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한국 사회의 2010년대는 두 가지 사건으로 설명된다. 하나는 2014년 세월호 참사이고, 다른 하나는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그때까지 한국 사회를 지탱해왔던 최소한의 시스템마저 붕괴했다는 걸 보여줬다. 세월호 선장의 무책임한 선택이나 작동하지 않은 수난 구조 체계 문제는 오로지 시장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위 여부를 결정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청해진해운은 회사 과실로 사고가 난 사실이 드러나면 선체 보상금이 감액되기 때문에 퇴선 명령을 주저했다. 참사 2년 전 국회는 예산을 절감한다며 수난 구조 체계를 민영화했고, 민간 구조업체는 이윤이 남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시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그렇게 부재를 증명했다.
마치 해방구와 같았던 2016년 광화문 광장에는 2년 전 참사에 의해 붕괴했던 시스템을 딛고 일어설 새로움에 대한 에너지가 가득했다. 어쩌면 원래 나뉘어 있던 여러 갈래의 정치적 지향이 2016년 촛불로 묶일 수 있었던 건 그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난 2년5개월처럼 그 에너지를 과거 청산에만 쓰고 만다면, 어느새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가능성은 소멸하고 정치적 냉소가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 책임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조국 사태’ 내내 일말의 존재감도 보여주지 못한 정의당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갈 곳을 잃은 채 부유하는 그때의 그 에너지가 정치적 냉소를 자양분 삼아 1990년 야합이 낳은 유산보다 더 참혹한 괴물로 재탄생한다면 후과는 과연 누가 감당할 것인가.
*<한겨레>에 실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