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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이재훈

2015.04.04 00:44

먼저 글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전혀 부끄러워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글을 좀 더 친절하게 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점 죄송합니다.
시스템은 체계인데,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광의의 의미로는 우선 사물과 사물을 둘러싼 모든 관계의 총체적인 합법칙적 질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관계를 둘러싼 모든 체계와 질서, 이론 등을 일컫지요.
협의의 개념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국가 체계입니다. 사법 시스템이나 행정 시스템, 입법 시스템 등 국가의 여러 가지 기구가 작동하는 질서, 즉 법 규범이 되겠지요.
제 글에서 거론한 시스템은 두 범주의 개념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지만, 협의의 개념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이 글에서 지적해주신 “시스템을 배제하는 파시즘적 폭력”은 객관적인 사실로 밝혀지지 않은 감정이나 성향을 두고 사법 시스템 등의 제도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비이성적인 감정몰이로 폭력을 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회가 개인에 대해 신체를 구속하는 등의 제도적 불이익을 줄 때는 그에 따른 법적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비이성적인 여론 몰이를 통해 제도적 불이익을 주는 것은 시스템을 무시하는 것이 되겠지요.
물론 법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법은 주로 기득권 세력의 이해 관계를 반영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법보다 넓은 범위의 윤리 의식을 지니고 기득권 세력의 이해 관계에 종속된 법을 늘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하지만 비판과 분노를 제도적 처벌이 영역으로 가져올 때는 늘 신중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쓴 것인데, 잘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