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예외상태는 법의 작동이 중단되는 공백 상태다. 여기서 작동이 중단된 ‘법’은 한국의 대통령이 자주 거론하는 질서로서의 ‘법’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일컫는다. 즉, 예외상태는 법 질서를 보존하기 위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개인을 억압할 수 있는 상태라고 거칠게 설명할 수 있다. 칼 슈미트는 “주권자는 예외를 결정하는 자”라고 말했다. 예외상태에서 개인은 억압되지만, 법 질서가 회복되면 종국에는 체제가 존속되면서 국민의 안전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게 슈미트의 논리다. 이 논리는 바이마르 공화국을 ‘위기 상황’으로 규정하고 헌법을 정지시킨 나치의 독재를 정당화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일 ‘테러방지법’ 통과를 재촉하고 있다. 이 법이 없으면 당장 IS(이슬람국가)가 테러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한다. 형법이 있어도 살인 사건은 일어나고, 민법이 있어도 사기 사건은 일어난다. 논리적 오류다.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테러의 위협을 강조하며 “이런데도 천하태평”이라며 국회를 비난한다. 아무도 박 대통령의 논리적 오류에 주목하지 않는다. 비난이 향하는 곳만 바라볼 뿐이다. 그러자 한술 더 떠 “세계적으로 테러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테러방지법조차 통과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국회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주권자'의 뜻에 적극 동조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박근혜 대통령 관심 법안'에 야당이 협조하지 않는 상황을 두고 '국가 비상사태'라고 밝히며 법안을 직권 상정해야 한다고 국회의장을 압박하고 있다. 국회의 존재는 이렇게 부정되고 있다.
국회에 계류중인 테러방지법안을 보면, 우선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테러대책회의를 둔다. 의장은 국무총리지만, 사실상 국정원장이 업무를 위임받아 처리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세 가지다. 첫째, IS와 같은 국외 집단뿐만 아니라 국내의 결사 또는 집단도 테러단체 지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테러단체 지정 권한은 국정원장이 쥐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국정원은 국외 첩보보다 국내 정치에 주력해왔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발생하지도 않은 위기 상황은 이미 테러단체가 양산될 위기를 잉태하고 있다.
예외상태는 체제를 위협하는 적대를 필요로 한다. 테러방지법안은 ‘공공의 안전’을 목적 삼아 다수의 ‘공공의 적’을 양산하고 배제할 도구가 될 수 있는 셈이다. 한국에는 이런 공공의 적이 이미 존재한다. <조선일보>는 12월9일 신문에서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 도주 막느라 세금 2억6800만원 썼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한 위원장은 지난 5월 세월호 1주기 집회를 주최했다. ‘교통 흐름을 방해’한 혐의가 발생했고, 1급 수배범이 됐다. 기사는 이 1급 수배범의 도피를 막기 위해 23일 동안 연인원 1만2248명의 경찰력이 동원됐고, 이들의 식비와 경찰버스 유류비 등으로 매일 1100만원씩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적 권리인 집회를 주최한 이가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그것도 1급 수배범으로 몰린 상태에 의문을 품는 게 법 논리겠지만, 시선은 또 대통령의 손가락 끝으로만 향해 있다.
대통령이 “공권력을 우롱하고 있다”고 지목한 1급 수배범과 “상습적인 불법폭력 시위단체”로 규정한 민주노총은 다수의 손가락질을 함께 받고 있다. 체제를 위협하는 적대는 집단 전체가 함께 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공적이어야 한다. 세금 낭비론은 세금을 내는 국민 전체를 피해자로 만들고, 민주노총과 한상균을 낭비를 발생시키는 가해자로 주조해 집단의 공적으로 만들기에 효율적인 장치다. 이미 한국에서 노조와 노동자는 ‘국익’과 ‘공공의 경제 발전’을 저해한다는 상상적 착취의 절대적 가해자 아닌가. 그러니 민주노총과 한상균, 노조와 노동자는 한국에서 ‘살해당해도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법 외부의 존재, 호모 사케르다.
문제는 이런 예외상태가 특정한 공백기를 일컫는 예외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이미 일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시 미국 행정부는 9.11 테러 이후 무슬림을 적대 삼아 국가안보를 침해한다고 의심되는 외국인을 무기한 구류하고 전쟁 포로의 지위를 박탈했다. 법 외부의 존재가 된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도 공공연하게 무슬림 축출을 거론하는 극우 정치인 장 마린 르펜의 국민전선이 지방선거에서 약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선 투표에서는 결국 1석도 얻지 못할 것이란 출구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문제는 사회당이 우경화했음에도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한 반면 보수 정당인 니콜라 사르코지의 공화당이 반사 이익을 얻어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점이다. 사르코지는 대통령 재임 시절 공식 석상에서 “프랑스의 기독교적 전통”을 거론하며 무슬림 이주민들에 대한 적대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세계는 ‘테러’를 기화로 무슬림을 적대 삼아 이들을 법 외부적 존재로 만들면서 예외상태를 구축하고, 한국은 여기에 더해 노조와 노동자를 적대 삼아 이들을 법 외부적 존재로 만들면서 예외상태를 일상화한다.
조르조 아감벤은 일상화한 예외상태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행정 권력이 사실상 입법권을 흡수했다는 점을 꼽는다. 의회는 법률을 만드는 독점적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잃었고, 행정 권력의 거수기 역할로 존재가 축소됐다. 예외상태 속에서 행정 권력은 법률이 아니라 직접 칙령을 만들어 권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앞서 얘기한 한국의 테러방지법에서 테러단체 지정 절차는 법률이 아니라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대통령은 민주적 논의 과정 따위 ‘무능’ 프레임으로 몰아붙이며 국회를 무력화하거나 존재 이유를 경시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수사 과정에서든 노동 개혁 구도에서든 교과서 국정화 구도에서든 이런 모습은 한결같이 이어졌다. 유가족과 노동자, 좌파 역사학자들이 ‘헐벗은 존재’로 내몰렸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인다. 이 예외상태를 만들고 있는 것이 비단 대통령뿐일까. 다수 시민은 순진하게 이용만 당하고 있는 것일까. 피해와 가해 구도의 역전은 대통령과 신문의 손짓 하나로 가능할까. 그러니 어쩌면 지금의 한국 사회는 이런 예외상태를 방치하며 '주권자'의 등을 떠밀고 있는 열정적 동조 상태 아닐까. 이 질문들에 답은 우리 스스로 구해야할 지 모른다.
*<방송대학보> 기고를 보완해서 게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