 2656

 정희진, ‘남성 페미니스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18409.html   뒷북. 진작에 읽었으나 도무지 쓸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공감과 비판적 의견이 교차하는 글이라 내 의견을 적어보고 싶었다. 일단 이 글이  “나와 지인들의 경험을 종합해” 두 가지 유형의 남성 페미니스트를 정리했기에 나도 그 기준에 맞춰 ‘나와 지인들의 경험을 종합해’도 상관없을 것이다.(각자 자신과 제 주변의 경험을 종합해 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이 글에서는 두 가지 유형으로 “일상에서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이들과 “자신...

여자의 말 file [4]

  • 2015-12-06
  • 조회 수 1543

  Thomas Gainsborough(1727~1788), <Conversation in a park>, 1746~7년 경 레이놀즈와 함께 18세기 영국의 대표적 화가인 토마스 게인즈버러의 작품이다. 그림 속의 커플은 작가 게인즈버러와 그의 부인 마가렛이며 결혼 기념으로 남긴 그림이다. 당시로서는 풍경과 인물이 함께 중요한 비중으로 다뤄졌다는 면에서 새로운 장르 개척이나 다름 없었다. 귀족들의 사적인 일상을 우아하게 보여주는 그의 그림들은 상류층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공원에서의 대화>는 내가 가끔 들여다 보며 홀로 웃는 그림 중 하나다. ‘대화’하는 부부의 모...

윤리적 창작 file [1]

  • 2015-11-13
  • 조회 수 737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Jean Honoré Fragonard (1732~1806), <La Gimblette (침대 위에서 강아지와 노는 소녀)>, 1770년 경 가슴을 드러내고 아랫도리를 벗은 소녀의 성기를 강아지의 꼬리로 가리고 있다. 그 점 때문에 당시에는 대중에게 공개되지 못했다. ‘서스펜스의 대가’ 히치콕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영화화하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탁월한 선택이었다. 원작이 있는 2차 창작물의 경우 본래 그 원작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사랑 받기가 여간 쉽지 않다. ‘성스러운 텍스트’는 더욱 그렇다. 영화 <노아>는 성경을 왜곡하고 ...

<베어, 더 뮤지컬> : 변태, 걸레, 못난이 file

  • 2015-08-26
  • 조회 수 1724

  <베어, 더 뮤지컬>은 처음부터 “우리 중에 변태 있어~”라며 시작한다. ‘파격적 소재’라고 하지만 이미 브로드웨이에서 15년 전 초연했던 작품으로 이제 미국에서는 동성결혼 합법화까지 되었기에 그 파격의 농도는 과거와 다르게 읽힌다. 늘 논란이 동반되기는 하지만, ‘안방’ 극장에서도 작가 김수현이 2010년 동성애를 다룬 적이 있으니 뮤지컬의 소재로 딱히 ‘파격적’이라는 수사까지는 필요 없어 보인다. 단지 동성애를 다룬다는 사실만으로 소재의 신선함을 앞장세우기에 이미 대중문화는 훨씬 앞서있다. 이야기의 얼개는 간단하다...

죽음을 돌보기 file [2]

  • 2015-08-10
  • 조회 수 1641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는다면 죽음도 선택할 수 없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안락사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과연 어디까지 일까. 다만 무조건 ‘살아있음’이 ‘생명존중’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사방에서 자꾸만 백세시대라고 하는데 참으로 염려스러운 백세시대다. 돈 없고 나이 많고 병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을까.   영국인 호스피스전문 간호사가 안락사를 선택했다. (관련기사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702930.html) 죽음과 죽음에 가까운 사...

‘순수’에 저항하기 : <솔로강아지> 전량 폐기를 보며 file

  • 2015-05-27
  • 조회 수 2155

격월간지 <민들레> 6월호에 실리는 글입니다. <민들레>의 허락 하에 이 곳에도 글을 올립니다. 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체리를 든 소년 (Gamin aux Cerises)>, 1858년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면 아무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무표정이 잘 어울리는 배우 이나영이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표정으로 등장하는 한 카드광고. 같은 광고의 유해진 편에서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라고 한다. 가만히 있기, 긍정적인 태도, 바로 이 시대가 원하는 인...

징계 받은 키스 file [2]

  • 2015-04-24
  • 조회 수 2687

“욕망을 이성애적인 것으로 만들면 ‘여자’와 ‘남자’의 표면적 특질로 이해되는 ‘여성성’과 ‘남성성’ 간의 분명하고 불균형적인 대립이 생산되어야 하고 또 제도화되어야 한다.”   - 주디스 버틀러 / 조현준 역, <젠더 트러블>, 문학동네, 2008년, 116쪽 Camille Félix Bellanger (1853-1923), <Abel>, (1874-1875)   현실 세계의 폭력보다 가상 세계의 연애에 더 당혹감과 분노를 드러내는 경우는 흔하다. 옆집의 가정폭력보다 드라마 속의 ‘불륜’을 더욱 막장으로 바라본다. 또한 영화 속의 ‘야한 장면’을 볼 수 있는 나이와 실제 성관계...

술 마시는 여자

  • 2015-03-31
  • 조회 수 1168

<여자 술꾼>, Pieter de Hooche(1629~1684) 아무런 긴장감 없이 늘어뜨린 왼팔, 편하게 죽 뻗은 다리, 발그레한 볼에 미소를 띤 여자의 얼굴을 보니 벌써 여러 잔 걸친 모양이다. 다음 잔을 위해 옆에서 남자가 술을 따르고 있고 옆에는 나이 든 하녀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낸다. 창 밖이 훤하다. 여자는 애미, 애비도 못 알아본다는 그 무서운 낮술을 마시는 중이다. 바닥에 잠들어있는 강아지에게도 어쩌면 술을 줬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든다.   17세기 네덜란드 작가 피에터 드 후흐의 <여자 술꾼>은 순간을 즐...

여성을 연기하기 [1]

  • 2015-03-27
  • 조회 수 1374

 지난 주말 파리 근교에서 ‘국제여성영화제’가 있었다. 해마다 이 즈음이면 열리고 올해로 37번째다. 여성이 제작하고, 감독하고, 여성에 대한 주제로 가득한 이런 영화제를 보면서 왜 ‘남성영화제’는 없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여성부는 있는데 남성부는 없으니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여학생회, 여직원 휴게실, 여성할당제처럼 ‘여성’의 이름으로 호출되는 자리가 많다는 건 ‘특혜’가 아니라, 그만큼 일상에서 여성의 자리가 협소하다는 뜻이다. “헐리우드에서 여자로 사는 건 힘들다”는 리즈 위더스푼의 말대로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