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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관습, 인식의 재구성을 위하여.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했으며 예술과 정치 사이를 오가며 글을 씁니다. 주로 여성과 성소수자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핵무기, 혹은 기생충

조회 수 923 추천 수 0 2017.12.14 05:25:30

KOREA.jpg



폭스 뉴스에서 핵무기가 있는 북한과 함께 하는 삶은 가능한가이런 주제로 논의를 하고 있길래, , 놀고들 있네, 라고 툭 뱉어버렸다. 이스라엘은 핵무기가 없어서 잘 지내냐, 기꺼이 예루살렘을 수도라고 굳이 인정해주기까지 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도 가능한데, 가증스럽게 북한의 핵무기 타령은...... 궁시렁 궁시렁.

미국은 북한 스토커인가 싶을 정도로 언제나 북한에 대한 뉴스가 멈출 날이 없다. 어느 날 CNN에서는 북한을 방문한 특파원의 북한 주민 인터뷰가 나온다. 밭에서 일하고 나오는 한 여성에게 기자는 묻는다. 여행을 가본 적이 있냐고. 어딘가 멀리 가본 적이 없다고 여자는 답한다. 기자가 여행을 한다면 어디를 가고 싶은가요?”라고 묻자 여자는 미국에 가보고 싶습니다.”라고 답한다. “이 답변은 나를 놀라게 했다.”라는 기자의 목소리가 흐르고 역시 그는 왜 미국에 가고 싶냐고 다시 묻는다. 여성은 그 미국이라는 나라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우리 조선을 이렇게 못살게 구는지 내 눈으로 한번 보고싶습니다라고 또박또박 말한다. 역시, 그랬다. 이 여성에 앞서 어린 아이들에게도 기자는 여러 번 물었다.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빨간 스카프를 두른 학생들은 미국이 북한의 적임을 밝힌다.

미국이 북한에 들이대는 카메라는 북한이 얼마나 못 사는지’, ‘북한이 얼마나 미국을 증오하는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에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이들을 맹신하는 우스꽝스러운 사람들인지’, 딱 이 틀에서 움직인다. 물론 그 모습은 분명히 여러 통로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북한에게 있는 사실이다. 가난한 세습 국가이며 미국과 척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건강하지 못한 관음증은 결국 그 이상하고 가난한나라에도 개인이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너무 무감각하다. 무방비 상태로 자신을 위해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중증외상환자인 한 사람의 몸을 마음놓고 전 세계에 공개하고 있다.

CNN은 얼마 전 북한 병사의 수술 영상을 독점 공개했다. 수술 환자의 동의를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백번 양보해서 목숨 걸고 남한에 온 북한 병사의 극적인 탈출과 극적인 소생, 헌신적인 의사 등을 보여주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왜 기생충까지 보여줘야 할까. 또 한국의 병원은 이 영상을 왜 제공했을까. 이 영상 공개 전에도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구의 언론에서 북한 병사의 귀순 사실을 전달하는 방식은 아주 고약했다. 나는 북한 병사의 귀순 사실을 모른 채 한 영국 언론을 무심히 보다가 자료화면에 깜짝 놀랐다. 대장 속을 기어다니는 기생충 사진을 보여준다. 혐오감이 든다. 관련기사를 차마 링크 할 수도 없다. 이러한 시각자료가 도대체 우리의 알권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급기야 이제는 CNN에서 실제 병사의 몸에서 나온 기생충 사진까지 공개한다. 거의 만행처럼 보인다.

북한에 가본 적 없는 내가 북한에 대해 뭘 알겠냐만, 어떤 세계가 기생충과 핵무기와 같은 극단적으로 자극적인 소재로만 만들어져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에 대한 이런 식의 바라보기가 어떤 건강함을 만드는지 모르겠다.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역할도, 빈곤 문제에 다가가지도 못한 채 그저 하나의 볼거리를 즐기는 것뿐이다. 옥수수가 나왔다, 기생충이 나왔다, 몇 센티가 몇 마리다, 북한의 실상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북한의 배고픔을 걱정하는 척 하면서 그들의 빈곤을 포르노처럼 소비하는 양심 없는 행동이다. 한 사람의 몸을 체제 분석의 도구로만 여길 뿐, 당사자의 인격에 대해서는 조금의 고려도 없어 보인다. 걱정하는 사람들, 때로 이 걱정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경계의 대상이다.


댓글 '1'

udycul

2018.02.11 05: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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