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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관습, 인식의 재구성을 위하여.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했으며 예술과 정치 사이를 오가며 글을 씁니다. 주로 여성과 성소수자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징계 받은 키스

조회 수 2687 추천 수 0 2015.04.24 18:34:07


“욕망을 이성애적인 것으로 만들면 ‘여자’와 ‘남자’의 표면적 특질로 이해되는 ‘여성성’과 ‘남성성’ 간의 분명하고 불균형적인 대립이 생산되어야 하고 또 제도화되어야 한다.”

  - 주디스 버틀러 / 조현준 역, <젠더 트러블>, 문학동네, 2008년,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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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lle Félix Bellanger (1853-1923), <Abel>, (1874-1875)

 


현실 세계의 폭력보다 가상 세계의 연애에 더 당혹감과 분노를 드러내는 경우는 흔하다. 옆집의 가정폭력보다 드라마 속의 ‘불륜’을 더욱 막장으로 바라본다. 또한 영화 속의 ‘야한 장면’을 볼 수 있는 나이와 실제 성관계를 할 수 있는 나이는 다르다. 한국에서 13세 이상이면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지만 19세가 될 때까지 볼 수 없는 영화는 수두룩하다. (물론 나처럼 불량학생은 야자시간에 <원초적 본능>을 보러 가기도 한다!) TV 속에서 담배를 모자이크 처리하는 아무 의미 없는 규제는 시각적 방해와 비웃음만 생산할 뿐이다. 여성 보호라는 구실의 여성 통제가 존재하듯 청소년 보호는 대부분 청소년 통제로 향한다. 게다가 그 통제의 방식이란 얼마나 이상한가. 20살이 될 때까지 술과 담배를 살 수는 없어도 (프랑스의 15세보다 훨씬 ‘관대하게’) 13세 이상이면 성적자기결정권이 있다니 도대체 이 기준은 누구의 입장으로 만들어졌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폭력과 사랑이 본질적으로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지만 이를 바라보는 인간사회의 기준은 아주 편파적이다. 사랑을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범주도 한정적이며 욕망이란 상당히 협소한 개념에 갇혀 있다. 세상에는 치우친 기준과 편협한 정답이 존재한다. 중립이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실재한 적이 없다. 그 기준과 정답을 구성하는 주체는 나와 상관없는 경우가 많으며 권력을 쥔 자들의 기준일 뿐이다. 욕망은 이성애 어른의 전유물이다. 더불어 한국사회에서 성적 욕망이란 법적 기혼자만이 당당히 행할 수 있는 권리이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욕망을 드러내기란 어렵다.


욕망의 기준에 대한 유구한 역사는 ‘여성’이라 불리는 인간을 철저히 남성의 거울로 만들었다. 욕망의 대상이 된 여성은 예술사에서 창작자가 아니라 뮤즈이거나 모델이다. 여성 누드는 진부할 정도로 흔하지 않은가. 몇 주 전에 파리 근교의 현대미술관에 전시를 보러 갔더니 입구에 이렇게 쓰인 문구를 발견했다.


“누드는 미술사의 주요한 주제입니다. <소년 찾기> 전시의 몇몇 작품에는 선정적 내용이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몇몇 관람객, 특히 미성년자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소년 찾기>라는 전시에는 ‘남성성’을 주제로 한 현대미술 작품들만 모였기에 전위적인 남성 누드가 곳곳에 있었다. 작품보다 안내 문구가 훨씬 재미있었고 이번 전시의 최고 작품이 이 안내 문구가 아닐까 싶었다. 지금까지 전시장 입구에서 이렇게 친절한 안내 문구를 본 적이 없어 사진을 찍어오기까지 했다. 외설 시비에 휘말리는 아라키 노부요시의 전시에서도 이런 설명을 본 기억이 없다. 남성의 몸이 떼로 전시되는 상황이란 이토록 조심스러운 일이다. 2012년 비엔나의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2013년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열린 남성 누드 전시가 최초의 남성누드 기획전으로 꼽힐 정도로 벗은 남자의 몸은 미술사에서 소외되었다. 그려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변두리로 밀려났을 뿐이다. 벗은 몸은 여성에게, 애정 표현은 이성애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이성애 사회의 기준이다.


동성애를 비롯하여 성소수자라는 ‘인간’은 대중매체에서 늘 밀려나며 이러한 습관을 마치 간직해야 할 대단한 미풍양속으로 여긴다. 내 기준에서 보자면 동성 간의 키스가 아니라 툭하면 여자를 벽에 밀어붙이고 협박 같은 애정고백을 하는 장면이야말로 짜증을 유발한다. 물론 이조차도 규제하라고 외칠 생각은 없다. 단지 유치해서 보기 지겹다. 더구나 규제와 심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적다.


국립국어원에서 ‘사랑’의 의미를 ‘남녀 간의 사랑’으로 한정했듯이 ‘강제적 이성애’ 속에서 사랑, 욕망, 성관계 등의 언어가 가지는 의미는 제한적이다. 한 인간의 정체성은 대부분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성질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된다’. 이 ‘되는’ 과정은 법과 제도, 관습 등에 대한 순응을 필요로 하며 그 순응하는 ‘나’에게 우울이란 질병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러니 성소수자 청소년 집단이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까닭은 이 강제적 이성애 사회에서 지극히 논리적 현상이다.



댓글 '2'

염둥이

2015.04.25 01:19:44

>>ㅑ!! 글 와방 됴아요. ^ㅇ^

근데 맨 위에 인용하신 글은 무슨 뜻인지 어려움. -,.-;;

ㅇㅇ

2015.05.03 18:09:58

여자를 벽에 밀어부치는 팔로 가두고 몸으로 압박하는 키큰 남자들이 서비스해주는 일본 까페가 인기라고 해서 놀라고 이건 도대체 뭐지 한 이성애 남자가 여기 있소만. 나도 경험적으로 거칠게 해주길 원하는 여성들 때매 당황하거나 놀라고 물론 자연스럽게 내가 그렇게 되기도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것 같다고 받아들이기로 했소. 근데 글이 도대체 뭔 얘긴지 모르겠소. 걍 마지막 얘기만 트위터에 쓰는것도 좋았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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