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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관습, 인식의 재구성을 위하여.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했으며 예술과 정치 사이를 오가며 글을 씁니다. 주로 여성과 성소수자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소비와 세대

조회 수 2318 추천 수 0 2017.11.24 02: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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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발둥, <인생의 세 시기와 죽음>, 1541~1544


기본적으로 세대론에 조금 거리를 두는 편이다. 세대론이 늘 의미없다거나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특정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성격은 분명 있고 이를 담론화하는 작업은 필요하다. 그런데 이때, 세대론의 담론을 이끄는 성별과 계층이 한정적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특정 세대 중에서 일부의 특징을 과하게 부풀려서 오히려 세대간에는 반목을, 세대 내에서는 박탈감을 조장하기도 한다.

어떤 세대에 이름을 붙이는 태도에는 오히려 그 세대의 실제 현상을 반영한다기보다, 그 세대를 부르는사람의 시각이 담겨있다. 예를 들어 ‘20대 개새끼론에서 발결할 수 있는 것은 20대의 현상이 아니라 개새끼론을 만들어 부르는 사람의 오만함과 차별적 시각이다. 또한 세대를 부르는 이름에 그 세대에게 사회가 바라는 모습을 투영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미혼률이 높은 70년대 생 여성들이 30대 일 때 골드미스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는 당시 30대 여성들의 소비를 겨냥한 신조어였다. 마치 그 여성들이 모두 사회적으로 승승장구하는 알파걸인 듯 이미지를 만든다. 70년대 생들이 40대가 된 지금은 영포티? 이 신조어에는 대략 두 가지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1 소비하는 젊음

영포티라는 말을 듣고 찾아보니 이미 1~2년 전에 기사화되었다. 중년이 된 과거의 X세대를 일컫는다. 영포티에 해당하는 나이를 보면 내가 영포티의 끄트머리에 있다. 나는야 베이비 포티? 그러나 영포티young forty의 정의를 살펴보니 속뜻은 young male forty. 대중문화의 수혜를 받고 자라, ‘개인의 정체성을 가진 세대이지만 이제는 중년이 되어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지면서회사에서는 중간 간부인지라 어깨가 무겁다고 한다. 한편으로 젊은 세대에게 아저씨 취급받지만, 나름의 소비력과 취향으로 역사상 가장 젊은 중년의 모습을 과시한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역시 40대 이상의 여성은 존재가 없다. 골드미스로 불리던 70년대 생 여성들이 40대가 되어 사회라는 곳에서 많이 사라졌으니 이제 이 아줌마들은 치워버렸다. 꾸준히 그 이전 세대(86세대라 불리는)보다 권력이 없었던 70년대 생 남성들이 이제 40대가 되어 상대적으로 구매력을 갖추자 시장이 이들을 조명한다.

소비를 통해 자아를 표현하는 세대라는 말에서 어쩌면 이 영포티라는 개념을 유포하는 핵심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왕성한 소비자가 되어라, 그것이 곧 시대 감각에 뒤떨어지지 않은 젊음을 증명한다! 결국에는 소비를 통해 젊음을 경쟁하도록 부추긴다. 감각, 감각, 그 젊은 감각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도록 인간들을 자극하여 소비하도록 이끈다.

또한 40대 남성이 젊은 감각을 지녔다는 이미지를 유포하면서 40대 남성의 젊음의 나이를 사회적으로 연장한다. 젊은 감각을 바탕으로 한 구매력은 단지 상품에만 해당되는 차원이 아니라 젊은 여성과의 연애 가능성까지 부추긴다. (여성은 여기서 상품이다) 사랑에 국경도 없고 나이도 없는데 뭐 어떤가. 그렇지만 사랑에 나이가 없다고 외칠 수 있는 성별이 어느 한 쪽에 국한된다면 이는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한편 구매력이 없는 더 젊은 남성은 연애에 있어서도 밀려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여성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사회에서 결국 젊은 여성을 두고 다른 세대 남성 간의 지불 경쟁을 부추긴다. 남성 간의 지불 경쟁 속에서 젊은 남성은 피해의식을 가지고 젊은 여성에게 더욱 혐오감을 가진다. ‘내 여자를 더 능력있는 윗세대 남성에게 빼앗긴다는 생각에 잠기기 시작하면 모든 흐름이 그렇게 굴러간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이성 연애를 담은 문화상품은 그저 개인적 취향이나 낭만적 사랑의 소재로 그치지 않는다. 사랑이나 판타지는 자연발생적인 생물학적 성질이거나 개인적 취향이라기 보다 사회화 되는 경우가 많다.

다인종 사회에서는 인종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겨서 계층차별을 가리는 경향이 있다. ‘지속가능한자본주의를 위하여. 백인 노동자 계층이 백인이라는 인종에 자신의 정체성을 귀속시킬수록 노동자 계층의 연대는 어렵다. 한국에서는 인종이 아니라 세대로 문제를 전환시키고, 그 세대 사이에서 여성을 더욱 착취한다.

여성의 경우 이미 사회적으로 젊은 40를 위해 몸매와 피부 관리를 요구받고 있다. 친구처럼 보이는 엄마와 딸, 이런 광고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엄마와 딸이 굳이 친구처럼 보일 필요는 뭔가. 젊음을 자원으로 삼을 때 여성에게는 더욱 몸의 자산가치에 얽매이도록 만든다. 나이를 극복하고, 늙음과의 투쟁 최전선으로 떠밀려간다. 젊음을 미끼로 궁극에는 소비를 부추기는 현상이다.

2 사라지는 여성들missing women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이 25년 전에 발표했던 사라지는 여성들 missing women’은 여아낙태를 밝히는 글이었으나, 사라지는 여성들이라는 개념은 엄마의 자궁 밖으로 나온 여성들에게도 적용된다. 여성들은 살아있는 동안사회적으로도 꾸준히 사라진다. “그 나이에 무슨이라는 말은 여성에게 훨씬 더 빨리 찾아온다. 삶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상상의 범위가 그렇게 줄어든다.

당신이 이성애자 여성이라면, 모든 것이 난소의 나이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당신은 성격, 목표, 바람, 성취에 대한 걱정을 그만두는 게 좋다. 아기를 낳아 기르른 것이 당신의 유일한 인생 목표일뿐 아니라, 50세가 되면 당신은 퇴물이 될 운명이다. 솔직히 30대 중반이면 욕조에 들어가 손목을 긋는 게 낫다. 당신의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52)

이 과격한 발언은 여성의 유통기한을 짧게 인식하는 사회에 대한 비아냥이다. 젊을 때 된장녀와 김치녀로 살던 여성들은 너무 이른 나이에 발효가 된 탓인지, 서른이 넘으면 1차적으로 한물 가고, 마흔이 넘으면 존재 자체가 거의 사라져 버린다. 쉰이 넘은 여자는 마치 아직도 살아있냐는 듯 과거의 인물로만 소환된다. 그랬다가 환갑이 넘으면 어르신이나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려 나온다. 폐지 줍는 할머니, 독거 노인 등 빈곤과 소외의 얼굴로 나타나거나 시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젊은 세대 여성과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로 등장한다.

한번은 제목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마흔에 대한 책을 하나 들췄다가 금방 읽을 필요 없음을 깨달았다. 결혼생활이 어느 정도 지난 남성의 언어였다. 왜 그들이 인간의 마흔을 대표하지? 50대 이후의 삶에 대한 글을 모아놓은 책을 보니 10명이 넘는 필자 중에 여성은 두어 명 있었다.  30대 중반 이후의 성별은 남성화 되어 있다. 여성은 그냥 없다’. TV에서 중년 여성은 드물게 나타나고, 어쩌다 등장해도 이름 없이 누구 엄마다. 엄마가 된 여성은 나이가 몇 살이든 엄마라는 정체성을 사회에서 가장 강조한다. 그렇게 여성은 결혼 시장에 있는젊은 여성과 시장 밖에 있는엄마로 구별된다.

40대 이상 여성의 노동환경은 정말 극과 극이다. 전문직에서 버티고 살아남은 극소수의 여성도 있는 한편 본격적으로 시간제 노동자가 늘어나는 시기가 여성에게는 바로 40대다. 그냥 비정규 아줌마’, 주부사원으로 불리는 노동자들이다. 노동의제에서도 중년 여성의 노동문제는 덜 가시화된다. 중년 여성은 남편이 있어서 이들의 불안정한 고용상태나 저임금을 사회적으로 덜 심각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반찬값이나 벌러 나온 아줌마들’, 이제 애들 어느 정도 키워놓고 잠깐 마실 나온 가벼운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한다. 현실은, 절박하기 때문에 저임금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며 집안 일과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집에서 가까운 직장에서 시간제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여성과 일> 참조)

중년 여성 중에서도 엄마가 아닌’ 40대 이후 여성의 삶은 그냥 순식간에 소거당한다. 없다. 2030으로 불리는 젊은 여성도 아니고, 엄마도 아닌 40대 여성은 어떤 담론에도 잘 등장하지 않는다. 요즘 내가 많이 생각하는 주제다.

 

덤으로, 여성을 과일에 빗대어 이런 유머가 있다. 화도 아깝다.

10대 여성 : 호두 맛과 같다. 까기도 힘들고 먹을 게 없다.

20대 여성 : 밤과 같다. 뭘로 해먹어도 맛있다.

30대 여성 : 수박 맛이다. 칼만 들이대면 벌어진다.

40대 여성 : 석류 맛이다. 보기는 좋으나 별로 맛이 없다 /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벌어진다.

50대 여성 : 홍시 맛이다. 빨리 먹지 않으면 썩어서 떨어진다.

60대 여성 : 토마토 맛이다. 과일도 아닌데 과일인 척 한다.

70대 여성 : 곶감 맛이다. 물도 없는 게 분만 바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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