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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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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문 앞에는 여러 개의 비닐 천막이 나란히 설치되어 있었다. 고 김용균씨를 기린 형상과 고 전태일씨를 기린 형상도 함께 서 있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동조 단식 참여자들이 세운 이 비닐 천막 안에서 참여자들은 매서운 강바람을 피하고, 몸을 녹이며, 밤잠도 잔다. 이동식 미니 발전기를 통해 전기장판을 돌리고, 이불을 덮고, 비닐 천장을 만들어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영하에 가까운 기온에 눈비가 흩날리던 29일 오후, 천막 앞에서 고 김재순씨의 아버지 김선양씨를 만났다. 김씨는 지난 27일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왔고, 28일부터 동조 단식에 들어갔다. 아들 김재순씨의 죽음 이후 통화만 하던 김씨를 직접 만난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김씨의 아들 재순씨는 지난 522일 광주의 재활용업체 조선우드에서 일하다 합성수지 파쇄기에 몸이 끼여 숨졌다김씨는 그날 이후 모든 일상이 무너졌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충남 아산의 제조 공장에는 곧 사표를 썼다. 오로지 아들 재순씨의 죽음을 낳은 그 공장을 규탄하는 데 지난 7개월을 보냈다. 그는 "그 공장에서 곧 또 사고가 날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런 그에게 천막 안에서 함께 이불을 덮고 앉아 여기서 밤잠 주무시기에 힘들지 않으시냐”, “이렇게 추운데 몸까지 불편하신 분이 왜 굳이 동조 단식을 하시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제가 예민해서 여기 이렇게 있으면 밤잠을 잘 못 자요. 귀마개를 하고 누워도 차가 쌩쌩 지나가고, 여기저기 다른 소음도 들리니까요. 그래도 다행히 제 몸이 작아서 몸을 웅크리고 이불에 들어가면 그나마 괜찮습니다. 이불을 계속 덮고 있으면 또 숨이 막히긴 하지만.” 국회 정문 앞 천막에서 3m도 안 되는 거리에 왕복 10차선 의사당대로가 지난다. 자동차들이 내는 소음은 김씨와 얘기를 나누는 지금도 계속 귀를 괴롭혔다. 그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집에 있어도 평소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던 사람들과 만나 웃으며 술 한잔 하기조차 버거워졌어요. 그렇게 웃으면 사람들이 저거 죽은 아들놈 팔아서 돈 벌어서 저러나 보다라고 뒷말들을 해요. 그래서 집에만 들어앉아 있으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어서 못 견디겠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 나와서 다른 유가족들을 만나면 일상을 살 수 있어서 좋아요. 다른 유가족들은 제 마음을 알잖아요. 그러니 같이 농담도 하고, 같이 웃기도 하고, 그러면서 같이 싸우기도 하고 그러는 거죠.”

그러니까 김씨가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은 역설적으로 기존의 일상이 아니라 거리의 천막, 그리고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는 말이 된다. 저 말은 가까이는 김미숙씨의 말과도 닮았고, 멀리는 세월호 가족들의 말과도 닮아 있었다. 김미숙씨는 1년 전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집에 혼자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힘들어요. 애 죽음 상태를 떠올리게 되고. 용균이 현장이 자꾸 떠오르고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세월호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몇년 뒤 어떤 이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싸우는 유가족들을 보고 대체 뭘 위해서 저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묻곤 했다. 그때 유가족들이 했던 말도 김선양씨나 김미숙씨가 했던 말과 같았다. 그들은 무엇을 절실히 하고 싶다기보다는 그저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거리로 나왔다고 했다.

김씨는 요즘 평생 하지 않던 장애인 인권 관련 공부도 조금씩 하고 있다고 했다. 아들 재순씨는 지적장애인이었다. 장애를 가져도 그게 그저 천형이니 생각했던 지난날과 달리, 아들이 숨지고 나서야 장애인과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했다. 아들의 죽음 뒤 여러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연락을 해오고, 때로는 전문적인 지식도 묻는다. 그때마다 그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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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로 단식 19일째로 접어든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와 고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씨 등이 머무는 또 다른 천막은 국회 본청 앞에 설치돼 있다. 천막 앞에는 오랜 단식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이들과 접촉을 자제해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럼에도 본청 앞 단식 농성자들은 이날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몸을 움직인 상태였다.

지난 28일 정부는 국회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수정안을 제출했다. 수정안은 안 그래도 퇴행적이었던 민주당 안에서 더욱 후퇴해 있다. 사고 이전 5년간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수사기관 등에 의해 3회 이상 확인되거나 사업주가 진상조사를 방해하는 등 사건 은폐를 지시한 경우에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는 조항은 아예 삭제됐다. 민주당 박주민 안에 들어있던 50인 미만 사업장 4년 적용 유예에 더해 50~100인 사업장 2년 유예 조항까지 추가됐다. 손해액의 5배를 최저한도로 설정했던 손해배상액은 손해액의 5배를 최고한도로 뒤집어놨다. 이 밖에도 결재권자인 공무원 처벌 조항을 직무유기죄에 해당할 때만 처벌한다고 바꿔놨고, 사업주나 법인, 기관이 제3자한테 임대·용역·도급을 행한 경우 제3자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공동으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지도록 하는 조항 중 임대·용역의 경우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어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일부 면탈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중대재해를 일으키는 기업이나 사업주를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중대재해가 터져도 기업이나 사업주를 최대한 처벌하지 않는 법안을 내밀어 놨다. "사람이 먼저"라던 대통령의 말은 결국 허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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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 국회 정문 앞을 나서는데, 정문 앞 10차선 도로 건너편에 윤석열을 탄핵하라’, ‘공수처 출범 국민의 명령이다’, ‘사법개혁’, ‘적폐판사 탄핵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주렁주렁 내단 버스가 정차 상태에서 현수막과 비슷한 내용의 선전 방송을 연신 외치고 있었다. 왠지 그 말들이 10차선 건너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동조 단식 참여자들을 질식시키는 것만 같은, 그런 20201229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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