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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 500여 명이 한국 사회를 시험대에 올려놨다. 예멘인들의 난민 신청을 계기로 올라온 ‘제주도 불법 난민 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허가 폐지/개헌 청원’은 게재 열흘 만인 23일 현재 37만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 SNS와 커뮤니티, 포털 댓글에는 예멘 난민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무슬림 혐오 표현들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무슬림에 대한 거부감은 크게 4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한국에 이슬람이 퍼지기 시작하면 바로 유럽처럼 테러에 시달리게 된다”는 안전 위협론, “무슬림은 여성을 깔보는 문화를 가졌기 때문에 예멘 난민들이 곧 한국 여성을 강간할 것”이라는 여성 억압론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무슬림들은 다른 나라에 가서도 자신들의 문화만 고집하며 자기들 방식대로만 산다”는 문화적 지배론, “난민들의 가족들까지 다 들어와서 한국의 의료와 교육, 복지 혜택을 누릴 것”이라는 무임승차론도 있다.

이 논리들은 서로 교차하면서 무슬림에 대한 혐오를 증폭한다. 하지만 증폭되고 있는 혐오를 두고 ‘선진 시민이면 당연히 혐오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로 접근하면 거부감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무슬림에 대한 한국 사회의 거부감이 근원적으로 어디서 기인하는 건지 살펴보고 해결책을 논의하는 게 환대와 공존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잡지, 샤를리 엡도 표지 사진(왼쪽)과 제주 무비자입국 폐지 요구 시민들(오른쪽)

먼저 문화적 지배론부터 살펴보자. 문화적 지배론은 무슬림 문화와 인구가 한국 사회에 점점 틈입하는 것도 모자라 궁극적으로 이 사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기인한다. 이 우려는 미개한 무슬림들이 문명화한 우리의 삶을 파괴할 것이라는 프레임 위에서 작동한다. 이 프레임이 도대체 사람들에게 어떤 효능감을 주길래 급속도로 전파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정상성 이데올로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상성 이데올로기는 정상성으로 규정된 다수의 도덕률에서 이탈한 비정상적 인간을 재빨리 구분한 뒤 이 비정상적 인간을 타자화하면서 정치적 효능감을 얻는 행위를 일컫는다. 이 행위로 인해 비정상적 인간에 대비되는 나의 정상성을 인정받고 다수의 자리에 자신을 안전하게 둘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 정상성 이데올로기가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해온 건 ‘빨갱이 혐오’다. 한국 사회의 ‘빨갱이’는 정치적 의미의 좌파라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기득권 논리에 순치되지 않거나 저항하는 타자 모두를 호명하는 이름이다. 무슬림을 두고 ‘문명화한 우리와 미개한 무슬림’이라고 구분하는 행위는 정상성 이데올로기와 닮았다. 매일 살아가는 삶이 지옥 같아 ‘헬조선’에 살고 있다 자조하는 한국인들에게 우리와 다른 이는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타자다. 이들과 공존한다는 것은, 안 그래도 팍팍한 우리의 삶에 또 다른 경쟁 상대가 생기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때 필요한 게 ‘빨갱이 혐오’처럼 재빨리 이들을 배제할 수 있는 명분이다. ‘문명화한 우리와 대조되는 미개한 무슬림’이라는 프레임은 여기서 무슬림의 틈입을 거부할 수 있는 명분으로서 정치적 효능감을 준다.

무임승차론도 마찬가지다. “예멘 난민들의 가족들까지 다 들어와서 한국의 의료와 교육, 복지 혜택을 누릴 것”이라는 주장은 이미 정부가 6월 초부터 예멘 난민의 추가 입국을 막아버렸음에도 마치 곧 밀어닥칠 현실처럼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이 논리 역시 예멘 난민과 무슬림이라는 외부자들 이전에 이미 내부에서조차 ‘환대’의 정치를 거부하고 있는 한국 사회를 보면 불행하게도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인다. 서울교통공사에서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4년 차 이하 청년 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반대 서명과 악플이 이어졌다. 지하철역 곳곳에는 ‘무기계약직 정규직 전환 반대 포스터’까지 나붙었다. 이들에게 무기계약직 노동자 정규직화는 “공명정대한 공개채용제도를 부정하는 특혜”이고 “무임승차”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때도 비슷한 저항에 부딪혔다. 심지어 한국 남성들이 여성들을 혐오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도 여성들이 별다른 노력 없이 남성들의 데이트 비용이나 결혼 비용을 앗아가는 무임승차자라는 편견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여성을 대하는 것도 이럴진대 하물며 외부자인 무슬림의 ‘무임승차’는 선제적 저항의 대상이 된다. 우리가 저항해야 할 대상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경제적으로 착취당하고 박탈당하는 동시에 삶의 공간 곳곳에서 무시당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체제인데, 무슬림에 대한 선제적 저항이 되레 그 저항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안전 위협론과 여성 억압론은 무슬림에 대한 공포를 바탕에 깔고 있다. 이들에게 무슬림은 미지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자극적인 뉴스를 통해 ‘충분히 알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들이 무슬림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마치 외국인이 한국인에 대해 모든 사람이 성형 수술을 하고, 개고기를 먹으며, 마늘 냄새가 난다고 인식하고 있는 편견과 비슷하다. 그 ‘상상 속의 무슬림’은 현실에서 한국 사회에 테러를 몰고 올 범죄자들이 된다.

무슬림에 대한 이런 인식이 현실로 각인되기 시작한 건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자행된 샤를리 에브도 테러 때부터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친 무슬림 프랑스 이민 가정 출신의 청년들이 도심 한가운데 언론사에 진입해 언론인 12명을 표적 사격한 이 테러는 어떤 신호였다. SNS를 통해 빠르게 전파된 테러에 대한 공포는, 한국인들이 프랑스 국기를 프로필 배경에 내걸고 “나는 샤를리다”를 함께 외치면서 무슬림들을 배타적으로 대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는 그 자체로 비판의 대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테러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살피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단순히 중동에서 수백~수천 명의 삶을 앗아가는 전쟁과 폭력보다 유럽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테러에 더 관심을 두는, 왜곡된 눈을 가진 미디어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당시 샤를리 에브도 테러범이 무슬림이라는 점은 “알라후 아크바르”라는 말과 함께 어떤 신호처럼 사람들에게 인지됐지만, 이들이 프랑스에서 태어나 ‘2등 시민’으로 자랐다는 사실은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테러범 쿠아치 형제는 피자 배달 등을 하면서 절망적인 청년 시절을 보내다 무슬림 테러 단체에 가입했다. 무슬림 테러 단체로 이들을 이끈 핵심 동인은 무슬림 이민자들을 계급적으로 배제하고 ‘2등 시민’으로 만든 프랑스 사회에 있다. 그러니 “나는 샤를리다”와 같이, 특정 인종이 프랑스 문화를 공격하는 것, 심지어 미개한 무슬림이 문명화한 유럽을 공격하는 데 반대한다는 식의 담론은 특정 계급을 불안정 노동으로 내몬 격차를 은폐라는 가짜 적대라고 할 수 있다. ‘상상 속의 무슬림’과 미개한 무슬림이 문명화한 유럽을 공격하는 데 반대한다는 가짜 적대는 이렇게 조응해 우리의 삶과 안전을 위협한다.

여성에 대한 억압론도 마찬가지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당시 SNS와 커뮤니티에선 갑자기 할례와 부르카, 히잡 등과 같은 무슬림들의 가부장적 여성 억압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어린 여성들을 결혼시키는 조혼 풍습도 거론됐다. 당시에 무슬림의 여성 억압론은 테러의 충격을 무슬림에게 오롯이 책임지울 수 있는 구실처럼 거론됐다. 하지만 예멘 난민 문제에 이르러서는 무슬림의 여성 억압 문화가 곧바로 한국 사회에 유입돼 한국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줄 것이라는 공포 차원에서 거론된다. 열 살도 안된 어린아이를 나이 많은 남성과 강제로 결혼시켰는데 이 아이가 강간으로 인한 출혈로 숨졌다는 뉴스가 여성 커뮤니티에서 급속도로 퍼진 것이 그 일례다. ‘페미니스트 철학자’라는 윤김지영은 이런 여론을 등에 업고 무슬림 난민에 대한 혐오 발언을 공공연하게 내뱉기도 했다.

여기에도 가짜 적대는 존재한다. 무슬림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앞서 얘기한 여성 억압 문화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존재했다. 성과 재생산 포럼 기획위원인 김선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예멘의 조혼 풍습에 대한 문제 제기를 그 사회의 페미니스트들과 다양한 조직의 액티비스트들에 의해서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었다는 사실, 전쟁 직전에는 많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였다는 사실, 조혼방지를 위한 법안이 통과되기 직전이었다는 사실, 내전으로 인한 심각한 기아 상황에서 최근 몇 년 조혼이 급속도로 다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혜실 이주민방송 공동대표도 기고에서 “25년을 무슬림 남성과 결혼생활을 하면서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줄 수 있는 문화적 가부장제에 대응하고, 한국이라는 사회가 가진 가부장제와 동시에 싸움을 해오면서 페미니즘은 내가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알려주는 판단의 근거가 되어왔다”며 “그런데 어떻게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을 앞세워서 다른 소수자인 난민을 억압하는 일에 동조하는 것을 넘어서, 혐오표현이 난무하는 글들을 쓰고, 유포하고, 청와대 청원까지 가게 되었는지, 나는 분노하다 못해 절망하고 있고, 비참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이 얘기하는 건 두 가지다. 첫째, 한국 사회를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들이 여성 억압적인 문화를 지니고 있는데 무슬림과 같은 특정 문화권의 특정 사례만 부각되면서 정작 그 문화권 내부의 페미니즘 투쟁은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각 문화권 내부의 페미니즘 투쟁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문화권 내부의 여성들은 영원히 타자화한 채 배제되고, 남성들의 여성 억압적 문화만 외부로 뻗쳐나간다. 특히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 구조가 정작 조혼 풍습을 없애겠다는 예멘 사회 내부의 동력을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이런 논리로 간단히 무시된다.

둘째, 여성들이 공포와 맞서 싸워야 할 건 특정 인종이 아니라 여성들을 억압하는 가부장적 문화이고, 억압의 공포 앞에 여성들을 두고 방임하는 제도와 체제라는 점이다. 옥스팜이나 세이브더칠드런 등 제1세계 국제구호단체 소속 남성들의 제3세계 여성 대상 성매매와 성폭행 사례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여성 억압은 단순히 특정 인종과 특정 문화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 억압은 공기처럼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무슬림과 같은 특정 인종만 배타적으로 배제하는 가짜 적대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결국 무슬림에 대한 4가지 거부감의 논리는 각자도생의 지옥도에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불안한 삶의 벼랑 끝에서 등지고 서서 누군가 혐오할 대상을 찾아 혈안이 돼 무슬림을 바라보고 있는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정작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무슬림과 여성들을 교차해서 혐오하는 한국인들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다. 경제적으로 착취당하고 박탈당하는 동시에 삶의 공간 곳곳에서 무시당하는 삶. 무슬림이나 비정규직, 여성에 대한 혐오는 그런 삶에서 기인한, 탄착점을 오인한 소극적 저항이다. 오발탄이 된 저항의 탄착점을 진짜 적대로 돌리는 일, 그것이 지금 여기에 필요한 우리의 정치 아닐까.

*뉴스민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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