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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관습, 인식의 재구성을 위하여.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했으며 예술과 정치 사이를 오가며 글을 씁니다. 주로 여성과 성소수자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쳐들어오는 말들

조회 수 1751 추천 수 0 2017.01.02 07:5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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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대한민국 출산지도'


김혜수의 매력은 꺼질 줄 모르는가 싶을 정도로 여전히 신선한 모습을 과시하는 영화 <굿바이 싱글>. 김혜수가 연기한 극중 배우 고주연에게서 아주 당연하지만 사회에서는 전혀 당연하게 취급받지 못하는 말 한디가 쏟아져 나온다. 임신한 고등학생의 미술대회 입장을 가로막는 학부모들에게 고주연은 임신시킨 남자애는 국가대표로 나갔는데 왜 임신한 여학생은 미술대회 못 나가냐!”고 소리친다. 관계라고는 하지만 이 관계에 대한 책임은 주로 한쪽이 담당한다. 임신은 온전히 여자의 몫이다. 특히 제도 바깥의 임신은 더욱 그렇다. 임신을 해도, 낙태를 해도, 뭘 해도 여성의 몸은 유죄다.

사회는 여성에게 밥 하고 애 낳는 의무를 이행할 것을 지속적으로 주입시킨다. 그렇다고 모든 출산이 환영받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혼인 관계 안에서만 의무 이행은 인정받을 수 있다. 혼인 관계 바깥에서 벌어지는 여성의 자유로운 몸은 처벌받거나 모욕적인 유희의 대상이 될 뿐이다. 여성의 몸에 대한 다양한 낙인은 여성의 행동반경을 좁히고 삶의 선택을 최소화시킨다.

30대 기혼 여성 중 비취업 여성의 3분의 2 이상은 결혼과 임신, 출산과 양육 등으로 일을 그만둔다고 한다. 남성은 밖에서돈을 벌고 아이는 여자가 키워야 한다는 성역할 고정관념 속에서 “(여성은) 직장 대신 아이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경우 그녀의 선택을 진정한 의미에서 선택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젠더와 사회> )

혼인 관계 안에서 임신과 출산, 육아를 담당하고 있다고 해서 이에 대해 존중하는가, 그렇지도 않다. EBS <부모-위대한 엄마>에 어느 날은 4남매를 기르는 부모가 나왔다. 남편은 아내에게 집에서 하루종일 놀면서라는 말을 수시로 했다. 등에 업은 아이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네 명의 자녀를 기르는 여자가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알려달라. 집에 있으면 집구석에 처박혀노는 여자이며 집을 나오는 순간 맘충이고, 직장에서는 이래서 애 엄마들하고 일하기 싫다는거야. 돈 주면서 지 새끼들 사정까지 봐줘야해.”(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 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나에게 결혼 후 쳐들어오는 말들이 있다. “남편 밥은?”, “피임하지마”, “하나만 낳아따위의 말들을 잘 모르는 남들이 아주 편하게 던진다. 때로는 같은 여자라서침범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여성들의 쳐들어오는 말도 범람한다. 결혼한 여자가 밥과 자식을 생산하는 일은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면 달이 뜨는 일처럼 자연의 섭리라고 여긴다.

30대를 노처녀로 보내고 이제는 자식 없는 40대 기혼 여성이 되어버린나는 여성에 대한 담론 내에서도 때로 겉돌고 있는 인간임을 느낀다. ‘엄마가 아닌’ 40대 기혼 여성은 대단한 직무유기라도 한 사람처럼, 혹은 자식이 없는결핍된 인간처럼 취급받을 때가 있다. 지난 주에도 요즘은 40대에도 애 많이 낳는다. 지금은 괜찮을 지 모르지만 50, 60대가 되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자식 낳기를 강권하는 무책임한 소리를 들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결합 속에서 늘어난 여성의 업무를 방관한 채 자궁의 역할에 집착한다. 이 역할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동의하는 남성들도 역시 늘어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에 대한 욕망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 제도 속의 결혼과 출산이 선택의 영역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저출산의 원인을 단지 여성의 출산 거부로 몰아가는 태도는 성차별적 선동이다. 임신을 혼자 하나? 자식의 존재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공유하는 파트너쉽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경제적 불안정과 사회의 여러 위기 속에서 굳이 유전인자를 남기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때로는 산 사람도 떠나고 싶은 세계다.

몇 년 전에는 이런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인류의 지능지수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며, 이는 고학력 여성의 출산율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일부의 주장이 있었다. 여성 뇌의 크기가 남성보다 작아서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주장하던 19세기 과학에 비하면 진화했다고 해야 하나. 신문을 보다가 엄마, 고학력 여성이 애를 낳지 않아서 요즘 사람이 아이큐가 떨어진다네라고 중얼거리자 엄마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외쳤다. “! 옛날에는 여자들 글도 안 가르치더니. 옛날 엄마들이 낳은 자식들은 그럼 죄다 머리가 나쁘다냐? 그 글도 모르던 여자들이 낳은 자식들이 똑똑하게 별 짓 다 하더라.” 웃다가 웃다가 울어버릴 뻔 했다. 여성의 쓸모는 인류의 지능지수를 떨어뜨리지 않는 번식에 동참하는 암컷에 한정되던가.

정책적으로 특정 인구를 공개하는 행위는 공개를 통해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정책적 목적이 있다는 뜻이다. 저출산을 막는다며 가임기여성의 수를 공개하는 행위에는 어떤 목적이 있을까. 표현도 이상한 그 가임기여성 한 명당 내놓아야 하는아이 수라도 정해져 있는 것일까. 하고 싶은 말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출산이 가능한 여성의 수를 공개함으로써 이렇게 많은 가임기 여성이 있지만 애를 낳지 않는다는 성토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다. ‘자궁의 지도를 만들어서 배포하는 행정자치부의 속내가 뻔히 보인다. 고학력 여성이 출산을 안해서 인류의 지능지수가 떨어진다는 주장을 하듯이, 결국은 여자 탓으로 몰아간다.

말 한마디가 쌓여서 타인의 몸에 문화적 낙인을 만든다.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죄책감을 강하게 만드는 말들이 숨만 쉬어도 여성의 몸에 침투한다. 말의 쳐들어옴은 몸의 침범과 무관하지 않다. 여성을 물화시켜 부를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 뿐, 대화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로 여기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 사회는 여성들을 수시로 부른다’. 여성을 수동적인 자궁으로 취급하고 말은 침묵시킨다. 가장 기본적인 여성억압의 문화. 이 억압에 순종하지 않는 여성들은 점차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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