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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관습, 인식의 재구성을 위하여.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했으며 예술과 정치 사이를 오가며 글을 씁니다. 주로 여성과 성소수자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여성의 가장 중요한 직업

조회 수 84599 추천 수 0 2017.01.23 02: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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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엘가 힉스 George Elgar Hicks, <여성의 임무 :  Woman’s Mission: Guide of Childhood >, 1862–3

<여성의 임무> 는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에게 일종의 지침서로 사용하기 위해 3부작으로 구성되었다.

아이를 기르는 엄마, 남자의 동반자인 아내, 노인을 돌보는 딸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캠페인의 육아 정책 홍보 비디오에는 엄마이며, 아내이며, 사업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방카 트럼프가 목소리를 낸다. 그는 엄마는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직업이라고 한다. 그도 물론 아내이며 무려 아이를 셋이나 낳은 엄마이긴 하다. 여전히 직업 모델처럼 아름다운 몸매를 뽐내고 있으며 부유한 아버지를 둔 사업가로 대중적으로 오래 전부터 주목 받아온 매력있는 여성이다. 앞으로 미국의 실제 퍼스트 레이디역할은 이방카가 맡을지도 모른다고 많은 사람들이 점치고 있을 정도다.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으로 공통분모를 만들 수 있는 여성의 삶은 분명히 있다. 잘 사는 여자나 못 사는 여자나 여자라는 이름으로수행하기를 강요받는 지점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흔히 여성스러움이라고 말할 뿐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하다. 단지 성별로 인해 삶의 역할이 기본적으로 정해져있다는 사실은 마치 자연현상처럼 우리 의식을 구성하고 있다. 이는 마땅히 의문을 가져야 할 사안이지만, 이 전통적 성역할에 의문을 가지기보다 여성의 당연한 직업을 더욱 굳건히 만들려고 한다면?

이방카 트럼프는 이 모든 역할을 완벽해 보이도록수행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난 자본을 바탕으로 여성의 전통적 역할에 대한 사회의 기대를 (외주화를 통해)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개인적으로 성공한다. 이러한 사람이 엄마는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직업이라는 발언을 공적 영역에서 할 때, 이는 여성의 이중노동을 고착화시킴은 물론이고 여성이 있어야 할 곳을 집안으로, 그리고 여성의 인간관계를 가족관계 안으로 좁혀버린다. 그렇게 사회는 남성화된다. 또는 이방카처럼 모두 누릴 수 있는 극소수의 여성만이 안전하게 사회에 진출하며,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세상의 정책을 만든다.

이방카와 비슷한 또래에 역시 세 아이를 낳은 엄마이며, 아내이며, 공무원이었던 한국의 한 여성은 과로로 사망했다. 육아휴직 후 복귀한 지 고작 일주일만에 일어난 일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며 -가정양립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자녀 양육과 가정 내 노동이 여성의 성역할로 여겨지고, 이를 여성문제라고 부르는 한 여성은 이중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늘날 여성이 짊어지고 있는 문제는 노동과 가족에 대한 뿌리 깊은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다. 열심히 일하는 근면성실한 삶을 지향하는 노동윤리와 비둘기처럼 다정한 가족을 만드는 삶을 추구하는 가족윤리를 양립하는 것이 무슨 여성을 위한정책이 되겠는가. 게다가 이미 일하는 여성들은 밖으로 나가야만 진짜 일하는 여성취급을 받는다. 안에서의 노동은 노동자 정체성을 부여하지도 않으며 제도적으로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다. 가사노동을 하거나 애를 키우다가 병이 생겨도 산재는 아니다.

야근과 과로는 어떤 노동자에게도 옳지 않다. 노동자들이 전반적으로 과잉노동에 시달리는 문제와 더불어, ‘여성노동자에게는 다른 문제가 있다. 노동과 가정이라는 영역을 성별화하기 때문에 여성 노동자 과로로 인한 사망을 두고 기껏해야 집에서 가족을 돌볼 있는시간을 보장하는 정책을 구상한다. 밖에서 과로하지 않도록 안에서 과로하라? 접근 방식이 완전히 틀렸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는 근무시간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근로시간을 임금 감소 없이 단축시켜주는 등의 방을 검토하면 여성 고용률은 더 낮아질 수 있다. ‘이래서 애 엄마들이랑 일하기 싫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

스웨덴 출신의 언론인 카트리네 마르살Katrine Marçal2015년 출간한 <누가 아담 스미스의 저녁식사를 차렸을까 Who Cooked Adam Smith’s Dinner?> 라는 책이 있다. (국내에 곧 번역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 에서 저녁 식사가 어떻게만들어지는지 설명한다.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도축업자, 양조업자, 또는 제빵사의 선의로 인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류애가 아닌 그들의 자기애에 호소하여 우리 자신의 필요를 충족한다.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는지를 얘기한다. 거지가 아니라면 아무도 동료 시민들의 선의에 의지하여 살기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저녁 식사가 만들어지기 위해 그 과정에서 마땅히 발생해야 하는 누군가의 이익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한 것은 바로 그 저녁 식사를 누가만드냐는 점이다. 카르리네 마르살의 책은 이 점에 기반하여 경제 활동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성차별적인지 지적한다. 독신이었던 아담 스미스도 평생 그의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었다. 여성의 선의에 의지하여 살기를 선택하는 가부장의 주체는 여성의 경제 활동이 보이지 않는다.

정말 보이지 않는 손은 지금 이 시간에도 열심히 도마 위에서 당근을 썰고 빨래를 널고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있을 것이다. 이 모든 노동은 보이지 않으며, 눈에 보이는 직업을 별도로 가졌을 때 여성은 고난이도의 요술을 부리며 고군분투해야 한다. 오죽하면 딸 엄마는 싱크대 밑에서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바쁜 딸들을 위한 가사와 육아의 연대 책임을 딸의 엄마들까지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망한 공무원과 비슷한 또래에 같은 직급의 친척 동생이 있다. 그의 엄마도 수년간 손자를 돌보는 중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정이 굴러가지 않아서다.

가부장제가 견고히 유지되는 상황에서 여성의 경제 활동이란 결국 필연적으로 과로를 유발한다. 일요일 오후에 아이와 놀아주기 위해 주말에도 새벽 출근을 하던 30대 여성은 이 노동과 가족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짓눌리고 있는 오늘날 수많은 여성 중 한 명이다. ILO(국제노동기구) <Women at work> 2016년 자료집을 보면 -가정양립정책과 여성고용을 위한 지출 항목에서 한국은 OECD 34개국 중 뒤에서 세번째에 있다. (그 뒤에 미국과 터키가 있다.) 정책은 부재하고 여성은 역할을 강요받는다. 가사든 육아든, 성별에 따라 역할을 맡기지 말자. 이는 올바른 정책을 위한 첫번째 관문이다. 여성이 결혼만 하면 가정 내에서 19세기로 되돌아가는 타임머신에 오르지 않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인식이다.


댓글 '1'

밥차려먹었다

2017.10.22 20:29:50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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