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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관습, 인식의 재구성을 위하여.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했으며 예술과 정치 사이를 오가며 글을 씁니다. 주로 여성과 성소수자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동네 아줌마’보다 못한"

조회 수 22798 추천 수 0 2016.11.02 08:21:02

저는 3의 성이라고 불리는 아줌마입니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자기소개를 하던 자리였다. 또래보다 조금 나이가 있어 보이던 한 여성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스스로를 아줌마라고 했다. ‘3의 성이라는 그의 표현은 재치있는 유머였지만 나름 뼈가 있는 말이었다. 아줌마로 분류되는 기혼 여성의 세계에 살고 있는 그에게 뒤늦게 공부하는 아줌마라는 주변의 눈치가 꽤 있었다. (여담이지만 남의 인생에 늦은 나이라는 말 좀 함부로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여성학자 정희진의 글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을 발견하고 나는 오래전 내 동기의 자기소개를 다시 떠올린 적이 있다. 정희진씨가 서른에 대학원을 갔더니 아줌마가 무슨 공부를 하냐는 의문의 눈초리를 받은 적 있다고 했다.

아줌마란 아저씨와 그 쓰임에 차이가 있다. 아줌마는 일단 무성의 존재이며 교양 없고 무식한 인간으로 통용된다. 아저씨는 아줌마에 비해 멸칭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굳이 개저씨라는 별도의 멸칭이 나오기까지 했다. 아줌마는 모든 전문적인 분야에서 비전문적인 인간으로 취급할 수 있으며 매력 없는 여성으로 조롱할 수도 있는 호명이다. ‘여성성의 유통기한 만료, 막무가내, 뚱뚱함, 부끄러움을 모름, 공부할 필요 없는 무지렁이. 그래서 매력적인 여성 연예인은 결혼 후에 꼭 아줌마 맞아?”라는 제목이 달린 기사의 주인공이 되곤 한다. 때로 선생님아줌마사이에는 이미 성차별이 가득하다. 폭력 가해자도 경찰에게 선생님 소리를 듣지만 피해자는 아줌마인지 아가씨인지 추궁당하곤 한다. (영화 <서프러제트>를 보러 갔던 여성 관객이 옆자리 남성 관객의 폭력 행위를 경찰에 신고했을 때 일어난 일)

최순실을 비롯한 그 일당과 대통령 박근혜는 그 동안 온 국민을 기만해왔으며 지금 나라를 적극적으로 망치고 있는 중이다. “IS도 다 알아버렸다던 박근혜의 화법을 빌리면, 그야말로 대통령이 샤머니즘 대통령임을 온 세계가 알아버렸다. 지금 이 사태에서 보이는 샤머니즘이나 무당언급에 대해 나는 다소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제 생각 없이 희한한 주술에 걸려있는 상태임은 확실해 보인다.     

그들은 치밀했다. 대포폰까지 사용해가며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국민에 대한 합법적 감청을 위해 그 난리를 치며 테러방지법까지 만든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정작 대포폰을 활용하며 국민을 적극적으로 속였다. 새누리당이 몰랐다고? 몰랐다면 무능의 극치이기 때문에 몰랐음이 면죄부가 되진 않는다. 87년에 여성중앙에서 최순실을 인터뷰한 기사를 보고 나는 정말 경악했다. 이미 30년 전부터 육영재단 문제에 대해 언론에 인터뷰를 할 정도로 최순실이라는 존재가 드러난 상황이었는데 새누리당 정치인들이 어떻게 모를 수가 있나. 단지 박근혜와 최씨 일가의 관계로 보면 이 사태는 대단히 축소될 수 있다. 이는 한국의 보수 집단이 박근혜와 최씨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모른 척 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야심을 불린 결과다. 아마도 새누리당은 이 추함을 가리기 위해 대선 전에 당명을 바꾸지 않을까.


이들의 행동을 비판하고 처벌하기 위한 언어는 정확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인 대통령, 최씨 일가와 청와대 비서진들은 물론이고 다 알면서 모른 척 한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까지 국정농단의 주인공들이다. 죄질이 심각하게 나쁘다. 이 나쁜 인간들의 나쁜 행동을 동네 아줌마보다 못한최순실이라는 저잣거리 아녀자가 설쳐대는 모습으로 비틀어버리면 오히려 그들의 악행은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다. 다만 우스꽝스러워질 뿐이다. 지금 분노의 지점이 어디에 있는가. “한낱 아녀자에게 놀아나서 분한가. 다시 말해 여자가 설쳐대서 분하다고 고백하는 것인가. “강남 아줌마혹은 명품샵 빨리빨리 아줌마의 국정농단이 재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말을 똑바로 하자. 아줌마를 무시하는 틈을 비집고 그 아줌마 최순실은 더욱 활개를 칠 수 있었다.

정윤회-최순실-이제는 최순득을 운운하며 끝없이 진짜 실세를 언급하고 있는 모양새는 상당히 기만적이다. 놀림 받는 기분이 든다. 엄연히 국민 투표로 대통령을 뽑았는데 진짜 실세가 따로 있다는 그 자체가 이미 문제이다. 최순실 한 사람이 대통령을 뒤흔들어서 나라를 망칠 수 있다면, 국가 시스템이 그렇게 허술하다면, 그 수많은 정치인들이 수수방관 했다면, 그야 말로 정말 심각한 지경이 아닌가. 누가 진짜 실세인지 물론 중요하지만, 누가 실세든 대통령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음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병신년이나 닭년운운할 필요도 없다. 병신/년을 끌어와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태도는 무능하고 기만적인 박근혜라는 정치인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 박근혜를 욕하고 싶은 마음을 고백할 뿐이다. 여성이나 장애인을 디딤돌로 딛고 서서 외치는 정의는 착취에 불과하다.

피보다 진한 물이 있다며 정윤회와 박근혜의 관계에 보내던 그 눈길은 역겨울 정도로 추잡한 성차별적 의식에 기반했다. 기껏해야 남자와의 관계아줌마 최순실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사태를 들여다 보는 동안 벌어진 일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가 해먹은, 인사 개입, 남북 관계와 일본과의 위안부 협상을 비롯한 각종 외교 사안에 개입했을 가능성, 평창 동계 올림픽을 둘러싼 이권 등등 실로 어마어마하게 국정농단을 했다. 자고 나면 기가 막히고 자고 나면 기가 막힌 하루하루다.

그런데도 검찰에 출두한 최순실에 대해 전하는 언론의 태도를 보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만 든다. 그의 벗겨진 신발 한 짝이 프라다이고 손에 든 가방이 얼마짜리 명품이라는 사실은 보도될 가치가 없는 가십에 불과하다. 나쁜 짓도 여자가 하면 명품이 눈에 먼저 들어오나 보다. 지금까지 검찰 출두하는 남성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의 옷은 어느 브랜드이며 얼마인지 신속하게 정보를 배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거늘.

 

) 원칙을 강조하던 대통령은 이제 원칙을 지키고,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유일한 기회가 남아있다. 스스로 물러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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