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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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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동안의 ‘조국 사태’는 2019년의 한국 사회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정확히 조명했다. 수많은 이들이 사태의 의미에 말을 보탰다. 어떤 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응원하는 이유’를 열변했고, 다른 이는 ‘조국이 최순실이나 우병우와 다른 게 뭐냐’고 꼬집었다. 누군가는 ‘입시제도의 개선’을 요구했고, 또 다른 이는 ‘검찰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자 서 있는 자리를 이렇게나 선명하게 드러낸 쟁점이 또 있었을까. 한국 사회는 이제까지 어떤 현안을 두고 대체로 두 갈래로 나뉘어 싸워왔다. 1970~80년대에는 한쪽이 국가의 이익을 앞세워 시민의 희생을 요구할 때, 다른 한쪽은 국가 권력의 폭력을 지적하며 저항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한쪽이 정치권력을 일방향으로 휘둘러 그 수위가 임계점에 달하면, 다른 한쪽에서 그런 일방향의 권력을 견제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 2008년 이명박 정부의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요구 촛불집회가 모두 그런 범주 안에 있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폭력과 저항 혹은 권력과 견제라는 구도로 선명하게 양분되지 않는다. 그것은 ‘조국 사태’가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계급이라는 쟁점을 던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제까지 ‘저항’과 ‘견제’의 선두에 서 있던 이들이 처음으로 ‘저항’과 ‘견제’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항’과 ‘견제’의 문법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자리에 서서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로 인해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커다란 시험대에 올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고교서열화와 대학입시의 공정성 등 기회의 공정성을 해치는 제도부터 다시 한번 살피고, 특히 교육 분야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 발언은 지난 1일 “대학입시제도 전반에 대해 재검토를 해달라”며 입시제도 차원에 한정했던 ‘조국 사태’에 대한 문제 설정을 ‘고교서열화와 같은 교육 개혁’으로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한계는 여전하다. 한국 교육의 핵심 문제는 ‘고교서열화’가 아니라 ‘대학서열화’다. 고교서열화는 대학서열화에서 파생된 결과일 뿐이다. 서울대와 지방 거점 국립대를 하나의 틀로 묶는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나 공영형 사립대와 같은 정책으로 대학 서열 해체를 시도하지 않으면 고교서열화를 없앤다고 해도 극심한 경쟁 시스템은 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조국 사태’는 “대학입시의 공정성을 해치는 제도”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부모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자본을 향유할 수 있는 이들을 앞장서 우대한다는 진실이 폭로됐다는 점이다. ‘개인의 노력과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제도’는 어떠한 것이라도 이 우대 시스템을 극복할 수 없다.

부모가 자식에게 어떻게든 학벌 서열을 획득해주려 하는 건 그것이 좋은 일자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공무원과 전문직, 대기업 등 일부 좋은 일자리를 빼면 모두 벼랑 끝에 서서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서 산다. 그러니 교육의 정도나 학벌에 따라 불평등하게 임금을 받지 않는 노동 시스템, 노동하지 않거나 하지 못해도 삶의 수준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복지 시스템이 교육 시스템과 나란히 서지 않으면, 사람들은 생존 경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기회의 평등’을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결과의 평등’ 정책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하는 까닭이다.

“조국 같은 아버지를 둔 적도, 조국 같은 아버지를 둔 주변인도 없었기 때문에 이번 사태를 보고 박탈감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조국 장관의 자녀와 같은 지역에서 같은 학교라도 나왔다면 박탈감이라도 들었을까요.”

지방에 사는 23살 대학생이 한 말이다. 박탈감마저 박탈당한 이 청년들의 체념을 방관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어야 하지 않을까.

*한겨레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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