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 칼럼은 <알 자지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월간 <말>에서 기자로 일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과 사회비평을 쓴다. 지은 책으로 <소수의견><우파의 불만><지금, 여기의 극우주의><88만원세대> 등이 있다.

* <황해문화> 2015년 봄호에 실린 글.


서평 <음모론의 시대>(전상진, 2014)

 음모론 완전정리

 

박권일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완전정리. 그렇게밖엔 표현할 수 없다. 이 책에는 담론체계이자 사회현상으로서 음모론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다. 음모론이라는 현상에 대해 이 정도로 진지하고 철저하게 파고든 저술을 본 기억이 없다. 쉽다고 할 수만은 없는 내용임에도 개념의 명징한 사용과 정갈한 문장 덕에 막힘없이 읽어나갈 수 있다. 가끔 등장하는 깨알 같은위트와 너스레도 맛을 더한다.

음모론이라는 말에는 이미 상당한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다. 그것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망상, 루머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에이 그건 음모론일 뿐이지라고 낙인찍는 순간, 어떤 사람의 꽤 신빙성 있을지도 모를 가설이 순식간에 찌라시 급으로 전락하고 만다. 음모론과 합리적 의심을 구별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기에, 음모론이라는 명명 자체가 소모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음모론을 진지하게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이는 그동안 좀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저자 전상진은 왜 음모론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을까. 그는 음모론에 꽂힌순간을 명확히 기억한다고 말한다. 20085월이었다. “당시 나는 음모론의 오묘한 쓸모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음모론은 저항(‘촛불’)의 불쏘시개였지만, 또한 저항을 분쇄하는 조치를 정당화했다.”(8)

저자는 음모론이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숙고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이후 그는 음모론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고, 2010<한국정치의 편집증적 스타일(paranoid style)?>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재직하는 학교(서강대학교) 사회심리학 수업에서 음모론을 주제로 다루기도 했다. 몇 해 동안의 연구와 고민은 201412월에 결산된다. 바로 이 책, <음모론의 시대>.

 

음모론은 과잉 합리성이다

저자가 2008년 촛불시위에서 음모론의 오묘한 쓸모를 포착한 반면, 나의 경우 음모론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때는 2006년이었다. 구체적으로는 황우석 사태라 불리는 일련의 소동을 한 명의 기자로 경험하면서부터였다. 황우석 사태는 2005년 말부터 2006년 초 한국사회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킨 전무후무한 스캔들이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사회적 파장과 흉터를 남겼다는 점에서 가히 외상적 사건(traumatic event)’이었다. 2015년 현재, 황우석 씨가 주도하는 연구소가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의 수주를 따내는 등 버젓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진행형인 사건이기도 하다.

몇몇 사람들의 외로운 싸움을 통해 황우석 줄기세포 연구에 실제로 심상찮은 문제가 있음이 밝혀지기 시작하자 황우석에 열광하던 이들이 격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무기는 다름 아닌 음모론이었다. <중앙일보> 홍혜걸 의학전문기자는 “(서구 과학계가) 겉으로는 생명윤리를 내세우지만 속으론 연구진에 대한 흠집내기 의도가 역력해 보였다면서 먼저 분열된 국론을 통일해야 한다고 일갈했다(홍혜걸,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중앙일보> 20051124일자). 이후 등장한 음모론들에 비하면 홍 씨 것은 애교 수준이었다. <딴지일보> 김어준 씨는 어떤 세력이 기획한 시나리오에 의해 절도범황우석이 살인범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황우석이 줄기세포를 바꿔치기 당한 것이라는 시나리오였다(김어준, ‘새튼의 특허에는 음모가 있다’, <딴지일보> 2006228). 유대인 음모론(“MBC가 유대인인 새튼과 손잡고 황우석 죽이기에 나섰다”)도 갖가지 버전으로 등장했다. 가히 음모론의 홍수였다.

그토록 많은 시민들이 그토록 허술한 음모적 서사에 탐닉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황우석의 거짓말 이상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평소 합리적인 모습을 보였던 지식인들조차 황우석 음모론을 진지하게 믿고 있었다. 황우석 사태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끄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음모론은 어김없이 출현했다. 나는 도돌이표마냥 되풀이되는 음모론들을 보면서 실체적 진실 여부가 아니라, 다시 말해 음모론의 내용이 아니라 끝없이 귀환하는 그 형식을 문제 삼아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음모론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의미를 해명하기 위해 논리필연성을 강박적으로 앞세우는 과학적 수사관이면서 동시에, 아무나 세계의 진실을 알아챌 수는 없다고 확신하는 밀교적 선지자였다. 음모론을 단지 몰이성과 비합리와 광기의 병리적 표출로 치부해버리면 그런 모순적 주체를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음모론을 추동하는 에너지가 실재를 향한 열정(passion for the real)’에 밀착한 일종의 과잉 합리성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 사람들은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이어서 음모론자가 된다기보다 오히려 이성, 논리, 과학에 물신주의적으로 집착하기에 음모론자가 된다. <음모론의 시대>에서 저자도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더 중요한 반대 이유는 음모론이 비합리적이라는 추정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 비합리적이며 근거 없는 주장이다. 음모론은 오히려 합리주의의 과잉에 시달린다. 이른바 극단적 합리주의’, 즉 어떤 우연도 허용치 않으면서 모든 중요한 사건의 배후에 누군가의 의도와 개입을 가정하는 것이 문제다.”(44)

 음모론의시대_표11-600x959.jpg


 

고통의 사회심리학

이 책의 백미는 음모론을 고통의 신정론으로 일관되게 설명한다는 점이다. 신정론(神正論)이란 고통, , 죽음 등을 신의 존재에 의거하여 정당화하려는 믿음체계다. 쉽게 말해 신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고통이 우리를 끝없이 괴롭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가 신정론이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종교적 신정론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신의 섭리따위의 말로는 현실의 불공평함과 부조리함을 정당화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삶의 고통은 여전한데 신은 죽어버렸기에 대신할 다른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사회정론(社會正論), 세속적 신정론이다. 저자는 음모론을 세속적 신정론의 한 유형으로 본다. “종교와 정치의 설득력이 약화되면서 발생한 설명의 빈자리를 다른 세속적 신정론이 탐하기 시작했다. 바로 음모론이다. 고통을 설명하는 문화적 장치라는 점에서 신정론과 이데올로기와 음모론은 같다. 물론 차이가 있다. 신정론과 이데올로기가 밝은 곳에서 활약한다면, 음모론은 어두운 곳에서 활동한다.”(23)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 인간은 고통을 싫어한다. 그런데 가장 못견뎌하는 건 이유 없는 고통, 불가해한 고통이다. 만약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이 납득할만한 것이라면, 예컨대 명백한 죄에 대한 적법한 처벌인 경우, 혹은 당장의 고통을 통해 미래의 쾌락이나 이득을 보장받을 경우라면 우리는 종종 굉장한 인내심을 발휘하기도 한다. 인간은 고통을 회피하고 쾌락을 좇는 것만큼이나 의미와 보람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동물인 까닭이다. 음모론은 지금 겪는 곤경과 비극이 누구의 책임인지를 명백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고통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신정론은 또한 기대와 현실의 간극을 채워 넣으려는 시도다. 필요한 것, 원하는 것은 많지만 능력은 늘 미치지 못한다. 우물에 물이 조금밖에 없는데 풍족한 것처럼 보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안에 돌멩이를 채우면 된다. 그러면 우물의 수위가 점점 높아져서 물로 가득 들어찬 것처럼 보일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성의 주요 문제를 다룬 <액체근대>에서 기대와 현실의 간극을 채우는 두 가지 부질없는 시도를 전기적 해법상상적 해법이라 불렀다. 그 두 가지 해법이 곧, 우물을 실제로는 전혀 채우지 못하지만 마치 채워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돌멩이들이다. 전기적 해법은 쉽게 말해 자기계발이다. 나의 고통과 역경은 나라는 개인의 능력부족에 기인하므로 해결책은 내가 능력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상상적 해법은 고통의 원인을 외부의 희생양, 적에게서 찾는다. 음모론은 바로 이 상상적 해법에 해당한다. “우리 시대의 핵심적 모순은 무한정 커지는 기대(권리)와 그래서 더 초라하고 비극적인 현실(능력)의 간극인데, 이를 채울 방도는 여럿이다. 과거에는 신정론이 이를 담당했고, 오늘날에는 자기계발과 음모론이 거든다. 외관은 달라도 쓸모는 같다.”(88~89)

 

책임윤리 혹은 어떤 용기

저자는 통치 음모론저항 음모론을 구별하면서 음모론이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불씨로 작용해 현실변화의 동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대책 없는 낙관주의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저항의 음모론이 내러티브 만들기, 패러디와 조롱 같은 음모놀이(140)”에 머물 뿐 정작 현실을 바꾸는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고 저자는 냉철하게 지적하고 있다. 책의 후반부, 정치 영역에서 드러나는 음모론에 관한 분석도 밀도 높고 흥미진진하다. 권력과 음모론의 동학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선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 할 수 있다.

결론부에 이르러서는 냉정했던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글의 온도가 조금 올라간다. 막스 베버가 말한 책임윤리3요소-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언급하면서부터다. 저자는 책임윤리가 시대착오적인 면이 있으며 구태의연해 보이는걸 인정하면서도 음모의 시대에 책임윤리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거듭해 강조한다.

 

악마적 관점을 좇아 그들을 단죄함으로써 우리를 정화하는 것은 비교적 단순하며 쉬운 해결책이다. 진정으로 어려운 것은 그들우리의 공모 관계를 인정하여 우리의 정치적 책임을 따지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구태의연해 보이는 책임윤리가 빛을 발한다. 책임윤리의 세 요소 중 하나인 균형감각은 사물, 다른 사람(타자)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 및 우리와 거리를 두는 것이다. 객관적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것이 확보되어야 그들과 공모자인 나 자신과 우리 자신에게 죄와 책임을 물을 수 있다.”

233~234

 

베버의 종교사회학에 나오는 개념인 신정론을 가지고 음모론 분석을 시작한 저자가 끝에 가서 베버의 책임윤리를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꽤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거인의 어깨에에 훌쩍 뛰어올라가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그야말로 능수능란하게 요리를 마무리 지었다는 느낌이다. 음모론의 시대에 책임윤리가 필요하다는 말에 동감하면서도, 저자가 간과한 이야기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사람들이 음모론을 믿지 않을 수 없는 계기 중 하나, 정보기관이 각국 정상의 전화를 도청하는 것이 밝혀지는 등 음모론이 사실로 확인된 경험을 들었다. 확실히 그런 면이 있긴 하다. 특히 한국사회의 경우, 권력자의 불법과 탈법에 관한 이야기가 카더라풍문으로 떠돌다 끝내 사실로 확인된 사례가 하늘의 별처럼 많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줄리언 어샌지의 위키 리크스 같은 폭로가 음모론의 위력을 더욱 크게 키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 생각은 정확히 그 반대다. 위키리크스 문서들을 조금만 살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기밀문서 속에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진 각국 엘리트들의 모습은 어떠했던가.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착오를 반복하면서도 만나면 시답잖은 농담으로 소일하거나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나머지 뒤에서 서로에 대한 험담에 열중하는 멍청하고 음침한 작자들이다. 베일에 가린 전지전능한 악의 세력이 현실의 권력들을 정교하게 통제하는, 그런 음모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것은 어쩌면 음모의 실존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일지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정말이지 깜짝 놀랄 정도로 허술하게 굴러가고 있다는 것. 세계는 내러티브라기보다 해프닝이며, 의미라기보다 무의미라는 것. 그러니 음모론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책임윤리만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용기가 아닐까. 세계의 공허를 직시하는 용기 말이다.

 


댓글 '5'

뮤타

2016.01.12 19:25:51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 비합리적이며 근거 없는 주장이다. 음모론은 오히려 합리주의의 과잉에 시달린다. 이른바 ‘극단적 합리주의’, 즉 어떤 우연도 허용치 않으면서 모든 중요한 사건의 배후에 누군가의 의도와 개입을 가정하는 것이 문제다'
'세계는 내러티브라기보다 해프닝이며, 의미라기보다 무의미라는 것. 그러니 음모론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책임윤리만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용기가 아닐까.'

뮤타

2016.01.12 19:45:34

극단적 합리주의, 우연이 없는 세계, 실재에의 열망(처럼 보이는)....음모론을 이 정신병적 구조(?)로 분석하는 건 어찌보면 '해답없음'을 전제하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외려 마지막에 보이는 권력의 문제로 이걸 바라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싶기도. 권력이 법과 합리로 설명 불가능한 예외적 주체라는 걸 '음모론'이 전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그런 점에서 이 장삼이사들의 음모론은 권력이라는 예외적 주체까지도 질서의 일부로 편입시키고 싶은 강박에 가깝지 않을까 하고요. 또 그런 점에서 요 아래 쓰신 문명-미개(배제) 권력-음모(편입)의 매커니즘은 거의 동일하게 볼 수도 싶지 않을까 하는.... 일하기가 싫어서 댓글 달아봤습니다. 근데 책을 안읽어서.. 읽어봐야겠네요!!!

박권일

2016.01.12 21:31:59

책 재미있습니다. 강추합니다! ㅎㅎ

소년의노래

2016.01.13 22:47:34

마지막 문단이 참 좋네요. 공허를 직시할 용기. 사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요약을 너무 잘해주셔서 책을 읽어야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꼭 읽어야겠네요. ㅋㅋ

박권일

2016.01.17 12:54:20

아무래도 책 내용을 온전히 담지 못하죠 서평은... 기회 닿으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sort

지도에 드리운 박정희 망령 file [1]

  • 2017-01-11
  • 조회 수 28714

국가가 또 여성들에게 모욕을 안겼다. 지난 12월 29일 행정자치부는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여기엔 지자체별 합계 출산율, 출생아 수, 가임기 여성 수가 담겨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 비난이 폭주했다. 특히 반감을 산 건 ‘가임기 여성’ 숫자였다. 지도에서 각 지자체를 클릭하면 해당 지자체에 가임기 여성이 얼마나 거주하는지 한 자리 수 단위까지 공개됐다. 인구에 따라 순위도 매겨졌다. “여성을 애 낳는 기계로 본다”는 비판이 비등했다. 이 와중에 디씨인사이드 주식갤러리에는 “보X몬 고(GO)”라는 ...

웰컴 투 ‘트럼프 월드’ -트럼프와 초불확실성 file [1]

  • 2017-02-10
  • 조회 수 25200

실행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취임하자마자 미국의 새 대통령은 세계를 충격과 경악에 빠뜨렸다. 1월27일 반이민 행정명령에 이어 2월1일에는 ‘책임성 있는 이민법을 통한 납세자 보호 행정명령’이란 제목의 행정명령 초안이 발표됐다. 반이민 행정명령이 이슬람권 7개국 출신자의 입국을 한시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라면, 이번 것은 이민자 장벽을 전체적으로 높이는 조치다. 도널드 트럼프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한 한편,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미국 시민이나 멕시코 시민들...

전선은 심화되어야 한다 file [2]

  • 2016-11-22
  • 조회 수 20571

사퇴와 탄핵, 투 트랙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합의했고 실제 그렇게 흘러왔다. 대통령은 자리에서 스스로는 물러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사퇴 압박은 계속되어야 하고 아마 그리될 것이다. 의회의 탄핵 움직임도 하나씩 진행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현실권력으로서 박근혜는 이미 끝났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대 대한민국’이라는 전선의 효용은 거기까지다. 그 구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얼추 다 했거나 지금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 전선을 확대해야 한다. 방금 나는 ‘확대’라고 썼는데, 이는 박근혜와 측근 몇몇...

레토릭, 진정성, 일관성 file [1]

  • 2017-04-16
  • 조회 수 11875

글 잘쓰고 말 잘하는 것, 정치인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특히 말을 잘하는 건 굉장한 강점이다. 정확한 발음과 발성, 적절한 비유와 제스처, 촌철살인의 요약... 어쨌든 이미지 정치의 세계다. 공개 토론회에 나가 버벅거리면 대중에게 실망을 안기고 지지자에게 불안을 주기 십상이다. 재미있는 것이, 이게 정치인의 지지율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긴 또 어렵다는 점이다. 차밍 포인트지만 크리티컬 포인트는 아니라 할까. 안철수는 엄청난 눌변이고, 문재인도 달변은 아니다. 이들에 비해 유승민과 심상정의 언변은 그야말로 구름 ...

안희정, 갈등회피형 리더십 file [1]

  • 2017-03-03
  • 조회 수 9267

안희정 충남지사의 말 때문에 ‘난리’가 났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그분들도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는데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아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했다. 비난이 폭주했다. 탄핵 절차에 있는 박 대통령을 두고 “선의” 운운한 건 ‘선’을 한참 넘어갔다는 평이다. 안 지사는 ‘현장에서 반어법과 비유로 이야기했는데 기사화되면서 오해를 샀다’며 언론 탓을 했다. 설상가상 한 방송사와의 대담에서 발언을 해명하며 “통섭” 운운한 것이 구설에 올랐다. 결국 그는 사과...

주갤러라는 이름의 표현대중 file [1]

  • 2016-12-22
  • 조회 수 8723

디씨인사이드 주식 갤러리를 흔히 ‘주갤’, 유저들은 ‘주갤러’라 부른다. 주식시장이란 게 세상 온갖 일에 영향을 받곤 하는지라, 주갤러들은 세상사에 관심이 많다. 물론 아는 게 많다고 주식으로 돈을 번단 보장은 없다. “주식만 빼고 다 잘하는 주갤러”란 말이 나온 이유다. 아무튼 그 주갤러가 또 한 번 주가를 올린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12월 7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2차 청문회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박영선 의원이 김기춘의 위증을 밝혀냈는데 그 과정에서 주갤러의 제보가 결...

안철수 혹은 보수의 정상화 file [1]

  • 2017-04-13
  • 조회 수 8388

대선 레이스가 점입가경이다. 열흘 전과 비교해 공기가 달라졌다. 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때문이다. 최근 보름여 동안 지지율이 껑충 뛰었다. ‘문재인 독주’는 어느새 ‘문재인 대 안철수’ 구도가 됐다. 웹 커뮤니티들은 양 후보 지지자의 드잡이로 아수라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선을 긋는다. 양자 대결이 실현되려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안철수 쪽과 단일화 내지 연대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발생 가능성이 낮고 발생해도 호남 지지자가 대거 빠져나갈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

시사인 여성혐오 특집에 관한 잡감 file [14]

  • 2015-09-18
  • 조회 수 6571

Gary Becker(1930~2014) 시사인에 흥미로운 특집이 실렸다. 이번 여성혐오 기사도 그렇지만, 시사인 천관율 기자의 기사를 예전부터 읽어오면서 '일리 있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항상 아주 근원적인 부분에서 납득하지 못하게 된다. 작년쯤 그 이유를 순간 깨닫고 친구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의 이야기를 다시 간단히 적어두기로 한다. 천 기자가 사회나 정치를 설명하는 방식엔 매우 일관된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방법론이자 하나의 관점인데, 큰 틀에서 '합리적 선택 이론'이라 부를 수 있는 무엇이다. 경제이론 내지 소비...

5.25. 최저임금제 개편, 세 가지 핵심 정리 file

  • 2018-05-27
  • 조회 수 6397

2018년 5월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민주당 주도 하에 각당은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일부를 최저임금에 새로 산입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최저임금제 개편의 특징을 알아보자. 꼽자면 더 많겠으나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안이 가져올 효과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중산층 노동자 '무임승차' 차단. 둘째, 빈곤 경계선 노동자에 대한 혜택 삭감. 셋째, 근로기준법의 근간 파괴. 한 마디로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은 노동자에게는 징벌을, 기업에게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먼저 꼽아야할 핵심은 중산층 노동자 '무임승...

문명과 미개의 이분법을 버려야 하는 이유 file

  • 2016-01-07
  • 조회 수 5925

문명인이 되자는 캠페인의 실효성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자. 분명 사회적 순기능이 있을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에티켓 운동' 및 '바른생활 운동'들과 동일한 수준의 순기능이다. 캠페인 목록에 열거된 것들은 대부분 동의할만하고 권장할만한 도덕적 행동이다. 이것마저 부정하면 더이상의 논의는 불필요하다. 그냥 각자 가던 길 가면 된다. 아무튼 이 정도는 전제해두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질문 하나 던진다. 에티켓운동, 바른생활운동과 비슷한 효과를 얻기 위해 문명 대 미개라는 프레임을 동원해야 할 필연성이 있는가? 이 ...

지옥의 연대는 가능한가 [상] file

  • 2015-09-08
  • 조회 수 4617

지옥의 연대는 가능한가 [상] <경향신문> ‘헬조선’ 커버스토리에 부쳐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의 ‘헬조선’ 기획은 흥미로운 기사였습니다. 저는 이번 기사와 같은 웹 담론분석에 관심도 많고 기본적으로 무척 우호적인 편이예요. 제 자신이 웹 담론에 관한 논의를 예전부터 해오기도 했구요(몇 해 전 반이주노동자 온라인 커뮤니티의 극우 담론을 분석한 글을 공저로 출간한 적 있습니다. <우파의 불만>이라는 제목입니다).  기사에서 인용된 ‘의미망 분석’에도 최근 들어 관심이 커졌습니다. 2014년 11월경 어느 모임에서 일베를 주제로 ...

[한숨] 한국노총이 열어제낀 진짜 지옥문 file

  • 2015-09-14
  • 조회 수 4567

어제 한국노총이 들러리를 선 일반해고/취업규칙 "합의"로, 여러 정권에 걸쳐 참으로 집요하게,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노동계급 파괴공작은 사실상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자본-국가 결속체는 저항할 힘이 없는 노동자들의 손발부터 잘라내 뜯어먹었다. 금융위기 이후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장년층 비정규직 노동자, 2009년 대졸초임삭감으로 생애임금이 뭉텅 잘려나간 대졸청년들은 조직 노동자들과 더이상 '같은 노동자'라는 동질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상황에 내몰렸다.  조직 노동자들은 "철밥통" 을 넘어 어느새 "비정규...

마법에 걸린 신체, 재주술화하는 주체 file

  • 2016-11-13
  • 조회 수 3647

재주술화(reenchantment)는 글자그대로 다시 주술화되었다는 말이다. 베버에게서 시작된 '주술화/탈주술화/재주술화'라는 말에 영감을 얻은 후대의 학자들은 적지 않다. '일상의 사회학'을 주창한 마페졸리도 있고 미학이란 맥락에서 이 개념을 참고했던 벤야민도 있다. 이 글은 그러나 그들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베버에게 근대란 합리성의 지배이자 탈주술화의 세계이지만 그가 재주술화를 배척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탈주술화한 세계를 전혀 믿지 않는 신앙인이 현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 깊은 흥미를 ...

'시민의회' 메모 file [1]

  • 2016-12-11
  • 조회 수 3259

시민의회라는 것을 명망가들이 제안했고, 거기에 대한 반발이 거센 모양이다. 그분들의 선의를 의심하진 않는다. 진심으로 뭔가 좋게 만들어보려고 일을 추진했을 것이다. 난 오히려 시민의회 주장보다 그 진의를 의심하는 목소리-'순수시민'에 대한 저 집요한 강박이 더 문제적이고 징후적이라 생각한다. 물론 시민의회 비판이 전부 진의를 의심하기에 나온 것은 아니다. 내가 지금 같은 형태의 시민의회에 회의적인 이유 또한 그것이 '불순'하다 생각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것이 기성질서에 대한 순종에서 나온 발상이기 때문이다. 그들...

지옥의 연대는 가능한가 [하] file [8]

  • 2015-09-08
  • 조회 수 3075

지옥의 연대는 가능한가 [하] <경향신문> ‘헬조선’ 커버스토리에 부쳐 ‘왜 그 단어인가’라는 질문 경천동지할 새로운 현상이 아니더라도 훌륭한 결과물이 산출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진부하고 낡은 소재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혹은 은폐되었던 사회적 의미를 건져냈을 때 그렇습니다. 이것은 곧 담론분석의 마지막 단계이자 핵심이라 할 분석적 재구성이 잘 수행되었단 뜻입니다. 분석적 재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 하필 그 단어인가?’입니다. 의미망 분석 툴을 돌린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질문도 아마 이것...

매스스타트, 사이클, 그리고 빙상연맹 file [12]

  • 2018-02-27
  • 조회 수 2973

(사진설명: 앞이 미켈 란다, 뒤에서 바닥 보는 선수가 크리스토퍼 프룸이다. 2017년 투르 드 프랑스의 경기 장면.) '스케이트맘의 폭로…“우리 아들은 이승훈의 ‘탱크’였다”' 제하의 <서울신문> 기사 는 금메달을 위해 다른 선수가 희생하는 스케이트 국가대표팀의 방식을 비판하고 있다. 의미가 없지 않지만,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은 기사인지는 의문이다. 기사에서 언급한 '탱크' 작전은 일등 한명을 위해 나머지 선수가 헌신하고 희생하는 방식을 가리키는데,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는 스포츠는 매스스타트만 있는 게 아니다.  매스스...

'일베기자' 관련 메모: 일베스럽지 않게 일베와 싸워야할 의무 file [37]

  • 2015-04-02
  • 조회 수 2805

KBS '일베기자' 관련해 지금 웹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을 보면 아직 팩트들이 완전히 정리되지도 못한 상태다. 애초 가장 문제가 되었던 블라인드 게시판에 올린 생리대 관련 글은 최초보도를 포함 수많은 기사내용과 달리, 해당 기자가 올린 글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거기 접근하려면 사번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사번이 없었을 것이므로). 반면 일베에 올린 각종 차별/혐오발언들은 해당 기자가 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일베의 그 글들은 입사하기 전 소위 '언론고시생'일 때 쓴 것들이다.  먼저 가장 기본적인 부분부터 다시...

'누구를 향한 표현의 자유인가'라는 질문 file

  • 2015-12-23
  • 조회 수 2704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ICTR, 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Rwanda) 자료들을 틈날 때마다 살펴보는 중이다. 알려졌다시피 불과 100일 동안 80만명~100만 명이 학살당한 인류 최악의 비극 중 하나다. 친절했던 선생님, 목사님, 신부님, 상점 주인 아저씨가 하루아침에 이웃집 소년소녀를 난도질해 죽이고 윤간한 다음 죽였다. 르완다 전체 인구의 최소 20퍼센트가 사망했다. 투치족이 희생자의 다수였지만 후투족 역시 많이 살해당했다. 르완다는 아프리카 국가 중 문맹률이 낮고 교육수준이 높은 나라였다.  재판과정에서 언론과 ...

재반론: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들 file [1]

  • 2016-04-23
  • 조회 수 2370

0. "조롱"에 대해 "박권일 선생은 드물게도 내 글에서 조롱의 뉘앙스를 느낀 독자다" 글에서 조롱의 뉘앙스를 느꼈다고 쓴 기억은 없다. 나는 이렇게 썼다. "손이상 씨의 글은, '0.38% 지지율의 동호회 정당'을 마음껏 조롱하고 싶은 이들에게 마침맞은 핑계를 제공해준 것 같다." 조롱하고 싶은 사람에게 핑계를 제공해주는 것과 조롱하는 건 다른 행위다. 손이상 씨의 글을 정말 조롱이라 느꼈다면, 혹은 손이상 씨를 정치적 적대자라 여겼다면, 내 대응방식은 조금 더 혹독했을 게다. "호된 질책은 고맙지만"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당혹...

[서평] 음모론 완전정리: '음모론의 시대(전상진, 2014)' file [5]

  • 2016-01-12
  • 조회 수 2233

* <황해문화> 2015년 봄호에 실린 글. 서평 <음모론의 시대>(전상진, 2014)  음모론 완전정리   박권일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완전정리. 그렇게밖엔 표현할 수 없다. 이 책에는 담론체계이자 사회현상으로서 음모론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다. 음모론이라는 현상에 대해 이 정도로 진지하고 철저하게 파고든 저술을 본 기억이 없다. 쉽다고 할 수만은 없는 내용임에도 개념의 명징한 사용과 정갈한 문장 덕에 막힘없이 읽어나갈 수 있다. 가끔 등장하는 ‘깨알 같은’ 위트와 너스레도 맛을 더한다. 음모론이라는 말에는 이미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