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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 관습, 인식의 재구성을 위하여.

부천문화재단에서 일했으며 예술과 정치 사이를 오가며 글을 씁니다. 주로 여성과 성소수자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대통령 마음대로

조회 수 30133 추천 수 0 2016.03.05 09: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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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전 한 학생에게서 인상적인 메일을 받은 적 있다. 그는 고통을 상상할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할 윤리적 의무에 대 고민하고 있었다. 졸업논문과 관련한 문의였으나 내가 그렇게 거대한 주제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깜냥은 못 되기에 그냥 그의 생각을 듣고 공감하는 차원으로 마무리했다. 나는 그저 그의 고민 자체가 굉장히 반가웠다. 내 고통에 대한 생각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생각은 내게 (아직) 오지 않은 고통에 대한 치열한 상상이다. 타인과 세계에 대한 상상을 확장하는 방식이다. 나와 무관한 일은 없다.

프랑스의 전 법무부 장관 크리스틴 토비라가 3 년 전 동성결혼 합법화를 추진하면서 의회 토론 중에 레옹- 공트랑 다마스Léon-Gontran Damas의 시 <Black Label>의 일부를 낭독한 적 있다. 문학으로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에 맞선 네그리튀드 Négritude 운동을 이끌었던 다마스의 시를 통해 소수자의 처지와 분노를 전달했다. 물론 말을 못 알아듣는 이들은 흑인과 동성애자를 왜 비교하냐며 토비라의 문학수업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상상의 빈곤은 고통에 대한 상상도 빈곤하게 만든다. 이것이 윤리의 결여다.

우리의 대통령, 그에게는 오직 내가 겪은 고통만이 있다. ‘부모를 모두 흉탄에 보낸고통은 그가 종종 꺼내드는 서사이다. 대통령의 진박, 그들에게는 대통령의 마음만이 오직 그들이 진입해야할 세계다. 나라의 시스템은? 정작 엄청난 사고인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청와대 안보실장은 재난컨트롤타워 아니다라고 말하며 사고를 사건으로 끌고 갔다. 한 번 본적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많은 이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어떻게 정부와는 상관 없는일처럼 말할 수 있는지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는다. 메르스 사태에서도 정부는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정작 대국민 사과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고개숙여 했다. 나는 그 사과가 섬뜩했다. 우리는 명백한 사적자본의 독재 아래 살고 있으며 정부는 이 사적자본을 후원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할 뿐 수많은 국민이 겪는 재난에는 손을 놓고 있다.

그들의 비상사태는 국민의 재난이 아니라, 재벌 규제와 민주적 시민의 존재다. 민주주의가 그들에게는 비상사태다. 시민의 입은 틀어막으면서 자본에게는 자유를 주지 못해 안달한다. “물에 빠뜨려 놓고 필요한 것은 걸러내려는 대통령에게 물에 빠뜨려도 되는 대상과 살려야 할 대상이 누군지 알 수 있다. 필요 없으면, 누구든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필요한 국민이 있고 필요 없는 국민이 있다. 그렇기에 시민을 조준해서 죽음 직전에 이를 때까지 물대포를 쏘는 반인권적 행위를 공권력이 할 수 있다. 농민 백남기는 언제까지 외면당해야 하는가.

정치는 어떤 면에서 보면 마음을 잡는 것이다. 선거때만 되면 표심이라고 한다. 표심을 잡다, 표심이 돌아서다 등으로 표현한다. 평소 여론은 민심이라 한다. 마음 心. 우리는 생각이 바뀌었을 때 마음을 바꿨다라고 한다. 결정을 내릴 때 마음을 정했다라고 한다. 뜻이 통하면 마음이 맞는다, 이별을 하면 마음에서 떠나보냈다, 속상하면 마음이 아프다라고 한다. 우리의 마음은 열고 닫을 수도 있다. 마음은 곧 나의 세계이다. 그 사람이 좋을 때 마음에 든다라고 한다. 나의 세계에 들어오는사람이다.

정치도 다른 인간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투표는 마음을 전하는 행위다. 마음의 소리를 듣고, 마음과 마음이 마주하고, 마음을 모으고, 마음이 연대하고, 마음을 설득하고, 마음을 바꾸고, 마음을 움직이고, 결국 정치는 시민들의 마음을 두드리며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하는 전략적 활동이다.

하지만 옳지 못한 정치는 시민의 마음을 지배하려고 한다. 마음을 통제하고, 마음을 억압하고, 마음을 조작하고, 마음을 감시한다. 자신의 주관, 자기 뜻, 나의 주체적인 의사 표현이 내 마음인데 내 마음을 가질 수 없게 한다. 마음 먹기 달렸다고 하지만 마음 먹을 힘을 빼앗긴다. 힘센 사람의 마음을 따르게 만드는 정치가 독재다. 마음의 소리를 전부 질식시키는 정치. ‘자기 마음대로타인의 마음을 착취하고, 자기 보다 약한 사람의 마음을 짓밟아서 자기 마음대로 하는 정치, 그것이 독재다. 공포 속에서는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없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바로 이 마음을 가질 권리이다.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최소한의 인권보장이다.

진실한 사람을 추구하고 배신의 정치를 심판하는 대통령은 바로 그 정신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그는 오직 나를 향해진실할 것을 강요하고 나를배신하지 않는 정치만 추구할 뿐이다. 그의 세계에는 타인이 없다. 이런 사람이 가장 끔찍하다. 대통령은 자기 마음대로 한다. 진정성, 이런 것에 별로 관심 없는데 대통령의 진짜 마음은 정말 궁금하다. 테러방지법도 통과되었으니 대통령이 솔선수범하여 자신이 진실한 사람인지 아닌지 정체를 밝혔으면 좋겠다. 타인의 고통과 무관한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지.

***

누구에게나 나의 세계를 침범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대통령은 타인의 마음을 지배하려 한다면 이에 맞서겠다는 야당 정치인은 유권자의 마음을 무시한다. 박영선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차별금지법, 동성애법(?), 인권관련법, 이거 저희 다 반대합니다. 누가 이것을 찬성하겠습니까” (박수) 그런데 그는 야당을 찍어야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이 온다며 야당을 찍으라고 울부짖었다. 인권이 없는 평화와 행복이 무엇인지 나는 도통 모르겠다. “하나님의 이름으로차별받게 생겼는데 그가 말하는 행복이 어디에 있고 평화가 어디에 있나.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프랭크 브루니의 한달 전 칼럼을 인용하자면, “사람들은 수치심때문에 투표하지 않는다. 희망을 보고 투표한다.” 마음에 상처를 주면서 마음을 바치라 하니 모욕이 따로 없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을 할 필요가 없는 권력 투쟁 사이에서, 마음 둘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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