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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낭설'은 특별한 카테고리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당분간은 한국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냉소와 분노의 계급화' 현상,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등에 대한 글을 쓸 예정이다.

한겨레 기자. 주로 사회부에서 일했다. 빈민, 이주노동, 교육 문제 등을 취재했다. 공저서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와 <저널리즘 글쓰기의 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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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9일 0시 29분께 인천공항철도 계양역에서 검암역 쪽으로 1.2㎞ 떨어진 철길. 백인기(당시 54살) 씨 등 6명의 노동자가 선로 보수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날 자정, 서울역에서 출발해 검암역으로 향한 공항철도 마지막 열차가 시속 80㎞로 달리다 이들의 등 뒤를 덮쳤다. 5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고, 1명은 다리가 부러졌다.

이들은 사고 전날까지 인천공항 쪽 운서역부터 검암역 사이 구간에서 선로 보수작업을 해왔다. 공항철도 인천공항행 막차는 0시 20분 이전에 이 구간을 통과한다. 이 때문에 이들은 계양역과 검암역 사이 구간에서도 평소와 같이 0시 20분이 지난 뒤 선로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들이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계양역과 검암역 사이 구간에는, 서울역을 출발해 검암역까지만 운행하는 막차가 한 대 더 남아 있었다.

사고를 낳은 핵심 문제점은 세 가지였다. 첫째, 누구도 이들에게 0시 20분 이후에 남은 열차가 한 대 더 있다는, 간단하지만 무거운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둘째, 이들은 형광 작업복이나 야광 반사판 같은 보호 장구를 하나  갖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열차 기관사는 이들을 발견하지 못했고, 경적조차 울리지 못한 채 이들을 덮쳐야 했다.

셋째, 선로 보수작업에는 안전 책임자인 관리 감독원이 동행해야 하지만, 이날 현장에는 관리 감독원이 없었다. 관리 감독원은 하청에 맡긴 한 달이라는 작업 기간 동안 겨우 사흘 나타났을 뿐이다.

사고를 당한 6명의 노동자는 원청인 코레일공항철도㈜로부터 공항철도의 선로작업을 하청받은 코레일테크㈜ 소속 비정규직이었다. 코레일테크는 2003년 코레일이 시설운영 부분을 단계적으로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설립한 사실상 코레일의 자회사다. 직원 1200여명 가운데 정규직은 40여명에 불과하고, 96%가 비정규직이었다.

사고를 당한 6명의 노동자는 철도 설비만 10~20년씩 해온 베테랑 기술자들이었지만, 누구도 자신의 안전 보장에 대해 회사에 요구할 수 없었다. 회사에 안전 문제를 거론했다가 언제 계약이 해지될지 모르는 신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청이든 하청이든 ‘열차 진입 정보’라는 단순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신경 쓰지 않았고, 안전 장구를 갖출 비용을 마련해주지 않았으며, 열차가 다가오고 있다는 현장에서 확인해줄 관리 감독원조차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어이없이 죽임을 당했다.

7년 전 발생한 이 죽음은 한국 사회에 ‘위험의 외주화’라는 개념을 처음 공론화하게 만들었다. 이 공론화 이후 위험 노동 현장에서 다수의 죽음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한국 사회는 대체로 그들이 하청 노동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13년 3월 여수국가산업단지 폭발사고 때 목숨을 잃은 6명의 노동자는 모두 한달짜리 초단기 계약직 노동자였고, 2013년 5월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에서 아르곤 가스에 질식해 숨진 5명의 노동자들도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2014년 3월과 4월에는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5명의 하청 노동자가 추락이나 폭발사고 등으로 사망했다. 2015년 7월에는 한화케미칼 울산공장 폐수처리 저장조에서 일어난 폭발사고로 현장에서 작업하던 하청 노동자 6명이 숨졌다.

이런 죽음들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2014년부터 2018년 7월까지 산업 현장에서 중대재해로 사망한 하청 노동자는 1426명에 이른다. 하루에 0.85명의 하청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하고 있다는 얘기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동안 주요 업종별 30개 기업에서 발생한 209건의 중대재해에서 사망자가 245명에 달했는데, 이들 가운데 하청 노동자가 무려 86.5%(212명)를 차지했다는 통계도 있다.

이런 죽음들을 낳은 이유도 공항철도 선로 보수작업 노동자들의 참변 이후 7년째 반복되고 있다. 첫째, 원청은 하청 노동자들에게 위험 업무를 맡기면서도 안전 교육을 하지 않고, 사고가 나도 책임지지 않는다.

둘째, 원청은 하청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올리기 위해 무리한 업무 일정을 강요한다. 하청 업체는 재계약을 따내기 위해 원청의 무리한 요구에 복종하고, 하청 노동자들을 압박한다. 하청 노동자들도 하나의 작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임금이 적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일정으로 업무를 끝내고 다른 업무로 모자란 임금을 충당하기 위해 무리한 일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셋째, 하청은 역시 최소한의 비용으로 원청의 사업을 따내기 위해 인건비를 최소화한다. 이에 ‘2인 1조’와 같은 업무 매뉴얼을 무시한 채 최소한의 인력을 투입하고, 위험 업무 현장에 훈련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유연하게’ 교체해가면서 투입한다. 넷째, 수많은 업무가 외주화한 상태에서 안전을 감시해야 할 업무마저 외주화해서 누가 어디에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관리되지 않는다. 다섯째, 노동자가 이렇게 죽어 나가도, 원청이나 하청업체 사업주는 약간의 벌금만 내면 될 뿐,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 이유들을 풀 해결책은 두 가지 정도다. 하나는 정부와 의회가 ‘죽음을 부른 이유’들을 방지하는 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2016년 6월 서울메트로의 외주로 스크린도어 관리를 맡은 하청업체 비정규직이던 19살 김아무개군이 홀로 구의역 승강장 안전문을 수리하다 참변을 당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2년 정도의 논의 끝에 올해 초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을 내놨다. 전면 개정안은 원청의 안전관리 책임을 대폭 늘리고, 안전보건조처 위반으로 노동자가 숨졌을 때 사업주가 받는 징역형에 ‘1년 이상’의 하한형을 새롭게 추가하면서 형사처벌을 강화했으며, 유해작업의 하도급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도 담았다.

하지만 입법 예고가 시작되면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총공세에 나섰고, 보수언론과 경제신문이 이들의 논리에 힘을 실어주면서 전면 개정안은 누더기가 됐다. 일각에서 얘기가 나왔던 ‘기업 살인법’ 제정이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은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 그렇게 아무런 진전 없이 정기 국회가 마무리된 직후인 지난 11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4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졌다.

한국 사회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 참변이 발생하는 이유는 언제나 자명하다. 문제는 그 이유를 해결하기 위해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회 정치는 몫 없는 자들의 목소리보다는 자본과 정보력을 갖춘 이들의 목소리에 휘둘리고, 기업은 위험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외주를 선택한 뒤 간편하게 책임을 외면한다.

사법기관은 의회 정치가 만들어놓은 법을 핑계 삼고, 기업 자본이 유려하게 해석해놓은 변론을 발판 삼아 역시 몫 없는 자들을 외면한다. 이렇게 이 명징한 죽음의 이유들을 두고도 한국 사회는 7년 동안 아무런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고, 그러는 동안 구의역 김군도, 태안 서부발전 김용균 씨도, ‘꽃다운 청춘’이 아니어서 죽임당했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도, 기업에 의해, 나아가서는 한국 사회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런 상황이니, 남은 해결책 하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 해결책은 위험 업무에 투입되는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사회와 기업에 위험 업무에 대한 안전 보장을 요구하고 감시하면서 동시에 싸우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요구를 하려면, 최소한 노동자들이 그런 요구와 감시와 싸움을 했다는 걸 빌미로, 요구와 감시와 싸움을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나 각종 노동 조건에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 김용균 씨의 죽음 이후, 발전과 원전, 철도와 지하철, 항공과 병원, 각종 주요 산업 시설 등에서 위험 업무와 안전 업무를 맡는 이들이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건 그런 까닭에서다. 이런데도 과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위험의 외주화’의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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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JTBC 정유라 체포 보도 정말 문제였나 file [2]

  • 2017-01-04
  • 조회 수 68495

JTBC 기자가 덴마크에서 정유라를 추적하다 행적을 확인한 뒤 경찰에 신고하고 이 과정을 영상으로 취재해 보도한 사실을 두고 저널리즘 원칙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보도하되 개입하지 않는다'는 저널리즘 고유의 원칙을 두고 JTBC가 경찰에 신고하든 보도를 하든 하나만 선택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건 박상현 메디아티 이사가 쓴 '경찰에 정유라를 신고한 JTBC 기자,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글은 박상현 이사의 글에 대한 반론이 아니다. 그 글을 계기 삼아 나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써...

세월호 인양과 온전한 애도 file

  • 2017-03-28
  • 조회 수 41194

3월23일 새벽 3시45분. 전남 진도 맹골수도의 검은 물 위로 세월호 선체의 우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객실과 조타실이 있는 흰색 상부는 녹슬고 부식돼 검게 물들어 있었다. 화물칸이 있는 파란색 하부는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져 붉은 속내를 드러냈다. 배 이름은 지워지고 없었다. 선체의 형상이 점점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마음 한 켠에 묻어뒀던 기억도 또렷하게 소환됐다. 2014년 4월16일. 검은 바다 위에서 점점 기울어가던, 그렇게 304명의 비명을 집어삼키던, 저 배를 어찌 바로 세울 수 없나 절규하던, 그 세월호였다. 그 세월호였...

그러니까 "우리가 남이가" file

  • 2016-12-27
  • 조회 수 38789

나에겐 혈연으로 묶이지 않은 ‘큰아버지’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두 가족이 친척보다 가깝게 지내면서 자연스레 그렇게 부르게 됐다. 큰아버지는 내게 삶의 지혜를 알려주고, 성찰적 삶에 대해 조언해주는 분이었다. 그 자신이 성실한 삶으로 모범이 됐다. 큰아버지가 며칠 전 할 말이 있다며 전화했다. 서울에 있는 유명 여론조사 전문업체 대표의 이름을 대며 “들어본 적 있느냐”고 했다. 같은 고향에 고등학교 동문인데, 이 사람을 소개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서울이라는 큰물에서 크게 노는 사람인데 알아둬서 나쁠 것 없지 않겠냐...

'파산관재인' 문재인, 홍준표의 새빨간 폭로 file

  • 2017-04-05
  • 조회 수 27588

‘파산관재인’이라는 말이 있다. 파산한 기관이나 법인, 기업이나 개인의 채권을 채권자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역할을 주로 하는 사람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회사가 망했을 때 남은 돈을 찾아내서 이 회사에 돈을 빌려준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나눠주는 역할을 한다. 법원이 지정하는데, 주로 변호사가 선임된다. 2017년 3월28일.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문재인 전 더불이민주당 대표가 변호사 시절 세월호 실소유주인 세모의 파산관재인을 맡았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권 당시 공적 자금이 들어간 유병언의 업체에 1153억원 채무 탕감...

그 당원들은 왜 심상정을 욕하나 file

  • 2017-04-27
  • 조회 수 20675

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다른 후보를 비판했다. 그러자 비판받은 후보의 지지자들이 욕설 섞인 항의전화를 걸어오고, 당 게시판에도 인신공격성 글이 폭주했다. 더 당혹스러운 일은 이 정당 내부에서 벌어졌다. 일부 당원들이 게시판에 탈당 선언을 했다. 정의당과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에게 벌어진 일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정의당은 통합진보당의 후신이다. 통합진보당은 2012년 4월 총선 과정의 경선 파동을 통해 이정희 등 민족해방(NL) 계열 일부가 떨어져나가면서 유시민과 천호선 등으로 대변되는 국민참여계, 일부 남은 NL...

‘가짜뉴스’ 조작된 뉴스의 위협 file [1]

  • 2017-02-16
  • 조회 수 18951

‘가짜뉴스’는 거짓 정보나 유언비어가 담긴 조작된 뉴스를 말한다. 공신력 있는 언론사가 작성한 기사처럼 포장해 사실인 양 유통되기도 한다. 가짜뉴스가 주목받은 건 지난해 미국 대통령선거 때다. 도널드 트럼프에게 유리하고 힐러리 클린턴에게 불리한 가짜뉴스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통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지지를 발표했다’는 가짜뉴스는 페이스북에서 반응이 96만 건에 이르렀다. ‘클린턴 후보가 테러단체 ISIS에 무기를 판매했다’는 가짜뉴스는 79만 건의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가짜뉴스에 대한 반응 건수는 미국...

황교익 출연금지에 담긴 정치 혐오 file

  • 2017-01-24
  • 조회 수 17219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KBS 출연 금지를 당했다. 그는 최근 유력 대선 후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지하는 더불어포럼 공동대표를 맡았다. 출연이 예정됐던 프로그램은 KBS <아침마당> 목요특강이다. 주제는 ‘맛있는 식재료 고르는 요령’. <아침마당> 제작진은 ‘제작 가이드라인’을 언급했다. 여기에는 “선거기간 중 비정치 분야 취재를 하는 경우, 후보자 또는 캠프에서 공식 직책을 맡고 있거나 특정 정당·후보자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사람을 인터뷰하거나 방송에 출연시키지 않도록 주의한다”고 적혀 있다. 가이드라인만 ...

사드 '보고 누락'이 아니라 '허위 보고'다 file

  • 2017-06-07
  • 조회 수 15308

국방부 장관 한민구에겐 네 번의 기회가 있었다. 5월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에 참석했고, 17일엔 문 대통령의 국방부 초도순시에 배석했다. 26일엔 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위원 점심 간담회가 있었고, 28일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점심을 먹었다. 하지만 한민구는 안보를 위해 자신들이 그렇게나 중요하다고 주장하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추가 반입 사실을 한 차례도 군 통수권자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심지어 정의용 안보실장이 “이미 사드 4기가 들어왔다면서요”라고 묻자 “그런 게 있었...

태극기에게 박근혜란 무엇인가 file

  • 2017-03-07
  • 조회 수 13790

박근혜 탄핵에 반대하는, 만만찮은 수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탄핵 각하”를 선언하고 “빨갱이를 죽이자”고 외친다. 진보 언론은 물론 보수 언론마저 국정 농단 파문에서 박근혜가 문제의 핵심임을 지적하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모든 언론이 조작된 뉴스로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광장은 종교적 맹신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지난 삼일절 집회에서 광장을 메운 태극기 물결은 대체로 50대 이상 장년층이었다. 40대가 5명 중 1명, ...

경향신문 녹음 파일 보도로 JTBC와 손석희가 잃은 것 file [16]

  • 2015-04-17
  • 조회 수 13727

죽음을 앞둔 사람이 마지막으로 찾은 기자. 어떤 억울함에 대한 증명으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이 그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선택한 기자라면 평소에 그 기자는 취재원과 상당한 신뢰 관계를 쌓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 억울함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말이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인터뷰한 경향신문 이기수 기자는 그런 분이라고 한다. 경향신문은 훌륭한 기자를 두었고, 십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중요한 인터뷰를 했으며, 이를 잘 벼려서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50분 동안의 인터뷰 가운데 핵심적인 사안을 하나씩 꺼내 보...

박근혜 게이트, 붕괴된 믿음 체계와 분노 file

  • 2016-11-06
  • 조회 수 12078

수화기 너머에서 어머니는 내게 “정신이 멍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도 했다. 그것은 어떤 정신적인 붕괴처럼 보였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떤 믿음 체계가 한순간 와해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이의 동반 붕괴.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파문을 대하는 대부분 시민들의 반응은 내 어머니와 비슷한 것 같다. 내 어머니와 나 사이에서 40년 동안 메울 수 없었던 차이처럼, 박근혜를 지지했던 지지하지 않았던 말이다. 세대와 지역, 성별과 정치적 지향을 막론하고 ...

“아빠는 ‘옳은 일’ 했는데 왜 감옥에 갔을까요” file

  • 2017-09-25
  • 조회 수 8434

8년 싸운 해고자 아들의 눈으로 본 세상, 다큐 〈안녕 히어로〉 ‘산 자’이면서 ‘죽은 자’들의 구렁텅이에 함께 뛰어든 사람들이 있었다. 눈 한 번 질끈 감고 외면했다면 7년 동안 고통 없이 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은 그들에게 틈입되지 않는 이야기다. 2009년 쌍용자동차가 경영 악화를 이유로 2646명의 구조조정을 노동조합에 통보했을 때, 김정운은 구조조정 대상이 아니었다. ‘산 자’로 불렸다. 하지만 김정운은 ‘죽은 자’들과 함께 옥쇄파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해고 노동자가 되어 꼬박 7년 8개월 동안 거리에서 투쟁했다. 옥쇄...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file

  • 2016-12-09
  • 조회 수 8398

어찌 보면 익숙한 포즈다. 책임져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책임을 말하지 않고 책임을 전가하거나 결정하지 않으면서 가장 먼저 그 자리에서 탈출하는 모습.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직후 재난구호의 최종 책임자임에도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을 해서 책임질 사람은 모두 엄벌토록 할 것”이라고 말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붕괴하는 시스템에서 가장 먼저 탈출했다. 이번에는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의 주범으로 지탄받는 상황에서 “저의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며 홀가분한 표정으로 돌아서 결정을 회피했다. ...

20대 남성과 문재인, '젠더 갈등'이라는 맥거핀

  • 2019-02-02
  • 조회 수 8124

한국 사회에서 20대는 주체가 되지 못한다. 늘 대상으로 존재한다. 언론과 정치인들은 때만 되면 20대를 한 덩어리로 묶어 ‘OO세대’로 호명하고 싶어 한다. 흥미로운 건 보수나 진보나 이런 욕망은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보수는 주로 20대를 한 덩어리로 묶어 ‘능력주의’나 ‘탈이념성’, ‘한국 사회에 대한 긍정적 시선’을 읽어내려고 애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시기에 태어나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고 자라난 세대’라는 어떤 신문의 ‘G세대’ 담론이 대표적이다. 진보는 ‘삼포세대’나 ‘헬조선’ 담론과 같이 경제적 어려움 속에 불...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몫없는 자’들에 대한 기만이다 file

  • 2018-05-30
  • 조회 수 4393

국회가 결국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는 28일 본회의를 열고 매달 1회 이상 지급되는 정기 상여금과 식대·교통비·숙박비 등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새로 산입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찬성 160, 반대 24, 기권 14표로 가결했다. 이에 따라 내년 1월부터 최저임금의 25%(올해 기준 월 39만3천원)를 초과하는 정기 상여금과 최저임금의 7%(월 11만원)를 넘는 복리후생비까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된다. 이 비율은 매년 점차 줄어들어 2024년에는 정기 상...

‘갓물주의 하루’와 ‘우리끼리 싸움’ file

  • 2015-09-06
  • 조회 수 3537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 유령처럼 도는 글이 있다. 제목은 ‘갓물주의 하루’. ‘갓물주’는 ‘신(god)’과 ‘건물주’의 합성어다. 올해 1월 발간된 한 경제 잡지 인터뷰를 바탕으로 했다.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마포구에 3채의 빌딩, 강남구와 제주도에 땅을 소유하고 있는 이 갓물주는 임대 수익으로 월 17억원을 번다. 아침 식사를 한 뒤 골프 레슨을 받고, 특급 호텔로 가서 사우나와 점심 식사를 한 뒤, 집으로 돌아와 건물 관리자에게 자산 관련 보고를 받고 휴식하는 게 그의 일과다. 주 1회 백화점에서 부인과 쇼핑을 하고, 분기별 1회 ...

후쿠오카와 한국의 '싱크홀' file [2]

  • 2016-11-28
  • 조회 수 3215

지난 8일 새벽 5시15분께. 일본 후쿠오카시 하카타역 앞 5차선 도로가 푹 꺼지듯 무너졌다. 폭 15m, 길이 20m, 깊이 15m에 달하는 거대한 싱크홀이었다. 새벽 시간이었지만 평일이었고, 이 일대가 후쿠오카에서 손꼽히는 번화가라는 점에서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부상자는 단 한 명 발생했다. 그것도 싱크홀로 전봇대가 쓰러지면서 발생한 정전 때문에 어둠 속에서 계단을 헛디딘 이가 발목을 삐끗해서 생긴 경상이었다. 그런데 이 사고를 두고 가장 화제가 된 건 사고 발생 일주일 만에 싱크홀을 완벽하게 복구한 일...

하나고와 사도, 소비자 정체성과 체념적 각자도생 file [6]

  • 2015-10-12
  • 조회 수 3207

딸이 하나고에 다닌다는 학부모가 전화를 걸어왔다. “한겨레 18년 독자인데 구독을 끊었다”고 했다. 입학 전형에서 남학생들의 성적을 올려서 남녀 성비를 고의로 맞춘 의혹을 공익 제보한 하나고 교사에게 학부모들이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는 기사를 쓴 다음날이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저 교사가 왜 공익 제보자인지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비리를 처음 제기했고 하나고도 이 사실을 인정했으니 단순 폭로자가 아닌 공익 제보자”라고 했더니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인데 왜 공익 제보자냐”라고 되물었다.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나...

"그 '일베 기자'를 잘라라"라는 말에 대하여 file [32]

  • 2015-04-03
  • 조회 수 2794

KBS 일베 수습기자의 정식 임용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파벨라에 박권일, 김민하가 관련 글을 썼다. 박권일은 ‘’일베기자‘ 관련 메모: 일베스럽지 않게 일베와 싸워야할 의무’에서 “우리는 ‘일베’라는 정체성이 아니라, 일베에서 쓴 글의 내용, 즉 ‘구체적 행위를 문제삼아야 한다”며 “여론을 업고 일베 기자를 싹둑 잘라내면 속은 시원할 테지만 그 잠깐의 속시원함 외에 남는 게 별로 없다. 이 사건을 지속적으로 고민하면서, 사회적 차별발언의 범위를 논의해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민하는 ’KBS 일베 기자에 대한 ...

2016년 촛불, 그 미완성의 승리 file

  • 2016-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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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최대 232만명이 모이고, 심지어 횃불로 타올랐던 촛불은 잠시 소강상태다. 탄핵소추안 의결을 앞두고 주저하던 의회를 가결로 이끈 것은 오롯이 촛불과 촛불을 응원하는 시민의 힘이었다. 의회가 상황논리를 대며 망설일 때마다 시민들은 압도적 숫자로 의회를 압박했다. 촛불은 이제 헌법재판소에 맡겨둔 대통령에 대한 제도적 파면권이 어떻게 행사될지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권한이 오용될 경우, 제도적 파면권은 대통령이 아니라 헌재를 향할지도 모른다. 소강상태인 촛불이 언제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