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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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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 너머에서 어머니는 내게 정신이 멍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도 했다. 그것은 어떤 정신적인 붕괴처럼 보였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떤 믿음 체계가 한순간 와해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이의 동반 붕괴.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파문을 대하는 대부분 시민들의 반응은 내 어머니와 비슷한 것 같다. 내 어머니와 나 사이에서 40년 동안 메울 수 없었던 차이처럼, 박근혜를 지지했던 지지하지 않았던 말이다.

세대와 지역, 성별과 정치적 지향을 막론하고 모든 정체성에서 한 목소리로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있다. 물음의 형식으로 된 이 탄식은 곱씹어 생각하고 나온 말이 아니라 자동 반사로 튀어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이 정부 들어 이런 탄식을 두 번째 접한다. 첫 번째는 2년 전 세월호 참사 때였다.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의 붕괴를 겪고 있다. 하지만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2년 전에는 가라앉는 세월호와 그 안에서 숨져간 이들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과 사회에 대해 느낀 깊은 무력감에서 비롯한 붕괴였다. 그 무력감은 이런 사회를 만들어놓은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자책을 동반했다. 사회에 대한 분노보다 더 큰 감정은 그런 자신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국정농단 파문 앞에서는 크게 두 가지 다른 감정에서 비롯한 붕괴를 겪고 있다. 하나는 최순실의 딸이 받은 온갖 특혜가 아무리 가난하고 힘이 없어도 그래도 버티고 노력하면 무언가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믿음 체계를 짓밟았기 때문에 오는 충격이다. 사람들은 사실 그 믿음 체계가 뭔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 체계를 부여잡지 않으면 아무런 희망이 없어짐을 알기 때문에 애써 실재를 외면한 채 그 판타지를 믿고 따랐다. 하지만 최순실과 그 딸이 명징하게 드러내 보인 실재가 그 희망을 짓밟았다. 짓밟힌 자리에는, 지독한 배신감만 덩그러니 남았다.

또 다른 감정은 국가라는 시스템이 박근혜라는 한 개인의 트라우마와 최순실이라는 또 다른 개인의 권력욕을 달래기 위해 모조리 사유화하고 그들을 위해서만 기능을 작동해온 현실에 대한 허탈함이다. 이 허탈함에는 박정희라는 강력한 지도자의 상이 그 딸인 박근혜에게도 당연히 계승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이들의 감정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의 믿음과 달리, 카리스마적 신비의 정치적 언어로 포장됐던 박근혜의 단발성 말은 철저한 무능을 가리기 위한 껍데기였다. 껍데기를 확인한 현실에 더해 위임해준 나의 권한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강탈당해온 참혹한 현실 뒤에 남는,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자의 박탈감이 마음의 붕괴에 담겨 있다. 배신감과 허탈함, 박탈감이 더해지면 그것은 자신에게 향하는 미안함이 아니라 외부로 향하는 분노로 승화한다. 이 분노는 지난 주말 광화문에 나온 촛불집회 참여자들의 숫자로 셈할 수 없는, 더 거대한 어떤 규모다.

그러니 이 분노는 단순히 최순실이라는 국정 농단자의 죄를 색출하고 단죄하는 것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하야를 하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라거나 탄핵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임기가 종료할 때까지 기다리면 자연스레 정권이 넘어올 것이라는 정치공학적 시선도 저 분노 앞에선 공허하다. 사람들의 질문은 파괴된 민주주의 체제를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이 체제의 근원에 닿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트랙의 접근을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국정농단 파문을 일으킨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박 대통령 옆에서 호가호위했던 수많은 측근들, 박근혜라는 무능한 정치인의 포장된 권능에만 의존하는 정치로 10년 넘게 연명해온 새누리당, 이 국정농단 파문에 동참해 돈을 뿌리고 온갖 특혜를 쓸어담은 재벌들까지 모조리 법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처벌하는 트랙이 그 첫 번째다. 그 다음 트랙은 어쩌면 1987년 체제의 종말과 새로운 체제의 건설일 지도 모른다. 그러니 누군가의 정치공학에 따라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개헌이 아니라, 상실된 민주주의 체계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담는 차원의 개헌을 제대로 아야기해야 할 때일 지도 모른다. 대통령 임기나 선출 방법, 중임 여부보다 더 중요한 건 상실로 인해 역설적으로 더 절실해진 민주적 열망과 참여를 어떻게 더 폭넓은 그릇으로 담아낼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다. 어쩌면 그 답은 이미 우리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방송대학보 기고를 보완해 게재함

*사진 출처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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