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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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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논문의 제1 저자가 되는 게 말이 안 된다, 특혜다, 좌파들도 결국 하는 짓은 똑같다는 비난보다 저런 일까지 해 가며 대학을 가야 하는 입시제도에 분노해야 한다는 글이 공유되면서 호응을 얻는 것을 보고 세 가지 짧은 생각이 들었다.

 

1. ‘입시제도에 대해 분노하려면

문재인 정부의 교육 공약 가운데 핵심은 대학입시를 학생부교과전형, 학생부종합전형, 수능전형 세 가지로 단순화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교서열화를 완전히 해소하겠다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교육 공약 발표 때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도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대학입시를 획기적으로 바꾸겠다설립 취지에서 벗어나 입시 명문고가 되어 버린 외국어고·자사고·국제고를 일반고로 단계적으로 전환하고 일반고·특목고·자사고 입시를 동시에 실시해 일반고 전성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약속했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 2년 동안 교육부가 이 핵심 공약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고교서열화 해소를 위한 자사고 폐지를 일선 시·도교육청에 내맡겼다. 외국어고와 자사고, 국제고의 일반고 단계적 전환은 정부 차원에서 핸들을 잡고 나선 적이 없다.

그러니 조국 후보자 딸 제1 저자 논문 사건을 계기로 입시제도에 대해 분노하려면, 조국 후보자를 지명한 대통령에게 되물어야 한다. 애초부터 공약해놓고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2. ‘입시제도에 분노하는 건 맞을까

이번 파문의 핵심은 입시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조국 후보자의 딸은 한국 교육의 핵심 모순을 폭로했다. 그것은,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부모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자본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는 이들을 우대한다는 진실이다. 그것은 비단 복잡한 입시학종이나 수능과 같은 입시제도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일렬로 줄 세우는 수능을 친다고 해서 부모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자본의 영향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지난 금요일 캠퍼스에 모여 촛불을 켠 스카이대학생들은 이 지점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적이다. 그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의 학벌은 자신의 노력능력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저 학생들에게 조국 후보자 딸은 암묵적으로 은폐된 그 진실을 폭로했기 때문에 문제적이다. 저 학생들의 요구가 조국 후보자 딸이 불공정한 수단을 썼다는 사실만 짚어내야 한다는 쪽으로 집중된 까닭이다.

조국 후보자에 대해 분노하는 다수 여론은 이런 상황까지 더불어 냉소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는 진보라고 해봤자 별반 차이도 없구만이라는 말들(최근 주변에서 이렇게 말하는 대화를 5~6번은 들었다)은 그런 냉소에서 기인한다. 여기서 이 냉소를 뒤집으려면, 사람을 층층이 서열로 구분 짓고 그 서열을 획득하기 위해 부모가 가진 온갖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자본을 총동원해야 하는 지금의 교육 제도 자체를 전복해야 한다.

 

3. ‘초월자외설적 존재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지금 정부가 그런 걸 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대학 서열화는 지역 국립대 육성으로 바꿔내겠다. 서울 주요사립대 수준에 뒤지지 않게 거점 국립대의 교육비 지원을 인상하겠다장기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은 사립대학은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해 육성하겠다고 공약했다. 문 대통령의 이 공약은 사실 노무현 정부의 교육 공약보다 후퇴한 것이었다. 지역 국립대 육성과 공영형 사립대육성 정도로 대학 서열화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기 최소한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등으로 대학 서열화 해체를 꿈꿨다. 하지만 그것이 곧 좌절되고, 곧바로 교육 정책이 급변했다. 외고가 우후죽순 격으로 늘었다. 그것이 오늘날 고교서열화가 굳건해지는 토대가 됐다.

그러니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정부의 한계를 직시하는 일이다. 그런데 많은 엘리트들이 정부의 한계가 아니라 시민의 한계를 거론하며 자신들을 그 한계 위에 선 초월자자리에 가져다 놓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초월자가 아니라 2019년 한국 사회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외설적 존재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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