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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알 자지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월간 <말>에서 기자로 일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과 사회비평을 쓴다. 지은 책으로 <소수의견><우파의 불만><지금, 여기의 극우주의><88만원세대> 등이 있다.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서, 그리고 좋은 취미로서 자전거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체로 한국인들은 물리적 인프라에 한정해서 열을 내며 성토한다. 물론 자전거도로 한가운데 가로수가 줄지어 심어져 있다든가하는 황당한 사례들이 많은 게 사실이고 개선되어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하드웨어만 보자면 서울은  세계적인 기준으로 봐도 자전거 타기에 꽤 좋은 도시다. 부산과 비교해도 어마어마하게 좋다. 자전거도로의 숫자와 총연장, 노면의 질, 표지판, 한강 자전거도로 진입의 편의성은 날이 갈수록 향상되었고, 최근 5년간 정말 '눈 부시게' 좋아졌다. 해외의 어떤 자전거 선수가 서울에 처음 와서 자전거도로의 퀄리티에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2015년이라는 시점에서 볼 때, 서울과 부산 같은 대도시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물리적 인프라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하드웨어보다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제도적/문화적 인프라 말이다. 주말에 잠깐 한강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겐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겠지만 자전거를 자주 탈수록, 그리고 공도를 자전거로 타고 다닐수록 절절하게 체감하는 문제는 하나로 수렴된다. 바로 '자전거 타는 인간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와 배려'다. 

자전거를 타게 된 후 '어느날 공도에서 자동차에 로드킬당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라이딩을 나갈 때 가져가는 작은 지갑에는 내 명함 여러 장과 연락처, 현금이 들어있다. 어느날 라이딩을 하다 비명횡사하거나 의식을 잃어도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누군가 내 사고를 나의 가족과 지인에게 알려줄 수 있도록. 

그런 준비를 하기 시작한 건 공도를 자전거로 달리다가 자동차에 치여 죽을 뻔 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신호위반을 한 것도 아니고, 차선을 통째 점령한 것도 아니며, 도로의 흐름에 맞춰 단지 자동차보다 조금 느리게(사실 내가 타는 자전거는 로드바이크라 별로 느리지도 않다 시속 30킬로미터가 넘으니) 달리고 있을 뿐인데, 그 대가로 나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뒤에서 경적을 길게 울려대는 것은 그냥 일상이다. 차를 일부러 옆에 붙여 위협하는 경우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왜 자전거를 도로에서 타 이 씨발놈아" 블라블라. 자전거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면 로드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사람에게 겁을 주기 위해 부러 자동차 범퍼로 건드리는 인간도 있었다. 그렇다. 한국의 자동차 운전자의 자전거 위협은 혐오범죄와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그들은 그냥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 자전거가 다니는 게 꼴보기 싫어서 그런 짓을 하는 것이다. 의도적인 위협이 아니더라도 자전거에 바짝 붙어 추월하는 차량에 의해 목숨을 잃는 자전거 라이더는 너무 많아 세기조차 벅차다. 
3-feet.jpg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인도를 다닐 수 없다. 인도를 지나려면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가야 한다. 즉 자전거는 법적으로 차도를 다녀야 하는 '차'인 것이다. 벌써 수십년째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Share the road!"를 외쳐왔지만 여전히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공도에서 터무니없는 위협을 당하고 때로 목숨을 잃는다. 사회의 제도와 문화가 자전거에게 아무런 안전판을 마련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캠페인 같은 걸로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단지 공도에서 자전거를 타다 끔찍한 경험을 해본 자동차 운전자들만 자전거를 배려해줄 뿐이다. 그러니 자전거로 공도에 나갈 때면 운좋게 그런 운전자만 만나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자동차라면 살짝 찌그러질 충격도 자전거를 탄 사람에겐 치명적이다. 자동차가 자전거를 추월할 때 반드시 일정 정도(1미터~1.5미터 이상)의 간격을 두어야 하는 이유다. 자전거가 공도에서 당하는 사고 중 가장 자주 발생하고 또 가장 피해가 큰 사고는 바로 자동차의 부주의한 추월에 의해 발생한다. 많은 운전자들이 심리적으로 자전거를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고 '장애물'로 인식하기에 빚어지는 사고다. 그래서 각국 도시들이 관련 법을 제정했고 제정하는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3피트 추월공간 법' 같은 것이 그 예다. 한국도 빨리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자전거를 타면서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가장 기여하는 사람들은 일상적인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그래서 공도를 자전거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로드킬로 죽이는 사회가 "자전거 친화형 도시"니 "친환경 녹색 도시"를 말하는 건 그야말로 질 나쁜 농담이다. 여가형 자전거도로를 확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댓글 '5'

소년의 노래

2015.05.12 20:38:50

'사적 체험의 공론화'의 매우 적절한 예시가 될 것 같은 글이네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자전거를 참 좋아하기는 하시는 듯...ㅋㅋ)

박권일

2015.05.13 14:45:17

자전거 좋아합니다! ㅎㅎ

마린보이

2015.05.13 10:31:54

늘 좋은 의견 잘 보고 있습니다.
사실관계와 관련하여 참고로 말씀드리면, 도로교통법에 규정이 있긴하네요.
19조(안전거리 확보 등)
② 자동차등의 운전자는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자전거 옆을 지날 때에는 그 자전거와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필요한 거리를 확보하여야 한다.

박권일

2015.05.13 14:48:41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거리확보 규정이 있긴 했네요. 다만, "충돌을 피할 수 있는 필요한 거리"라는 주관적이고 모호한 표현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검증가능한 수치로 명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흐잉

2015.10.04 23:53:32

따로 확보된 자전거도로 없이 차도를 타고 달려야 하는 마당이니, 일단 자전거도로라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제가보기에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배려해주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것 보다 자전거 도로를 대부분의 도로에 만들어 넣는 게 더 쉬울 것 같습니다 =_=... 안타깝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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