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알 자지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월간 <말>에서 기자로 일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과 사회비평을 쓴다. 지은 책으로 <소수의견><우파의 불만><지금, 여기의 극우주의><88만원세대> 등이 있다.
괴물이 많다고 사람 되길 포기하지는 맙시다
- 『한겨레』 편집권 침해 사태에 관하여
참담한 심정으로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수년간 『한겨레』 지면에 글을 쓰고 있는 필자로서 이토록 부끄러운 적은 없었다. 최근 벌어진 ‘『한겨레』 경영진 편집권 침해 사태’ 때문이다.
먼저 확실히 해두자. 이 사태는 『한겨레』 구성원의 내부갈등이란 층위를 넘어선, 엄연한 공적 사안이다. 정경유착 의혹 증거를 입수해 폭로한 기사에 대해, 이유나 해명이 어떠하든 언론사 경영진이 개입해 ‘압력’을 행사했다. 더구나 그 언론사는 ‘민주시민의 언론’을 자임하는 곳이다. 해당 매체의 독자나 필자가 아니더라도,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사건에 관심을 가질만하고 또 가져야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사태의 전말
『한겨레21』 제1186호 표지이야기는 ‘어떤 영수증의 고백―박근혜 정부, 재벌-보수단체 커넥션’이었다. 소위 ‘단독보도’였다. 그런데 기사화 과정에 양상우 대표이사, 김종구 편집인 등이 개입한다. 이에 『한겨레21』 기자들과 『한겨레』 노동조합이 “편집권 침해”라 문제제기하며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특기할만한 부분은 『한겨레』 경영진이 개입한 시점과 양태다. 기사에 등장하는 재벌은 LG였고 취재상황을 미리 안 LG 전무가 11월 1일 『한겨레』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겨레』 노보에 따르면, 그 전무는 『한겨레21』 팀장을 만난 뒤 김종구 편집인을 다시 만나 『한겨레21』 표지이야기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김 편집인은 같은 날 양상우 사장, 고경태 출판국장을 만나 “표지이야기를 교체하는 게 좋겠다”는 뜻을 밝힌다. 이튿날인 2일, 김 편집인은 『한겨레21』 길윤형 편집장에게 “표지기사가 함량미달이니 교체하라”고 요구한다. 취재 기자가 아직 최종고를 탈고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길 편집장이 거부하자 이번엔 양상우 사장이 직접 기사 초고를 출력, 지적사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길 편집장에게 다시 전달했다. 길 편집장은 지적사항 중 일부를 반영해 해당 기사를 표지이야기로 실었다.
사태가 알려지며 사내외에서 큰 반발이 일자 양상우 사장은 23일 입장문을 발표해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편집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같은 날 『한겨레』 구성원 78명은 성명을 내고 “편집권 침해 행위를 부인하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이번 사태의 본질은 편집권 독립을 존중하고 그 가치를 수호해야 할 『한겨레』 대표이사가 기사를 직접 데스킹했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경영진은 “기사품질을 높이기 위해 의견을 제시한 것뿐 편집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양상우 사장, 김종구 편집인만이 아니라 고경태 출판국장 역시 ‘기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사장이 기사작성에 개입할 수 있다’는 요지의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한편 『한겨레』21』 길윤형 편집장은 따로 발표한 입장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장이 기사에 대한 여러 의사 표시를 한 사실은 있지만 편집권을 결정적으로 침해하는 선을 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상적으로 발행된 1186호 표지 이야기가 그 증거다.”“다만, 이와 비슷한 사태가 되풀이 되면, 결국 우리가 소중히 지켜온 편집권 독립이라는 원칙이 어느 순간에선가 무너져 내릴 수 있다.”
『한겨레21』 기자측은 사태를 “편집과 경영의 분리 원칙을 비롯해 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한겨레』의 핵심 가치를 훼손한 일”로 규정했다. 23일 성명을 발표한 『한겨레』 구성원 78명, 그리고 『한겨레』 노조 역시 편집권 침해 사실의 인정과 경영진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원칙을 우회하면 그건 더 이상 원칙이 아니다
‘기사 품질을 높이기 위한 정당한 개입’이라는 경영진의 주장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한국인에겐 민주주의가 시기상조이니 한국식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던 그 옛날 박정희식 민주주의론이 떠오를 정도다. 기사의 ‘품질’을 높이자는 당위야 부정할 수 없겠다. 하지만 그 ‘품질향상’은 일차적으로 취재•편집 부문이 알아서 할 몫이다. 그래서도 안되겠지만 만약 경영진이 개별 기사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며 ‘빨간펜’을 휘둘러왔다면, 최소한 일관성만큼은 인정할 여지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유독 이번에, 하필 LG라는 재벌이 엮인 사안에서 돌발적으로 과도한 개입을 하니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다. 언론사 경영진의 업무영역은 경영이다. ‘데스킹’이 아니다. 경영진이 경영을 잘해서 조직에 활력이 넘친다면, 기자들의 역량도 제고되어 경영진이 그토록 우려하던 기사의 품질 역시 좋아지리라 믿는다.
길윤형 『한겨레21』 편집장의 입장문도 납득 되지 않긴 매한가지다. 경영진이 표지이야기 교체를 요구한 순간, 개별기사에 일일이 수정사항을 달아 전달한 순간, 편집권 침해는 이미 발생한 것이다. 편집권 침해라는 개념 자체가 원래 그렇다. 만일 경영진 요구에 굴복해 표지이야기가 교체되었다면? 그 역시 편집권 침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장의 ‘데스킹’으로 표지기사가 교체되는 수준이라면 이미 언론으로서 ‘막장’에 다다른 것이다. 지난 10년간 한국 언론 전체가 무참히 퇴행하면서, 사람들의 역치(threshold) 또한 전례 없이 높아진 게 사실이고 어지간히 망가지지 않으면 티도 안날 지경이 됐다. 그러나 엉망진창으로 썩어문드러지지 않았다고 해서, 표지이야기를 어쨌든 지켜냈다고 해서, 그것이 편집권 침해가 아닌 것은 아니다.
영화 『생활의 발견』에 나오는 대사 “우리, 사람 되긴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는 지독히 유해한 말이다. 얼핏 그 말은 우리에게 최소한의 윤리적 마지노선을 지키자고 호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말의 실제 기능은 “내 비록 인간 같지 않은 짓을 하고 있지만 최소한 괴물만 아니면 괜찮은 거지”라는 은밀한 위안을 삼투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괴물의 존재를 알리바이 삼은 준-괴물들은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소소한 악행을 저지르고 또 용납하다가, 결국 진짜 괴물로 변해버릴 것이다.
원칙을 입으로 외치는 건 쉽다. 다른 핑계를 대며 원칙을 우회하는 것 역시 쉽다. 그러나 원칙을 우회하면 그건 더 이상 원칙이 아니다. 양보할 수도, 타협할 수도, 우회할 수도 없기에 그것은 원칙이라 불린다. 편집권 독립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대원칙이다. 그것이 언론의 자율성 및 독립성 확보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일 뿐 아니라, 자본-권력에 독립적인 언론의 존재는 공동체가 달성할 수 있는 정의의 수준에 직결되는 까닭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정황과 발언을 논리적으로 배치하고 경험칙을 적용하면 오직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질 뿐이다. 더도 덜도 아닌 편집권 침해다. 나는 『한겨레』 경영진이 명백한 악의나 비열한 의도를 가지고 구성원을 기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어가 버렸다. 그들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못해서 더 큰 오류의 순환으로 빠져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현장에서 뛰는 『한겨레21』기자들이 사태를 가장 정확히 보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게 경영진과의 ‘끝장투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과 동료가 함께 견지해온 원칙의 회복일 터이다. 『한겨레』의 외부 필진으로서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우려한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 떨쳐 일어선 기자들에게 지지와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