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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알 자지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월간 <말>에서 기자로 일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과 사회비평을 쓴다. 지은 책으로 <소수의견><우파의 불만><지금, 여기의 극우주의><88만원세대> 등이 있다.

박권일

2018.03.04 03:20

다음은 관련해 제 페이스북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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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 이어 한겨레 토요판에서도 파벨라에 실린 내 글을 인용해 기사를 썼다. 사안의 중요도에 비해 이상하게 인기가 있는데, 이유는 빤하다. 논쟁적인 이슈이기 때문이다.(라고 쓰고 어그로를 끈다고 읽는다).

중앙일보와 달리 이번에 기사를 작성한 한겨레 박세회 기자는 내게 전화를 해서 이것저것 물어봤고 몇 가지 답변을 했다. 물론 이 한겨레 기사를 가지고도 나는 빙상연맹 실드 쳤다고 까였는데, 뭐 그건 예상한 바였으니 그렇다 치자.

이건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매스스타트의 경기방식과 한국사회라는 배경이 합쳐지면, 이번과 같은 일은 거의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금메달 하나하나에 전국민이 환호열광하며 금메달 개수로 세계 각국을 일렬로 줄세우는 걸 당연시하는 대한민국에서, 대표팀은 무조건 금메달을 따야하므로 경기규정을 위배하지 않는 선에서 이승훈과 같은 방식으로 우승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레이스에서 속도가 빨라지면 질수록 공기저항이란 요소는 점점 더 치명적이게 되고, 그럴 때 도움선수의 존재는 결정적이다. 이번 이승훈과 같은 전술은 너무나 효과적이기 때문에 매스스타트의 경기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한국팀만이 아니라 다른 팀도 조건이 된다면 이 전략을 사용할 가능성은 다분하다.

물론 그런 방식이 썩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문제의 원인을 전부 빙상연맹의 간악무도함으로 몰아가는 것은 오히려 빙상연맹이 실제로 잘못한 게 무엇인지를 은폐하는 효과를 낸다. 이승훈이 그런 전략을 쓰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으며, 그중에선 매스스타트의 종목적 특성도 한몫 했다. 도움선수가 희생해 에이스를 우승시킨다는 점은 투르드프랑스와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투르드프랑스에서 도움선수는 우승선수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수준의 보상을 얻는다는 점이 매스스타트와 다르다.

가장 '공정'한 해법은,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딸 가능성을 낮추면서 아무도 남을 돕지 않고 각자도생 경기하는 것이다. 아니면 도움선수의 희생을 유도하는 매스스타트 경기를 보이코트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 두 가지 해법은 논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한다. 무의미한 가정이기에 블로그에도 쓰지 않았다. 이 해법을 택하지 않는다면 관건은, '사실상 팀플을 할수밖에 없는 개인전'에서 발생하는 부조리함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블로그에 썼다.

유시민 씨는 '썰전'에서 매스스타트 대표팀 결승 경기를 두고 올림픽 헌장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분개했다고 한다. 그는 평소 '현실'을 강조하며 원론이나 원칙을 비웃기로 유명한 사람인데, 이럴 때는 올림픽 헌장 운운하며 원론적인 이야기를 갖다쓰고 있다. 한국팀이 정말로 올림픽 헌장을 위배한 중대한 잘못(인종차별 등등에 준하는)을 저질렀다면 IOC가 나서서 징계를 해야할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할지, 이게 그 정도 사안일지에 대해 나는 좀 회의적이다.

따지고보면 올림픽 헌장에 가장 노골적으로 어긋나는 짓은 오랫동안 대한민국의 특기였던 어떤 짓, 즉 금메달 개수를 집계해 국가별로 순위를 매겨 공표하고 일희일비하는 행태다. 올림픽 헌장 중 올림픽 대회의 성격을 규정한 6조 1항은 올림픽 경기가 국가 간 경쟁이 아니라 (개인전 단체전을 통한) 선수들 간의 경쟁이라 명시하고 있다.


한겨레 기사
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834450.html?_fr=mt2

파벨라 블로그 글
http://fabella.kr/xe/blog2/83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