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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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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42살 남성 안아무개씨가 방화·살인 사건을 일으켰다. 숨진 5명은 여성이거나 10대 혹은 노인이거나 장애인이었다. 많은 살인범들처럼 안씨도 약자만 골라 살해했다. 덩치 큰 남성들은 마주쳐도 공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상대를 잔혹하게 해치면서도 정작 자신은 다치기 싫었기 때문이거나 혹은 약자를 공격해 피해 규모를 키워야 더 큰 이슈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범행이 더 큰 이슈가 되어야 자신의 ‘억울함’과 ‘사회적 불만’을 표출하려는 의도가 성공할 수 있다.

경찰과 언론은 ‘억울함’과 ‘사회적 불만’을 표출하려는 안씨의 의도를 도왔다. 경찰은 올해에만 안씨의 이상행동에 대한 주민 신고를 일곱차례 받았다. 하지만 긴급한 상황에서 “내용을 알고 가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며 미적댔다. 타인을 해치거나 자해할 위험이 높은 정신장애인이 위기 상황을 만들면 정신건강전문요원이나 의사 등과 연계해 대응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경찰은 형식적인 계도만 하고 상황을 방치했다. 신고 장소가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임대아파트였기 때문일까. 그렇게 비판이 최고조로 올라가던 사건 발생 이틀 뒤, 경찰은 불쑥 안씨의 신상 공개를 결정했다.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으며,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범죄에 대한 경각심 고취를 통한 범죄 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안씨는 모자와 마스크가 사라지자 언론 앞에서 억울함과 불만을 마음껏 표출했다. 그리고 경찰은 자신들에게 몰려오는 공분을 고스란히 안씨에게 전이했다.

언론은 사건 초반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를 쓰면서 본질을 회피했다. ‘묻지마 범죄’는 치정이나 금전, 원한 관계 등으로 동기를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범죄를 가리키는, 언론이 만든 용어다. 하지만 동기가 없는 범죄는 하나도 없다. 치정이나 금전, 원한 관계가 없는 이를 대상으로 벌이는 범죄는 주로 사회적 불만에 의한 것이고, 그 안에는 구조적 모순이 담겨 있다. 안씨가 왜곡된 방법으로 표출한 사회적 불만과 경멸, 분노가 무엇인지 구체화하면 그 모순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문제를 캐볼 겨를도 없이, 언론은 안씨의 공개된 얼굴과 발언을 중계하는 데 집중했다. 언론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는 안씨의 얼굴과 정제되지 않은 발언은 사실 아무런 사회적 효과가 없다. 그저 15명의 부상 생존자나 사망자 유가족, 깊은 상처를 입은 아파트 주민들에게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범행의 유일한 원인처럼 지목되는 안씨의 정신장애는 사회적 모순이 낳은 질병이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한국의 중증 정신질환자는 52만명 정도다. 인구 100명당 1명꼴이다. 보편적인 질병이다. 정신장애 판정을 받은 사람은 매년 늘고 있다. 통계청 등록장애인 수를 보면, 2001년 3만2581명이던 정신장애인은 지난해 10만2140명으로 17년 새 3.1배 늘었다. 정신장애인이 늘어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점점 커지는 소득 격차와 불평등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불평등 트라우마>의 저자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은 소득불평등이 심한 나라가 비교적 평등한 나라에 견줘 정신질환 비율이 3배까지 높다고 밝혔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강력한 지위 불안을 느끼고, 이런 불안은 정신장애로 이어진다. 영국에서 소득 최하위 계층 남성은 최상위 계층 남성에 견줘 우울증을 앓을 가능성이 35배 높았다. 보험연구원의 2017년 자료를 보면, 한국의 소득 하위 계층에서 정신질환 발병률은 13.6%로 상위 계층(8.3%)보다 1.6배 높았다. 통계청의 2017년 생활정도·혼인관계별 정신장애 범죄자 현황을 보면, 하위 계층 정신장애 범죄자는 전체 범죄의 78.3%였지만, 상위 계층은 0.7%에 불과했다. 가난은 정신장애를 범죄로 이끈다.

하지만 사회는 정신장애인들을 재빨리 격리하면 범죄가 사라지고 사회가 평온을 되찾을 것처럼 얘기한다. ‘위험한 일탈자’를 빨리 이 사회에서 씻어내야 ‘정상적인 우리’끼리 안전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렇게 정신장애인들을 타자화하고 배제하게 되면, 가족들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정 안에 숨기고, 은폐로 인해 치료받지 못한 병은 중증으로 곪아 또다시 폭발한다. 세상의 ‘합리’를 빌미로 임대아파트라는 공간에 ‘격리’되어 시각장애를 갖고 살면서도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돕는 사회복지사를 꿈꾼 18살 고등학생이 바라던 세상. 그곳이 과연 ‘정상적인 우리’들만 가득 찬 사회였을까.

*<한겨레>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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